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화
1화. 프롤로그
2031년.
전국 소년체전.
포항 체육관에서 열린 초, 중부 유도 경기 첫날은 이제 결승전만 남겨두고 있었다. 충주 연화초의 코치 강지영은, 결승전을 앞두고 긴장한 제자 박한솔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한솔아. 긴장돼?”
“네? 아, 네. 헤헤.”
바보처럼 웃는 박한솔이지만 인사를 하고, 하지메를 심판이 외치면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변하는 제자였다.
“지금까지 잘했잖아. 너 국가대표 되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럼 지금 이 경기는 네가 앞으로 설 수많은 결승전 중에 하나일 뿐이야. 결승전에 설 때마다 이렇게 긴장할 거야?”
“아니요!”
“그래. 긴장할 것 없어. 저기 서울 김종찬은 저번 대회에서도 이겼었잖아.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가진 실력만 펼치자. 그럼 자연스럽게 너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을 거야.”
“진짜요?”
“그럼!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없어요!”
제자의 대답에 지영은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결승을 앞두고 긴장한 게, 꼭 과거의 자신 같아서 웃음이 났다. 그래서 그 웃음은 한없이 슬펐지만 아직 어리고, 긴장한 박한솔은 스승의 그런 눈빛을 읽지 못했다.
-잠시 뒤, 초등부 –53㎏ 결승전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서울 김종찬 청색 도복, 충북 박한솔 백색 도복, 5분 뒤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두 번 이어서 나오고, 박한솔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대기장으로 이동했다. 지영은 그런 제자를 보다가, 씁쓸한 눈빛으로 유도장을 바라봤다.
강지영.
십여 년 전 유도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불운의 황금세대 중, 가장 촉망받던 유망주.
한국 유도계의 황금시대를 열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아쉽게도 불운한 사고로 인해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영이 유도를 접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그냥 건강 목적으로 다녔던 체육관에서 운명적으로 황금세대의 주인공 넷을 만났고, 그 친구들과 함께 시, 도 대회를 나가면서 지영의 유도선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영을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은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4학년 때 시작했는데 5학년 때는 시, 도 대회를 쓸었고, 6학년 때는 전국소체를 다섯이서 전부 석권했다. 신기한 건 그 모두가 한 학교 학생들이었고, 그런 소식을 들은 이사장이 중학교에 유도부를 신설하겠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다섯은 그렇게 같은 재단의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다시 전국을 쓸었다.
중2부터 지영과 친구들은 자신의 체급을 모조리 석권했고, 그 실력으로 춘, 추계는 물론 대통령 배, 회장기 등 모든 단체전까지 쓸었다. 이른바, 황금세대라는 별칭은 그때 생겼다. 그렇게 화려한 중학교 시절을 보낸 지영과 친구들은 다시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고1 말, 황금세대라는 말 앞에 불운이라는 말이 붙었다.
시작은 지영이었다.
-잠시 뒤 남초부 53㎏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청색 도복 서울 도곡초 김종찬. 백색 도복 충북 연화초 박한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경기 진행석에서 울린 안내에 지영은 정신을 차렸다.
옛 과거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처럼 유도국가대표를 꿈꾸는 제자의 시합 코치를 위해 코치석으로 향하는 지영의 걸음걸이는 매우 불편했다. 절룩, 절룩. 사고로 고장 나다 못해 박살 난 발목과 무릎 때문이었다.
불편한 걸음걸이에 주변의 시선이 날아들었지만 지영은 개의치 않고 걸어 철제의자에 앉았다.
“한솔!”
“…….”
다부진 표정으로 변한 박한솔이 그의 부름에 돌아봤다.
“알지? 져도 괜찮으니까 모든 실력을 다하는 거!”
“네!”
“그래, 즐겁게 게임 하고 나오자! 파이팅!”
“파이팅!”
두 사제가 파이팅을 하자마자 심판이 들어와 인사를 하곤 자신의 자리에 잡았다.
상호 간에 예의, 다시 인사. 하지메!
악!
결승전이 시작됐다.
“와자리!”
