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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화 (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화

3화. 회귀(2)

보통, 꿈에서 잠들었다가 다시 깨는 경우가 있던가?

그것도 이상하게 몸이 엄청 개운한 채로?

어느새 뜨끈해진 방바닥의 온기까지 느껴져서 나른한 정신임에도, 눈을 뜨자마자 생각이 나는 건 바로 이런 의문들이었다.

게다가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고소한 냄새가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자, 따시고 편한 장사 복장 그대로 저녁을 준비 중이신 어머니가 보였다.

“아들 깼어? 너무 곤히 자서 안 깨우고 있었어.”

“…….”

지영은 가만히 다가가 어머니를 뒤에서부터 안았다.

그러자 나물을 무치다 말고 움찔하신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들 왜 그래. 살 빼는 거 힘들어?”

“…….”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이제 어머니를 못 보는 게 힘들어요…….

저 이제, 가야 하거든요.

지영은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게 꿈이라는 걸 알지만 아버지에 이어 자신까지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었기 때문에,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얘가 생전 안 하던 어리광을 부리네. 아휴, 아들 힘들었구나, 정말.”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에구구, 얼른 가서 앉아. 밥 다 됐어.”

“……네.”

그래, 마지막이라고 밥 한 끼는 먹게 해주는구나.

그건 정말 고마운 지영이었다.

조금 더 안고 있고 싶었지만 지영은 손을 풀고 몇 년이나 쓰는 상에 앉았다. 앉아서 기다리자 간이 거의 안 된 반찬들이 상에 채워졌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이 밥상에 못 앉았었지…….’

교통사고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 갔으니까. 맑은 콩나물국이랑 잡곡밥을 퍼서 가져온 어머니는 지영을 향해 밥을 주다 말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아들, 저녁 먹어도 돼? 집에 오니까 고기 냄새 나던데. 아까 정육점 황 씨한테 너 고기 두 근이나 사 갔다고 듣기도 했어. 이거 먹어도 되니? 시합 일주일도 안 남았잖아.”

“네, 괜찮아요.”

꿈이니까요.

지영이 그렇게 답했는데도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떨치지를 못하셨다. 하지만 연거푸 괜찮다고 하자 마지 못해 앞에 앉으셔서 수저를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저녁을 먹으려는데,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제가 나가볼게요.”

“아니야. 먼저 먹어, 엄마가 가볼게. 앞집 수찬 엄마 같으니.”

“네.”

어머니는 일어나서 현관으로 가셨고, 잠시 뒤 어머, 누구세요? 하고 놀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수저로 국을 뜨다 말고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봤다. 누구시지?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가자, 예상치도 못한 사람들이 보였다.

“어! 지영 오빠다!”

“승아?”

가장 먼저 꿈의 초반에 지영이 구한 승아가 보였고, 바로 뒤에 지영을 감사함이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는 승아의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승아 어머니와 판박이처럼 닮은, 어머니보다 연세가 좀 더 여인이 서 계셨다.

“지영아, 이분들 너 찾아왔다고 하시는데?”

“아, 그…….”

뭐지.

꿈이 이렇게도 전개가 되나?

‘잠깐만…….’

뭔가 이상하긴 하다.

모든 게 너무 현실적인 게, 너무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지영은 사고의 순간을 기억했다. 그 기억이 너무나 또렷해서, 자신이 죽었다고 확신했다.

‘그래, 이런 꿈도 있는 거겠지. 사람을 두 번이나 구하고 죽었으니 이 정도는 해주나 보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수긍하곤,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아까 구해주셨던 승아 엄마예요. 여기는 저희 친정엄마시고…… 얘기 듣고 저희 엄마가 너무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수소문해서 찾아왔어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잠시 들어오시겠어요?”

“네, 그럼…… 실례합니다.”

지영이 세 사람을 안으로 들이자 아직 어안이 벙벙한지 어머니는 어찌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얼른 냉장고에서 지영이 즐겨 마시던 바나나 우유 하나와 보리차 두 잔을 따라왔다.

“식사 중이셨는데, 저희가 방해했나 봐요.”

복장이 단정하신 승아의 할머니가 안쪽을 잠시 보곤 한 말에 어머니는 좀 부끄러워하셨고, 지영은 그냥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녁 시간이니까요. 앉으시죠?”

