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4화
14화. 전설의 시작(4)
반짝반짝.
이선영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마지막 경기를 장식하기 위해 대기 중인 지영을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달라, 뭔가 달라. 내가 유도를 몰라서 그런가? 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그냥 달라.”
이성연은 지영을 보면서 그게 너무 아쉬웠다.
유도 경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직관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올림픽 때만 반짝 인기 있는 종목이라 생각했는데 직관으로 보는 유도 경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일단 시원시원하게 한판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한판이 안 나오더라도 치열하게 끝까지 맞붙는 그 파이팅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복싱처럼 라운드가 긴 것도 아니고, 태권도도 3분 라운드이니 10분을 넘긴다. 여기에 그쳐, 시작까지 합치면 시간은 더더욱 늘어난다.
반대로 유도는 4분. 단판 게임이고 그쳐와 시작을 합쳐도 7분에서 8분이면 판가름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 시원시원했다.
지지부진한 경기도 몇 개 있지만, 그건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열기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해줬다.
이런 게 유도라는 걸 알겠다고는 해도, 이선영이 아무리 내려오면서 벼락치기로 배웠다고 해도 아직은 유도에 대해서는 경기 룰을 빼면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다. 그래서 시합을 보는 눈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잘 나가던 기자. 기자의 감이 강지영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느낌을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뭔질 모르겠으니, 그게 답답했다.
“선욱아. 중계사 인터넷방송 쪽은 어때?”
“누님, 난리도 아닙니다. 원래 유도 선수는 다 저렇게 잘 생겼냐며 댓글이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어요.”
“역시…….”
황금세대.
이 체육관에서 고고히 빛나는 별들.
지들끼리만.
전원의 외모를 본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축구 선수나 배구 선수처럼 외모를 세팅하고 나온 것도 아닌데, 이 애들만 진짜 빛이 났다.
‘메이크업 없이도 저런 아이돌 뺨따구 후려치는 외모면, 메이크업을 하면 얼마나 달라진다는 거야?’
요즘 아이돌은 물론 배우는 화면에 잡힐 때 무조건 메이크업 상태였다. 오히려 요즘엔 여자보다 더 신경 써서 메이크업에 공을 들일 정도다. 그래서 다 뽀얗고, 화사한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황금세대의 외모는 요즘 아이돌과는 조금은 달랐다.
‘전원 배우상이라니……. 이게 우연으로 있을 수 있는 건가?’
각자가, 각자만의 개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건 기본이고, 특정 배역에 꽂아 넣어도 얼굴로 먹힐 것 같은 느낌이 한가득 나는 게 그녀가 본 황금세대다. 그런데 이런 애들이 다섯이 황금세대라는 이름에 뭉쳐 있고, 심지어 실력은 이미 3명이 금메달을 확정 짓고, -100의 황석이 절반으로 우세한 가운데 경기 시간을 3분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결승까지, 그냥 산책하면서 올라온 것처럼 느껴지는 강지영이 남아 있었다.
그런 지영이 진다고 해도, 5인 전원 메달권 안에 들었다.
금4, 은1.
이런 성적을, 저런 외모로 내는 중이었다.
“얘넨 진짜 대박이다…….”
솔직히 지영에게 흥미만 있었는데, 이제는 황금세대 전원이 궁금해진 이선영이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꺼내 생중계 말고, 중계방송사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중계하는 쪽도 들어가 봤다. 김선욱의 말처럼 댓글들은 진짜 난리였다.
-와…… 유도 선수는 원래 저렇게 다 잘생겼나요?
-이성진? 꺄아! 얘 너무 귀엽고 잘생겼다! 딱 내스탈!
-지금 시합 중인 황석 저 선수도 대박이네…… 몸은 마요미 형인데, 얼굴은 차승현이야.
-다 한 학교인 거 실화? 전원 입상 실화?
-말도 안 된다 진짜…….
-쟤네, 유명한 애들임. 유도계에서는 황금세대로 불리는 애들인데, 초딩때부터 시합 씹어먹던 애들임. ㅅㅂ 나도 개털렸음 강한결한테
-강한결! 와 난 뭔 모델인줄! 비율 끝장 진짜!
-난 효중이! 효중이 얼굴 너무 선하지 않음? 우승하고 씩 웃는데 진짜 눈빛 어쩔…….
-난 강지영! 이름은 진짜 여성스러운데! 외모도 여성스러웤ㅋㅋㅋ
-지영이 쟤는 여장시키면 못 알아보겠는데?
-근데 강지영 눈매 겁나 서늘함……. 실제로 보면 퇴폐미 개쩔 듯…….
-얘넼ㅋㅋㅋ청주에서는 이미 아이돌임ㅋㅋㅋㅋ
-연희고 남녀공학에 합반이라며? 와…… 거기 여학생들 졸 좋겠…… 쟤들 얼굴 매일 볼 거 아냐?
