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 남는 자, 그리고 떠나는 자(2)
시안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레아가 사라진 자리에 멍하니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레아의 죽음에는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데스 나이트인 켄드릭은 자신의 갑옷이라도 이 세상에 남겼다.
그러나 유령이자 원귀였던 레아는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레아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안은 레아가 사라진 자리 앞에 서 우두커니 있었다.
가슴 속에서는 자꾸만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뭐라 정의를 내리기 힘든, 어떤 무언의 감정이 가슴 속에서 계속 끓어올랐다.
그것은 한없이 시안의 가슴을 괴롭혀왔다.
그러나 레아가 떠날 때 보인 마지막 미소.
울음이 아니라, 미소를 지었다는 것.
그것이 시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주었다.
시안은 그렇게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되지 않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안은 들려오는 승리의 함성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함성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째, 지치지도 않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저 함성은 무려 수 백만이 내지르는 함성이었다.
10,000명씩 묶어 질러도 100번의 돌림 노래를 할 수 있었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안은 그 함성 소리에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천 년전부터 이어온 기나긴 전쟁.
신(神)은 끝내 영웅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악마들은 영원히 이 대륙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끊이질 않는 함성의 소리를 들었다.
시안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여전히 가슴에 남아 마음을 찔러왔다.
그러나 시안은 꿋꿋이 몸을 움직였다.
루벤의 영주로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아직 끝을 맺지 못한 하나.
이 모든 일의 마지막을 매듭지어야만했다.
시안은 함성의 소리를 가로지르며 걸음을 옮겼다.
함성은 뜨거웠으나 시안은 침묵했다.
묵묵히 또 묵묵히 걸음을 옮겨갈 뿐이었다.
그렇게 시안이 발걸음을 멈춘 곳.
그곳은 막사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신성 제국의 진영에 있는 지휘관의 막사들.
막사들의 대부분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전장을 끝까지 지켜야할 지휘관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쟁은 루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도망칠 이들은 도망쳤고.
항복할 이들은 항복했다.
남아있는 신성 제국의 지휘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시안은 비어있는 막사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위치한 막사 앞에서 그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의 생각.
시안은 막사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막사 안에는 한 명의 여인이 앉아있었다.
엘란두르의 안주인.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장본인.
“왔느냐.”
이사벨 엘란두르.
보이는 이사벨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했다.
정신적인 압박을 받은 것인지 두 눈동자의 초점이 살짝, 풀려있었다.
그러나 초췌함 속에서도 이사벨은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시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품위와 더불어 우아한 세련미가 흘러나왔다.
시안은 그런 이사벨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왜 도망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여기에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사벨은 담담히 답을 해보일 뿐이었다.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제 손에 죽기 위해 남아계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이제 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바랄 것이라 생각했느냐.”
이사벨은 시안을 질책하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아무런 답을 해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나는 한평생 엘란두르 가문을 위해서 살아왔다.”
이사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결국 엘란두르는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고, 끝내 엘란두르는 멸문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지켜야할 가문도, 자식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수 백년의 역사 속에서 군림해온 엘란두르.
엘란두르의 시대는 비로소 끝이 나버렸다.
다시는 재기할 힘조차 이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로써 내 역할도 다했다.”
이사벨은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안은 그런 이사벨을 바라보다 넌지시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러했다.
이 모든 것은 이사벨이 계획한 일.
엘란두르를 멸문으로 이끈 것은 모두 이사벨이 자처한 일이었다.
물론 엘란두르는 그 위명과 명성을 잃었다.
예전과 같은 권세를 누릴 수는 없는 상태였다.
“반역과 이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멸문까지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에 비해 권세가 약해진다일 뿐.
엘란두르는 미약하게나마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끝내 반역의 검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끝내 패배했으며,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정말로 엘란두르를 위했다면.
정말로 엘란두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던 겁니까.”
이사벨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안은 이사벨에게 물었고.
이사벨은 차분히 시선을 내려보였다.
“인간에게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법이다.”
이사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어하고, 또 누군가는 현재의 삶에 안주하려 한다.”
이사벨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떤 공허함이 담긴 듯한 눈빛을 지으며 막사 안의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이사벨은 다시 입을 열어보였다.
