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5화
35화. 임스테이(7)
애피타이저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역시 ‘부각’이었다.
“오! 이거 맛 좀 신기한데?”
성미 급한 이성진이 나오자마자 얼른 하나를 먹어보고는, 맛이 신기한지 부각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그 말에 지영도 부각을 하나 먹어봤는데, 확실히 맛이 묘했다. 오묘한 맛인데, 그렇다고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거 곤부각이네.”
“곤부각? 그게 뭔데?”
지영과 거의 비슷하게 먼저 한입 먹어본 황석의 말에 이성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곳에 와서 텐션이 확 올라온 이성진은 진짜 기분 좋을 때나 나오는 고양이 모드에 들어서 있었다.
뭐 그리 신기한 모습은 아니었다. 다 같이 있을 때는 꽤 자주 나오는 모습이니까.
“곤드레김으로 튀긴 부각.”
“아 곤드레! 근데 넌 이거 어떻게 알어? 또 은정이가 너만 해줬냐?”
“…….”
황석은 이성진이 눈을 흘기며 묻자 조용히 부각을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그에 이성진은 배신감이 잔뜩 깃든 얼굴로 와, 와를 연발하더니 말을 이었다.
“와 한은정. 그렇게 그렇게 친구친구 거려 놓고 맛있는 건 석이만 해주네. 와 배신감 진짜.”
“내둬라. 우리가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애인만 하겠냐?”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도 부각 좋아하는데!”
임효중이 말려도 이성진은 길길이 날뛰는 시늉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익숙하니까 황석도 거기에 반응하진 않았다. 둘의 케미는 한 사람은 떠들지만, 한 사람은 돌부처처럼 가만히 있어야 피어난다. 그러니 이런 그림도 익숙하다.
“석아. 은정이는 조리과로 간다지?”
강한결이 흐름을 툭 끊어놓기 위해 던진 말에 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리과로 간다고 했어.”
“은정이 유명한 쉐프 되겠네. 지금도 요리 엄청 잘하잖아.”
“쉐프는 힘든 일인데, 그때 가서 봐야지.”
“잘할 거야. 은정이가 또 조금 독해? 정했으면 끝을 보기 전까진 포기 안 하는 성격이잖아. 그러니 그쪽으로 가서도 끝을 보겠지.”
“…….”
황석은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이것도, 회귀 전과는 다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 사고 이후 한은정은 조리과를 포기했다. 당장 석이를 챙겨야 하는데 그 길에 들어서면 바쁜 것도 있지만 당장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음식점을 이어받아, 오전 오후 타임 장사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시작했다.
지영이 한은정에게 감사하는 이유는 이런 부분도 있었다.
한은정은 꿈을 포기하고, 석이를 택했다.
‘그것 때문에 둘이 처음으로 엄청나게 싸웠었지.’
술도 안 좋아하는 황석이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해서, 결국 한은정이 자신 때문에 부모님 가게를 물려받아 장사를 시작했다며 소리 없이 울었던 게 떠올랐다.
잊고 있던 기억이 아닌, 잠들어 있던 기억이 둘의 대화에 깨어났다. 그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던 게 한은정이다.
‘지고지순.’
지고지순(至高至純).
지영은 한은정에게 그 단어가 가장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한은정.
석이를 그 정도로 생각해 주는 고마운 친구다, 정말.
바삭. 바삭.
입에서 깨지는 부각의 소리에 지영은 생각을 멈추고 먹는 대열에 합류했다.
애피타이저를 다 먹고 나자, 메인이 나왔다. 일단 시작은 스테이크였다.
“우와…….”
코를 자극하는 독특한 냄새, 그리고 퐁듀와 함께 앞에 놓인 스테이크는, 정말로 컸다.
“울프강 하우스 메인 쉐프와 인연이 있어, 직접 배운 스테이크입니다.”
이서운의 말에 다들 오! 하는 눈이 됐다.
울프강 하우스.
미국의 뉴욕.
뉴옥의 3대 스테이크 레스토랑인 울프강 쉐프에게 배운 스테이크란다. 그래서 미국 스타일이 잔뜩 들어갔는지 일단 컸다. 지영의 형편에 이런 스테이크는 사치였기 때문에 회귀 전에도 이런 스테이크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절로 탄성이 나왔다.
