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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2화 (1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2화

12화. 전설의 시작(2)

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제102회 전국체전 유도 경기가 열리고 있는 문경 체육관입니다! 저는 캐스터 배영우!”

“해설의 전기정입니다.”

“네, 전기정 해설위원님. 올 초 국가대표 선발전 이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하하.”

배영우는 아주 많은 스포츠 경기를 담당하는 캐스터고, 해설을 맡은 전기정은 대한민국 유도계의 레전드 중에 레전드였다.

“작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연기되어서, 올해는 스포츠인의 축제인 전국체전이 열릴 수 있나 없나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열리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운동하는 선수들이 그렇게 자신을 갈고닦는 이유는 바로 시합에서 이를 펼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 올림픽과 전국체전이 열린 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네마네 하는 바람에 아주 많은 선수들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둔 올림픽과 체전이 결국 이렇게 열리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참, 올해 올림픽은 대표팀 코치로 참가하시는 바람에 저와 해설을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이번 올림픽 유도는 직접 참가한 코치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셨습니까?”

배영우의 질문에, 전기정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미 생중계로 나가고 있는 중에 배영우가 이런 난처한 질문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곧, 합을 맞췄다는 것. 잠시 뒤 난처한 웃음을 지운 전기정이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음, 전체적으로 본다면 생각보다 매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금메달을 기대했던 일부 체급에서 부진이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렇죠. 이번 올림픽 유도 경기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던 종목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재입니다.”

배영우의 질문에, 단호하게 답하는 전기정.

“현 대표팀의 평균 나이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많지도 않죠. 애매한 나이의 선수들이 대표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네, 대학생 대표가 아마, 세 명인가 그 정도밖에 안 되고 있죠, 아마?”

“네. 4년 뒤에는 당연히 더 젊은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대표가 되겠지만, 현재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간판급 선수가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놓고 현재 선수들의 경기력을 비판하는 전기정 해설. 그는 현 용인대 교수이기도 해서, 중계를 보던 유도 팬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럼 4년 뒤에는 오늘 경기할 고등부 선수들 전원이 대학생이 되는데요. 현재 고등부에도 이렇다 할 유망주들이 없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오, 그렇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실력 면에서도 아주 기대 중인 선수들이 있습니다.”

배영우가 쌓인 빌드업이 마침내 터지기 시작했다.

사실 어느 경기를 중계하더라도 철저한 자료준비를 거치는 배영우가, 현재 유도계 유망주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실망스러웠던 도쿄 올림픽 경기력을 해설 전기정에게 물은 다음 자연스럽게 유망주 얘기로 전환 시키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사전에 합을 맞춘 빌드업이었다.

“오, 그 선수가 누굽니까?”

“황금세대입니다.”

“네? 그게 이름인가요?”

“설마요. 하하. 황금세대는 한 학교에 다니는 다섯 명의 선수를 일컫는 말로, 중등부는 물론 고등부에 오른 올해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입니다.”

“오…… 그렇군요. 아, 여기 정보가 있군요. 충북 청주 연희초, 중을 거쳐 연희고로 진학한 선수들이군요.”

“맞습니다. 본래 유도를 전문적으로 하는 팀도 아닌데, 요즘은 중등, 고등부의 강자로 떠오른 게 연희고죠. 심지어 황금세대라 불리는 저 학생들은 고작 다섯 명의 부원으로 전국대회 체급별, 무차별 단체전 우승까지 거머쥔 실력자들입니다. 또한 고등부로 진학한 올해 전원이 2번씩 개인전 금메달도 거머쥐었을 만큼, 경기력 면에서는 현재 탑 클래스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오, 실력이 대단한데요? 아, 마침 저기 연희고 황금세대 중 한 명인 –81㎏ 체급의 임효중 선수가 경기장으로 들어섭…… 이야.”

“하하, 왜 그러십니까?”

배영우가 멘트를 하다 말고 갑자기 감탄사를 흘리자, 전기정이 모른 척 그 이유를 물었다.

“이 선수, 엄청 잘 생겼군요? 전 뭔 배우나 아이돌이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죠? 이 선수들이 유명한 게, 바로 전원이 저렇게 다들 잘생겼다는 겁니다. 하하!”

