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 시작과 끝(2)
새하얀 백광의 공간.
얼이 빠져버린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생각과 사고의 흐름이 눈앞의 현상을 따라가지 못했다.
멍하디 멍한 정신.
시안의 눈 앞에는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흑발의 사내가 서 있었다.
“당신은···.”
“이번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두 번째인지 세 번째 만남인지 헷갈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사내를 알지 못했다.
두 번째는 커녕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 하는 의문이 들던 찰나.
시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다름 아닌 카일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하나의 장면.
새하얀 백광의 공간과 그 안에 있던 정체 불명의 사내.
시안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공간과 지금 이곳이 같은 곳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소개가 늦었네. 난 김서준이라고 해.”
김서준.
당연하게도 시안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킴서준···?”
그리고 시안에게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기도 했다.
그런 서툰 시안의 서툰 발음 때문일까.
서준이 푸하핫, 거리며 웃어보였다.
“그냥 서준이라고 불러. 그보다 넌 이름이···.”
“시안··· 입니다만.”
“그래, 시안.”
서준은 시안의 이름을 되뇌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시안은 그런 서준을 바라보다 물었다.
“서준님은 대체 누구십니까?”
“응? 나?”
서준은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모르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나를 모··· 를 수가 있겠구나. 너는. 네 차원은 관조자가 추방되면서 같이 떨어져나간 차원이었으니까.”
서준이 금방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프로 헌터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초월자라고 해야할까. 그것도 아니면 최초의 초월자를 계승한 자라고 해야할까.”
“······”
시안은 멍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봤다.
방금 서준이 답변이라고 말한 내용.
정말이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으니까.
그런 시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서준이라고 생각해.”
서준은 씨익,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궁금한 것이 많을거야. 묻고 싶은 것도 많을거고. 그 중에서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카일에 대한 이야기겠지?”
“카일을 아십니까?”
“알지.”
서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해보였다.
“인과를 베어내는 검. 그 검을 만드는데 내가 도움을 주었으니까.”
“······ 예?”
“물론 내가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야. 난 힌트만 줬을 뿐이지. 난 네 차원에 간섭할 수가 없었으니까. 해서 모든 건 카일이 만들고 안배했어.”
“아니, 무슨 말을···.”
“설명이야 해줄 수는 있어. 그런데··· 네 지금 상황이 영 좋지 못해서 말이지.”
“제 상황이요? 그건 또 무슨···.”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야.”
“······?”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번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사내에게 물었다.
“저 죽은 게 아니었습니까?”
“죽었지. 그런 힘을 써놓고 살아있길 바란거야?”
“아니, 뭐···.”
“그런데 죽지는 않았어.”
“······ 예?”
아까부터 진짜 뭐라는 걸까.
시안은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너처럼 죽은 걸로 착각했었지.”
서준은 옛날 생각난다는 듯 낄낄, 거렸다.
“결론만 말하면 넌 죽지 않았어.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되는 건 맞아. 네가 마지막에 시전한 검. 그건 네 존재는 물론, 세계가 버틸 수 없는 검이었거든.”
“하지만 너는 마지막에 초월(超越)의 영역에 발을 디뎠어. 솔직히 나도 이건 믿기지가 않아. 특히나 여기 경계의 공간이 사용될 줄은··· 전혀 몰랐어. 관조자가 추방된 이후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거든.”
서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네 존재는 죽은 것이 맞아. 하지만 여기. 경계의 공간에 이끌려 온 덕분에 너는 죽지 않게 되었지. 표정이 마치 대체 뭔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인데?”
“네.”
“······ 너무 단호한 거 아니야?”
서준은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간단하게 말하면, 여기 경계의 공간에 끌려온 존재는 법칙에서 탈피한 초월(超越)의 존재야. 따라서 네가 속한 세계는 너를 법칙에서 탈피한 존재로 인식하지. 따라서 세계는 네가 응당 받아야만 했던 과부하와 반동 또한 삭제해버려.”
서준은 그렇게 뭐라뭐라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시안은 정말이지 뭐가 뭔지 하나도.
정말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됐어. 그냥 죽지 않았다는 것만 알면 돼.”
서준 또한 더 이상의 설명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긴 내 이야기가 아니라서 말이야. 이 장면을 썩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을테니까. 전달자를 곤란하게 해서는 안되지.”
그러면서 서준은 가만히 눈을 감아보였다.
그와 동시에 손을 앞으로 뻗어 허공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널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려고. 더 늦으면 네 상황이 애매할 것 같아서.”
“······ 예?”
“이것도 여러모로 복잡한 개념인데. 쉽게 말하면 여기랑 거기랑 시간이 좀 다르게 흘러.”
서준은 휘젓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시공간의 틀어짐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차원 자체의 질량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나도 복잡한 마법 체계는 여간 질색이라서 자세히는 몰라.”
