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6화
16화. 시합이 끝나고 난 뒤(1)
전국체전은 끝났다.
황금세대 전원 금메달과 마지막 날 있었던 고등부 단체전 우승까지 거머쥔 뒤 우승기를 챙겨, 청주로 돌아왔다.
최고의 성적. 충북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이룬 전국체전이었다.
그런 성적의 주인공인 황금세대는 청주에 도착하자마자 회식을 하고 다음 날부터로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말, 지영은 일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도착한 집은, 느낌이 달랐다. 과거를 바꿨다는, 아니, 미래를 바꿨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고도 넘겼고, 전원 불참했던 전국체전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막 집이 있는 시장에 도착하자 웬걸, 시장 입구에 현수막이 떡 하니 걸려 있었다.
102회 전국체전 유도 남자 고등부 –73㎏ 강지영 선수 우승!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현수막이, 지영에게 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아…….”
옛날에는 저게 좀 부끄러웠다.
그때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뿌듯한 마음보다도 부끄러운 마음에 몇 배나 더 컸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진짜 묘했다. 금의환향한 것 같은 기분마저도 느껴졌다. 이게 다 미래가 변해서라는 건 지영도 알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게, 자신을 과거로 돌려 보내준 누군가의 덕분이었다.
띵.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녹색불로 바뀌며 이제는 겁나지 않는 신호음이 들렸다. 주변을 살피고 길을 건너며 다시 감회가 새로워지려는 기분을 마음껏 느꼈다.
‘이곳에서 끝나고, 이곳에서 시작됐지.’
이 횡단보도가 지영의 끝이자, 시작이었다.
그렇기에 지영은 이곳이 너무나 의미가 있었다.
그런 횡단보도는 짧았고, 새로운 감회도 끝을 맞이했다.
시장 입구로 들어서자 정육점 아저씨가 바로 지영을 알아보고 나왔다.
“여! 우리 시장의 자랑! 지영아! 금메달 축하한다!”
“어, 아저씨. 감사합니다.”
“자, 이거! 너 좋아하는 육회랑 삼겹살 좀 쌌다. 집에 가서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그래, 하하!”
좋은 아저씨였다.
지영의 집이 그리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다. 집은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살던 집이라 자가지만 지금은 빚도 조금 있고, 그걸 갚느라 매일같이 일하시는 어머니지만 금전적으로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걸 잘 아는 정육점 장 아저씨는 지영이 내려오면 이렇게 가끔, 집에 가서 먹으라고 고기를 공짜로 주시곤 했다. 특히 가끔 주는 육회는 질이 너무 좋아서 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집으로 가면서 지영은 정말 많은 축하와 인사를 받았다. 옛날이었다면 그냥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이면서 갔겠지만, 지금은 한 분씩 전부 인사를 받아주고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어머니 가게에 들렀는데 배달을 가셨는지 보이지 않으셨다.
“어머니 요즘 새로 거래처 뚫은 곳에 갔어.”
“아,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곤 지영은 그 길로 집으로 와서 가방을 벗어놓고, 받은 선물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넣는 중에 배가 좀 고파서 뭐가 있나 봤는데 전부 채소로 만든 밑반찬뿐이었다. 마늘장아찌, 깻잎장아찌. 김치, 총각김치, 나물무침, 눈을 씻고 봐도 고기는 없었다.
“…….”
여전히 이러시는구나.
옛날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회귀 전에, 그러니까 사고를 당하고 한 3년 정도 지나고 나서 어머니가 항상 이렇게 드신다는 걸 깨달았던 지영이었다. 고기는 지영에게 항상 주고, 당신은 찬밥에 물 말아 드시고 또 일 나가시고.
그런 어머니의 식습관이 정말 어느 순간 보였다. 그래서 그러지 마시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변하지 않으셨다.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챙기는 게 당연하다는 부모라지만, 지영은 그걸 바꾸고 싶어졌다.
그래서 일단 이번에 받은 상금은 당연히 전부 어머니를 드릴 생각이었다.
충북유도협회에서 체급별 금메달 상금 100, 단체전 우승 상금 100, 충북체육회에서 150, 그리고 연희 재단에서 나온 100, 마지막으로 대한유도회에서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상금이 50. 이렇게 총 500만 원을 받은 지영이었다.
