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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2화 (3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2화

32화. 임스테이(4)

최유신이 객실을 설명해 준 뒤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로 물어봐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자, 지영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 일단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청바지는 멋을 내긴 좋지만, 눈으로 뒤덮인 강원도의 산속에서 입기에는 너무 추웠다.

“난 여기!”

이성진이 건넛방에서 침대를 고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항상 애처럼 저렇게 방이고 침대고 선점하는데, 가지지 못했었던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 이성진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알아서 쉬고, 6시까지 모이는 걸로 하자.”

“네.”

임대성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라는 말을 하곤 전문가나 쓸 법한 카메라를 들고 부용 하우스를 나서자 다들 각자 흩어져 여가를 즐기기 시작했다. 지영은 일단, 오면서 봐뒀던 오두막으로 먼저 향했다.

지영이 움직이자 김선욱과 임스테이 스태프 두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같이 따라붙었다. 카메라가 두 대나 따라붙어 부담스러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사고 이후에 타인의 시선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카메라는 그냥 별 느낌이 없었다.

오두막에 도착해 벤치에 앉자, 앉아 있는 지영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든 김선욱과 임스테이 스태프가 좌우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였다.

지영은 그걸 느끼면서도 별 반응 없이 새하얀, 발자국 하나 없는 순백의 숲을 바라봤다.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안정됐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편해지고,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 거구나.’

청주도 그렇고, 충주도 그렇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리고 눈이 많이 와도, 이렇게 새하얀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새벽에 펑펑 왔을 때뿐인데 그때는 지영이 자는 시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러 나와도, 그때는 안전에 유의한 운동이 우선이지 새하얀 세상에 대한 감상이 우선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하얀 세상을 느낄 여력 자체가 없었다.

지영에게 그 시절에 여유란, 사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치 정도는 부려도 되잖아?’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을 건드린 것도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니까.

사실 지영은 물욕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지영이 욕심을 내는 건 승부와 승리였다. 그와 반대로 금전에는 사실 많이 무감각한 편이었다.

회귀 이전에도, 사고 전에도, 사고 후에도, 회귀 이후에도 이는 아마 변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런 욕심은 이제 좀 부려보고 싶었다. 굳이 이선영의 제안을 허락한 일, 예상치 못했던 방송촬영에 응한 일도, 어쩌면 사치에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금전적인 사치 말고, 정신적인 사치 말이다.

지잉, 지잉.

전화가 왔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보니 어머니였다.

“네, 엄마.”

-아들, 오늘 어디 간다더니, 잘 갔어?

“네. 여기 강원도예요. 지금 막 도착해서 짐 방에 놓고 잠깐 주변 둘러보고 있어요.”

-그래?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강원도는 눈 많이 왔지?

“네. 여긴 온통 눈이에요. 세상이 하얗게 변했어요. 충주는 눈 안 왔죠?”

-응. 여긴 춥기만 해. 호호. 거기도 춥지? 옷 따뜻하게 입고, 알았지?

전화하셔서, 걱정만 한가득이시다.

지영은 그런 어머니가 좋았다.

“네. 알겠어요. 참, 다음에 시간 되면 우리도 여기 와봐요. 여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데.”

-우리? 엄마랑 둘이?

“네, 안 될 게 뭐 있나요? 아들이랑 여행 가는 건데. 오기 전에 알아봤는데 여기 원래 펜션이래요. 눈 많이 오면 펜션 측에서 픽업도 해준다니까 다음에 꼭 같이 와봐요.”

-호호, 그래. 그러면 좋겠다.

“저 12월 시합 끝나면 알아볼게요. 그때 시간 내서 한번 같이 와요.”

-그래그래. 고마워, 아들.

“고맙기는요.”

제가 더 고맙죠.

뒷말은 삼켰다. 이전과는 다르게 어머니를 대하기로 했는데, 역시 아직은 쉽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엄마가 그땐 꼭 시간 내볼게.

“네. 엄마도 옷 따뜻하게 입고 일하세요. 밥도 매번 찬밥 이런 거 드시지 마시고.”

-알았어. 그렇게 할게. 우리 아들 오랜만에 쉬러 갔는데 엄마가 너무 방해했다. 엄마 이제 일하러 가볼게.

“방해는요? 그런 소리도 마, 음. 아니다. 알겠어요. 이따 저녁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래그래. 아들 재밌게 놀다 와.

