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 시작과 끝(1)
소리없는 정적이 흘렀다.
정적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지금의 정적은 그 개념을 달리했다.
루벤을 두고 싸웠던 치열한 전투.
황가의 로열 나이츠. 오슬리를 필두로 한 북부의 기사들.
제국 서부의 병사들, 신성 제국의 신민들.
여명 교파의 사제들과 100만에 달했던 신성 제국의 전사들.
가히 수 백만이라 지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전력들.
그 모든 전력들이 모여있는 이곳에, 소리없는 정적이 흘렀다.
마치 소리가 도려내어진 것처럼.
소리라는 개념이 베어져 없어진 것처럼.
그 어떠한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고.
그 어떠한 소리를 내뱉는 자가 없었다.
그런 소리없는 정적 속.
새하얗게 뒤덮었던 무채색의 하늘.
그곳엔 거미줄과 같은 흰색 균열이 새겨져있었다.
균열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가더니 이내 온 하늘을 뒤덮었다.
잘게 그어진 균열들은 곧 깨질 유리창처럼 툭, 건들면 산산이 조각나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파장창─!
하늘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세상의 윤곽이 무너져내렸다.
풍경 전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그리하여 흐려졌던 색들이 다시금 제 색을 찾아갔다.
창궐한 숲은 파릇파릇한 생기를 품은 초록색으로.
무채색의 하늘은 본연의 푸른색으로.
흑백의 풍경은 다시 형형색색 본연의 빛으로.
본래 스스로가 그러했던 자연(自然) 그대로의 모습.
흐릿해지며 무너졌던 만물의 형체가 다시금 제 모습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시공간 속.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수 백만의 시선들이 오롯이 한 곳으로 향했다.
실재하는 신(神)과 그에 대적하는 여섯의 영웅들.
그 치열한 싸움이 행해지던 전장.
그곳엔 그 어떤 누구도 서있는 자가 없었다.
그래, 그 어떤 누구도.
서있는 자가 없었다.
신(神)과 대적하던 여섯의 영웅들은 물론.
여섯의 영웅들과 대적하던 신(神) 또한.
그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모두가 쓰러져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이 가리키는 바는 하나.
“시, 신께서···!”
신(神)의 패배.
군림하던 신(神)은 끝내 영웅들의 손에 의해 쓰러졌다.
“아···!”
“아···!”
그때서야 탄성과 경악이 비로소 소리를 맺을 수 있었다.
수 백만의 사람들이 터트리는 탄성이 가득히 터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끝났··· 다.
세상을 파멸로 이끌던 신(神)은 쓰러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하늘로 향했다.
그렇게 올려다 본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르디 푸른 하늘이었다.
정말··· 끝이 났다.
신(神)이 쓰러졌다.
이길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신(神) 이 쓰러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뜨거운 함성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터져나왔다.
“해냈어···! 해냈다고···!”
“우린 살았어!!!”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과 기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긍정적인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그 터져나오는 뜨거운 함성을 맞이함에.
실재하는 신(神)의 존재가 쓰러짐에.
“아아···.”
“시, 신이시여···.”
신성 제국의 전사들이 하나 둘씩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땡그렁.
무기를 떨어뜨리며 전의를 꺾었다.
그로써 광기로 물들었던 믿음들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깨어진 맹목적인 믿음은 곧 이성으로 되돌아왔다.
“내, 내가 무슨 짓을···?”
“아아···.”
되돌아온 이성은 신성 제국의 전사들을 하나 둘씩 제정신으로 일깨웠다.
그런 신성 제국 전사들의 모습에 루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소리쳤다.
“정말··· 정말로···!”
정말로 끝이 났다.
이 기나긴 싸움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 끝에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 싸움 끝에 우리는 승리했다.
지금 이 기분을 표현할 어휘와 개념이 존재하기는 할까.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 가득한 고양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승리의 함성은, 계속해서 온 하늘을 뒤덮어퍼져나갔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꿰뚫는 듯한 어마어마한 승리의 함성.
“으음···.”
그 크나큰 함성의 소리에 아리아는 희미한 정신을 떠보였다.
여전히 몽롱한 정신 속.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정신이었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죽지··· 않은건가?
아리아는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위해 온 힘을 끌어올렸다.
축 늘어진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보고자 발악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끝에.
“······ 으윽!”
아리아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혈이 돌듯, 모든 감각들이 뚜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으윽···!!”
그에 따라 느껴지는 통증의 강도 또한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통증에 아리아는 앞선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카이와 대적했던 모든 순간들.
신어(神語)를 되뇌이며 시안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일들.
그로써 카이에게 턱이 붙잡혔고.
그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턱 자체가 으깨져부서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하여 전신의 모든 곳에서 밀려오는 끊어지는 듯한 통증.