사실 서울이나 경기, 부산, 강원처럼 지원이 어마어마한 곳과 비교하면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 돈 500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차라리 투자를 할까?’
10년.
아무리 지영이 실의에 빠져 살았다고 해도 뉴스만 봐도 나오는 굵직한 사건들은 몇 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내년 새해 벽두에 터지는…….
‘코로나 치료제는 대박 중에 대박인데.’
새해 벽두에 지영은 병원에 있었다.
워낙에 여러분 수술을 해야 했고, 재활 문제도 있어서 병원에서 새해를 보냈다. 그때 지영은 사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뚫고 뇌리에 박힌 게 바로 코로나 치료제였다.
지금도 코로나를 완전히 벗어난 시대는 아니었다.
좀 가라앉았을 뿐, 계속 확진자는 나오고 있었다. 그게 2022년을 새해에 기습적으로 한 제약회사 발표한 신약으로 인해 코로나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공식적인 종식 선언이 내려진다. 그 정보를 지영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됐다.
‘이건 조금만 더 고민해 보자.’
솔직히 이전의 삶이 가난에 찌들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돈 걱정 없이 삶을 살고 싶었다. 만약 이렇게 계속 운동만 한다면…….
‘어차피 어머니는 변하지 않으실 테니까.’
어머니를 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영은 돈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미래가 그가 알고 있는 것처럼 흘러갈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회귀까지 한 마당에 돈 500을 아까워하는 건 솔직히 너무 좀생이였다.
억, 조를 줘도 할 수 없는 게 회귀니까 말이다.
냉장고 정리를 끝낸 지영은 컵라면 하나를 꺼내 물을 부어 식탁에 가져다 놓은 다음 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강한결: 주말 동안 선발전 뛸 건지 말 건지 정해서 알려줘.
주장 강한결의 메시지에 지영은 컵라면의 온기를 느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선발전. 보통 선발전은 봄과 가을 끝 무렵에 열린다. 정확히는 전국체전이 끝나고 11월 말쯤이다. 올 초에는 실력 테스트 겸 강한결만 나갔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의견을 받긴 했었다.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출전 안 한다는 답장을.
선발전. 유도 선수라면, 아니, 모든 스포츠인이라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를 염원할 것이다. 그리고 지영도 그 마크를 달고 싶긴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올림픽이 끝났다. 다음 올림픽은 앞으로 4년 뒤다. 그건 곧 시간 여유가 있다는 뜻.
“지금 나가봐야 태릉에 갇혀만 있겠지.”
그래, 이게 지영의 본심이었다.
라면을 휘적거리며 지영은 선발전에 굳이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좀 더 강한 선수들과 붙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팽배하게 머리와 가슴에 차 있었다. 그리고 이걸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선발전이다.
하지만 문제는 선발전에 출전 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면 태릉 선수촌에 입촌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강한결도 올 초에 선발전을 치르고 태릉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학업을 핑계로 대고 거절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들어가 봐야, 가면 따까리밖에 거의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지금 당장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회귀 이후, 과거를 바꾼 자신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아무것도 못 했었기 때문에 제법 욕구가 쌓여 있는 지영이었다. 아, 물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욕구였다.
바다도 가고 싶고.
산도 가고 싶고, 아주 높은 산을 등산도 하고 싶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가 나온 직후, 세계는 대항해시대에 버금가는, 대여행시대가 열렸다. 코로나로 갇혀 있었던 사람들이, 치료제가 나오고 이게 상용화에 들어간 뒤에, 종식이 선언되자 정말 어마어마한 기세로 여행길에 올랐던 1년에서 2년 정도를 대여행시대라고 불렀다.
“아, 여행사도 엄청 호황이고, 관련 주식도 엄청 오르겠구나.”
여행이 대호황을 누리니 여행사, 그리고 여행 관련 어플, 호텔 등의 주식이 폭풍처럼 치솟는다.
이러한 상황을 지영은 재활을 하며 전부 지켜봤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심정은, 없었다. 그 당시는 거의 절망에 빠져 살 때였다. 재활을 하는 것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의 지영은…….
