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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5화 (1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5화

15화. 전설의 시작(5)

예전에는 네 개의 점수가 존재했었다.

효과(Koka).

유효(Yuko).

절반(Waza-ari).

한판(Ippon).

이렇게 네 개의 점수다.

이중 효과는 1점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유효는 3점이다. 그리고 절반은 5점, 한판은 10점. 유효가 몇 개 쌓이면 절반이 되는 시절도 있었지만 그건 지금 현역들이 아마 태어날 때쯤이나, 태어나기도 전일 테니 넘어가고.

이렇게 네 개의 점수가 있었던 시절의 유도는, 생각보다 더러웠다.

이유는 바로 저 점수 가지고 장난질을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절반이나 한판은 등이 거의 매트에 닿기 때문에 딱 봐도 점수가 확실해 보이지만 유효는 허벅지가 닿는 경우고, 효과는 아주 애매하게 엎어졌을 때 주는 점수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로의 실력이 백중세일 때, 시합을 뒤집어버리는데 효과나 유효만 한 게 없었다.

아주 애매하게 넘어갔는데 효과를 줘버리면 게임은 그냥 뒤집혔다. 흔히 선수 죽이기에도 이런 방식은 엄청나게 많이 쓰였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그리고 유도 경기가 좀 더 파이팅이 넘치게 변화시키기 위해 10년대쯤에 지도와 유효를 없앴다. 그리고 허리 아래를 잡아 메치는 기술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런다고 선수 죽이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왜?

바로 지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3개를 먹이면 반칙패를 당하게 되어 있으니, 이걸로도 선수 죽이기는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주 애매한 경우에 특히 많이 쓰였다.

‘아. 맞다.’

마치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처럼 정면만 보고 있는 심판을 보며 지영은 아주 예전에 읽었던 기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전 대한유도회 회장의 외손자가 유도 선수고, 그 선수가 자라서 올림픽에 나가 은메달을 금메달을 순차적으로 거머쥐었다는 기사였다.

현 회장의 이름은 이석도.

눈앞에 저 친구는 이우진.

그림이 쫙 그려졌다.

‘황금세대를 이긴 유일한 선수. 그림 좋네.’

하지만 지영은 이우진이 이런 상황이 지금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걸 알았다. 그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런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뜻. 그것만 해도 이우진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친구였다.

하지메!

시합이 재개됐다.

지영은 빠르게 이우진에게 접근했다.

임효중이 생각나는 선하면서도 다부진 눈빛의 이우진이 미안한 눈빛을 지우고, 바로 지영에게 달라붙었다.

팍! 파박! 빠르게 손속을 교환하며 상대의 깃을 노렸다.

그러던 중 지영은 뻗어오는 손을 막고, 뱀처럼 휘감아 소매를 잡았다. 소매를 잡히자 이우진은 급히 뒤로 물러나며 거칠게 손을 뿌리쳤지만, 지영의 악력은 황금세대 전원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에 속했다.

손가락 두 번째 마디에 제대로 말려 잡힌 소매 깃은 뿌리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 큰 동작은 역공의 빌미를 제공했다.

툭.

지영의 전매특허, 모두걸기.

중심이 이동하는 타이밍이 받쳐줘야지만 걸리는 모두걸기는 제대로 걸기 극히 어려운 기술이다. 왜냐하면 유도 선수가 그냥 서 있을 때의 중심은 진짜 말도 안 되게 단단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모두걸기를 치는 건, 그냥 천년 고목 넘어뜨리겠다고 발바닥으로 때리는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모두걸기란 기술이 있는 건, 유도는 서 있기만 한 운동이 아니라 스텝을 밟으며 기술을 거는 운동이기 때문이었다. 중심이 이동 중일 때, 이때가 모두걸기를 제대로 걸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그런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아는 걸 넘어, 귀신처럼 노릴 수 있는 선수였다.

스악.

발바닥이 매트를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 나면서, 상대의 몸이 휘청이는 게 느껴졌다.

중심이 무너질 듯 휘청이는 이우진의 모습에 모두걸기를 쓴 발을 중심으로 다시 한발 나아가, 자세를 바꿔 오른쪽으로 틀어잡았다.

그러곤 툭툭, 다시 스텝.

흔히 몸 쓰기라 부리는 스텝이다.

이렇게 스텝을 밟자 이우진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지영의 기술이 들어오는 걸 방어하려고 했다. 누가 봐도 수세에 몰린 모습.

지영은 무리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지만 이미 중심은 잡았고, 잘못 기술을 걸다간 되치기로 한판 날아갈 수도 있어서 정확히 자세만 잡고, 이우진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사실, 궁금해졌다.

‘과연, 언제까지 지도를 안 줄까?’

이우진은 하나, 자신은 두 개.

이우진이 이기게 만들려면 자신에게 하나만 더 주면 된다. 하지만 지영의 스타일이 공세로 변하며 이우진은 수세로 몰렸다.

지영은 그래서 궁금해졌다. 과연, 심판이 언제까지 이 친구를 밀어줄 건지.

물론 이런 궁금증을 풀려다가 질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체전이지.’

이제 1학년이고, 기회는 2년이나 더 있었다.

황금세대가 지는 굴욕? 그런 거에 굴욕을 느낄 황금세대도 아니었다. 그냥 이 상황이 화도 나지만, 그래서 더 자극적이었다.