어디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통증이 심한 곳은 역시나 턱이었다.
정확히는 얼굴의 하관 부분.
“끄으윽!”
아리아는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뉘였다.
휘몰아치는 통증에 차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런 아리아의 귓가로 하늘을 뒤덮는 함성 소리가 울려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아··· 하아···!”
아리아는 어느 정도 가시는 통증에 조금은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아리아는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의 아래쪽을 매만졌다.
다행히 세계수, 인스티즈의 축복 덕분일까.
아니면 아리아 안에 내재된 신성의 힘 덕분일까.
어쩌면 그 둘 모두일까.
턱 하관의 뼈들은 아스라져있었으나.
서서히 회복되어 어느 정도 끼워맞춰져있었다.
완벽하게 맞춰진 것은 아니었다.
어긋나 엉겨붙은 부분들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리아의 신성력으로 충분히 원 상태로 회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가 있었다.
“하아···! 하아···!”
신성력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으니까.
마치 바닥을 드러낸 독마냥 신성력이 사출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꽤나 못난이처럼 보이겠지만 뭐···..
“살아있는 게 어디··· 아흑!”
말을 하자 턱 관절이 벌어지며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의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아리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차분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신(神)과 대적했던 참혹한 전투의 흔적.
박살이 난 전장의 현장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쓰러져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이는 금발의 사내, 콘라드였다.
콘라드는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임이 없었다.
널브러진 콘라드의 복부는 뻥하니 뚫려있었다.
뚫려있는 복부 사이.
그 안으로 내장들이 죄다 뜯겨져있었다.
도무지··· 살아있는 상태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내가··· 내가 살아있는··· 커헉!”
그러나 콘라드는 살아있었다.
아리아와 같이 터져나온 함성 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일까.
콘라드는 숨을 헐떡거리며 조금씩 희미한 눈을 떠보이고 있었다.
이 역시 세계수, 인스티즈의 축복 덕분일까.
아니면 아리아가 알지 못하는 어떤 힘 덕분일까.
“이, 이게 대체···.”
다행히 콘라드는 죽지 않았다.
아리아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처참한 상태였다.
다크 엘프, 세라는 혀가 뽑혀져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뾰족한 두 귀는 마구잡이로 잡아찢겨져있었다.
드워프, 세미르는 모든 근육이 파열되어 부서져있었다.
용인족, 카리스는 이마에 돋아난 뿔이 뽑혀져 두개골과 같이 박살이 나있었다.
이들 모두가 살아있는 상태라고 보이지 않았다.
“아, 아프어···.”
“쿨럭···!”
“사, 살아··· 있는 건가?”
그러나 저들 모두가 살아있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 힘 또한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다.
실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적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에 기적이라 불리는 법.
현실의 참혹함을 마주한 이들도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는 이들.
축, 늘어져 사념이 느껴지지 않는 레아.
왼팔이 뽑혀진 채, 검푸른 안광이 꺼져있는 켄드릭.
그리고.
“커헉···!”
각혈하며 쓰러지는 시안의 모습이었다.
시안은 붉은 선혈을 흩뿌리며 털썩.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것은 앞선 이들과 비교하면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내장이 뜯기고, 근육이 모조리 찢어지며.
혀가 뽑히고, 두개골이 깨어진 상처들.
그것들에 비하면 고작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은 별 것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바닥으로 쓰러져 파르르, 떨리는 시안의 몸.
마치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쉼없이 몸이 들썩거리는 시안.
그때와··· 그때와 같아보였다.
수인족들의 왕국에서 보였던 모습.
시안, 자신의 존재를 제물로 삼았던 그때.
영혼의 그릇이 붕괴되어가던 바로 그때와.
푸화확!!
지금 시안의 모습은 너무나도 똑같아보였다.
“시, 시안···!”
아리아는 소리치며 시안을 향해 뛰쳐나갔다.
하지만 역시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격통하는 통증에 철푸덕.
아리아가 꼴사납게 바닥으로 몸을 쳐박았다.
악착같이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아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톱으로 바닥을 벅벅, 긁으며 시안을 향해 기어갔다.
바닥을 긁은 손톱이 깨지고 부서졌다.
부서진 손톱이 통째로 들리며 그 속살을 드러내었다.
그 사이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이대로 멈추면.
이대로 맥없이 기절해버린다면.
다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었을 것만 같았으니까.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서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시안을 떠나보내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천 년전, 아르나이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르나이즈들이 떠나는 카일을 붙잡지 못했던 것처럼.
“안돼··· 안돼···.”
아리아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기고, 기고, 또 기었다.
아리아가 기어갈 때마다 핏자국이 흔적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렇게 가까스로 시안에게 닿았을 때.
“아아···.”