“절망조차 느끼지 못했어.”
절망?
그건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나 느끼는 감정이고, 당시의 지영은 그냥 넋이 나간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보다는 그냥 인형이 더 어울릴 거다.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인형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4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지영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게 된 것도 어머니의 희생을 보고 나서였다.
연달아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회귀 전 기억이 떠오르자, 지영은 고민 중이던 마음이 일순간 정리가 되는 걸 느꼈다.
“사자.”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영은 어머니를 위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든 제약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그걸로 이번 생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어진 지영이었다.
이런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동안, 라면이 다 불어터졌다.
지영은 후루룩 마시듯이 라면을 먹고는, 냉장고에 있던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국물에 말아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챙겨 온 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집 안을 청소했다. 채소, 채소를 파는 집이라 언제나 먼지와 흙이 집안 곳곳에 있었다. 어머니가 청소를 한다고 해도, 이걸 매일같이 치우고 닦고 하기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그래도 윤이 나게 청소하고 나자 3시쯤이었다. 이어서 지영은 옷장을 열어 내일 가져갈 겨울옷을 챙겼다. 옷을 챙기던 중, 지영은 사복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참 삭막하게도 살았네.”
그 흔한 청바지가 집에 있는 거 하나, 숙소에 있는 게 두 개고, 티셔츠도 거의 기본 면티 종류였다. 셔츠는 불편해서 안 입는 편이라 아예 없었고, 겨울옷도 학교에서 나오는 운동복, 패딩이 전부였다.
이런 옷장을 보면서 옷을 살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회귀를 했으니, 이제는 좀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회귀 전, 이 시절의 지영은 운동에만 목을 매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취미라고 할 게 전혀 없었다. 사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입기 편한 옷, 신기 편한 신발.
굳이 손질하지 않아도 되는 머리 스타일을 고집했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꾸미는 것에 관심을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고도 없었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도 될 때였다.
“조금만 사자.”
그냥 위아래로 한두 벌, 그리고 신발 하나 정도.
딱 그 정도는 사고 싶어진 지영이었다.
옷을 산다 생각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남들과 너무 달랐다가, 이제는 남들과 비슷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실실 웃으며 옷을 챙기던 지영은 문밖에서 누가 계세요? 하고 부르는 말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시합이 끝나고 자신을 인터뷰했던 이선영 기자님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카메라를 들고 있던 김선욱 VJ님도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지영 씨, 오랜만이에요. 일주일 됐나?”
“그 정도 됐죠. 근데 기자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음, 좀 더 심층 인터뷰를 따고 싶어서랄까?”
“인터뷰요? 음, 인터뷰할 만한 게 있나요? 그때 소감도 다 말했는데.”
지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이선영이 세상 선한 미소로 지영의 말을 받았다.
“그건 시합에 대한 인터뷰잖아요? 오늘 인터뷰하고 싶은 건, 강지영이란 개인에 대한 모든 것을 좀 알아보고 싶어요.”
“저 개인이요?”
“덤으로 황금세대도?”
“음…….”
인터뷰라.
말이 인터뷰지, 이건 거의 한 인간을 심층 취재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왜 자신을? 하는 의문이 당연히 뒤따랐다.
하지만 이미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와중이라서 그런지, 해보고 싶단 생각이 ‘왜 자신을?’이란 생각을 가볍게 한판으로 메쳤다.
“네, 그럴게요.”
“잘생각했어요! 저기 길 건너편에 별 카페 하나 있던데, 거기서 기다릴게요.”
“네. 근데 제가 수업 끝나고 바로 와서 그런데 좀 씻고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오기만 하세요. 호호.”
“네.”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선영은 김선욱과 함께 카페로 떠났고, 지영은 뭘까…… 하는 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샤워를 한 후, 그나마 단정한 옷을 챙겨 입은 뒤, 카페로 향했다.
주말, 토요일.
딸랑.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 소리와 함께 지영이 들어서자, 카페에 있던 여성들의 시선이 모두 지영에게 달려들었다.
황금세대 중 가장 중성적인 외모에, 머리만 기르면 여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지영이니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고, 이는 지영에겐 그냥,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