‘그래. 이런 페널티쯤은 있어야지.’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

사실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다시 경기장에 섰다는 충족감, 만족감을 빼면…… 지영에게 그 이상의 뭔가를 선사하지 못했다. 그런데 골때리게 이런 불리한 상황에 몰리자 부족하던 뭔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맛테!

심판이 그쳐를 선언했다.

도복을 놓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지영은 심판을 다시 바라봤다. 화가 난 눈빛도 아닌, 그저 궁금한 얼굴로. 지영의 눈빛은 딱 이렇게 묻고 있었다.

이래도 안 줄 거야?

어. 안 줘.

하지메!

심판이 다시 경기를 시작시키자마자 체육관 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전부 유도인이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시합을 보는 눈이 있었고, 지금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지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심판 X발! 지영아! 그냥 한판으로 던져버려!

가장 성격이 급한 이성진이 거칠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본래에도 남의 눈치를 잘 안 보는 놈이니 이런 상황에서 주둥이 닫고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건 지영이 생각해도 무리였다.

심판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보면서 지영은 다시 시합을 시작했다.

이우진은 자극받은 얼굴이었다.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지영을 상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두 번 밀렸고, 세 번은 밀리지 않겠다는 것처럼 단단한 신체를 앞세워 저돌적으로 밀고 나왔다. 그런데도 중심은 딱 잡혀 있다. 역시 선수가 많다는 경민의 에이스답다. 그런 이우진이 참 만족스러웠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붙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다.

이런 상황이라서.

그래서 지영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경기는 그와는 반대로,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변했다.

파박! 파바바박!

순식간에 몇 번이나 교차하는 손.

잡고, 쳐내고. 잡고, 뜯어내고, 잡고, 잡고.

두 번을 연달아 잡은 건 이번에도 지영이었다.

홰액!

파앙!

잡는 순간 허리를 틀어 모션을 주니 이우진이 움찔하며 자세를 낮췄다. 지영의 특기인 허벅다리가 들어오는 줄 알고 바로 방어 자세를 취한 거겠지만, 틀렸다, 이번엔.

지영은 상대가 방어로 나오는 순간 오른쪽 다리를 뒤로 회전시키며 찍고, 순간적으로 상대를 당겨 겨드랑이 쪽으로 확 붙여놨다.

파앙!

그러곤 허리후리기.

제대로 들어간 허리후리기가 이우진의 몸을 허공에 띄웠고, 그대로 풍차처럼 돌려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힘이 너무 과했다. 작정하고 제대로 찬 허리후리기가 상대를 아예 360도를 돌려버린 거다.

한 바퀴를 아예 돌아서 바닥으로 엎어진 이우진.

힘이 너무 과했고, 지읏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허리후리기를 차는 순간 가슴 깃을 잡고 있던 이우진이 쭉 팔을 펴서 제대로 기술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영이 차는 힘이 너무 세서 이우진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이우진을 잠시 보던 지영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맛테!

가는 도중 심판의 그쳐 선언이 들렸다. 지영은 이번엔 심판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지도를 주면 주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궁금했지만, 이젠 바뀌었다.

그건 엎드려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이우진의 얼굴을 보면서였다. 이우진은 굴욕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밀리는데 심판은 자신에게 지도를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게, 이 선수의 프라이드를 박살 내고 있었다.

이미 금이 갔고, 여기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깨진 글라스(glass)처럼 파삭! 소리와 함께 주저앉을 거다.

지영은 이 선수가 그렇게 꺾이는 걸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꺾이고 나면, 그 좌절감은 결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만둘 수도 있겠지.’

이렇게 프라이드가 강한 선수라서, 오히려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절망, 좌절. 하필이면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지영이었다.

부상도 아니고, 대낮의 만취 운전자로 인한 사고로 지영은 가진 모든 것 중, 살아남은 황금세대와 가족을 빼고 모두 잃었다.

그리고 10년을 넋이 나간, 어딘가 부족한 인간처럼 살았다.

살기 위해 움직였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 동기가 결여된 인간의 삶을 살았다.

물론 회장의 손자니 이우진은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이 친구에게는 유도가 아니더라도 분명 길이 엄청나게 열려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기를 바라진 않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 분을 참는 이우진이 고민하는 게 뭔지도 보였다.

포기할까?

이런 굴욕적인 시합 말고, 다음에 그냥 다시 붙어볼까?

딱 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애의 자존심을 당신들은…….’

무참히 짓밟은 거야.

도대체 왜?

이것도 의문이었다.

자신과 동갑, 1학년인데도 결승까지 온 이우진인데, 뭐가 불안해서 이렇게까지 하는지, 진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잡생각은 그만.

이우진이 소매 깃을 잡았으니까.

툭, 손바닥으로 밀어 뜯어내려다가, 반칙을 의식해 멈추는 지영에게 이우진이 갑작스럽게 확 달려들었다. 왜? 이건 마치 자신을 던지라는 것처럼 보였다.

‘깨졌구나.’

자존심 강한 어린 천재가, 결국 어른들의 욕심으로 상처를 받아, 시합을 내던지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여기서 시합을 더 질질 끄는 건 이우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지영은 달려드는 이우진의 팔을 감아서, 부드럽게 매쳤다.

서서 업어치기.

마치 메치기 본과도 같은 업어치기에 심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잇폰! 한판을 선언했다.

전국체전 우승.

지영은 기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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