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7화 (2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7화

27화. 합동훈련(6)

와!

짝짝!

이선영은 관중석에서 구경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이고, 누님. 팬 다됐는데요?”

“아? 어? 아하하. 나도 모르게. 근데 봤니? 와, 저기 보성 코치란 사람 보니까 국가대표 선발전도 한 번 우승한 사람이던데. 지금 지영이가 던진 거 봤어?”

“누님. 제가 카메라 들고 있습니다.”

“아하, 그랬지? 호호.”

이선영은 민망한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금 보성고 코치와 맞붙은 지영을 바라봤다.

천재. 고등부에서는 이미 상대가 없을 거라 평가받는 천재. 그래서 보성고 코치가 지영을 잡을 땐 솔직히 많이 궁금했다.

무릇 천재라 함은, 시간을 뛰어넘은 결과를 보여주는 게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고등부에서만 1등이라고 하면, 과연 그걸 천재라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그냥 그중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라고 이선영은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히 보성 코치가 지영을 잡을 땐 내심 잘됐다는 생각까지 했다.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

상대는 국가대표 선발전 1위를 한 적도 있는 실력자.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용인대학교를 나와, 모교인 보성에서 지도자 길을 걷는 은퇴선수지만 실력만큼은 국내 정상급이었던.

그런 실력자와의 연습은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흘러갔다.

체급은 비슷하지만 실력 차이가 워낙에 나 보였다. 이전의 여유는 사라지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국대도 선발됐었던 선수의 기술을 피하고 아주 멋지게 되치기까지 했다.

며칠간 유도만 보고, 유도만 팠더니 얼추 유도가 뭔지 보이기 시작한 이선영은 강지영이 일반 고등부의 선수들보다 확실히 월등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게 이제는 제대로 보였다.

‘천재라는 말을 쟤는 써도 돼.’

요즘은 아주 그냥 뭐 조금만 잘하면 천재, 신동이라고 띄워주는데 이선영은 진짜 천재는 저런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 혹은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아득히 먼 곳에서 혼자 걸어가는 것.

‘학생이 천 명인 가운데 똑같이 공부하거나, 혹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1등을 하는 애들은 미안하지만…… 천재는 아니지.’

그런 애들은 노력파다.

그런 아이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 노력은 고결하고,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존중받을 가치가 마땅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천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공부로 따지면 그냥 따로 공부하지 않고 수업만 받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서 게임도 하고, 카페 가서 시간도 때우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그러는데도 전국 일등.

그것도 압도적인.

물론 그녀는 지영과 황금세대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녀가 화요일부터 월요일까지의 촬영을 하며 지켜본 바에 의하면.

‘엄청났지.’

새벽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새벽 체력운동.

아침을 먹고 8시 30분쯤 등교해서 수업.

오후 2시쯤 나와서 3시부터 오후 유도 연습.

6시쯤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8시부터 각자 개인 운동. 9시 넘어서는 각자 방에서 공부를 한다.

미친 스케줄이다.

병행하기 힘든 이 스케줄을 각자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곤 그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정도였다. 그러니 황금세대, 연희고 아이돌들은 엄청난 노력을 운동과 공부에 퍼붓고 있었다.

그런 노력을 보면서도 이선영이 지영을 천재라 칭하는 건, 다른 선수들의 운동 스케줄을 직접 확인해 보고 나서였다.

공부는 빼고, 운동에만 거의 올인하는 건 요즘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도 제대로 수업을 받는 경우는 손에 꼽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피로 누적.

온종일 이어지는 운동으로 인한 피로 누적이, 수업에 들어가더라도 수업 대신,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잠들게 만든 거다. 그리고 이선영은 요 며칠 저 애들의 운동을 지켜보며 그걸 확실히 이해했다.

둘 다 병행해서 하기엔, 너무나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저 애들은 둘 다 놓지 않았고, 한쪽으로는 최고 수준을 달린다.

특히 그중에서도 강한결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학생이다.

공부는 충북권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수준이 높은 연희고에서도 탑 클래스고, 유도 실력은 올 초에 이미 국가대표 선발전 4위까지 했다. 모두를 아우르는 황금세대의 리더이고. 외모야 뭐, 말해 입 아프다.

그러니 분명 강한결이 황금세대 중에서는 가장 독보적이다.

“그런데 왜 시선은 쟤한테 더 가는 걸까?”

“네?”

“선욱아. 생각해 봐. 우리가 지금 지영이를 메인으로 찍고 있긴 하지만 사실 황금세대 쟤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건 강한결이잖아? 공부도 탑, 유도도 탑. 진짜 말도 안 되는 재능러잖아?”

“네, 그렇죠?”