멀린 강사님의 통찰력이 아니었다면 뇌세포가 터졌을지도 모른다니까.
“그래도 네가 초월을 함으로써 내가 개입할 인과가 생성되었어. 내 블랙 카드로 인과 결제는 마쳤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물론 나중에 갚아야 한다?”
헛!
서준은 뭔가 실수를 한 것처럼 살짝, 놀라보였다.
이윽고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사실 나도 너랑 비슷한 상황에 있었어. 그리고 내 경우엔 돌아가는데 엄청 오래걸렸지. 그 때문에 서윤이가 어찌나 바가지 긁던지 원···.”
오죽하면 지금도 바가지 긁히고 있다니까.
“서윤이요?”
“응? 아, 내 아내. 박서윤. 네가 듣기엔 내 이름처럼 생소하려나?”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맞았다.
카일의 본명과 더불어 김서준이라는 이름.
그 이름을 듣는 것과 같은 생소함이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혹시 너도 결혼했어?”
“아뇨. 결혼은 아직···.”
“그래? 그럼 연인은?”
“연인도 아직···.”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좋아하는 사람은···.”
“있구나?”
서준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시안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너도 바가지 긁힐 사람이 있는 것 같네. 이러면 내가 또 오래 잡아둘 수 없지.”
그러더니 허공을 휘젓는 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복받은 줄 알아. 이게 보기엔 단순해보여도 나밖에 못하는 일이니까.”
“······”
“진짜라니까 그러네? 원장님도 못하는 거야. 그리고 인과 비용은 오죽 많이 드는 줄 알아? 너 내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삥뜯은··· 아니, 모은 인과를 들어보면─.”
“진짜고 자시고. 저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아, 하긴.”
서준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내가 다시 찾아갈게.”
다 됐다.
이어진 서준의 말과 함께 따악─!
공간 전체에 청명한 소리가 울려퍼져왔다.
그와 동시에 시안의 주위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쳤다.
그 힘에 따라 시안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있으니. 한 가지만 물어볼게.”
그리고 들려온 서준의 목소리.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서준을 바라봤다.
“카일은 이곳에서 인과의 운명을 베어내는 검을 만들었고, 네 세계로 돌아가 그 검을 안배했지. 그리고 말 그대로 ‘안배’였어.”
안배.
사전적 의미로는 알맞게 배치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네가 그 검을 사용할 수 있을지. 또 그 검을 그릇되지 않게 사용할지. 카일은 전혀 관여할 수 없었다는 뜻이야.”
말 그대로 안배.
카일은 실현될 수 없을 아주 희박한 가능성의 길을 열어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나 할 수 있으나.
“그 희박한 가능성을 뚫은 것은 시안. 오롯이 너야.”
지나온 모든 고난과 역경을 헤쳐온 것.
그 가능성을 기회로 만들어 운명을 베어낸 것.
“그 모든 것들은 네가 만들어낸 거야.”
시안을 바라보는 서준의 두 눈.
서준의 눈에는 방금 전과 같은 장난기가 보이지 않았다.
“너의 무엇이, 운명의 인과를 베어낼 수 있었지?”
서준은 물었고.
시안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건···.”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저 대답에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시안은. 시안이라는 자는 귀족가의 평범한 자제였다.
물론 그 귀족이 엘란두르라는 것.
그리고 자제가 아니라 사생아였다는 것.
사실 평범하다고 할 수 없기는 했다.
천하의 둔재. 후작가의 망나니.
애초에 이 시점부터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히 잘하는 재주도 없었다.
딱히 잘할 수 있는 재능도 없었다.
오늘 하루를 견뎠음에 안도하고,
내일 하루 어떻게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할까.
어쩌면 평범보다 못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시안이라는 존재는.
그러다 루벤이라는 영지의 영주로 쫓겨나게 되고.
죽음 속에서 모바일 영주를 우연찮게 만났고.
영지민들과 울고, 웃으며 수많은 경험을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들도 많이 만났다.
브라헤 가문의 아멜레아와 루카스.
제국의 황태자, 콘라드.
황녀, 엘레나. 성녀, 아리아.
천 년의 원귀, 레아.
드워프 족장 세미르. 다크 엘프의 아스란디즈와 세라.
수인족의 카리스와 다이애나.
그들과 때로는 웃고.
또 때로는 울며.
정말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시안에게는 하나의 행복이었다.
‘영주님! 오늘도 좋은 하루입니다!’
‘영주니이임! 베리가 막, 막 저 못난이라고 놀려요!! 흐아앙!’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평범한 하루가.
‘으어어어··· 영주니이임··· 사체 해부좀 그만하면 안됩니까아···.’
‘이러다 마수가 아니라, 마수 사체 때문에 죽겠습니다아아···.’
지루하다 생각될 수 있는 일상의 나날들이.
일상의 고단함이 느껴지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것들아! 이게 다 돈이야 돈!’