“네. 그전에…… 지영 군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고 싶어요. 저희 선미, 그리고 승아랑 승주, 선미 배 속에 있는 승현이까지 구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하는 인사에 지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런 대접을 안 받아본 것도 아니었다.

지영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키워냈던 박한솔의 부모님도 지영에게는 언제나 이렇게 저자세셨다. 나이가 한참 어리지만 지영의 지도로 고작 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그리고 소년체전 우승까지 일궈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닙니다. 우연찮게 그렇게 됐을 뿐입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제가 아니었어도 큰 사고는 안 났을 거예요.”

실제로는 대형 사고였지만……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승아 할머니는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녁에 뉴스로 약국 CCTV가 나왔는데,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뉴스?

승아의 할머니 말에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승아의 엄마가 얼른 핸드폰으로 뉴스를 재생시켜서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오늘 오후 충주 부민약국 삼거리서 음주운전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충북 뉴스다.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시작된 뉴스는 블랙박스 영상, 그리고 주변 가게 CCTV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뉴스 중간쯤에 화면에 변하면서, 지영이 힐끔 과속하는 트럭을 발견하곤 길을 건너려던 승아와 승아 엄마를 잡아채는 장면이 아주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이 사고를 막은 학생은, 청주 연희고에 1학년에 재학 중인 강지영 학생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강지영 학생은…….

이어서 자신에 대한 정보가 또 줄줄 흘러나왔다.

아니, 이게 뭐지?

뉴스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소체 석권, 그리고 중학교 때 2년 소체 석권으로 지방 뉴스에는 제법 많이 나갔던 지영이었다. 하지만 생에 마지막 꿈에서 유도 때문이 아닌 좋은 일로 뉴스에 나가자 기분이 묘해졌다. 가 다시 뚝 떨어졌다.

‘이제 와 뉴스에 나가면 뭐하나.’

부질없다…….

“어머어머, 지영이 너 왜 얘기 안 했어?”

“……바로 잠들어서요.”

“그래? 어이구, 황 씨 인터뷰도 했네. 그런데 나한테는 아까 한마디도 안 하고, 사람 참. 그래도 지영아. 잘했다. 잘했어. 장한 일 했다.”

“…….”

어머니의 칭찬에 지영은 그냥 덤덤했다.

그런 지영을 차분히 보던 승아의 할머니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해요, 지영 군.”

“……네.”

이럴 땐 그냥 네, 하는 게 상책이었다.

지영이 인사하자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승아가 쪼르르 오더니 지영의 무릎 위에 폴싹 앉았다. 그런 모습에 승아 어머니와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어머어머, 엄마 재 좀 봐. 아빠랑 할아버지한테도 잘 안 저러는 애가.”

“헤헤, 지영 오빠 좋아.”

“어머, 진짜?”

“응! 우리 반 지영이가 더 예쁜데! 그래도 지영 오빠가 더 좋아!”

“호호.”

아하하…….

승아의 돌발행동에 다들 기분 좋게 웃었지만 지영은 오히려 조금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승아를 밀어내거나 그러진 않았다. 아무리 아이에 대한 면역이 없는 지영이라고 해도, 승아를 밀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참, 이거, 지영 군에게 너무 고마워서 좀 가져왔어요. 한우예요.”

챙겨 오신 보자기를 쭉 미는데, 어머니는 그걸 받을까 말까 하다가,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는지라 감사합니다. 하고는 받아서 옆에 뒀다. 그러곤 죄송한 얼굴로 지영을 한 번 보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지영이 먹이면 좋은데 얘가 일주일 뒤에 시합이 있어요.”

“시합이요. 아, 지영 군이 유도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그런데 일주일 뒤에 시합이면, 체전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전국체전에 나가서, 지금도 감량 중이라…… 고기는 많이 못 먹일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어머님 많이 드세요. 제가 작은 고깃집을 하고 있어서, 나중에 지영 군 시합 끝나면 한 번 더 가져다드릴게요.”

“아뇨아뇨, 그러실 필요까지는…… 이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걸요.”

“그래도 예의가 그게 아니죠. 아니다. 시합이 끝나면 제가 저희 가게로 모실 테니까 사양 말고 꼭 와주세요.”

“그게…….”

지영아?

어머니가 거절하지 못하시고 의견을 물어와서 지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그래, 호호, 네, 초대해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후우,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네요. 호호.”

승아의 할머니는, 예전에는 저러지 않으셨다.