“네.”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후. 한숨을 쉬고 주머니에 폰을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이선영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또 자신을 보고 있었다.

“왜 또 그런 눈빛일까요?”

“아니, 세상에 이런 효심 깊은 아들이 어디 있나 싶어서요. 다 큰 아들 같으면서도 또 그 나이 또래 같은 틱틱거림이 있고, 역시 재밌어요, 지영 군은. 보는 맛이 있어.”

“하하…….”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선영은 진짜 눈치가 빨랐다.

지영에게는 스물일곱의 마음과 이 나이로 돌아와 비슷하게 적응 중인 열일곱의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건 가끔가다 지영도 느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선영은 그걸 대화를 통해서 바로 눈치챘다.

그래서 몇 번이나 속이 뜨끔했던 지영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바로 또 모른 척하는 것 봐. 알았어요. 안 물어볼게. 그래서 어때요, 여기?”

이선영이 카메라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움직여 물어온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다행이네요. 너무 눈만 있어서, 또 별로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니요. 좋아요. 진짜 좋아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여행이란 것에 눈을 뜨게 해줘서, 정말로 좋았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준 이선영과 나연석에게는 나중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할 생각이었다.

“후후, 자연을 바라보는 감성도 있고, 역시 다르다니까. 참, 지영 군 제가 아까 여기 총괄 PD님 만났는데 무슨 대화를 했게요?”

“음, 그 대화에 제가 주제였나요?”

“네. 정확히는 연희고 아이돌들.”

“흠…….”

지영은 몸을 돌려 앉아 이선영을 바라봤다.

그러자 카메라를 든 두 사람이 움직여 다시 구도를 잡았다. 그렇게 움직이는데도 지영은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거기에 또 한 번 웃은 이선영이 대화 내용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 * *

“오빠, 오랜만이에요?”

“어? 어어. 선영이 왔구나. 잘 지냈지?”

“네, 저야 뭐. 하하.”

최유신에게 설명을 듣는 연희고 아이돌을 보던 나종석에게 다가간 이선영이 인사를 하자, 그는 그 인사를 시선도 돌리지 않고 받아쳤다.

“와, 뭐야. 아무리 쟤들이 잘생겨도 그렇지. 얼굴도 안 보고 인사하는 건 좀 서운한데요?”

“아? 아냐, 그런 거. 그냥 쟤들 참 신기해서. 오랜만이다, 선영아.”

이선영의 투정 아닌 투정이 있고 나서야 일어나 손을 내밀며 인사를 하는 나종석.

대한민국 예능계의 거장. 자기복제의 화신이란 별명도 있지만 방송이란 건 어차피 시청률이 갑이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시청률만 높으면 뭐든 용서가 되는 게 방송이다.

그런 면에서 나종석은 거장이란 표현도 충분히 어울렸다.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한 3년 만인가?”

“너 목숨 건 취재 시작하기 전에 봤으니 그 정도 됐지.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죽지 않고 살았다는 얘기야 연석이한테 들었고.”

“후후, 역시 예능PD. 말이 아주 그냥! 전 그냥 잘 지냈죠. 무료하게 지방에 짱박혀 있다가, 요즘 쟤들 찍으면서 겨우 좀 살아 있는 걸 느끼는 중이에요.”

“그래, 쟤들. 쟤들 전부 운동선수 맞지? 어디 아이돌 연습생 애들이 사기 치는 거 아니지?”

“쟤가 링크 보내준 거 안 봤어요?”

이선영의 물음에 나종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봤는데, 안 믿겨서 그래.”

“후후, 운동선수들 맞아요. 그것도 심지어 엘리트 체육을 하는 얘들.”

“이야. 놀랍다. 얘들이 진짜 다 잘생겼네. 팬도 엄청 많겠는데?”

나종석의 물음에 이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원래 청주에서는 유명한 얘들이었어요. 그러다가 이번 체전 때 갑자기 전국구로 확 올라선 거지.”

“그치? 저런 얼굴로 뭉쳐 다니는데 안 유명할 수가 없지. 고맙다, 야. 두 팀 빵꾸 나서 진짜 곤란했었는데.”

“후후, 술 사요, 고마우면.”

“그래, 사야지.”

“오케이. 그래서 오빠. 오빠가 보기엔 누가 제일 시선이 가요?”