“올라가는 과정에도 각자의 방식이 있다. 누군가는 자애로운 인성이라는 선(善)을 무기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누군가는 질투와 시기라는 악(惡)을 무기로 경쟁의 상대를 끌어내린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악(惡)을 이용했던 것일 뿐.”
“그것이 엘란두르를 위했던 길이란 말씀입니까? 당신이 정말로 엘란두르를 위했더라면 반역이 아니라 자비를 바라야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엘란두르라는 가문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아니었습니까?”
그 속에서 이사벨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역이 아니라 황가에 자비를 구했다면, 이사벨은 아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은 그러지 않았다.
“목숨만 붙어있다고 한들, 그것이 어찌 살아있음과 같은 의미겠느냐. 내가 지키고자 한 건 단순한 가문이 아니라 엘란두르라는 이름이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수 백년의 아성(牙城).
이사벨이 지키고자 한 건 가문이 아니었다.
수 백년간 이어온 엘란두르라는 이름이었다.
“엘란두르라는 이름은 그에 따른 힘이 있을 때에나 의미가 있는 법.”
따라서 권세는 힘의 산유물이라 할 수 있었다.
권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권세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란두르는 그 힘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 힘을 다시 되찾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사벨은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수단으로 악(惡)을 이용했으며.”
악마와 서슴없이 손을 잡았으며.
카이라는 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신성 제국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끝에.
“나는 패배하여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사벨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목숨의 구걸도.
엘란두르의 생존도 아니다.
“나를 죽여라.”
순전한 죽음(死).
“네 손으로 나의 죽음을 선사하고, 곧 네가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의 시작의 발판으로 삼아라.”
그것은 더하여 엘란두르의 마지막이었고.
그렇게 역사에는 엘란두르라는 이름이 남겨질 것이다.
이사벨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조차 엘란두르를 위하고 있었다.
이사벨과 엘란두르.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사벨에게 있어 엘렌두르는 자신의 삶이라 부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시안은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아벤느가의 장녀였습니다. 처음부터 엘란두르가 아니였죠. 그럼에도 스스로를 구속하면서까지 엘란두르에 모든 것을 바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자유가 어울리지 않은 부류였으니 말이다.”
이사벨은 자조섞인 실소를 흘려보였다.
“자유에는 무한한 고독이 뒤따른다. 자유가 어찌 모두에게 축복일 수 있겠느냐. 각자만의 삶의 방식이 있듯. 누군가는 자유 속에서 상실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
“나는 나의 존재를 바칠 것이 필요했고. 그게 엘란두르였으며. 그것이 나의 삶이었을 뿐이다.”
이사벨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시안 또한 그에 관해 더 이상 이사벨에 묻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이사벨이 엘란두르를 위해 지금까지 온 것처럼.
시안 또한 루벤을 위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니까.
이사벨이 엘란두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시안 또한 루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서로 다른 이상과 신념.
시안은 천천히 옆으로 손을 뻗었다.
파직─! 튀어오르는 흑뢰(黑雷) 속.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시안은 이사벨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왜 죽이신 겁니까.”
공식적으로 시안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었다.
눈앞의 이사벨.
그리고 오래 전에 죽은 세실.
하지만 시안이 진정으로 어머니라 부르는 이 한 명.
시안의 친어머니, 세실 뿐이었다.
세실은 시안이 어렸을 적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밝혀진 진실은 이사벨의 살인이었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고, 쉬쉬했던 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사벨은 왜 세실을 죽여야만 했나.
사실 이사벨 입장에서 세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이사벨처럼 막강한 외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엘란두르 가문 내에서 입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두어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처음엔 일말의 질투··· 라고 생각했었다.
듀라크와 이사벨.
정략 결혼으로 이루어진 사이였고, 사랑 같은 감정은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이고, 아내였다.
몸을 섞어 같은 피를 이은 자식이 있는 둘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
질투라는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사벨의 말을 들으니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지금 알게 된 이사벨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고작 사사로운 감정 따위로 일을 행할 인물이 아니었다.
해서 시안은 그 의문을 이사벨에게 물었고.
“유일한 내 실수였다.”
이사벨은 이제 와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세실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세실은 가문에 큰 위협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너는 아니었지.”
이사벨은 담담하게 답을 해보였다.
“너는 가주의 피를 이어받은 사생아. 너는 언제고 문제가 생길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세실이 아니라 너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세실이 먼저 알아챈 것일 뿐.”