“그런데 우린 지금도 지영이를 중점으로 찍고 있어. 운동 실력은 비슷하지만 살짝 어둡고, 말수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고, 외모도 좀 호불호가 갈릴 얼굴이고, 공부는 뭐 강한결에 비하면 아주 떨어지는 정도고.”

“네, 그렇죠?”

“그런데 왜 시선이 더 쟤한테 갈까? 옆에 더 완벽한 애가 있는데?”

“네, 그렇죠?”

야이 씨.

“죽을래?”

“그건 나중에 답할 테니까, 저거나 좀 봐요. 시합 시작됐습니다, 누님.”

“응?”

상념에서 벗어나 시합장에 다시 집중하자, 어느새 원이 그려진 경기장에서 강지영과 장호선 둘만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래, 시합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연습에서 지영은 분명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체전에서보다 더욱 격렬하게 장호선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 치열함 때문인지, 마지막 자유 연습을 하던 선수들이 모두 하던 걸 멈추고 슬그머니 물러나 그걸 구경하고 있었다.

이선영은 곧장 고개를 숙여 일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지영을 카메라로 확인했다.

“웃고 있네?”

“네, 쟤 웃는데요?”

“체전 일등 하고도 덤덤하던 애가 이제 웃네?”

카메라에 담긴 지영은 웃고 있었다.

평소에는 워낙에 무덤덤한 얼굴이라,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좀 음침한 느낌마저 나던 애가 웃으니까 바로 표가 났다.

입매가 작게 호선을 그린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체전 때도, 그리고 요 며칠 지영을 찍으며 지영이 유도복을 입고 저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건 처음 봤다.

“잘 찍어라. 여기 딱 킬포니까.”

“넵.”

땀에 젖은 머리카락.

눈을 가린 그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다시 맞붙는다.

자세, 파이팅 자체가 달라진 강지영의 모습은 조금 따분해지기 시작했던 연습 자체를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어느새 코치 한 명이 움직여 5분으로 맞춰놨던 타이머도 꺼버린 상태.

고요해진 상황에, 오직 두 사람만이 움직이고 있다 보니, 이건 또 이것대로 그림이 나왔다.

“뭔 상황이야?”

잠시 통화 좀 하겠다고 나갔다 들어온 나연석의 물음에 그녀는 그냥 턱짓으로 지영을 가리켰다. 그에 눈을 빛내고 앉은 그도 지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집중하는 상태로, 한 고교 선수와 한 은퇴 선수가 시합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이선영은 자신이 왜 강지영을 찍고 있는지, 저 애한테 유독 눈길이 가는지를 깨달았다.

저 애는,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애다.

지금도 그 많은 선수들이 훈련을 멈추고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었다. 의도했다? 아니었다. 이걸 만든 건 보성고 코치였다. 그러나 주인공은 강지영 저 아이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 훈련 시간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래, 아주 자연스럽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그렇게.’

그게, 그에게 시선이 가는 이유라고, 이선영은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세인들은 보통 ‘별’에 비유하지만, 이선영은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 * *

이거다, 이거.

지영은 이걸 바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고, 아귀가 저릿저릿해지고, 온몸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뇌리까지 전달되는 이 느낌을 지영은 바라고, 또 바랐다.

전국체전.

그리고 합동훈련을 하면서도 느껴볼 수 없었던 이 치열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역시 고등부 선수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지만, 보성고 코치에게서는 느낄 수 있었다.

장호선 코치는 불과 2년 전까지 현역이었다.

한국철도에서 시작해 수원시청에서 은퇴한 그는 모교인 보성으로 와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회귀 전에도 나름 유명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장호선과의 자유 연습은 지영에게 더없이 충만한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부족했던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

극심한 탈수로 몸에서 물을 요구하는 순간 이온 음료를 넣어주는 것 같은, 그런 만족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강하다.

장호선은 역시, 지금까지 맞붙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힘은 물론, 중심 밸런스도 엄청 좋고, 기술도 장난 아니게 날카로웠다. 처음에 되치기 한판을 던진 것도 장호선이 지영을 얕잡아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장호선은 지영을 흔들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홱!

두 번 끌고, 움찔하는 순간 들어온 허벅다리 걸기.

후리기와는 다르게 상대의 오금을 걸어서 차올린 뒤 내던지는 기술을 지영은 가까스로 방어했다.

지영은 수세에 밀린 상태였다.

아마 시합이었다면 벌써 지도 두 개쯤은 받았을 거다.

후. 길게 숨을 내쉰 지영은 부족한 피지컬이 아쉬웠다.

‘완벽하게 다져진 피지컬과 이제 단련을 시작한 피지컬의 차이가 너무 크네.’

이게 아쉬웠다.

지영의 육체는 아직 고등학생의 육체였다.

