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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화 (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화

4화. 회귀(3)

되돌아왔다.

이건 주마등도 아니고, 꿈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있다고?”

잠에서 깨 낡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던 지영은 하루가 완전히 지났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는 건,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에 엄청난 무게감을 실어줬다. 짝! 소리 나게 볼을 쳐봐도 악! 소리가 나게 아팠다.

볼이 얼얼한 게, 이 통증은 아무리 봐도 꿈에서 느껴질 통증이 아니었다.

“하, 하하…….”

어이가 없는 웃음을 터뜨린 지영은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다. 체중감량 때문에 수척하긴 하지만, 분명 고1 때 자신의 얼굴이었다. 체중감량으로 인해 너무 진하게 피는 쌍꺼풀과 날카로운 눈빛, 이건 그 시절의 자신이 맞았다.

“돌아왔어, 이건 정말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다.

임효중과 이성진 좋아하는 장르 소설로 따지면, 이건 회귀? 그거였다. 고1이고, 사고 전으로 돌아왔다.

하하. 하하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미치겠다, 이게 진짜라면…….”

신이,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거나 마찬가지였다.

지영의 인생은, 우울했다.

황금세대의 주역이라 불리며 인기와 영광을 한 몸에 받던 유망주에서 사고로 나락까지 떨어졌고, 워낙에 감수성이 풍부했던 지영은 우울함을 끝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반병신이 된 몸. 조금만 걸어도 아픈 발목과 무릎, 무거운 걸 들 엄두도 못 내던 어깨. 취직은 고사하고 먹고 살길조차 막막했었던 그때 그 시절은, 정말 새까만 암흑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재단 이사장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밥벌이도 못 했을 거야.”

지영이 다녔던 사학재단 연희는 충북 전역에 초중고를 둔 재단이었다.

청주의 연희초, 중고, 대학교가 있고.

충주에는 연화초, 중고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충북 전역에 열 개가 넘는 학교를 가진 사학재단 연희의 이사장은 지영이 당한 사고를 안타까워했고, 나중에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 지영에게 코치라는 길을 열어줬다.

정확하게 정식 유도부의 코치는 아니었고, 방과 후 특별활동의 강사가 진짜 신분이었지만 그래도 한 달에 100만 원이나 챙겨줘서, 씀씀이가 크지 않은 지영은 어머니에게 크게 부담을 안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지영은 마지막 순간에 결국 유도계를 등지려고 했었다.

뇌사에 빠졌다가, 장기를 기증하고 먼저 떠난 이성진부터 시작해 유도라는 게, 도무지 낫지 않는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경기장에 갈 때면 그런 트라우마가 심해져 공황장애까지 올 정도로 지영은 힘들어했다.

그런데 돌아왔다.

사고를 당하기 전인, 아니, 사고마저 넘기고 난 고1의 그 날로.

“와…….”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신이시여…….”

평소 신을 원망하기만 했지만, 이번엔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기도를 올렸다. 그런 지영을 다시금 현실로 이끈 건, 밖에서 들린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들 깼어?”

“네? 네, 지금 나가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자 어머니가 정말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영을 바라봤다.

“아들 어디 아파? 몸 안 좋아?”

“아뇨? 괜찮은데 왜요?”

오히려 싱글벙글, 너무 좋아서 지영은 환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어머니의 슬픈 미소를 이제 더는 안 봐도 돼.’

아버지를 생각하실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 적어도 자신 때문에 슬퍼하는 어머니는 안 봐도 되었다. 그것도 너무 좋았다. 한평생 자신의 뒷바라지만 하며 꾸미지도 못하고, 배달에 억척스러운 아줌마들 상대하면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이제는 자신이 책임질 때였다.

하지만 이어진 어머니의 말은, 그런 지영의 다짐을 일단 뒤로 빵 걷어차 버렸다.

“어제저녁 많이 먹어서. 난 오늘 새벽에 뛰러 갈 줄 알았지.”

“……아.”

아아…….

벼락이 쾅! 지영의 정수리로 내리 떨어졌다.

지영은 급하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체중계에 올라갔다.

“아…… 조졌다.”

77, 5.

체중계가 보여준 지영의 체중이었다.

그가 뛰는 체급이 73이니까 시합을 6일 남겨둔 지금, 무려 4키로가 넘게 오버 된 상태였다. 잔뜩 일그러진 지영의 뇌리로 어제 미친 듯이 구워 먹었던 삼겹살과 저녁에 먹은 한우가 떠올랐다.

“아 미친놈…….”

꿈인 줄 알았다.

주마등인 줄 알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폭식했다.

그리고 그 결과 4㎏이 넘게 늘어나 있었다.

멘탈이 바사삭,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지영은 급히 옷장을 열어 운동복과 땀복을 꺼냈다. 이미 감량할 대로 한 몸이라, 다시 수분을 빼내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전국체전…….”

앞으로의 인생에, 변곡점이 될 대회.

지영은 그런 운명을 느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자신의 운명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걸. 그렇기에 절대 체중 오버로, 계체에서 탈락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옷을 껴입은 지영은 곧장 집을 나서서 근처 초등학교로 갔고, 몸을 풀고 천천히 러닝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지영은 감격했다.

‘아프지 않다…….’

그날 이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던 발목도, 무릎도, 그리고 어깨도…… 전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에 주말에 나와 놀던 초딩들이랑 애들과 나와 있던 부부가 깜짝 놀라서 수군거렸지만 지영의 웃음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살아 있다.