댓글들은, 이건 뭐 누가 보면 아이돌 공연 중계하는 중인 줄 알겠다.
그래서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거기다가 살포시 댓글을 남겨봤다.
-취재 나온 기자라 직관 중♡
그게 올라가자마자, 부럽다는 댓글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 그렇게 잘생겼냐는 질문부터, 구라치지 말라는 댓글도 우르르 달렸다. 그래서 그녀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생긴 남자나 아름다운 여자에겐 불편러들이 들러붙기 마련이었다.
-그래봐야 운동선숰ㅋㅋㅋ 대가리 개꼴통들ㅋㅋㅋ
-응지금잘해봐야대학가면다개털림ㅋㅋㅋ
-얼굴로운동하냐?ㅋㅋㅋ운동선수는실력이짘ㅋ
하지만 그런 댓글은, 이미 황금세대의 정보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처단당했다.
-강한결 공부 전교 10등임, 난 맨날 공부하는데 나보다 잘함 ㅅㅂ…….
-다른 애들도 기본 이상이거나 상위권임 ㅋㅋㅋ
-불편충들ㅋㅋㅋ 쟤들 지금 1학년임 전원 ㅋㅋ 지금도 압살하는데 대학 가면 얼마나 잘하겠냐?
-강한결은 올해 국대 선발 3위인가 4위인가 했을거임……. 다른 황금세대는 다 불참했고.
-방구석 여포들이 아무리 까려고 해봐야, 얘들은 진짜다. 전원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장난 아님. 난 얘들이랑 초중고 같이 다니고 있는데 얘들이 문제 일으켰단 소리 내가 알기론 한 번도 없음.
-ㅇㅇ왕따 생기면 가서 챙겨주고 해결해주는 애들임.
-우쭐거리지도 않고 그냥 항상 겸손함. 이성진 빼고.
-ㅇㅇ이성진빼고.
이런 애들이었어?
이선영은 진심으로 놀랐다.
동창들이라는 애들이 남기는 댓글을 보며 그녀는 얘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애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왕따 문제도 해결해줬다는 대목에서, 그녀는 이 애들은 진짜라는 걸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댓글창에, 톡톡톡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황금세대를 취재 중인 이선영 기자입니다. 황금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제보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보는 Lee-Sunyoung77**@nat……로 보내주시면 소정의 상품을 증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댓글을 남긴 뒤, 그녀는 다시 시합장을 바라봤다.
그 사이, 황석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양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걸로 황금세대 5인 중, 4인이 금메달을 결정지었다.
짝짝짝.
노트북을 덮은 그녀는 진심을 담아 우승 선수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렇게 –100, 무차별 경기가 끝나고 선수, 심판도 퇴장했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금일 마지막 경기는 5분 뒤 시작하겠습니다. 금일 마지막 경기는 –73㎏ 경기도 대표 이우진 청색 도복, 충청북도 대표 강지영 선수 백색 도복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 안내 멘트가 나오자 대기석 쪽에 서 있던 강지영이 경기장으로 걸어와 입장하는 선에 털썩 앉아 몸을 풀기 시작했다. 5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심판이 입장하자 일어나서 통통, 뛰는 강지영.
심판이 제자리에 서자,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두 선수. 심판을 기점으로 거리를 두고 선 두 선수가 다시 한번 인사를 하자, 하지메! 오늘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다.
* * *
이우진.
경기 경민고의 차세대 에이스. 라 평가받는 선수다.
‘1학년인데 결승에 올라온 걸 보면, 대단한 거지.’
무려 자신과 같은 1학년이다.
그런데 선수 풀이 좋은 경기 경민고에서 주전을 따낸 것은 물론, 경기도에서 선발까지 돼서 체전까지 나왔다. 거기에 73의 강자를 항상 배출하는 서울의 대표 선수까지 준결승에서 꺾고, 결승까지 왔다.
이우진.
회귀 전에도 사실 이우진은 유도계에서는 유명한 선수였다.
지영이 나오지 않았던. 아니, 나오지 못했던 이 체전의 1위를 기점으로 포텐셜이 제대로 터지면서 2학년, 3학년 때 굵직한 모든 대회를 석권했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한 해에 올림픽 대표에 승선했고, 2위를 했다. 그 다음 올림픽에서는 1위를 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유도계의 에이스가 되는 선수가 바로 이우진이었다.
지영이 없었다면, 아마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갔을 선수.
시작과 동시에 잡기 싸움 없이 서로 가슴, 등판 깃을 잡았는데 잡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럴만하네.’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중심 밸런스도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지영에게 눌린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니가 그렇게 천재라며? 근데 나도 천재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차분함과 자신감이 아마 그를 정상급 선수로 올려놨을 거다.
툭, 툭툭.
