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 남는 자, 그리고 떠나는 자(1)
시안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아와 켄드릭이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전신을 휘몰아치는 탈력감이 몰려왔지만 억지로 견뎌내었다.
자꾸만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몸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경계의 공간으로 간 존재는 응당 받아야하는 과부화와 반동이 삭제된다고 했던가.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몰랐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시안은 살아있었고, 억지로 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다가선 곳.
시안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축, 늘어진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으니까.
레아에게서 끝없는 사념이 느껴지지 않았다.
켄드릭에게서 일렁이며 타오르는 안광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죽음(死).
존재의 죽음이 내보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어, 어째서···.”
숨이 턱, 막히며 생각이 덜컥, 굳어버렸다.
설마 이 둘 또한 경계의 공간으로 간 것일까.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시안이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시··· 안···?
레아에게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귓속말보다도 작디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레아의 말은 목소리가 아닌 의지의 전달.
시안은 희미한 레아의 의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레아! 정신이 들어요?”
시안은 황급히 레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레아가 아주 희미한 두 눈을 치켜떠보였다.
위로 올려진 눈에는 초점없는 회백색의 눈동자가 힘을 잃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
레아가 끝까지 말을 내뱉지 못했다.
말을 할 힘조차 없는 것인지 들려오는 소리 또한 흐려져갔다.
“모두, 끝났습니다. 카이는 쓰러졌고, 악마는 더 이상··· 부활하지 않을 거예요.”
-다행···. 다행···.
시안의 말에 레아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시안은 그런 레아의 모습에 확신할 수 있었다.
“레아···.”
레아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레아에게서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레아에게는 생명이 없었다.
그래서 레아는 버프를 받을 수가 없었다.
루벤에 지어져 있는 <뮤리엘의 성소>.
[건설 효과] - 영지 내, ‘치료 상태’에 있는 환자들은 죽음에 이르지 않습니다.
.
.
그 효과는 죽음을 거부하는 효과였다.
물론 ‘치료 상태’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었다.
그러나 루벤을 둘러싼 또 다른 버프, 세계수의 축복.
세계수의 축복으로 루벤은 상시 치료 상태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루벤에서 죽음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로써 콘라드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아니었다.
레아와 켄드릭.
이 둘은 천 년전의 존재이자, 한 번 죽음을 맞이한 존재.
죽음을 거부하기엔 이 둘은 죽음의 존재였다.
죽음이라는 인과가 이미 이 둘에게 새겨져있었다.
더하여 카이는 실재하는 신(神)이었다.
비록 카이는 죽어 사라졌으나, 그 존재는 이 세계에 존재했다.
그리고 시안이 베어낸 인(因).
시안이 베어낸 건 악마라는 존재가 아니었다.
악마가 ‘존재의 죄악에 기생한다.’ 라는 인(因)을 지워버린 것뿐이었다.
그로써 부활이라는 과(果)을 막아버린 것뿐이었다.
악마라는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고.
이 대륙에 악마라는 존재는 존재 했었다는 기록은 지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둘에게 행해진 신(神)의 권능은 잔재해있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이 둘에게 죽음을 안겨주고 있었다.
-켄드릭이··· 마지막에··· 날 보호해줬어···. 덕분에 난 이렇게 숨이 붙어있지만 켄드릭은···.
푸른 안광이 꺼져있는 켄드릭의 모습.
켄드릭은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레아처럼 희미하게나마 말을 하지도 않았다.
이미··· 온전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리라.
시안은 정말 뭐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아무런,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레아는 그런 시안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을 이었다.
-알고··· 있었어. 사실··· 처음 널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레아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보였다.
시선을 드는 것조차 힘겨운지 힙겹게 목소리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시안. 너는··· 카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레아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아무리 짧은 추억이라도 그 순간의 체온과 향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은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지나.
감각은 추억처럼 남아 한없이 가슴 속에 남아있을 때가 있다.
-카일은··· 너와 같지··· 않았으니까.
시안은 역시나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레아 또한 그런 시안의 답을 바라지 않았다.
-네가··· 네가 저번에··· 말해주었지. 카일은···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고···. 나를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레아의 눈동자가 힘없이 들렸다.
힘겹게, 아주 힘겹게 레아가 시안을 바라봤다.
초점없는 회백색의 눈동자.
생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건만.
-정말··· 정말로 그랬을까? 카일··· 은 나를 위해서··· 그랬던 걸까···?
레아의 두 눈엔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시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거짓말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으니까.
거짓을 말해서는 안될 것 같으니까.
그리고 시안은 알지 못했으니까.
당시 카일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카일이 아니니까요.”
시안은 카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렇지··· 시안··· 너는 카일이··· 아니지···.
레아의 눈동자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힘겹게 들어올린 눈동자는 더 이상을 위를 향하지 않았다.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나야만했다··· 는 말을 해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시덥잖은 변명이었다.
남겨진 자에게는 끔찍한 말과도 다름 없었다.
그 기다림의 고통을 겪어본 자에게는 또 다른 고문이나 다름 없었다.
삶보다 더 긴 기다림을 짊어진 자에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안은 현명하지 못했고.
천 년전의 카일은 어리석었다.