“실력도 좋은데 외모까지, 이야, 이거 중계 나가면 팬들이 엄청 늘어나겠는데요?”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청주 쪽에서는 아이돌만큼이나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오, 그렇군요. 황금세대라. 보통은 축구나 야구, 이런 구기 종목에 쓰는 말인데 얼마나 실력이 좋으면 저런 호칭이 붙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말씀드린 순간, 선수 입장합니다.”

배영우의 멘트 뒤로, 경기장을 걸어 총 네 명의 선수가 입장했다.

보통 이 경우, 두 경기장을 전부 할 수는 없어 한쪽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배영우의 선택은 당연히 황금세대 임효중의 경기였다.

“임효중 선수, 경기장 입장합니다. 임효중 선수의 상대는 경기도 선수군요. 경기도 마성준 선수, 올해 은메달, 동메달 입상 기록이 있는 선수입니다. 단순한 시합 성적만 보면 임효중 선수가 앞서는데, 이 성적으로 어느 누가 우세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겠죠?”

“물론입니다. 준결승, 결승만 되더라도 시합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고, 이는 선수의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다만, 임효중 선수와의 상대 전적이 2전 2패라고 나와 있군요. 이는 상대성에서 임효중 선수가 우위던지, 아니면 실력 자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자, 그럼 대한민국 유도계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의 경기를 지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기 시작합니다! 임효중 선수, 차분합니다. 반대로 마성준 선수는 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죠?”

“그렇습니다. 아, 이거 좋지 않아요. 유도는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저런 긴장은 소극적인 경기 운용을 불러오게 되고, 그건 반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반칙을 받게 되면 또 다급해지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캐스터와 해설의 말처럼 마성준은 경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자세를 잡고 느긋하게 다가가 손을 뻗는 임효중의 손을 족족 쳐내면서 뒤로 물러났는데 이는 누가 봐도 소극적인 경기 운용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시합 시작 40초 만에 지도를 받고 말았다.

“여기서 지도가 들어갑니다. 이렇게 되면, 급해질 수밖에 없죠?”

“그렇습니다. 유도 경기 4분은 선수들이 체감하는 게 다른데, 지고 있으면 엄청나게 빠르게 흘러갑니다. 벌써 40초나 지났거든요?”

“아 역시 경기도 마성준 선수! 이번엔 바로 공격적으로 나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조급함은 틈을 만들게 되고, 보통 준결승까지 올라온 선수들은 이런 틈을 놓치지 않…….”

홰액!

아니나 다를까 가슴 깃을 잡으러 뻗은 손을 그대로 잡아당긴 임효중이 등판을 이어 잡고 그대로 허벅다리를 걸었다. 마성준은 상체가 앞으로 쏠린 상태라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로 중심이 쏠렸지만, 다행히 등판만 잡고 건 기술이라 손이 자유로워 바닥을 짚고는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허벅다리! 마성준 선수 다행히 잘 방어해 냅니다! 아! 그런데 빠릅니다. 임효중 선수, 정말 전광석화 같은 공격이었습니다!”

“아쉽습니다. 소매나 가슴 깃만 잡았어도 아마 한판이 나왔을 겁니다.”

“그렇군요. 임효중 선수. 잘생긴 얼굴뿐만이 아니라 실력도 확실한 것 같습니다. 경기 속행됩니다!”

이미 지도를 받고, 유효기술을 받은 마성준은 그쳐를 했던 동안 자신의 코치가 악을 지르며 내던 코칭을 듣지 못했는지, 이번에도 빠르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어떻게든 상대의 깃을 잡으려고 하지만 임효중은 호락호락 깃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쳐낸 그는 빠르게 상대의 도복 깃을 선점했고, 툭툭 채면서 상대의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그의 특기인 허벅다리 걸기, 후리기는 상대의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켜 거는 기술이다.

그래서 이런 모션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모션이라서, 마성준은 어떻게든 중심을 뒤로 놓고 버텼다. 하지만 유도에는, 앞으로 넘기는 기술만 있는 게 아니었다.

허벅다리를 치는 것처럼 허리를 트는 모션이 들어가자, 마성준은 급하게 두 다리를 매트에 찍고는 상체를 뒤로 쭉 뺐다. 그러는 순간 벼락처럼 터진 안다리! 중심을 뒤로 놓고, 아주 정확한 순간에 터진 안다리가 마성준을 그냥 엉덩방아를 찍게 만들었다.