고등부에서도 피지컬로는 밀리지 않는 편이지만 30까지 현역으로 생활한 장호선의 완성된 피지컬에는 역시 많이 부족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실력 면에서 많이 차이가 나는 게 바로 이 피지컬 때문이었다. 절정기의 피지컬은 대학에서 보통 만들어지고, 그걸 오래 유지한 선수가 당연히 오래 유도를 한다.

지영은 이제 고1. 고작 열일곱 살.

아직 육체는 전성기의 피지컬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차이가, 지영을 수세로 몰았다.

쿵!

이번에도 목 감아 허리채기를 방어하긴 했지만, 상대가 당긴 그대로 끌려가서 속수무책으로 날아갈 뻔했다. 다시 일어난 지영은 일어나면서 주변을 한번 훑었다. 이미 연습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습이 중단됐어도, 이 자유 연습은 둘 중 하나가 절반을 던져야만 끝난다.

간혹 황금세대끼리 점수 내기를 하는 것처럼, 지도가 아닌 기술로 절반을 딸 때까지 자유 연습은 계속된다.

‘먼저 기술을 걸자.’

지영은 이미 거의 시합이었다면 반칙패에 근접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한 번만 더 기술을 방어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오면 무조건 지도가 들어올 거고, 앞서서 밀려 받은 예상 2개의 지도와 함께 총 세 개. 그럼 반칙패다.

‘반칙패 받을 정도까지 밀려서 이기는 건 의미가 없지.’

자유 연습이지만 이미 시합처럼 변한 연습이다.

기왕 이렇게까지 판이 깔렸으니, 이기고 싶었다. 져도 괜찮다? 그런 건 없었다. 시합인 이상.

‘이겨야지.’

지영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아무런 신호도 없었지만 바로 맞붙었다.

장호선의 얼굴은 고작 고등학생과 하는 자유 연습이고, 어떻게 보면 쪽이 팔리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지영처럼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제자들을 아주 호되게 굴렸지만 그도 유도인이다.

순수하게 실력을 겨뤄, 상대를 내던질 때의 희열을 즐기는 유도인.

장호선도 지금의 상황을 체면 따위 다 빼고,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기합은 없다.

준비가 끝난 걸 눈치껏 파악하고 곧장 맞붙었다.

둘 다 잡기 싸움을 안 하는 편이라 곧장 서로가 서로의 등판 깃을 맞잡았다. 왼쪽과 오른쪽 짝잡이 상태.

한 번의 기술이 이 즐거운 상황을 끝내게 될 거다.

지영은 빙 돌아 나오면서 순간적으로 안 뒤축을 툭 쳤다. 하지만 이미 눈치채고 있었는지 제대로 턴 것 같은데 역시 미동도 없었다. 선발전 1등까지 했을 정도의 실력자라 역시 이 정도는 쉽게 막아냈다.

더욱이 역공이 들어왔다. 왼손으로 매트를 집으며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빗당겨치기.

하지만 소매를 잡히지 않은 상태라 지영도 이 정도는 쉽게 피해냈다. 그리고 앞으로 쏠린 그 틈으로 머리를 쏙 집어넣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고, 그대로 모로 누우며 어깨로 메치기를 걸었다.

뜬다.

장호선의 몸이 뜨는 느낌이 났다.

하지만 금방 중심이 확 낮아지는가 싶더니, 지영을 힘으로 찍어 눌러서 기술을 막았다.

아쉬웠다.

제대로 걸리긴 걸렸는데 힘에 밀려서 기술이 깨졌다는 게.

훅, 후욱.

놓고 다시 일어났을 때에는 지영의 입에서도 단내가 섞인 거친 숨이 나왔다. 아무리 강철 체력이라고 해도 소아다리 9번에 이어 장호선을 잡는 거라 지영도 한계까지 밀려온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좀 더 하고 싶지만…… 한계야. 이기든 지든, 이번에 끝낸다.’

체력이 이 정도로 밀렸으니 이제는 어떻게 됐든 승부를 봐야 했다.

다시 시작.

지영은 크게 숨을 마셨다가 내뱉으며 하! 짧게 기합을 내지르곤 잡기 싸움에 들어갔다.

잡고, 쳐내고, 잡고, 뜯어내고. 안 뒤축에, 업어치기 모션을 넣자 장호선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업어치기기 모션을 넣으니 중심을 뒤로 뺀 거다.

그걸 본 지영은 눈을 빛내며 역으로 안다리를 걸며 장호선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파앙!

매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

“와, 힘들다, 힘들어. 하…….”

천장이 보였다.

안다리를 거는 걸 기다린 기다렸던 장호선이 미끼로 던져뒀던 다리를 통 뛰어올라 피한 뒤 벼락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찬 허벅다리 한 방이, 지영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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