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4화 (3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4화

34화. 임스테이(6)

나종석 PD.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썼지만,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이곳에 오기 전 밤에 그가 연출한 예능을 몇 번 봤기 때문에 목소리 자체가 낯이 익어서 지영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생각한 게 맞았다.

누구세요, 하는 강한결의 반문에 급히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는 정체불명의 사내.

“아, 저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하하. 임스테이 연출을 맡은 나종석입니다. 반가워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한결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휴, 저희가 고맙죠.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자자, 앉으세요, 앉아요.”

세상 사람 좋은 미소로 일어나 마주 인사한 강한결에게 앉으라고 한 나종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의자 하나를 들고 와 빈 자리에 자리 잡았다.

예능 PD 중에 가장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PD답게, 진짜 정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카메라를 비스듬히 등져서 옆모습이 살짝 노출되는, 역시 예능 PD다웠다.

그는 자리를 잡자마자 능숙하게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올라왔다가 여러분들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다음 달에 시합이고, 오늘 내일이 마음껏 먹는 마지막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래요?”

“네. 저희는 보통 시합 한 달 전부터 감량을 천천히 시작합니다. 물론 각자 스타일이 조금씩은 다르긴 한데, 보통 한 달 정도 남으면 시작해요.”

강한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서서히, 하루에 정해놓은 수치만큼 감량하는 강한결. 어느 정도 빼놓은 다음 유지만 하다가, 일주일 남겨놓고 쫙 뽑아내는 이성진. 앞의 둘과 비슷하게 빼는 임효중과 황석.

그리고 지영은 일단 시작하면 빠르게 목표 체중을 찍고 거기서 다시 3㎏ 정도 다시 올렸다가 시합 5일 정도 전에 남은 체중을 다시 빼낸다. 한 번 목표 체중을 찍어야 안심이 되어서 생긴 버릇이었다.

이렇듯, 비슷하지만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한 달 남겨놓고는 전부 스타트 한다는 점이었다.

“아아, 정, 말 힘들겠네요. 체중은 많이 빼요?”

나종석이 아이고 아이고 하는 표정으로 답하면서 다시 묻자, 강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수들이랑 비슷합니다. 성진이가 제일 많이 빼는데 거의 9㎏ 정도 빼고, 석이가 6㎏ 조금 넘게 뺍니다. 나머지 셋은 다 그 사이에 있고요.”

“와……. 그걸 매번 시합 나갈 때마다 빼는 거잖아요? 안 힘들어요?”

“음,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겠죠? 뺄 때는 진짜 정말 힘든데, 그래도 시합에 나가려면 빼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적응해서 그냥 무덤덤합니다. 아, 성진이는 아직도 좀 힘들어합니다.”

으으…….

체중감량이란 말에 이미 이성진은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았다. 장난기 가득한 귀공자가 실의에 빠진 모습. 지금 이성진의 모습은 딱 그랬다.

“너도 매번 9㎏씩 빼봐라. 안 힘드나. 아저씨, 아니, PD님 한번 해볼래요? 9㎏ 빼기.”

“네? 아니요, 아닙니다! 어후! 저는 그랬다간 병원에 실려 가요!”

갑자기 이성진이 화살을 돌려 던지자 나종석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선수들도 6㎏ 이상부터는 힘들어하는 게 감량이니까. 괜히 예능 PD라고 객기부려서 해볼까요? 했다가는 진짜 병원에 실려 가고도 남았다.

“대신 저는 같이 감량을 경험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의 마지막 파티를 책임지겠습니다. 안 그래도 여러분들은 오늘내일 저희의 손님이잖아요? 그러니 마지막까지 저희가 책임져야죠. 오신 손님이 배를 주리면 그건 저희 프로그램에 먹칠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음…….”

나종석의 말에 강한결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한결이의 깔끔한 인사에 나종석은 씩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몇 시에 준비해 드릴까요?”

“야식으로요! 10시? 그때쯤이요!”

이성진의 대답에 나종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등을 돌려 사라지자 지영은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음, 뭔가 있는 기분인데?’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다.

이유 없는 선심은 없다.

이 말은 지영도 제법 공감하는 말이었다.