시작하자마자 박한솔이 절반을 땄다. 김종찬이 급하게 업어치기를 시도하는 걸 뒤로 되치기를 한 거다. 굳히기는 별 소득 없이 그쳐로 끝났다. 심판이 맛테! 하자 도복을 고치며 일어나는 박한솔이 지영을 바라봤다.
“한솔아! 좋아! 차분하게! 잡기 싸움 충분히 하고! 왼 소매 주지 마! 안 뒤축이랑 업어치기 조심하고!”
“네!”
하지메!
다시 시작된 경기.
김종찬은 더욱 공세로 나왔다.
하지만 지영에게 배워, 그의 방어유도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박한솔은 시종일관 여유롭게 시합을 풀어나갔다.
유도 경기는 공격적인 스포츠. 조금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도 곧장 지도가 들어가지만, 지영은 방어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 천재였다.
그리고 박한솔도 그런 지영의 경기 운용을 배워 적절한 순간에 제대로 기술을 걸어 반칙을 받을 순간을 벗어났다.
방어유도.
요즘 시대에선 제대로 구사조차 힘든 옛날 유도. 아니, 구사하는 선수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은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체력, 밸런스, 기술과 경기 운용이 추가되면 가히 막강한 스타일로 변모한다. 이런 유도의 장점은 상대를 조급하게 만드는 거고, 결국 기회가 왔다.
“지금! 그렇지! 와! 한판! 한판!”
잇폰!
심판이 손을 번쩍 치켜들며, 한판을 외쳤다.
“우와! 우와아!”
남은 시간 1분.
조급한 김종찬의 기술을 받아 빗당겨치기로 박한솔이 한판을 따냈다. 기회를 노리다가 딱 한 번 작정하고 들어간 기술로 한판을 따낸 거다.
“우와!”
“와아아!”
“한솔아! 한솔이 장하다!”
관중석에서 교장, 교감, 한솔이 부모님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트에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박한솔을 보며 지영도 같이 웃었다. 심판의 승패 판정이 내려지고, 후다닥 악수하고 마지막 인사를 한 박한솔이 달려와 지영의 품으로 안겼다.
“코치님! 이겼어요!”
“하하, 잘했어. 진짜 잘했어, 한솔아. 하하.”
그렇게 대답하며 지영은 뒤로 주춤주춤 위태롭게 물러났다.
발목이 안 좋으니 힘 좋은 박한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거다.
심지어 욱신거리기도 했지만 그런 내색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 제자의 성장과 우승을 순수하게 기뻐했다.
시상대에 서고, 함께 사진을 찍고, 지영은 교장, 교감, 체육부장, 한솔의 부모님과 함께 다시 충주로 넘어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함께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하고 헤어졌다. 절룩절룩, 집으로 가는 길.
지영은 걷다가 지쳐 근처 공원을 찾았다.
술기운 때문에 그런지 너무 걷기 힘들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타이밍 좋게 전화가 왔다.
불운의 황금세대 중 한 명, 임효중이었다. 지영이 73체급을 담당했다면 임효중은 지영의 체급 바로 위, 마이너스 81체급의 왕이었다.
“어, 왜.”
-한솔이 1등 했다며?
“그걸 이제 알았냐?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네가 말을 해줘야 알지! 연락 없어서 한솔이한테 연락해서 지금 겨우 알았다!
“아, 내가 안 올렸냐? 쏘리.”
-아오, 하여간 이런 건 더럽게 신경 안 써요. 야, 축하한다. 그래도 그만두기 전에 1등 선수 하나 만들었네.
“그러게.”
지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자연스럽게 지었다. 1등 선수. 찬란한 영광. 황금세대.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이었다. 고1, 17살 사고로부터 10년이나 지났다. 지금 자신은 이제 스물일곱 살인데도 그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지영을 괴롭히고 있었다.
-진짜 그만둘 거냐?
“응. 이대로 더 애들 가르치다간 조만간 큰 사고 날 것 같아서.”
하고 싶어진다, 유도가.
절대 하면 안 되는데도.
절대 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 네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동안 수고했다. 우리 몫까지.
“그래.”
-아버지랑 성진이 기일은 어쩔 거냐?
“가야지. 너도 시간 좀 내.”
-일단 회사에 말해는 볼게.
“응.”
-쉬어라.
“어, 너도.”
전화를 끊은 지영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결승.
금메달.
