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5화 (2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5화

25화. 합동훈련(4)

그쳐!

심판을 보는 충북체고 감독님이 바로 그쳐를 선언했다.

그리곤 바로 이성진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이성진은 괜찮은지 심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시합 중에 흔히 있는 일이다.”

“…… 하아.”

지영은 황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앉았다. 악! 소리에 놀라 일어나긴 했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잡기 싸움 중 잘못 쳐낸 손가락이 눈을 찌른 거라는 걸.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트라우마 때문에 저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지영은 뻔뻔한 표정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후, 우리 지영이 놀래쪄요?”

“…… 아냐, 그런 거.”

“아니기는. 큭큭! 누가 보면 애인이 다쳐서 뛰쳐나가는 줄 알았다.”

임효중의 짓궂은 말에 지영은 그냥 합! 입을 다물었다. 이미 놀림감을 줬기 때문에 이건 반응해봐야 자신만 손해였다. 그러면서도 속은 좀 쓰렸다.

‘아 이거, 골치 아프겠다.’

이번엔 진짜 저도 모르게 반응했다.

유도는 훈련 중 부상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는 스포츠였다. 그래서 심심찮게 악! 으악! 하는 비명이 훈련장을 울릴 때가 많았다. 오늘만 해도 발목이 돌아간 선수가 하나 나와서 대기 중에 비명을 듣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아, 누가 다쳤구나. 하고 무덤덤했다.

하지만 이성진의 비명을 들었을 때는 몸이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심장이 쿵쿵 뛰고, 머리가 잠시지만 어질해질 정도였다. 지영은 이게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친구들이 훈련 중 다칠 때마다 이러면, 이건 이것대로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건 뭔가 수를 쓰긴 써봐야겠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까?

그런 고민을 하는 찰나.

시작!

시합이 재개됐다.

상대는 나이도 한 살 많은데 이성진에게 고개를 숙여 목례를 가볍게 한 다음 다시 맞잡으러 나섰다.

이성진도 눈을 한차례 도복으로 쓸어내며 마주 인사를 한 뒤, 다시 상대와 붙었다. 이성진의 상대는 보성의 2학년 주전 주성욱. 주성욱은 이성진과 같은 전형적인 업어치기 선수였다. 왼쪽, 오른쪽 업어치기에 발기술이 뛰어난 선수.

기술과 체력은 뛰어나지만 그런 주성욱에겐 약점이 있었다.

바로, 신장이었다.

주성욱은 키가 작았다. 175에서 177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성진보다 적어도 5에서 6은 작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리치 차이가 확실히 났다. 유도에서 팔 길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복싱에서 리치 차이로 치고, 치지 못하고로 나눠진다면 유도에서는 잡고 못 잡고로 나왔다. 혹은 먼저 잡는 쪽에서 확실히 치아가 났다.

도복의 선점은 말해 입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 이성진은 잡기 싸움을 굉장히 잘하는 선수였다. 지영은 잡기 싸움으로 힘을 빼는 스타일이 아니라 먼저 도복 깃을 내주는 편이라면, 이성진은 확실하게 상대보다 도복 깃을 먼저 잡는 걸 선호했다.

동 체급에서는 거의 제일 리치가 긴 편이라 이성진과 붙으면 이 잡기 싸움 때문에 욕지기가 올라올 정도로 짜증도 났다. 지금이 그랬다. 주성욱은 어떻게든 도복을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이성진은 벌써 상대의 가슴 깃을 선점한 뒤에, 손목을 세워 상대의 전진을 막았다.

툭툭, 결국 가슴 깃을 잡는 걸 포기한 주성욱이 반칙을 받지 않기 위해 바깥으로 이성진의 어깨 깃을 잡는 순간, 이성진의 몸이 꺼지듯이 주저앉으며 회전했다. 특기 중 하나인 말아업어치기. 유도 선수라면 다 할 줄 아는 업어치기지만 이성진의 속도에 체중, 타이밍이 실리면 동 체급은 말할 것도 없고 황석도 날아간다.

홰액!

쾅!

매트가 터지듯이 제대로 메쳤지만, 너무 제대로 메쳤다. 거기에 연습 시합이라 심판의 판정도 양쪽에게 후하게 작용해서.

