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3화
13화. 전설의 시작(3)
지영은 회귀 이전에도 천재라 불리는 선수였다.
체력, 근력, 순발력, 신장, 팔다리의 길이 동 체급 선수보다 피지컬적인 면도 뛰어났고, 거기에 경기 운용과 기술까지, 타고났다는 얘기를 듣던 천재였다.
-73㎏, 경량급 끝 체급의 선수지만 무차별 단체전에서도 승률 90% 이상을 자랑했던 선수기도 했다.
회귀 전에도 그렇게 뛰어났던 지영은, 회귀 이후 더욱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그건 바로. 연륜이었다.
고작 스물일곱에 회귀한 놈이 연륜은 뭔 놈의 연륜이라고 하겠지만 그 10년의 시간 동안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의 급은 지금 현재 이 나이대의 선수들이 감히 따라갈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이상준은 강했다.
과연, 체급에서 거의 가장 큰 지영보다도 더 큰 신장과 타고난 팔의 길이로 지영을 압박해 왔다. 단순히 키가 크고 손발이 긴 것만이 아니라 하체도 단단해서 중심도 묵직했다.
하지만, 그런 이상준은 시합 시작 1분 정도가 지나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와 이씨…….’
분명 먼저 깃을 잡는데, 깃을 잡고 잠시 소매 깃 싸움을 하며 엎치락뒤치락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유리한 포지션을 빼앗겨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뜯어내고 다시 깃을 잡고 나면, 또 얼마 안 지나 유리한 깃은 상대가 잡고 있었다.
업어치기 선수는 상대의 팔 안쪽으로 깃을 잡는 게 유리하고, 허리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들도 안쪽으로 잡아야 기술 걸기에 유리했다. 어떻게 들어가든 주 기술은 목을 감아 당기든, 끌어당기든 해서 기술을 거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도의 잡기는 어쩌면, 기술보다도 중요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잡기에 목을 매는 선수들도 엄청 많았다. 이는 자신 또한 마찬가지. 잡기는 자신의 특기를 넘어 유도,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툭, 투둑!
“이익!”
하지만 또 안쪽으로 목깃을 내주는 바람에 급하게 빠져 손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잡기에서 밀리지?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 잡기에서 밀리자, 이상준은 나란히 반칙을 받았는데도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하지메!
다시 시작된 경기.
이상준은 이번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 강지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눈에 담았다.
잠시 잡기 싸움 끝에 가슴 깃은 이번에도 먼저 선점했다. 그러자 소매를 잡아 툭 당기면서 모두걸기. 마침 발을 움직이는 중이라 상체가 휘청했다.
하지만 중심이 아예 무너진 건 아니라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혹시 지금?
이상준은 급히 자세를 살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유리한 포지션이었다.
‘중심부터 무너뜨리자.’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상대를 힘으로 찍어눌러 볼 생각이었다. 골격과 근육에서 나오는 힘은 분명 자신이 위일 거라고 생각한 이상준은 중심을 뒤로 이동시키며 강하게 강지영을 당겼다.
그리고 예상대로 강지영은 끌려왔다.
하지만 끌려오는 강지영을 보며 이상준은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끌긴 끌었는데, 어느새 강지영이 자신의 뒤로 바짝 붙어 있었다.
이건 끌려온 게 아니라 게 아니라, 뒤에서 자신을 안아 마치 백드롭(누우면서 던지기)처럼 던지려고 순간적으로 공격을 들어왔다는 걸 깨달은 이상준은 급히 도복 깃을 놓고 앞으로 확 엎드렸다.
그러자 역시 허리를 감아 들으려고 시도하던 강지영이 여의치 않자, 자신을 놓고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걸 보고 급히 자세를 바로 한 이상준의 눈에, 무심한 강지영의 모습이 들어왔다.
호흡을 고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아닌…… 그냥 그저 평온하거나,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일순간 소름으로 다가왔다.
왜 저렇게 평온하지?