시안에게는 더없는 행복이었다.
평범에도 미치지 못했던 사람이 특별하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천하의 둔재이자 망나니 따위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과 함께 했음이었다.
그들과 함께하고자 함이었다.
시안은 이런 수많은 사건과 경험을 통해.
영지민들과 울고 웃고 떠들던 나날들을 통해.
시안은 선택했을 뿐이었다.
너의 무엇이, 운명의 인과를 베어낼 수 있었냐는 서준의 물음.
“저는 루벤의 영주니까요.”
혼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의 삶.
시안은 그것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시안은 멋쩍게 답을 해보였고.
“좋은 마음이네.”
서준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우린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동료요?”
“그래. 창조자와 대적할 동료.”
“······ 예?”
“있어. 지금 설명하기엔 기니까 나중에 설명해줄게. 그보다 동료가 될 사이인데 같이 말 놓자. 나이는 내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지만 뭐, 다른 차원이니까. 정 뭐하면 형이라고 부르든가. 나만 반말하니까 영···.”
여긴 네 이야기라서 널 응원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말이야.
어째, 벌써부터 날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니, 아까부터 자꾸 무슨 이야기를···.”
“나중에.”
서준은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막아보이며 말했다.
“나중에 다시 보자고.”
따악─!
그와 함께 들려오는 청명한 소리.
시안의 정신이 일순간 툭, 끊어졌다.
#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정신이 이어진다.
웅웅거리는 먹먹한 귓가는 소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몽롱한 정신 속.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함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툭.
무언가가 시안의 얼굴 위로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시안의 볼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다시 툭, 투툭.
시안의 얼굴 위로 무언가가 계속해서 떨어져내렸다.
‘비···?’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볼 위로 흐르는 물방울은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따뜻함이 있었고, 또 그렇기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었다.
“으음···.”
시안은 천천히 눈을 떠보였다.
그리고 뜨여진 시야로 보인 것.
그건 비가 내리는 하늘이 아니었다.
먹구림이 가득한 어두컴컴한 하늘 또한 아니었다.
“흐흑···.”
어떤 여인이었다.
여인은 시안의 몸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동시에 고개를 하늘로 올려 흐흑···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마치 소리내어 울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흑···.”
여인은 아주 작게 울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툭.
여인의 턱 선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이 시안의 얼굴로 떨어져내렸다.
“누구···?”
시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와 동시에 뚝.
여인의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마치 석화 마법을 맞은 것처럼.
혈액 하나하나가 돌로 굳어버린 것처럼 여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윽고 하늘로 향했던 여인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아··· 아아···”
여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두 눈동자가 쉼없이 흔들리며 시안을 바라봤다.
“누구···?”
그리고 시안의 기억에는 없는 얼굴이었다.
시안을 향해 파르르, 몸을 떠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아···.”
그러나 여인은 흐느껴 울 뿐이었다.
울먹울먹거리는 표정이 참···.
못난이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안은 의문을 삼키며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아리아?”
그리고 이 못난이가 아리아임을 알 수 있었다.
“뭐해 여기서?”
··· 라는 말이 내뱉어지는 순간.
와락!
아리아가 시안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야, 야. 자, 잠시만···!”
갑작스러운 아리아의 행동에 시안이 화들짝 놀라보였다.
동시에 저항했지만 어째서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아리아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시안을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 시안이 발버둥을 쳐보일 떄쯤이었다.
“······핫!”
“허어억···!”
아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보였고.
시안은 그때서야 무언가에 막혔던 숨을 들이쉴 수가 있었다.
시안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아리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리아의 상태는 정말이지··· 참혹했다.
아스라진 턱 뼈에 하관은 어긋나있었고.
피로 흠뻑, 젖은 머리는 백금발이 아니라 적발처럼 보였다.
처음 아리아를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상태도 좋지 않으면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괜찮아?”
“······”
시안은 아리아에게 물었고.
아리아는 아무런 답을 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또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시안···.”
시안의 이름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신을 일깨웠던 커다란 함성은 끊이질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함성 속으로 바닥에 쓰러진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콘라드, 세미르, 세라, 카리스.
척 보기에도 저들의 상태는 심상치 않아보였다.
도무지 살아있는 상태라고 생각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목숨만은 붙어있었다.
세계수의 치료 효과와 <뮤리엘의 성소>.
두 시너지의 효과로 저들은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모두··· 무사하구나.”
시안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니, 내쉬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
시안의 시야에 문득, 또 다른 장면이 비쳐보였다.
긴 백은색의 머리와 초점 없는 회백색의 눈동자.
그러나 지금은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고 있는.
“레아···?”
또한 짙은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는 데스 나이트.
그러나 전신이 우그러져 안광의 빛을 발하지 않고 있는.
“켄드릭!”
레아와 켄드릭.
그 둘에게서 느껴져야할 것들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