깃을 털면 지영은 툭 당겨 모두걸기를 쳤다. 툭툭 채서 업어치기 모션이 들어가면 지영은 스탭을 밟아 앞쪽으로 슬쩍 위치를 이동시켰다. 반대로 지영이 툭툭 채니 이우진도 앞으로 나오며 지영의 허벅다리 기술을 대비했다.
맛테!
시도! 시도!
그래서 둘이 나란히 지도를 받았다.
어차피 지도는 현재 시합에 큰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점수가 났을 때다. 점수를 따거나, 빼앗기면 그때부터 시합은 소용돌이처럼 요동치게 된다.
“지영아! 소매만 조심하면 된다, 소매만!”
임대성 코치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이우진과 맞붙었다. 지영처럼 거의 잡기 싸움을 하지 않는 성격인 이우진은 이번에도 가슴 깃을 먼저 잡았다. 두 기술 중에는 그래도 업어치기가 더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이런 경우, 소매만큼은 줘선 안 됐다.
소매꽂이나 말아업어치기도 위험하지만, 진짜는 제대로 잡혔을 때 들어오는 정석 업어치기였다. 유도에서는 흔히 알고도 넘어간다는 말이 있다. 그건 곧, 업어치기나 허벅다리 후리기 같은 기술이 들어올 걸 알면서도 넘어간다는 말이었다.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제대로 잡혔을 경우.
제대로 가슴, 소매 깃이나 목, 소매 깃에 잡힌 채 기술에 걸리면 이건 제아무리 용을 써도 거의 무조건 한판이 나온다. 실력 차이가 나면 뭐 말할 것도 없고, 실력 차이가 비슷해도 이렇게 제대로 걸린 채 기울이기에 이은 기술에 걸리면 그냥 무조건 한판이다.
그래서 유도에서는 소매 깃 싸움이 언제나 항상 치열했다.
잡기 싸움을 거의 안 하는 지영도 소매 깃만큼은 절대 주지 않았다.
툭툭,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깃을 챈다.
지영은 그런 이우진의 스탭을 차분하게 따라갔다.
‘이런 자세에서 걸 수 있는 기술은…….’
물러나며 말아 업어치기거나, 아니면 업어치기를 하는 척, 발기술을 거는 경우뿐이다.
홱!
지영의 예상처럼 이우진이 스탭과 함께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말아 업어치기를 걸었다. 비스듬히 상체에 어깨를 받친 다음, 그 상태에서 그대로 바닥에 내려 꽂는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전매특허인 말아 업어치기는 제대로 걸리면 그냥 무조건 한판이다.
하지만.
상대가 회전하는 순간 이미 지영은 상대의 앞으로 빠져나가 있었다. 이 경우 가슴에 어깨를 덧대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은 그냥 허무하게 빗나갔다. 상체가 끌려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는 유효기술 판정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맛테!
시도!
‘나한테만 반칙이 들어온다고?’
끔뻑!
지영이 이건 또 뭔가 싶어서 심판을 바라봤다.
“아니! 어떻게 이게 지도입니까! 네?”
그리고 밖에서 임대성의 격렬한 항의가 들려왔다. 지영은 그런 임대성을 바라봤다가, 비디오 판독으로 판정을 정정하는 두 명의 부심도 바라봤다. 그런데 두 명의 부심도 미동이 조금도 없는 얼굴이었다.
‘아…….’
이해했다.
이런 판정이 나올 이유는 사실 하나밖에 없었다.
피식 웃은 지영은 도복을 고치고는 시합을 준비했다.
“아니! 심판 선생님! 이게 어떻……!”
퇴장!
연이어 항의하던 임대성이 퇴장까지 당하자 지영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더 확실하게 자각했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이우진을 바라봤더니, 그 또한 이 판정을 석연치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넌. 그래도 경우가 있어서.’
부정한 방법으로 우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선수의 눈빛이었다.
하지메!
시합이 다시 시작됐다.
심판진의 의중을 알았으니, 이제는 스타일을 달리해야 할 때였다.
빠르게 맞붙는 지영과 이우진.
‘내가 잡기 싸움을 못 해서 안 하는 건지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지영이 잡기 싸움을 안 하는 이유는 쓸모없는 체력을 빼기 싫어서지, 잡기 싸움을 못 해서가 아니었다.
툭! 투툭!
가슴 깃을 잡은 이우진의 손을 뜯어내고, 그대로 당겨서 등판을 확보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상대의 가슴 깃을 잡은 지영은 뒤로 빠지는 모션에 앞으로 들어가며 툭! 툭! 안 뒤축을 걸었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스타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우진이 그대로 앞으로 쏠려 지영의 가슴에 착 붙어버렸다.
툭툭!
그대로 있다가는 기술에 걸릴 걸 알았는지 그대로 무릎을 꿇고 굳히기 방어 자세로 들어가는 이우진. 지영은 그런 이우진에게서 물러나 자리로 돌아가며 심판을 바라봤다. 지영의 시선을 무시한 심판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맛테!
그리고 다시.
하지메!
역시나, 지도는 없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