하아!

그 상태에서 기합을 지르며 상대를 밀자 힘없이 뒤로 밀려 등부터 매트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와자리! 임효중 선수 절반을 따냅니다!”

“아, 임효중 선수 영리하고, 여유가 있어요. 허벅다리가 특기인 걸 아는 마성준 선수가 중심을 뒤로 빼자, 그걸 허벅다리 모션에서 안다리로 정확히 연결 시키는 기술을 걸었어요. 이제 고1인 선수거든요? 그런데 정말 차분하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임효중 선수! 굳히기 들어갑니다. 상대 목과 가슴을 제대로 제압했어요! 발만 빼면 누르기 선언이 될 것…… 누르기! 임효중 선수! 가로누르기로 경기 이어갑니다.”

“아, 못 빠져나오겠어요. 제대로 눌렸습니다.”

“마성준 선수 힘을 써보지만 임효중 선수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아, 포기하는군요. 한판! 심판 한판 선언합니다!”

한판과 동시에 도복을 고치고 일어나는 순간, 쿠웅! 매트가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와 함께 옆 경기장에서, 기가 막힌 한판승이 나왔다.

* * *

승자와 패자.

대기실을 열고 들어오는 선수의 얼굴을 보면 승자와 패자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먼저 들어온 55 선수 두 명이 그랬다. 승자는 웃고, 패자는 울거나, 침울하거나, 굳는다.

경기 금곡고의 55체급 선수는 웃는 반면, 상대였던 제주 상고 선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붉어진 눈으로 들어와 자신의 짐을 챙기니 승자와 패자를 모를 수가 없었다. 결승에 간 선수는 2위 확정이다. 준결승이라 져도 3위 확정이지만,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하게…… 3등을 해도 웃을 수 없고, 2등을 해도 웃을 수 없는 나라였다.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이 한국에서는 그랬다.

유도도 그 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3위면 분명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할 성적임에도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입상한 순간을 즐기겠지만 적어도 패배 직후는 절대 즐기지 못하는 게 이 나라 운동선수들이었다. 지영은 이런 문화가.

‘없어져야 할 문화.’

사라져야 할 문화라고 생각했다.

1등 주의.

승자가 들어오자 고요하던 분위기는 깨졌다. 서로 축하하기 위한 말들이 오고 가기 때문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두 선수가 다시 들어섰다.

임효중과 마성준.

마성준의 얼굴에는 뺨 자국이 나 있었다.

울기 직전의 모습.

반대로 임효중은 그런 마성준의 뒤에 있었는데, 미안한 얼굴이었다.

선수들은 대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저런 침울한 얼굴에, 뺨이 맞은 것처럼 붉어질 이유는 시합에서 지자 코치나 감독, 아니면 부모가 뺨을 갈겼을 경우밖에는 사실 없기 때문이었다. 마성준이 짐을 챙겨 대기실을 나갔다. 누구도 위로하거나, 고생했다는 인사도 없었다.

‘저런 상태의 선수를 위로할 스킬을 가지기엔 아직 다들 너무 어리지.’

뺨까지 맞은 선수의 기분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위로를 알기엔 대기실의 선수들이 지극히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착착 시합은 계속 진행이 됐고, 어느새…… 지영의 차례가 됐다.

황금세대 전원이 결승에 진출하고, 이제 남은 건 지영 혼자.

대기실을 나와 대기석에 선 지영에게 이상준이 손을 내밀었다.

“잘해보자.”

“…… 네.”

잘해보자란 말의 의미를 알기에 지영은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73 준결승 A는 4분 경기 끝에 절반 하나로 서울 선수가 결승에 올라갔다. 그리고 선수 퇴장과 동시에, 매트 위로 올라선 지영은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빛냈다.

준결승.

한 판만 이기면 결승.

이미 3위 확정이지만, 지영은 아직 시합이 고팠다.

‘더, 더…….’

이 자리에 서 있기를 소망했다.

전의를 불태우는 이상준을 보며, 지영은 모든 감정을 죽이고는, 상대에 집중했다. 소란스럽던 경기장의 소음이 마치 소리를 줄인 스피커처럼 사라지고, 위잉, 위잉, 이명으로 남았다가 그마저도 사라졌을 때.

하지메!

시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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