두께를 보니까 못해도 1㎏ 이상의 스테이크다. 평소라면 이것만 먹어도 배가 든든해져 다른 건 생각이 안 났을 정도의 거대한 스테이크였다.
가볍게 설명을 해주고 이서운이 떠나자, 다들 이번엔 말없이 스테이크를 맛보기 시작했다.
풍미를 포함한 모든 게 만족스러운 스테이크였다. 친구들보다 10년을 더 살았다고 뭐 남다른 미식가가 된 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좋다, 이건 좀 별로다 하는 평가는 못 하겠지만, 그냥 맛 하나만큼은 진짜 괜찮다고 할 수준이었다.
한창 먹을 나이라 게 눈 감추듯 스테이크를 끝내고 나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한식 메인디시가 나왔다. 이번 메인디시는 담양식 떡갈비였고, 이건 그래도 먹어본 음식이었다.
다들 맛있게 배를 채우고, 디저트까지 맛본 뒤 식사를 마쳤다. 딱 1시간 정도 걸려 저녁을 먹었는데 배가 어마어마하게 찬 건 아니라, 이따가 야식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이제 막 식사를 하러 내려온 다른 팀과도 마주쳤다. 3인의 여성팀과 5인 가족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위로 올라온 지영은 양치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몸을 말리고 옷을 입고 나오자 다들 씻는지, 석이만 한은정과 통화를 하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 씻어?”
“응.”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패딩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찬 바람이 불었다.
이선영은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고, 김선욱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았다. 나연석은 처음부터 이곳에 도착한 이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영은 신발을 신고, 소화도 시킬 겸 느긋한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산책.
산책이라.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진짜 오랜만이네.”
머리가 여물고, 주변의 사물을 확실히 시선에 담으며 그 멋을 음미하는 산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이게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사위가 어둑해지자 켜놓은 조명이 새하얀 눈과 어울려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눈에 담기고 있었다.
낮에는 돌아보지 못했던 산책로로 가보자, 이곳도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딱 봐도 연인들을 위한 산책로 같았다. 그런 산책로는 어떤 산책로냐고 묻는다면 음, 답하긴 애매하지만 그냥 지영은 그렇게 느꼈다. 그냥 감?
‘외로워서 그런가?’
피식.
실없는 생각에 실소를 흘린 지영은 느긋하니 주변을 돌아보고는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이제 8시 30분쯤이다.
지영은 바로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아무도 없는 하우스에 들어가 잔 불씨만 남은 화목난로에 장작을 넣었다.
“너무 큰가?”
바로 불이 붙지 않아 지영은 장작더미에 가서 좀 작은 걸 찾았다. 그런데 죄다 커서, 아무래도 옆에 있는 도끼로 쪼개야 할 것 같았다. 지영은 패딩을 벗어놓고 장작을 쪼개기 시작했다.
쩍!
쩌억!
처음 해보는 도끼질이지만 워낙에 중심도 좋고, 힘도 좋아서 장작이 쩍쩍 잘도 갈라졌다.
‘이거 재밌네?’
장작이 시원시원하게 쪼개지니 이게 또 손맛이 있었다. 지영은 자신의 허리보다 두꺼운 장작을 잘게 잘게 쪼갰다.
장작 10개쯤을 쪼개고 나니 몸에서 뜨끈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또 더워서, 입고 있던 후드티도 벗었다.
“어머!”
그때 누가 놀라는 소리가 들려 후드를 얼른 벗고 보니, 하쿠나마타타의 소담이 쟁반을 들고 들어오다 말고 놀라서 얼어붙어 있었다. 왜?
“아.”
옷을 벗으면서 안에 입었던 티셔츠가 말려 올라가, 맨살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꾸벅. 지영은 그에 죄송한 표정으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얼른 옷을 수습했다.
“그,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 이거 맥주 드실래요?”
응?
맥주?
피식.
“저 이제 고1인데요?”
“아! 죄, 죄송합니다!”
지영의 대답에 놀란 소담이 고개를 숙여 얼른 사과를 해왔다. 지영은 그런 소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렇게 긴장했대?’