전국체전 준결승인데, 좀 긴장하거나 전의를 불태우거나 그럴 법도 한데,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어떻게 저런 표정으로 경기에 임할 수가 있는 거지?
소름이 돋았던 이상준은 이어서, 화가 났다.
‘아주 그냥…… 이번 경기는 그냥 이길 수 있다 이거지?’
자유 연습을 해도, 저것보단 극적인 표정을 지을 거다. 기술이 안 걸리면 아쉬워하거나, 넘어가면 아쉬워하거나,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거나 해도! 저것보단 나을 거다.
“으아!”
기합을 크게 넣은 이상준은 다시금 접근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먼저 목깃을 선점했다. 잡자마자 빙글 앞으로 돌아 나오며 상대를 강하게 당겼다. 스텝을 밟아 나오며 체중까지 실었기 때문에 이번엔 제대로 끌려왔다. 그런데 툭, 다시 한번 당기는 도중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났다.
‘어? 으윽!’
흥분한 상태에서 강하게 끌어당기고, 소매 깃을 잡아 허벅다리를 차려던 마음이 너무 앞서서 끌려오면서 툭 친 모두걸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어찌나 정교하게 쓸었는지, 한발이 쓸려나간 상태에서 자신이 목깃을 잡고 있는 손을 잡아 아래로 쭉 당기니 균형이 일순간 제대로 무너졌다. 이대로 떨어지면 한판이라는 걸 직감한 이상준은 허리 근육이 찢어질 것도 각오하고 억지로 몸을 뒤틀었다.
이 짧은 순간 반응한 것만 해도 이상준은 역시 수준급 선수가 맞았다.
쿵!
매트에 떨어지는 즉시 몸을 돌려 엎드린 이상준은 심판을 바라봤다. 심판이 잠시 자신을 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제발, 제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해보고 경기를 끝내기는 싫었다. 그래서 제발 심판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잇폰이 아닌, 와자리이기를 빌었다.
“와자리!”
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상준은 고개를 푹 숙이며 도복을 단단히 여몄다. 2회전에서 왕종형이 방심하다가 굳히기로 한판에 날아가는 걸 기억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몸을 바짝 조여 방어를 했지만 강지영은 자신의 자리로 이미 돌아간 상태였고, 마데 선언과 함께 이상준은 일어나서 도복을 고쳤다.
도복을 다 고치고 앞을 보자 절반을 따고도 기쁜 기색이 하나 없는 강지영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새끼 뭐지?’
중학교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타일도 종잡을 수가 없고,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이상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하라고 신호를 주는 것처럼, 심판은 다시 하지메를 외쳤다.
* * *
와자리.
절반.
조금만 더 따라가면서 눌렀다면 한판이었을 건데, 아쉽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은 얼굴로 지영은 빠르게 다가오는 이상준을 시간을 확인한 뒤 맞붙었다. 3분이 지났고, 이제 2분이 남았다.
아쉽다.
시간이 저렇게 흘러가는 게.
마음 같아서는 10분이고, 20분이고 시합을 하고 싶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너무나 익숙했던 걸 잃고 나서야, 그 익숙함이 얼마나 소중했던 건지 깨달았던 지영이었다. 그래서 갈망했고, 믿기지 않는 회귀라는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더 느끼고 있었다.
주변은 소음 하나 없이 고요하고,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는 지금이,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런 지영의 기분은 아마도 황금세대만이 알아볼 수 있을 거다.
하지메!
시합 속행.
이상준이 비장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잡기 싸움이 특기인 선수에게, 잡기 싸움을 막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분명 먼저 잡아 유리한 포지션인데, 그다음으로 이어 지지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유도는 상대를 잡아 넘기는 스포츠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대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한 손으로만 상대를 넘기는 건 실력 차이가 나거나, 아니면 어? 하는 순간 제대로 기술이 딱 걸렸을 때만 가능했다.
실력이 6 대 4 정도만 나도 한 손으로 상대를 던지는 건 매우 힘들다. 하물며 그 반대라면, 거의 진짜 제대로 방심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피지컬이 정말 좋은 이상준이지만, 지영은 그에 뒤지지 않는 피지컬과 뛰어난 기술, 기술보다 훨씬 뛰어난 경기 운용의 묘를 이미 터득한 선수였다.