이선영과의 대화가 없었다면 그냥 엄청 꼼꼼하구나, 하고 말겠는데 그 대화를 이미 했었던 지영이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꿍꿍이가 있다고 해도, 설마 저 정도 스타 PD가 일반인을 상대로 꼼수 같은 건 부리지 않겠지란 생각이 뒤이어 들어서 시선을 떼고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영은 예능 PD를 좀 얕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방송계에 소문난 스타 PD들은 대부분 다…….

* * *

하우스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가, 졸음이 슬그머니 몰려와 방에 들어가서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벌써 6시.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자 다들 조금 쉬어서 개운해진 얼굴로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게 익숙해져서, 이제는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수준이었다.

“코치님은?”

“따로 드시겠다는데? 여기 담당자분에게 허락받고 비박? 그거 하러 가셨어. 저기 산 어딘가에 계실걸?”

“헐?”

지영은 임대성이 비박을 하러 갔다는 말에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그런 지영을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친구들.

“뭐야, 왜 처음 듣는 척이지? 코치님 취미가 캠핑이잖아?”

“아? 아아. 그랬지. 잠깐 깜빡했어.”

얼른 기억이 난 척한 지영은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흐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임대성이 이맘때에 캠핑에 빠져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 냈다. 주말이면 차에 캠핑 장비를 싣고, 산이고 들이고 강이고, 혼자 가서 하루를 보내고 오는 게 그의 낙 중에 하나였다.

“슬슬 가자.”

“아 배고프다! 고고!”

강한결이 신발을 신고 재촉해서 지영도 얼른 신발을 신고 친구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어김없이 따라붙는 카메라. 좌우, 정면도 있고, 뒤도 있다. 걸어갈 때마다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도 한두 개씩은 보였다. 진짜 동선 안에 온통 카메라다.

‘진짜 엄청나네.’

특히 입구 근처에 도착하자 스태프가 엄청 많이 보였다.

아까는 얼마 안 되는구나 했는데, 지금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적어도 오십, 육십 정도는 될 정도로 북적북적한 느낌인데 그 인원이 전부 카메라의 뒤쪽에 있었다.

“어! 내려왔어요!”

빼꼼 밖으로 내다봤던, 지영이 예쁘지만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첫인상을 받았던 여자가 지영의 일행을 발견하곤 안에 소리치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신인 그룹 하쿠나마타타의 소담입니다!”

아, 걸그룹이었구나.

어쩐지. 예쁘긴 예쁘더라.

“안녕하세요. 연희고 학생 강한결입니다.”

강한결이 역시 이번에도 대표로 인사했다. 뒤이어 이성진, 임효중, 황석, 그리고 지영은 가장 마지막에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강지영입니다.”

“아, 아! 안녕하세요!”

꾸벅! 꾸벅.

지영의 인사에만 화들짝 놀라서 마주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데, 왜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임윤옥 선생님이 밖으로 나왔다.

“어머어머, 내려왔네. 소담이 서서 뭐하니. 손님들 방으로 안내 안 해드리고.”

“아차! 네! 저기, 이쪽으로 오세요!”

긴장한 티가 역력히 난다.

그래서 뭐랄까…… 좀 안쓰러워 보였다.

‘하긴, 나도 저기서 일하면 저렇게 긴장하겠지.’

아무리 지영이 또래 애들보다 10년의 기억이 더 있어 머리가 굵었다고는 해도, 임윤옥 선생님의 카리스마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특수한 경험이 있으니 아예 얼어붙어 있지는 않아도 긴장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안내해 준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임윤옥 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앉아 메뉴판을 건네주셨다.

총 다섯 개. 지영은 그걸 펼쳐서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운동을 하니 안 그러겠지만 혹시나 물어볼게요. 혹시 베지테리언이 있나요?”

느긋하니, 마치 대사를 읽는 것처럼 나온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호호, 다행이네요. 그럼, 메뉴 설명을 할게요. 저희가 시즌 1에는 외국인들 상대로 프로그램을 해서어, 한식으로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국인 대상이라, 메뉴를 조금 늘렸어요.”

그렇게 보인다.

한식과 양식.

시즌 1에도 했던 떡갈비와 닭강정 등이 있었고, 뒷장에는 스테이크 메뉴가 있었다.

“권하는 건 뒷장의 스테이크예요. 우리 서운이랑 박서진이가아, 미국에 가서 제대로 배워왔거든요. 어제 한번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라고.”

“진짜요? 근데 할머니.”

“응?”

할머니?