처음에도 빤히 바라보고, 밥 먹을 때도 이상하게 버벅거리더니, 지금은 또 한껏 당황한 티를 낸다. 물론 의심이 가는 건 있었다.
‘근데 어차피 연예인이니까 잘생긴 아이돌도 엄청 자주 볼 텐데.’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지영은 자신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외모 정도는 발에 치이는 돌보다 흔한 게 바로 연예계다.
특히 아이돌 쪽으로 가면 지영은 자신의 얼굴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오늘 주말이니까, 오늘 방송하는 음악방송만 봐도 자신 정도의 얼굴은 수두룩하게 있었다. 그러니 자기 얼굴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뭐, 그냥 성격이겠지.’
아니면 그보다 좀 더 다른 이유가 있던가.
하지만 어찌 되었건 지영은 거기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자, 장작 패고 계셨어요?”
“네? 네. 불 좀 지피려고요.”
“아, 그, 그러니까…….”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저 이제 고1인데요.”
“저, 저도 고1이에요!”
아?
동갑이었구나.00
“동갑이네요. 말 편하게 해요. 하루지만 그래도.”
“아, 그, 그럴까?”
“응. 데뷔는 언제 했어?”
정말 미안하지만 하쿠나마타타란 그룹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고 이후에도 연예계 쪽엔 관심 자체가 없어서 잘된 걸그룹인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묻힌 걸그룹인지도 지영은 알지 못했다.
“나 올해 여름에 했어! 넌?”
“나? 나 뭐?”
“아 맞다. 너 연예인 아니지…….”
“왜. 나 아이돌인 줄 알았어?”
“응……. 선생님이랑 선배님들이 아이돌 아이돌 그래서. 진짜 아이돌인 줄 알았어.”
뭐냐 이 저세상 순진함은?
쩍!
장작을 하나 더 쪼갠 지영은 소담을 다시 바라봤다.
예쁜 얼굴이다.
누가 보더라도, 한 번쯤은 돌아볼 만한. 하지만 성형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흔적이 분명 남아 있었다.
‘데뷔 전에 성형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더니, 얘도 그런가 보네.’
데뷔 후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엔 아예 처음부터 성형하고 데뷔시키는 경우도 흔한 게 아이돌 시장이었다. 그리고 소담은 후자의 경우 같았다.
뭐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영은 아이돌치고, 이렇게 세상 순진한 느낌을 주는 얘가 그 무시무시하다는 연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운동선수야, 나. 유도해.”
“응! 찾아봤어. 와, 막, 이렇게! 저렇게! 막 넘기는 것도 봤어!”
몸짓이나 어휘력이 저 정도면 승아랑 비슷하다.
이게 컨셉인지, 아니면 진짜 저런 성격인지 급 궁금해진 지영이었지만…….
‘어차피 오늘 보고 마는 건데 뭐.’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고마워. 하고 말았다. 지영은 적당히 쪼개진 나무를 다시 난로에 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안 내려가 봐도 돼? 아래 다 끝났어?”
“아! 맞다!”
챙겨 온 맥주와 스낵을 테이블과 냉장고에 넣은 소담이 후다닥 하우스를 떠났다.
피식.
밝은 느낌이다.
뭐랄까, 아이돌이라고, 연예인이라고 잘난 척하는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오늘 본 임스테이 출연자 중에 그래도 가장 순수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지영은 그녀가 떠나고 불씨를 살린 다음, 의자를 적당한 위치에 끌어다 놓고 앉아 편하게 불멍에 들어갔다.
타닥타닥거리는 장작 타는 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마음에 들어차지 않은 고민. 이 모든 게 지영에게 아늑함을 선사했다.
그렇게 한참 잘 쉬고 있는데, 갑자기 하우스로 임스테이 스태프들이 들어와 분주하게 뭘 세팅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테이블 등을 설치해서 지영은 여기서 뭐 찍나 보다 하는 생각에 일어나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숙소로 들어가자, 다들 모여서 TV를 보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황석의 질문에 지영은 가볍게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나 잠깐 산책하고, 하우스에서 불멍 좀 하다가 왔지. 뭐 봐?”