‘회귀 전의 나라면 불가능했겠지.’
아마, 이렇게 여유 있게 시합을 풀어나가기는커녕, 제법 애를 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때의 자신도 분명 천재지만, 연륜까지 쌓은 천재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이 상황을 풀어 설명하면, 국대 1선발인 선수가 고등학생이랑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피지컬이 정점까지 올라오진 않았지만 실력 자체는 이미 대학생들과 붙어도 쉽게 지지 않는 지영이기 때문에, 애초에 이 게임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상준의 문제는 기술이 빈약하다는 것.
피지컬로 충분했기 때문에 잡기 싸움에 열중했고, 그만큼 기술에 소홀했다는 것.
그게 치명적이었다.
이상준은 지영의 깃을 유리하게 잡아도, 그를 던질 기술이 없었다. 게다가 지영은 기술을 많이 들어가지 않는 방어 유도가 중심이다. 공격적, 파이팅 넘치는 유도를 하라고 룰 자체도 많이 개정했지만, 그렇다고 방어 유도가 사장된 건 아니었다.
툭, 툭툭.
이번에도 앞으로 돌아 나와 끌려는 모션을 취해서 그냥 가볍게 손을 쳐 끊어줬다. 악력이 아무리 좋아도 타이밍에 제대로 맞춰 끊어주면, 열이면 열 전부 도복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잠시 떨어진 순간, 이상준은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달려들었다. 이제 1분 30초.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이상준을 지영은 차분하게 받았다.
잡기, 소매는 쳐내고, 가슴 깃을 주고, 툭툭, 모두 걸기를 쳤다. 발이 이동하는 순간을 정확히 노려 쳤기 때문에 이상준의 신형이 일순간 휘청거렸다.
휙! 그 순간 팔을 안으로 넣으며 이상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긴장하고 있던 이상준은 급히 상체를 뒤로 빼며 반응했지만, 이번에도 지영이 빨랐다.
지영의 기술의 기본은, 반 박자 빠른 타이밍이다. 아주 순간적으로, 정말 툭! 하는 느낌으로 반 박자 빨리 움직이면 보통 선수들은 이에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축구, 배구, 농구 등이 반 박자 빠른 슈팅, 스파이크로 점수를 따내는데 이는 유도도 비슷했다.
스윽.
뒤로 물러나는 이상준을 확인한 지영은 가슴 깃, 그리고 오른 소매 깃을 잡아 목 뒤로 감아 그대로 어깨로 메치기를 걸었다.
갑자기 꺼지듯이 주저앉은 상대가 체중과 힘을 실어 말아 돌리면, 이건 그냥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윽!”
안 넘어가려고 사력을 다해 다리를 빼고 버티지만, 이미 기술은 부드럽게 걸려버린 상태였다. 화끈하게 쾅! 하고 넘긴 건 아니지만…… 한판은 한판이다.
유도는 등의 모든 부분이 거의 매트에 닿으면 끝나는 경기고, 지영의 기술에 걸려 그대로 등으로 데굴 굴렀으니 볼 것도 없이 한판이었다.
잇폰.
그리고 역시나 한판이었다.
‘화려하게 던지나, 수수하게 던지나 한판은 한판.’
엄청난 오버헤드 킥으로 골을 넣는 거나, 골대 앞에서 난잡하게 서로 부딪치다가 어떻게 우연찮게 발끝에 톡 걸린 공이 골라인을 넘어가는 거나, 어차피 똑같은 1점이다. 유도도 같았다. 한판은 그냥 한판이었다.
파이팅이 넘치는 유도?
지영도 하고 싶었다.
그게 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돌아왔음을 깨닫게 해줄 테니까.
하지만…….
‘여기엔 없다.’
자신의 체급에서는 그럴 만한 상대가, 아쉽게도 현재 문경 체육관 내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