자기가 잘못들은 게 아닌가 눈을 끔뻑이는 소정처럼 지영도 순간 움찔했다. 그래서 이성진을 바라보자 이성진은 해맑은 얼굴로 이거 아니야?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아, 이성진……. 넉살 좋고, 친화력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훅 들어갈 줄은 지영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임윤옥 선생님은 오히려 호호호! 하고 웃었다.

“맞네, 할머니. 그럼 할머니가 말 편하게 해도 될까?”

“그럼요! 손자? 손주? 저희 그렇게 대해주세요!”

역시 이성진…….

친화력 갑. 누가 감히 천하의 임윤옥 선생님에게 고작 하루 만에! 심지어 딱 두 번째 마주하는 건데 할머니! 하고 들이댈 수 있을까?

뭐 대본이 있다면 가능할 거다. 친손주 정도 되어도 가능할 거고.

그러니 이놈은 진짜, 난놈이다.

그런데 임윤옥 선생님의 반응이 더 멋졌다.

호호호!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웃은 임윤옥은 얼굴에 정말 친손주를 볼 때나 지을 미소를 짓고는, 말문을 열었다.

“그래, 우리 손주. 무슨 말 하려고 했니?”

식겁했던 느낌이 그 말에 싹 씻겨 내려갔다.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내쉬는 지영, 그리고 이성진을 뺀 친구들이었다.

“저희, 이거 메인 다 먹으면 안 돼요? 배고픈데.”

“한식, 양식 둘 다? 안 될 건 없지. 그런데 너희들 이따가 바비큐 파티도 한다고 들었는데, 괜찮겠니?”

“한창 먹을 때잖아요? 자신 있어요!”

“호호, 그래. 그럼 둘 다 가져다줄게. 소담아. 가서 메인 둘 다 다섯 개씩 준비해 달라고 하렴.”

네! 선생님!

후다닥!

하쿠나마타타의 소담이 얼른 밖으로 나가자, 임윤옥 선생님이 푸근한 어조로 이성진을 시작으로 지영까지 돌아보며 물었다.

“아까 나 PD 얘기 들어보니 시합이 잡혔다고 하던데?”

“네! 원래 예정에 없던 시합인데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선발전이라서요! 그래서 나가려고요!”

“그래? 어머, 큰 대회네. 큰 대회 앞두고 여기에 온 거구나. 호호. 체중도 많이 뺀다고 했지?”

“네, 저는 9㎏? 여기 친구들도 다 그 정도씩 빼고요.”

“뺄 곳도 없는 것 같은데……. 힘들겠네, 힘들겠어. 한창 먹어야 할 나이인데. 어쩜 좋니. 쯔쯔.”

“대신 평소에는 많이 먹어요! 오늘도 평소에 포함되는 날이니 엄청 먹을 거고요!”

“그래그래, 많이 먹어. 할머니가 달라는 만큼 다 가져다줄게.”

“넵! 감사합니다!”

꾸벅!

앉은 상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이성진을 임윤옥 여사님은 푸근한 미소로 바라보셨다. 이성진의 힘은 여기에 있었다. 특유의 저런 행동으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 그쪽으로는 지영과는 아예 정반대였다.

“그럼 할머니 이따 다시 올게. 놀고들 있어.”

“네!”

임윤옥이 나가자, 지영은 하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왜, 뭐?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지 뭐라 부르는데?”

“선생님. 좋은 말 있잖아?”

“에이, 거리감 느껴지잖아?”

임효중의 말에 대번에 반대하고 보는 이성진.

임효중은 그 대답에 지영처럼 고개를 젓고는 그냥 조용히 물러났다.

저런 친화력이면 사실 엄청난 선물 공세를 불러오지만, 이건 당연히 강한결이 강력하게 막았다. 돈, 물건, 이런 건 절대 못 받게 강한결이 아예 못 박았으니 망정이니 안 그랬으면 진짜 곤란한 일이 생길 뻔했다.

‘한결이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거야.’

선물은 성의지만, 그걸 주는 대로 받으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걸 미리 예견하고 막은 강한결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지영이었다.

10분쯤 이성진이 혼자 다다다 얘기하는 걸 듣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소담과 임윤옥 선생님, 그리고 이서운 배우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식전, 애피타이저 나왔습니다.”

묵직한 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와 함께 식탁에 내려선 애피타이저로, 기대하던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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