“예능.”
주말 예능을 모여서 보고 있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지영은 뒤에서 가만히 보다가,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바라고 바라던 그림이라서 그렇다는 걸 알아서, 지영은 가만히 그 기분을 내리눌렀다. 여기서 울면 진짜 평생 놀림감 획득이기 때문이었다.
푸하핫!
이성진이 옆으로 쓰러지며 배를 잡고 웃는 모습.
아 아퍼!
옆으로 넘어진 이성진의 팔꿈치에 찍힌 임효중의 짜증.
이성진을 도로 일으켜 주는 황석.
그런 셋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이 TV에 시선을 주고 있는 한결이.
모든 게 다 좋았다.
20분쯤 지나 예능이 끝났다.
재작년인가?
20년도에 화제가 되었던 ‘총명한 의사 생활’ 시즌 2 예고가 나오자, 다들 끄응! 하면서 몸을 풀었다.
“우리 바비큐 파티는 언제 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이성진의 물음에 답한 건 역시나 임효중이었다.
“다 되면 불러주지 않을까?”
“아 오래 걸리나? 슬슬 배고픈데.”
“너 아까 많이 먹지 않았어?”
“조절한 거거든? 리필 안 했잖아?”
“아, 그건 그러네?”
다들 많이 먹었다.
적어도, 한 명이서 최소 3인분 이상씩은 먹었으니까. 하지만 워낙에 잘 먹고, 먹는 거에 트라우마가 있는 이성진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지영도 장작을 팼더니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10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문이 열리고 메인 PD 나종석이 들어왔다.
“여러분들? 준비 다 됐으니까 옷 두툼하게 입고 옆에 하우스로 오세요.”
“넵!”
나종석의 말에 빛의 속도로 일어난 이성진이 얼른 대답하고 방으로 가 패딩을 챙겨 입었다. 지영도 패딩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우스? 거기서 뭐 하지 않나?’
아까 보니까 뭔 촬영 세팅하는 것 같던데?
그래서 거기서 더 쉬려다가, 숙소로 돌아온 지영이었다. 그런 마음을 품은 채 친구들과 함께 하우스로 들어갔더니, 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테이블.
그 위에 식재료.
의자.
그 앞으로 스태프들이 카메라며, 지미집? 그런 거며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자자, 저쪽으로들 앉으면 돼요.”
“네? 네.”
강한결도 아직 얼떨떨한지 정말 오랜만에 말을 조금 떨었다. 다들 영문을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지영은 아…… 하고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선영을 찾았는데, 옷을 두툼하게 껴입은 작가님들? 그분들 옆에서 자신을 음흉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끙…….”
그 미소에 지영은 절로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단 친구들과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정면에 자리 잡은 나종석이, 한쪽 무릎만 꿇은 채로 연희고 아이돌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자, 여러분. 거기 음식 보이시죠?”
“네! 우와! 이거 다 먹어도 돼요?”
이성진이 테이블에 가득 쌓여 있는 고기와 해산물 등을 보며 눈을 빛내며 묻자, 나종석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먹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하하, 네. 그런데 여러분?”
“네?”
세한 느낌의 정체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마치 미사일 사출구를 연 잠수함처럼.
씩, 사악하게 웃은 나종석이 순진무구한 이성진과 친구들, 어색하게 웃는 지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먹으면, 조금 재미없잖아요?”
“…….”
“그래서 여러분들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간단한 게임을 좀 해볼까 합니다.”
“아…….”
“물론! 허락해 주면이에요. 허락해 주면. 부담스러우시면 그냥 드셔도 됩니다. 하하하!”
이렇게 세팅해 놓고?
거절하고 그냥 음식만 먹으라고?
진심.
대단한 양반이다.
모두가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요즘 새 예능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능을 제대로 기획하기에 앞서, 지영과 지영의 친구들은 그 기획에 중심이 되는 ‘운동선수’였고, 나종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연이지만, 여러 가지 우연이 이 정도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면…… 이는 필연이리라.’
회귀 전, 가장 최근에 봤던 책의 구절을 떠올리며 지영은 생각했다.
이 또한. 인연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