지영은 그날의 사고 이후로 지금 너무나 오랜만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 *

환생.

아니, 회귀?

지영은 청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자신의 상태를 검색해 봤고,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회귀를 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솔직히 말해 아직도 얼떨떨했다.

아니, 믿어지지도 않았다.

1시간가량 달리며 땀을 빼는 와중에도 지영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은 물론이고, 주변의 전경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이게 현실이라고 제대로 일깨워주었다.

‘돌아왔다. 과거로…… 회귀한 거야.’

그것도 고1, 그 사고 직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사고를 넘겼고, 부상으로 폐인이 되었던 유도 천재 강지영은 이제 없었다. 남은 건 장래가 유망한 유도 천재 강지영만 있었다.

‘하, 하하…….’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옆자리에 사람이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푸흐흐! 애늙은이 같은 실소를 흘려버렸을지도 몰랐다. 현실을 점점 자각하자, 몸에 짜르르한 전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건 청주 북부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거의 절정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연희고로 이동했다.

거대한 부지 내에 같이 붙어 있는 연희중고. 지영은 택시에서 연희중 교문을 보자마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걷는 것조차 불편하던 그가 멀쩡한 몸으로, 시간을 거슬러와 다시 이 교문에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왜냐고?

이 시간엔 이미 수술대에 누워 한창 수술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술대에 눕지도 않았고, 멀쩡한 몸으로 다시 모교를 찾아왔다.

“뭐 하냐, 멍하니 서서?”

흠칫.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영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뭐 하냐고, 안 들어가고.”

“…….”

강한결이다.

연희고 유도부 주장이고, -90㎏ 체급의 패자.

고1에 올라와 출전했던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미 차세대 국가대표로 평가받는 황금세대의 드러난 리더였다.

“한결아…….”

“뭐야, 왜 이래. 그리고 눈빛 뭔데?”

그런 강한결은 사고 이후, 종적을 감췄다.

발목과 손목이 제대로 고장 난 강한결은 몇 년이 지나 연락이 됐는데, 그 연락은 독일에서 온 연락이었다. 그곳에서 수술을 받고, 재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강한결은 유도에 대한 꿈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부모님의 가업을 이었다.

그나마 황금세대 중에서도 가장 부상이 경미했던 게 강한결이었다.

하지만 부상의 여파로 운동을 못 해 듬직하고 우람했던 강한결은 점점 쇠약해졌고, 스물 후반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는 체형이 되어버렸다.

그런 강한결이 너무나 건강한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 지영은 순간 그런 강한결을 끌어안을 뻔했다.

하지만 겨우겨우 참고, 미친놈 보듯 바라본 뒤 갈 길을 가는 그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운동장이다. 돈 많은 사립재단답게, 운동장엔 당연히 트랙이 깔려 있었고, 잔디도 인공이 아닌 천연잔디였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훈련하며 체력을 키우고, 그 체력을 바탕으로 황금세대는 정말로 빛났었다.

강한결을 따라 도착한 숙소는 역시나 어색했다. 분명 기억에 있는 숙소의 모습이지만, 이곳을 안 쓴 지는 언 10년이 다 되어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2층 주택 형태의 숙소. 1층은 코치의 방과 주장 강한결의 방이 있었고, 2층을 남은 셋이 사용했다.

“먼저 올라가. 난 코치님 좀 잠깐 보고 올라갈게.”

“……그래.”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간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깔끔한 현관에는, 아직 아무도 안 왔는지 신발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미닫이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갔는데, 보일러로 인한 온기는 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지영은 기억을 따라가 일단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충주 집보다 조금 넓은 방 하나. 작은 방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방의 모습에 지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회귀 전에는 이 짐을 어머니가 직접 가서 정리해 오셨다.

그리고 그건 사실 황금세대 전원이 마찬가지였다.

동생, 형, 누나, 엄마나 아빠 등이 와서 이 숙소를 비웠다. 황금세대의 몰락은 숙소에서 이별도 함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이 짐을 빼지 않아도 돼.”

자신이 돌아왔으니, 사고는 없을 거다.

하, 하하.

침대에 앉은 지영은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깃든 웃음을 흘렸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웃던 지영은 하나 있는 장을 열어봤다. 그러자 그 안에 곱게 개어져 있는 도복 두 벌.

각기 청색과 흰색이고, 등에 ‘충북’ 마크를 박아 넣은 시합용 도복이었다.

이 도복은 회귀 전, 지영의 집에도 있었다. 남는 도복은 다 버렸지만 미련과 추억 때문에 딱 이 두 벌만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두 도복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주신 도복이었고, 지영은 이걸 길을 들인 다음엔 딱 시합 때만 입었다. 그래서 사고 후 운동을 그만두고도 이 도복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선물임과 동시에, 유품이었으니까.’

결국엔 가치가 퇴색되고, 지영을 때때로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았다.

덜컹.

그렇게 지영이 추억에 빠져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밖으로 나간 지영은 남은 황금세대와 마주했다.

사고 이후 가장 자신과 연락을 잘했던 허벅다리의 귀재 임효중.

운동을 그만둔 뒤로는 학업에 집중해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체육 교사가 된 황석.

그리고…… 뇌사에 빠졌다가,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이성진까지.

“어, 일찍 왔네?”

그중 이성진이 자신을 보며 활짝 웃으며 말하는 순간, 지영은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몰락했던 황금세대의 미래가 변하는 순간이자, 유도의 신(神)이라 불리게 될 강지영이 평생 놀림감을 획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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