절반!

와자리, 절반을 얻었다.

심판에 따라 한판을 줘도 되지만, 절반을 줘도 되는 정도의 메치기라, 이성진은 별 불만 없이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갔다.

“야 성욱아! 업어치기 조심하라니까! 가슴 깃 주지 말고! 잡히면 무조건 말린다고 말했잖아!”

“네!”

보성 코치가 날이 퍼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주성욱도 기가 죽은 모습은 아니었다. 명문의 자존심. 혹은, 자긍심. 명문 선수들이 강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정신력에 있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시합을 포기하지 않는 정신. 삐! 소리와 함께 시합이 끝나거나, 아니면 심판의 한판! 선언이 나기 전까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정신.

명문에게는 그게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주전인 주성욱도, 그런 정신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안 좋았다.

주성욱에게도 그런 정신이 있다면, 이성진에게도 그런 정신이 있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다섯 살, 여섯 살 때부터 자신의 ‘밥’을 자신이 챙겨야 했던 이성진에겐, 생존력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 이성진에게 유도는 생존 그 자체였다.

학비 무료, 기숙사비 무료. 급식 무료. 교재에 교복, 시합 성적에 따른 상금 등, 유도를 그에게서 빼앗으면 당장 생활 자체가 위협받는 게 이성진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렇게 장난기 많고, 까불거려도 유도복을 입는 순간 그 누구보다 진지해졌다.

‘아마 우리 중에서도 가장 유도에 진지한 건 성진이겠지.’

있으나 마나 한. 아니, 없어지는 게 더 좋은 부모 탓에 그는 세상을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일찍 깨달았으니 말이다.

주성욱은 다시 파이팅 넘치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시합은 아무리 불굴의 정신력이 있다고 해도, 그게 실력 차이를 메워주는 건 아니었다. 아니, 조금은 메워주긴 하겠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고, 한계가 있었다. 지금 당장 대학부에 던져놔도 될 선수와, 이제 주전을 꿰찬 고등부 선수의 차이는 정말 극명하다.

2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어깨를 비집어 넣어 깃을 잡으려던 주성욱을 이번에도 역시, 업어치기로 던지며 한판 선언이 나왔다. 승자는 일어나서 도복을 고치고, 패자는 패배감에 잠시 멍 때리는 걸 보며 지영은 일어나 다시 몸을 풀었다.

“지영이 파이팅!”

“음, 파이팅.”

임효중과 황석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지영은 경기 입장 선에 섰다. 그러자 강한결이 다가왔다.

“지영아. 보성 쟤, 오늘 해봤어?”

“아니. 안 오던데?”

“그래? 아까 나 잠깐 해봤는데 굉장히 거친 스타일이더라. 조심해.”

“알았어.”

거친 스타일이라.

툭툭, 발바닥을 매트에 쓸며 시합 준비 중인 상대 선수를 보니 확실히 눈빛부터 거칠었다. 도전적인 걸 넘어서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도복만 안 입었으면 골목에서 담배를 태우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부를 때 할법한 눈빛이었다.

‘조심하자.’

그래서 지영은 조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상대 선수에게 조심하고자 하는 다짐이 아닌, 트라우마가 살아나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경우를 조심하자는 다짐이었다. 체전 2회전에서 경남 선수의 팔을 꺾었던 것처럼, 갑자기 분노가 확 일어나 위험한 기술을 거는 경우를 지영은 정말 조심하자고 마음먹은 뒤 경기장에 들어갔다.

인사하고.

시작.

“하!”

짧게 기합을 내지른 지영은 가볍게 몸을 통통 뛰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살폈다. 상대 보성고 2학년 김세건은 여유가 있었다. 지영을 상대하는데도, 마치 너쯤이야. 이런 느낌이었다.

‘그 미소, 얼마나 갈까?’

지영은 시합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상대가 거칠게 나오는 여유 자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단은 잡기.

이제 막 주전이 된 선수.

보성의 주전이면, 당연히 보성의 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그래도 최고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영은 방심하지 않았다.

일단 잡기.

가슴 깃은 역시 그냥 내줬다.