이사벨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듯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였다.
“세실은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엮이지만 않았다면 내가 중히 썼을 만큼. 그런 세실이 내게 와 제안을 하더구나. 나를 위하여 개처럼 일할테니. 너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그리고 정말로 세실을 중히 쓰려던 생각이 있었던 걸까.
“나는··· 어리석게도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이사벨은 세실을 개처럼 부렸다.
말로 담기 힘든 고된 일들을 서슴없이 시켜 부려먹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이용했다.
세실은 일개 평민이나 듀라크의 아이를 품었던 여인.
적당한 힘이 있으나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패였다.
“그럼 계속 부려먹으면 될 것을, 왜 죽이신 겁니까.”
“사냥이 끝난 사냥개의 최후는 정해져 있는 법이니까.”
이사벨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시안 역시 그 이상으로 묻지 않았다.
대체 무얼 바라고 물었던 걸까.
결국 이사벨은 악(惡)을 도구로서 사용했던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악(惡)에 물들어버린 악마와 다를 바 없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막사 안에는 알수 없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묵직하게 내려 앉은 정적 속.
시안은 터벅, 이사벨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이사벨은 살며시 두 눈을 감아보였고.
시안은 그런 이사벨을 향해 멸살의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뚝.
이사벨의 목 앞에서 멸살의 검을 멈춰보였다.
그와 동시에 파직─!
시안은 멸살의 검을 흩어버렸다.
감겼던 이사벨의 눈이 서서히 떠지며 놀람의 기색이 깃들었다.
시안은 그런 이사벨을 향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당신을 살려드리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
“구태여 제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시안은 성큼, 이사벨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전범자임과 동시에 반역자로 황궁으로 이송될 겁니다. 정식으로 재판을 받을 거고 결과는 뭐··· 누구보다 잘 아시겠죠.”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대로 목을 움켜쥐여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어머니, 세실을 이용만하다 결국 죽인 이사벨을.
악마와 결탁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이사벨을.
시안의 손으로 직접, 죽여버리고 싶었다.
신념이 있다고 하여 악(惡)이 선(善)이 되는 건 아니다.
이사벨의 행동은 모두 엘란두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죄없는 자들의 울분.
힘없는 자들의 고통.
이사벨은 무수한 사람들을 서슴없이 이용했다.
이사벨은 분명한 악(惡)이었고.
시안은 그 악(惡)을 포장하거나 치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이사벨을 죽이지 않았다.
분노로 물든 멸살의 검을 꾹, 눌러참았다.
시안은 이사벨의 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뭐, 뭐하는···.”
이사벨이 크게 당황하며 발버둥쳐보였다.
그러나 시안은 억지로 이사벨의 품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새 시대의 포문이니 뭐니 하는 것들.
그 모든 것은 이사벨의 죽음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이사벨은 살아갈 생각이 없었다.
시안이 자신을 죽이지 않더라도 자결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죽을 자리를 찾아 이곳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여기서 이사벨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은 완성된다.
하여, 이사벨의 품 안에 숨겨져있던 자그마한 단도.
“처음부터 당신은 여기서 죽을 생각이었잖아.”
시안은 숨겨진 단도를 꺼내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
이사벨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의 죽음은 결단코 새 시대의 발판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사벨의 뜻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황궁으로 호송해 재판을 받게 하고 반역자로서 공표할 것이다.
온 천하에, 온 대륙에 이사벨과 엘란두르의 죄목을 밝힐 것이다.
그리하여 시안이 아닌.
“당신은 온 대륙의 사람들에 의해 처형될 겁니다.”
이 대륙이 직접, 이사벨을 심판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벨의 죽음은 더렵혀질 것이다.
엘란두르를 위한 고결한 죽음이 아니라.
엘란두르를 멸족시킨 반역자의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엘란두르를 위해 바쳐온 이사벨.
그것이 이사벨에게 어울리는 최후다.
그것이 이사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죽음.
“······!!”
이사벨은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뚜렷한 경악을 내보이며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은 그런 이사벨을 바라보며 툭.
“새로운 시대는 당신이 아닌, 영웅들의 몫입니다.”
시안은 이사벨의 목덜미를 쳐보였다.
이사벨은 털썩.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정신을 잃어버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