그때는 감사하다는 연락조차 없었다. 지영은 그걸 서운해하진 않았고, 이해도 했다.

‘결국엔 승아 엄마는 죽었으니까.’

지영의 발목을 밟고 간 차가 그대로 승아 엄마를 덮쳤고, 하필이면…… 그때 승아 어머니는 놀라서 넘어진 상태셨다. 결과는…… 끔찍했다. 사고 직후 의식을 잃은 지영은 그 장면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러니 감사 인사를 할 겨를조차 없었겠지.’

승아 엄마.

그리고 벌써 승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 속의 아이도 같이 죽었으니까. 충격이 아마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거다. 그래서 지금 이 인사를 지영은 원망하지 않았다.

“우리 이모도 시합 나가는데!”

그때 승아가 갑자기 외친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우리 이모도 시합 나가여!”

“아아, 선미 동생 얘기예요. 제 둘째 딸이 운동하거든요. 충북체고에서.”

“어머, 그래요?”

“네, 태권도 하고 있어요. 지영 군보다 한 살 많은데, 이번에 선발되어서 체전에 나가게 되었어요.”

아아.

나이 차이가 제법 있는 동생 같았다.

승아 엄마의 나이는 30대 초중반 같지만, 늦둥이 동생이 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좋은 성적 이뤘으면 좋겠어요. 호호.”

“네, 열심히 하니까 좋은 결과 있겠죠. 그보다…… 지영 군은 운동을 정말 잘하나 보네요?”

승아 할머니가 거실 벽을 둘러보며 한 말에, 어머니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영이 시합에 나가서 따온 상장과 메달이 벽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지 먼지 한 톨 묻어 있는 경우가 없었다.

물론, 원래는 오늘 사고 때 지영이 크게 다치며 유도를 그만두게 되고, 상장을 볼 때마다 우울해하자 어머니는 저 액자를 모두 빼서 장안에 넣어놨었다.

“네, 자랑 같지만, 그래도 쟤 체급에서는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아이예요.”

“자랑스러운 아들을 두셨네요. 호호.”

“네, 제가 제대로 지원을 못 해줘도 알아서 잘해주니,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요.”

“우리 윤슬이도 지영 군의 반만 따라 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워낙 시합 복이 없는 아이라…… 호호.”

“좋은 결과 있으실 거예요.”

서로 오고 가는 덕담.

그사이 승아는 좀 따분했는지 앞에 뒀던 바나나 우유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짧은 손이 닿지 않아 지영이 직접 빨대를 꽂아주자, 맛있게 쪽쪽 잘도 마셨다.

“승아야, 그만 가자.”

“힝, 벌써 가?”

“가야지. 가서 저녁도 먹어야 하고.”

“넹…….”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승아는 다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다음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그럼, 시합 끝나고 제가 연락드릴게요. 부디 거절치 마시고 찾아주세요.”

“네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식사 중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예의를 잊지 않고 떠나는 승아 할머니.

“오빠 안녕! 다음에 또 올게여!”

“응. 그래. 승아 잘 가.”

“넹!”

세 사람이 그렇게 떠나가자, 어머니는 그제야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휴, 이게 다 뭔 일이라니.”

“저도 수소문해서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참 경우를 아는 사람들이다. 배고프지? 얼른 밥 먹자. 엄마가 밥이랑 국 바꿔줄게.”

“아니요. 그냥 먹어요.”

“그래?”

“네, 그리고 한우 그거 조금만 구워 먹어요.”

“그럴까?”

어머니는 한우를 포장한 보자기를 풀어보시곤, 어마어마한 마블링을 자랑하는 고기에 어머어머, 감탄을 연발하셨다. 그리고 지영이 보기에도 고기는 진짜 죽여주는 것 같았다. 딱 봐도 최고급 한우.

마음 같아서는 오늘 다 구워 먹고 싶지만…… 아까부터 생긴 묘한 위화감이 그걸 방해했다.

‘승아가 다리에 앉았을 때…… 분명 저렸어.’

7살 여아라지만, 그래도 체중이 적지 않을 거다. 그런 아이가 앉아 있었으니 당연히 피가 안 통해서 저릴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 당연한 감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주마등이 원래 이렇게 리얼한 건가?’

아니면…….

꼴깍.

이쯤 되는 생겨나는 가정에 지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정신이 없는 상태서 저녁을 먹고,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지영은 더욱 확실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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