그리고 지영은 긴 팔을 이용해 김세건의 목과 어깨 사이의 도복을 잡았다. 네 손가락의 마디로 꽉 말아쥔 지영은 어깨를 툭 털며 한 번 당겨봤다. 그러자 상체가 대번에 앞으로 끌려 나오는 김세건.

‘몸이 가볍네.’

이 정도 몸 쓰기에 끌려 나올 정도면 중심이 매우 가볍다는 뜻이다. 신장은 지영과 거의 엇비슷하지만, 오히려 그게 파고들 여지를 많이 줬다. 그래서 지영은 다시 한번 어깨를 털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움찔했고, 그 어깨 털기에 도복 깃까지 놓쳤다.

거칠게 시합을 하는 편 치곤, 잡기도 중심도 다 약했다.

휘익!

떨어진 손을 쳐내고, 친손으로 가슴 깃을, 그리고 어깨를 잡고 있던 손으로 떨어진 손의 소매를 잡은 지영은 그대로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서서, 소매꽂이. 제대로 걸렸다. 왼쪽 어깨와 등 라인 전반에 걸쳐 상대가 착 붙어버렸다.

그러니 이건 국가대표가 와도 피하기 쉽지 않았다.

쾅!

상대를 뽑아 일자로 만들어 그대로 앞으로 굴러버리니, 이건 절반을 주는 것도 미안한 정도의 완벽한 한판이 나와버렸다. 거기에 던진 다음 그대로 누르기 포지션. 그 상태로 지영은 심판을 바라봤다.

“한판!”

그래서 심판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높게 들어 올리며 한판을 선언했다. 지영은 그 판정을 보고 난 뒤에야 도복을 놓고 일어났다. 거의 시작과 동시에 끝난 게임. 보성고 코치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보며 지영은 인사를 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강한결이 손을 내밀었다.

짝.

“잘했다.”

“응.”

강한결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시합에 나가는 임효중과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자리에 앉자, 이성진이 벌겋게 부은 눈을 얼음팩으로 문지르며 지영을 향해 말했다.

“와 자비 없네, 자비 없어. 뭐 좀 할 시간 좀 주지, 시작하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냐?”

“아니 그냥 너무 가벼워서.”

“그런다고 그냥 던져?”

“한결이가 저 선수 유도 거칠게 한다고 했거든. 시합 오래 끌어봐야 좋을 것 없을 것 같았어.”

“아, 그건 인정이지. 우리 지영이, 부상에 또 민감하시니까. 흐흐.”

“그건 다 그렇지 뭐. 눈은 괜찮어?”

“어, 그냥 좀 따가운 정도?”

“다행이다.”

“걱정 땡큐.”

이성진이 씩 웃으며 대답하는 순간 임효중의 시합이 시작됐다.

임효중의 상대는 같은 1학년이었다. 오늘 자유 연습도 잡아본 친구로, 순박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순박한 얼굴과는 다르게 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현우는 탱크였다.

신장은 이성진보다도 작았지만, 팔다리가 무슨 통나무처럼 굵직해서 힘 유도를 구가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스타일은 지영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은 임효중에게는 그렇게 상성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임효중의 힘은 황석 다음으로 좋았다.

하체와 상체의 힘,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치는 허벅다리가 주특기인 임효중은 탱크를 맞서 오히려 밀어냈다. 정확히는 밀고 들어오는 힘을 받아, 중심을 계속 좌우로 틀어서 상대의 중심을 완벽하게 뒤흔들었다.

그러다가 허벅다리로 절반, 누르기 한판승.

사이드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자리만 잡고 있던 강한결이 네 번째로 나갔다. 사이드는 다음 시합인 황석이 봤다.

강한결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지, 처음으로 4분 경기를 전부 했다.

4분을 다 쓰고, 절반 승. 마지막 황석이 나가서 밭다리 한판으로 연습 시합이 끝났다. 그에 보성고의 분위기는 진짜 최악으로 떨어졌다. 아마, 오늘 야간운동에 꽤 고생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연희고는 무덤덤했다. 연습 시합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하는 게 연희고 스타일이고, 이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은, 선수라면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이변은 없이, 보성고를 제압한 지영과 친구들은 남은 시합을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첫날 훈련은 그렇게, 무난하게 마무리가 됐다.

그래, 무난하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