카일은 레아를 떠나서는 안 되었다.
레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렇게 홀연히 떠났으면 안 되었다.
레아의 곁에 남아 그 옆을 지켰어야했다.
적어도 그 이유만이라도 알려주고 떠났어야했다.
하지만 카일은 그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었다.
악마에게 잠식되었다는 사실.
그걸 알게 되면 레아 또한 악마에게 노출될까를 염려했다.
그래서 말없이 홀로 떠났고.
또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하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레아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기에.
카일은 레아를 떠나야만 했다.
영웅과 악당.
영웅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버리고.
악당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놓아버린다고 했던가.
카일은 악당이 아닌 영웅으로서.
“카일은··· 레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카일은 레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카일의 진심이 어떠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시안은 역시나 카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안이 본 카일은 레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카일은 본래 대륙으로 갈 수 있었다.
마교의 교주로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일은 떠나지 않았다.
이 대륙에 남았고, 끝내 아르나이즈로서 생을 마감했다.
처음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카일은 대륙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일의 끝에 선 지금.
“카일은 레아,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어쩌면 레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레아를 악마로부터 지키고자.
레아가 살아가는 터전인 이 대륙을 지키고자.
레아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세계를 지키고자.
카일은 아르나이즈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 것이 아닐까.
악당이 아닌 영웅으로서.
레아를 위해 레아를 떠나야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
레아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인지.
시안은 알 수가 없었다.
시안이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레아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카일의 후계자가··· 시안··· 너라서 다행이야···..
레아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보였다.
모든 힘을 쥐어짜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시선을 시안의 너머로 향했다.
-아리아··· 이 년아. 내 말··· 들려?
아리아는 멍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들려도··· 들린다고 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니까···.
희미하다 못해 죽어가는 레아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레아의 목소리는 소리가 아닌 의지.
아리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네가··· 네가 저번에 물었지··· 이 모든 일의 끝에서··· 시안이 떠날 것만 같다고··· 카일··· 처럼 시안도··· 떠나버릴 것만 같다고···.
아리아를 향하던 레아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봐.
그리고 다시 희미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시안은··· 떠나지 않았어··· 카일처럼··· 떠나지 않고··· 우리들 곁에··· 남아 주었어··· 카일과는 다른··· 운명의 길을 걸었다고···.
이어 레아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시안을 지나쳐 아리아에게로 향했다.
-그러니 너도···.
그리고 나지막히.
-너도 뮤리엘과···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봐···.
레아는 목소리가 아닌 의지를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피식, 레아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번엔 용기를 내라는 말이야··· 이 년아. 삐쭉삐쭉 망설이지··· 말고. 망설이다 후회하지··· 말고. 시원하게··· 지르라고 이것아.
시안이 카일이 아닌 것처럼.
시안이 카일과는 다른 운명을 걸은 것처럼.
-아리아, 너도··· 뮤리엘이 아니니까···.
뮤리엘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어.
레아의 마지막 말은 차마 의지로서 전달되지 못했다.
-엘레나, 쟤는··· 알아서 잘 할거야. 나를 닮아서 말이지.
레아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내려보였다.
정확히는 더 이상 시선을 들 힘이 남아있지 않아보였다.
-시안.
“말씀··· 하세요.”
-켄드릭이··· 전해달래.
레아의 말에 시안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레아의 옆에 늘어져있는 켄드릭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우그러진 손목은 기이하게 뽑혀져있었고.
칠흑의 갑옷 또한 여기저기 찌그러져있었다.
그리고 짙은 어둠이 드리웠던 켄드릭의 투구 속.
타오르듯 일렁이는 푸른 안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검은 사자 기사단의 단장이자.
현재, 흑사자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켄드릭.
카일과 시안을 동시에 주군으로 두었으며.
신성 제국에서 모두가 한(恨)을 풀고 떠나던 그때.
유일하게 시안의 곁을 지켰던 충직한 기사, 데스나이트 켄드릭.
-어차피··· 이 대륙에서 악마가 사라지면··· 자신 또한 떠날 운명이었다고··· 그러니 자신을 위해··· 너무···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켄드릭이 꼭··· 전해달래.
켄드릭은 최후의 최후까지.
주군인 시안을 위해 검을 들어보였다.
-고마웠어··· 시안···.
레아에게서 느껴지던 미약한 사념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로써 레아의 존재 또한 흩어져 소멸하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루벤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루벤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는데···.
이제야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배웠는데.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천 년의 세월 속.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고마웠어 시안···.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나를 구해주어서.
잊혀졌던 나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아주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삶이라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잡아 주어서···.
정말로. 정말로 고마웠어.
-시안.
사아아아아···.
산들거리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시안의 얼굴을 쓸어내려나갔다.
레아는 시선을 들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시안도, 아리아도 그렇다고 켄드릭도 아니었다.
일순간 레아의 얼굴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은 수줍은 소녀처럼 아주 순수한 미소였다.
누군가를 보고 짓는 미소인 것일까.
무엇을 보고 지어보이는 표정인 것일까.
시안은 레아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시안은 끝내 물을 수가 없었다.
사르르륵.
모래 알갱이로 부서지며, 사라지는 레아의 모습.
레아는 그렇게,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