“쟤들 중에서?”

“응.”

이선영의 물음에 나종석은 신발을 벗고 막 마루로 올라서는 연희고 아이돌들을 바라봤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나종석은 이미 이선영의 질문을 이전부터 생각했었는지, 바로 답을 내놓았다.

“저기, 중간에 있는 애.”

“역시 그렇죠?”

“쟤 너가 픽한 애지?”

“네. 강지영. 선배는 왜 지영이에요? 사실 그 옆에 한결이가 스팩이나 외모나, 진짜 호불호 없는 완벽한 앤데.”

김선욱에게도 했었던 이선영의 질문에 나종석은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다 혼잣말처럼 답을 내놓았다.

“한결이면 강한결일 거고. 강한결이면 수능 만점자를 매해 서너 명씩 배출하는 연희고 전교 10위권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1학년인데도 국대 선발전 4위. 프로필에 그렇게 적혀 있던 애지?”

“네. 완벽한 건, 진짜 한결이거든요.”

“그렇긴 하네. 그런데 그냥 딱 봤을 땐 강지영 저 친구가 더 눈이 가. 그 사람 구하는 동영상까지 봐서 그런가? 이상하게 눈이 가네.”

“저도 그런 것 때문이긴 해요. 처음에는. 근데 대화를 나눠보면 확실히 좀 다르거든요. 뭔가, 느낌이 있어요.”

“그래? 음, 그럼 이따가 말 좀 걸어봐야겠다. 그래도 신기하다. 유신이랑 박서진이가 비주얼로는 어디 가서 꿀리는 애들이 아닌데. 일단 유신이가 쟤들이랑 같이 있으니 그냥 좀 평범하게 보인다. 누가 배우고 누가 일반인인지 모르겠어.”

헛.

기가 막혔는지 혀를 차는 나종석. 이선영은 그 말을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쟤들의 외모는 진짜, 좀 반칙인 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쟤들을 데리고 왔다.

한 번 더 잘난 척 좀 하려는데, 나종석이 옆에 앉아 있는 스태프에게 물었다.

“윤호 형. 형이 보기에는 어때?”

윤호?

스태프의 이름인가 보다.

이선영이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선글라스를 벗은 윤호라는 분이 카메라를 한번 들여다봤다. 그러곤 지금까지 녹화된 장면을 빠르게 돌려보더니 이선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 이 사람……?’

얼굴을 보니 예전에 한번 술자리서 만난 기억이 났다.

유명한 드라마 PD.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마 PD일 거다.

“이선영 씨.”

“네? 네.”

“저 애들, 혹시 연기에 관심 없답니까?”

“……네?”

연기?

이선영은 눈을 끔뻑끔뻑거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지금 신윤호 PD가 쟤들 연기 관심 없냐고 물어본 거야?’

헐…….

대박.

* * *

그렇게 물어봤단 얘기를 이선영에게 들은 지영은 잠시 고민했다.

“연기, 음…….”

“지영 군 어때요? 관심 없어요?”

“…….”

연기라.

연기라는 게 분명 새로운 영역에 있는 건 맞다. 지영이 겪어보지 못했던. 아니, 겪을 수 없었던 일이 맞다. 하지만 지영은 연기라는 게 확 와닿지는 않았다.

‘성진이라면 아마 해보고 싶다고 하긴 하겠지.’

원체 주목받길 좋아하는 친구니까 이성진이라면 아마 해볼래! 한 번만 해보면 안 돼? 하고 강한결을 조를 거다. 그리고 강한결도 운동, 공부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아마 해보라고 할 거고.

하지만 연기는 쉬운 게 절대로 아니었다.

지금도 수많은 지망생들이 배우가 되기 위해 땀을 흘려가며 매일 같이 연습하지만, 그 문을 넘어 연기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건 선택받은 극소수임을 지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발을 들여놓을 곳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기는 지금 찍고 있는 이런 예능과는 달랐다.

‘거긴, 들어서는 순간 책임감이 뒤따르는 자리지.’

자신이 맡은 역할에, 그리고 자신을 찍어주기 위해 준비한 수많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지영 군?”

“음, 아니요. 저는 별로…….”

관심 없어요.

“네?”

“잘하지도 못하는 걸로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싫고요.”

“…….”

지영의 솔직담백한 대답에 이선영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며 지영도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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