그리고 유도.
지영이 잊고 싶은 것들 중 거의 전부였다.
불운의 황금세대는…… 전부 운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불운의 스타트를 끊은 지영은 전국체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엄마랑 같이 길을 건너다 인형을 놓쳐 손을 놓고 되돌아가려는 소녀를 음주운전 차량에게 구하다가 어깨 관절, 무릎뼈가 조각났고 뒤따르던 차량이 지영의 발목을 밟고 가며 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아이는 구했지만 그 순간 지영의 유도선수 생명은 끝장났다.
두 번째의 불운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지영의 병문안을 왔다가 전국체전을 떠난 팀 버스가 언덕에서 굴러떨어졌고, 초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그 추락사고로 황금세대 전원이 큰 부상을 당했다.
주장 강한결이 그나마 제일 멀쩡했는데, 그도 결국 재활에 성공하진 못했다. 좀 전에 통화한 임효중도 손목, 어깨, 발목 부상을 당했고, -100을 뛰던 황석은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가장 심하게 다친 이성진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결국은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러곤 장기를 기증하고, 생을 마감했다.
황금세대의 몰락.
워낙에 다들 잘생긴 터라 청주 연희중, 연희고 F5로도 불리던 황금세대는 그렇게 몰락했다.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감수성 풍부한 지영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특히 밤하늘을 볼 때면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고, 먼저 간 친구 이성진이 떠올라 더더욱 괴로웠다.
거기에, 두 사람의 기일이 다가오는 여름이면, 아주 미칠 것 같았다.
“아…….”
돌아가고 싶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지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만큼 그 시절이 그리웠다. 다 같이 웃던 그 해맑음이 좋았다. 아버지의 미소도 그리웠다.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 아디스 유도복이 그렇게 멋있고 좋다던 얘기에, 그 도복을 사주려고 무리해서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하시고 돌아오시다가 음주운전 트럭에 치여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지잉.
지잉.
전화가 왔다.
번호를 보니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
-아들 어디니? 아까 출발한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와서.
“공원에서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곧 갈게요.”
-그래, 조심히 와. 불량배들 조심하고.
“하하, 네.”
아무리 어깨와 발목, 무릎이 안 좋아도 불량배한테 당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황금세대라 불렸던 선출이 양아치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원래 걱정이 많은 법이다. 전화를 끊은 지영은 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일어났다. 잠시 쉬었더니 그래도 발목과 무릎의 시큰거림이 많이 사라졌다.
공원을 나와 집 근처 횡단보도에 선 지영.
“엄마엄마. 나나 계란말이.”
“우리 이현이, 계란말이 먹고 싶어?”
“응!”
7살쯤 되었을까?
품에 곰돌이 인형을 안고 유모차를 한 손으로 잡고 있는 엄마의 남은 손을 꼭 쥐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다시 옛 기억을 자극했다. 지영은 거기서 고개를 돌렸다. 대화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쉬면서 몸은 좀 괜찮아졌지만, 마음은 아직이었다.
띵.
초록 불이 들어오자 아이와 엄마가 먼저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인가?
끼익! 쿵! 쿠궁! 트럭이 정차한 차를 밀치며 거대한 굉음을 일으켰고, 꺄아아악! 깜짝 놀란 아이 엄마는 딸의 손을 놓쳤다. 어린 소녀는 엄마의 손을 놓치고 바닥에 쓰러졌고, 트럭에 밀린 가장 앞에 차가 아이 쪽으로 쭉 밀려났다.
“아…….”
잔인하다, 운명 너 진짜.
탄식과 함께 신을 저주한 지영은 저도 모르게 발목에 힘을 주고 몸을 날렸다. 그렇게 아이를 밀어내고…….
꽈직!
벼락이 관통하는 저릿한 통증과 함께 지영의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 * *
처참한 추돌 사고 이후, 횡단보도에 서 있던 창백한 인상의 사내에게 정장 차림에 멋들어진 중절모를 쓴 사내가 물었다.
“귀인(貴人) 강성찬. 이걸로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저는 이걸로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대의 선택으로 환생은 없던 일이 되었으니, 이제 저승의 율법을 따라 그대를 심판의 길로 인도하겠다.”
“……네.”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