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화
11화. 전설의 시작(1)
반칙은 아니다.
애초에 항복 신호인 탭을 치지도 못했으니까.
워낙에 창졸간 벌어진 일이라, 심판들이 모여 회의를 했지만 지영에게 반칙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합은 그대로 지영의 승리로 끝났다.
“미친놈. 시합 중에 좀 걷어찼다고 팔을 부수냐?”
그리고 지영도 그걸 알고 있었고, 나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타박하는 이성진과 친구들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시합 전에 트래쉬 토크와 도복 깃에 뭔가를 먹인 것까지 설명하자 모두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그거 완전 개X끼였네?”
“음……. 질이 안 좋은 선수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조용한 황석마저 동의했을 정도로, 지영에게 이유를 들은 황금세대는 전원 이해하고, 그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야, 그럼 팔은 그거, 노린 거지?”
이성진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기회가 와서 잡고 돌았는데, 그렇게 한 번에 부러질지는 몰랐지.”
“거짓말이네.”
“어?”
이성진이 대놓고 거짓말이라고 하자 지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들으면 알지. 구라인지 진짜인지. 우리가 몇 년을 함께했다고 생각하냐?”
“인정. 딱 봐도 뭐 대놓고 꺾더만.”
이성진에 이어 임효중까지 그렇게 나오자 지영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대놓고 꺾은 건 맞았다. 트래쉬 토크와 도복에 기름을 먹인 것, 거기에 지저분한 시합 운용까지. 놈은 지영의 심기를 제대로 자극했다.
게다가 회귀 전에는 제대로 쓰지 못했던 발목을 노리는 로우킥에, 이성이 거의 날아갈 뻔한 지영이었다.
하지만 꺾기는 완전히 고의는 아니었다.
지영이 굳히기를 이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아는지 심판이 그쳐도 안 했는데 자세를 풀고 일어나려 해서 그대로 잡고 돌아서, 꺾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딱 한 번 만에 팔이 부러질지는 지영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분간 팔을 못 쓰게 꺾을 생각이긴 했지만, 부러뜨릴 생각까지는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왕종형에게 별로 미안해하진 않았다. 기본적인 스포츠맨십조차 없는 선수에게는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지나간 일은 됐고, 자 이걸로 이제 전원 3위 확정인가?”
강한결이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해줬다.
“그렇지! 3등! 이제 30분 쉬고 준결 시작이지?”
“중계 준비가 끝나는 대로 시합 시작할 테니까, 일단 올라가서 적당히 배 좀 채우고 오자.”
“오케이!”
활발한 이성진이 먼저 짐을 챙겨 관중석으로 올라가는 길을 앞장섰다. 지영도 짐을 챙겨 가장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마주친 경남 선수들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영은 가볍게 무시했다.
‘왕종형의 성격을 저들이 모를 리가 없지.’
그런데도 저런 시선을 보내면서 두둔한다는 건, 지영이 생각하기에 좋은 동료애는 아니었다. 정말 동료고 친구면 반칙을 하지 못하게 사전에 잡아주는 게 맞다는 게 지영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선을 무시한 채 관중석으로 올라오자 황금세대의 가족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어이구, 다들 고생했다. 고생했어. 하하.”
“배고프지? 여기 김밥 좀 먹어!”
가족 전체가 달라붙어 황금세대를 케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 발 떨어져서 물끄러미 보던 지영은 정말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그리웠다. 이 모습, 지영의 기억 속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어제를 기점으로 황금세대는 산산이 부서졌고, 전원 유도를 은퇴하게 됐다. 한 명도 아닌 다섯 명이 전원 쓰러지면서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회귀 전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특히 벌써 의자에 앉아서 바나나와 김밥을 거의 흡입 중인 이성진이 뇌사에 빠지면서 가족 간에 만남도 아예 없었다. 그렇기에 이 그림이, 너무 그리웠다.
‘됐다…….’
이 정도만 해도 솔직히 회귀를 한 자신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부 해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유도? 유도. 그래, 자신의 삶에서 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유도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전체의 그림이었다.
다치지 않은 황금세대.
그런 황금세대의 가족들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은 지금 이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면 지영은 솔직히 운동은 안 해도 그만이었다.
“지영아. 너도 얼른 이것 좀 먹어.”
“네.”
임효중의 누나, 임효선이 지영에게 김밥과 어묵 국물, 그리고 바나나를 챙겨 가져줬다. 지영은 그걸 받아 자리에 앉아 바나나를 먼저 깠다.
감상은 이제 그만. 준결승을 위해 에너지를 보충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빠!”
“앗, 깜짝이야? 어, 승아?”
뒤에서 누가 왁! 하며 놀래줘서 봤더니 일주일 전에 봤던 천진난만, 귀여운 승아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오빠 유도 경기 보러 왔어여! 내일은 울 이모 경기 보러 갈 거야!”
“아 그래? 고맙네. 바나나 먹을래?”
“아니여! 오빠 먹어여! 저 벌써 김밥 하나 먹었어여!”
또박또박, 말도 참 잘한다.
첫날엔 꿈, 주마등인 줄 알아서 승아의 행동, 모습 자체에 그리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구한 아이. 꿈이 아니라, 이제는 다시 현실을 살아갈 아이. 승아는 회귀 전에도 죽지 않았다. 승아는 자신이 구했고, 승아의 어머니 선미 씨가 본능적으로 유모차를 미는 바람에 지영의 발목을 깔아뭉갠 차량은 선미 씨만 딱 덮쳤다. 그래서 그 사고는 선미 씨의 배 속의 아이만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 사고 이후, 지영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져 자신이 구한 승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결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 거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고, 뱃속의 동생까지 죽었다.