아리아는 끝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시안의 모습.
전신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고 있는 시안의 모습.
그때와··· 그때와 똑같았다.
아니, 그때보다 더욱 심각했다.
내부의 기혈이 진탕하고 있었다.
들끓는 마나가 전신으로, 혈관으로 퍼져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안의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파르르, 떨리는 것을 넘어 몸이 뭍에 나온 활어처럼 파닥거렸다.
푸화확!!
들썩거리는 시안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거뭇하게 죽어버린 피가 화산처럼 시안의 입가로 끓어올랐다.
아리아의 얼굴로 피가 뿌려진다.
이미 피로 젖은 백금발이 다시 한번 피로 물들었다.
“아··· 아아···.”
진한 충격으로 생각이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리아는 본능적으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터져나오지 않는다.
새하얀 신성의 빛이 도무지 터져나오질 않는다.
어떻게··· 어떻게 뭐라도 해야한건만.
“아, 안돼··· 안돼···.”
아리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바닥에 바닥까지 긁어내며 신성의 빛을 터트렸다.
그러나 곧 그 무의미한 발악을 멈춰버리고야 말았다.
시안에게서··· 더 이상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아리아는 석상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시선을 내려 바라본 시안의 모습.
그 모습에서··· 더 이상 생명의 신호가 느껴지지 않았다.
존재의 죽음을 확실시하는 증거만이 보일 뿐이었다.
생명이 죽음을 맞이했음을 보이는 증거만이 보일 뿐이었다.
시안의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고 있었다.
“아, 아아···.”
목구멍으로 맴도는 말들이 공허하게 흘러나온다.
아리아의 볼 아래로 투욱.
맑고 투명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아무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렵게, 어렵게 쟁취한 승리.
그로써 되찾은 평화.
신(神)은 죽었으나.
영웅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안에 시안이 없었다.
이 평화 속에서 시안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안이 없는 이 세계는.
거짓말처럼.
그냥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리아가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아래로 보이는 시안의 모습은 참··· 잠잠했다.
그냥··· 그냥 잠을 자는 것만 같았다.
해서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라고 얄밉게 빈정거릴 것만 같았다.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아버리고 싶게 끔.
그렇게··· 그렇게 해줬으면.
정말로··· 정말로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안의 심장은 뛰질 않고 있었다.
한 번 멈춘 심장은 더 이상 뛸 수도 없었다.
“흐흑···.”
쏟아지는 눈물이, 참을 수 없게 흘러내렸다.
아래로 숙인 고개로 몽글몽글한 눈물 방울이 쉼없이 떨어졌다.
그것은 시안의 얼굴 위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아리아는 울음을 삼키고자 고개를 들어보였다.
그렇게 올려다 본 하늘.
역시나 거짓말처럼.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세상의 하늘은, 너무도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
“괜찮단다 시안. 모두 괜찮아질거야.”
시안의 어머니, 세실이 시안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포근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시안은 그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나 죽었구나.
시안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죽었다.
시안은 그런 어머니의 꿈을 자주 꿨었다.
하지만 로즈웰과 네이슨을 꺾은 그날.
암스베르크에서의 그 날 이후, 시안은 다시는 이 꿈을 찾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이후로 시안은 세실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 세실이 나타난 이유는 하나.
이곳은 죽음 이후의 세계.
시안은 끝내 죽음을 맞이했고, 그로써 어머니와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시안이. 못 본 사이에 많이 늠름해졌네?”
역시나, 꿈 속에서 반복되던 대사가 아니었다.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다르다.
“얼굴도 많이 상했고.”
세실의 손이 시안의 볼을 감싸안았다.
세실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시안은 괜시리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후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몰랐건만.
시안은 웃음을 지으며 볼을 감싸는 세실의 손을 어루만졌다.
세실은 그런 시안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엄마는 만족한단다.”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해보였다.
세실이 시안의 볼을 감싸던 손을 빼보였다.
아쉬면서도 섭섭한 표정의 세실이었지만.
시안을 바라보는 세실은 자랑스러움이 가득 들어차있었다.
“고맙단다 시안. 시안의 어머니로 살게 해줄 수 있어서··· 정말로 고맙단다.”
그 말을 끝으로 세실의 몸이 서서히 흐릿해져갔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배경들 또한 서서히 흐릿해져갔다.
시안이 뭘 어찌할 틈도 없이 세실과 주변의 공간이 사라져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새하얀 백광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
세실이 사라진 공간에는 새하얀 백광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시안은 눈앞의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주변을 훑어보던 그때.
“생각보다 빨리 왔네?”
한쪽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쩌어억─!
백광만이 가득했던 공간의 한쪽이 갈라지며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짙은 흑발의 사내.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어벙한 분위기.
“오랜만이지?”
사내가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