‘그리고 이렇게 똑똑하니 사고가 왜 났는지도 알게 되겠지.’
사고의 근본적인 시작인 음주 운전자이나, 만약 승아가 인형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갔으면 사고는 안 났을 수도 있었다. 지영도 그런 승아를 구하려다가 다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하지만 승아의 돌발행동으로, 각자의 보행에 제동이 걸려 사고는 일어났다고 봐야 했다.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승아의 삶도 결코 평안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지 말고 이거 하나 먹어.”
“네? 먹어도 돼여?”
“그럼. 자.”
지영이 바나나를 까서 건네주자 슬그머니 그 뒤에 있던 선미 씨와 할머니의 눈치를 봤다. 두 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얼른 받아서 감사합니다! 하고 바나나를 먹는 승아.
“누구야?”
“지영이 너 동생 있었어?”
그런 지영과 승아가 궁금했는지 고개를 내밀며 둘을 관찰하는 황금세대와 황금세대의 가족들. 지영은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그냥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궁금한 게 남은 것 같지만 그냥 수긍해 줬다. 시합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딱 눈에 보였다.
지영의 옆으로 넘어온 승아는 발로 흔들며 바나나를 냠냠, 참 귀엽게도 먹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확실히 사람을 구한 보람이 느껴졌다.
‘앞으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컸으면 좋겠네.’
저런 미소를 잃지 않고, 언제까지나 말이다.
그런 승아에게서 시선을 뗀 지영은 배를 가볍게 채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쉬는 시간은 30분. 남은 시간이 지나면 이제 준결승이 시작된다.
잠시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지영.
그런 지영에게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심지어 지영의 어머니 이선옥도 아들의 평정심을 깨지 않았다.
-잠시 뒤, 준결승 결승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출전 선수들은 지금 대기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경기 진행석에서 안내 멘트를 돌렸고, 그와 동시에 지영은 눈을 떴다. 눈을 뜬 지영의 눈에 다시 자신의 짐을 챙기는 황금세대가 보였다. 지영도 그들처럼 다시 짐을 챙겼다.
“오빠 파이팅!”
“응, 파이팅.”
아자!
작고 조그마한 주먹으로 파이팅을 외치는 승아를 향해 잔잔히 웃어준 지영은 바로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역시 확연히 달랐다. 16강, 8강을 통해 메달이 확정된 선수들. 각 체급을 대표하는 선수들로만 있었고 이들은 전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물론 본래 자신보다 잘하는 선수를 우연찮게 이겨서 4강에 든 선수들도 있지만 그런 선수는 전 체급을 뒤져도 한두 명 정도가 전부였다. 그 외에는 전원, 올해 전국대회에서 입상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학교, 도를 대표할 실력이 충분한 강자들.
이런 강자들만 모여 있다가 보니 대기실의 분위기는 진심, 끝내줬다.
이는 황금세대도 마찬가지였다.
16, 8강전은 웃고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부터 진짜 경기의 시작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각자 방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합을 준비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는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 대기실 한쪽에 매트를 깔고 앉은 지영은 다시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머리로는 준결승 상대, 대전의 이상준을 떠올렸다.
이제 고2.
중학교 때도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길쭉한 팔다리로 상대를 억압하는 스타일의 유도를 구사했다. 팔다리가 길다는 건 유도에서는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었다. 특히 잡기 싸움은, 팔이 긴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왜냐.
리치 차이가 나서 상대는 잡는데, 나는 못 잡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몸 쓰기까지 들어가면 반칙을 먹이기 참 좋다.
‘이번엔 잡기 싸움을 좀 해야겠네.’
일단 먼저 잡히면 상당히 괴로워진다.
유도는 유리한 포지션을 내주면 아차 하는 순간 한판이 날아가는 경기였다. 복싱처럼 다운을 당해 다시 일어나고 하는 건 없었다. 심판의 잇폰 판정이 떨어지면 그냥 그걸로 시합은 끝. 정말 순간적인 방심 한 번이 시합의 승패를 가른다.
이상준과의 상대 전적은 1전 1승이 끝이다.
하지만 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붙은 거라서, 지금은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긴 어려웠다. 이런 이상준의 약점은 기술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거다. 압도적인 신장과 체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마초형 스타일이니까, 일단은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밀리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지영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사이, 진행요원이 와 임효중을 불러갔다.
평소라면 파이팅! 하고 하이파이브를 했을 테지만 이번엔 조용했다. 심지어 강한결도 스스로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임효중과 함께 불려간 네 명의 학교나 지역 선수들도 다들 조용했다.
비장한 얼굴로 나간 네 사람.
그리고 비슷한 표정으로 대기 중인 선수들.
‘좋네.’
그런 공간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지영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표정이 변하자, 기세마저 변했다.
평소의 이성진이라면 눈을 반짝였을, 그날이 온 모습이지만 이런 변화를 알아챈 건 지영을 호위하듯 퍼져서 대기 중인 황금세대뿐이었다.
째깍, 째깍.
대기실에 벽에 걸려 있던 초침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상태. TV도 선수의 긴장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꺼놨기 때문에 대기실은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고요함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갑자기, 대기실 밖에서 쿵! 하는 소리에 이어 우와……!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 소리에 모두가 직감했다.
경기는 시작됐고, 누군가가 상대를 한 판으로 내던졌음을.
그런 함성에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저 함성의 주인공이 자신의 팀원이기를,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