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 엑시드, 그 너머(2)
알고 있었다.
지금의 싸움이 끝이 아니라는 것쯤은.
언제고 다시 이 싸움은 재개될 것이라는 것을.
천 년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처럼.
앞으로의 천 년동안 이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임을.
또 그 뒤의 천 년동안 이 싸음은 이어질 것임을.
그리하여 결국은, 악마들이 승리하는 날이 올 것임을.
시안은 알고 있었고.
“카일도 알고 있었습니다.”
카일도 알고 있었다.
【“부,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경악 어린 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버둥치는 카이의 발버둥이 손아귀로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리고 그것은 신(神)의 몸부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없이 나약한,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발버둥.
카이는 지금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시안은 그런 카이의 몸부림을 바라봤다.
그런 카이의 모습 뒤로 펼쳐진 흐릿한 시야 너머.
시안이 보았던 카일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인과에 기록되지 않는 일이다.’
갑작스러운 시스템의 오류와 들려온 카일의 말.
그 속에서 카일이 보여준 건 하나의 검(劍)이었다.
카일은 그 검(劍)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악마들이 부활하는 것은 인과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원인에 따른 결과, 인과(因果).
악마들은 존재의 죄악에 기생하며 태어난다.
따라서 존재의 죄악이 있는 한, 악마들은 죽지 않는다.
존재의 죄악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존재한다.
존재가 삶을 향유하면서 죄악은 반드시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존재라는 원인(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악마의 부활이라는 결과(果)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절대적인 인과의 법칙이며, 그 어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렇기에 악마들은 불멸(不滅)의 존재였다.
존재가 살아있는 조건 하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부활한다.
인과의 법칙에 의해 그들의 부활은 보장받는다.
‘하지만 부활의 원인(因)을 없앤다면 어떠할까.’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따라서 부활의 원인이 없으면 당연하게도 부활이라는 결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인과의 법칙이니까.
인과의 법칙으로 보장되는 악마 부활.
그것을 없앨 방법은 같은 인과의 법칙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부활의 원인을 없애 악마들에게 완전한 죽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카일이 안배한 검(劍)의 핵심이었다.
‘허나, 이 또한 결국 인과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은 원인을 없애야만 했으니까.
이미 인과의 법칙에 의해 보호받는 원인, 인(因).
그 원인을 지워버려야한다는 건, 결국 인과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이었으니까.
A를 하려면 B가 필요하다.
허나, B를 하려면 A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해서 카일은 고개를 저었었다.
결국 불가능한 싸움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불태우려고 했었다.
‘타 차원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려했었다.’
카일이 준비하고 안배한 검은··· 자살의 검이었다.
하지만 카일은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악마에게 잠식당한 것은 자신만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같은 아르나이즈 동료들.
그들 또한 모두 악마에게 잠식당했다.
결국 스스로의 문제만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악마라는 존재 자체를 없애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인과의 법칙을 부정한 존재가 있었다.’
카일과 다른 차원의 존재.
이 무수히 많은 차원 중 딱 한 명.
그 말도 안되는 일을 성공한 존재가 있었다.
인과의 법칙을 부정하면서도, 인과의 법칙을 따르는.
그 모순적인 일을 행한 존재가 있었다.
카일은 그 존재에게서 그 모순적인 일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허나, 나는 할 수 없었다.’
이미 교만이라는 악마에게 잠식되어 있었기에.
이미 악마라는 인과에 얽매여있었기에.
또한 인간이라는 인과의 한계가 있었기에.
카일은 스스로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카일은 안배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이곳에 남겼다.
“카일은 당신에게 잠식당했을 때부터, 이 검을 준비했습니다.”
카일은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했다.
시안이 본 기억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카일이 겪어온 시간은 그야말로 억겁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하여 완성할 수 있었고.
동시에 완성하지 못했다.
【“있을 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카이는 발악을 하듯 소리쳤다.
지금 시안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정확한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안이 지금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의 인(因)을··· 없애버리겠다고?”】
악마라는 존재를 지워버린 다는 뜻이 아니었다.
존재를 지워버리는 건 신(神)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악마들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었다.
죽은 악마들이 부활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악마 군주들이 부활하는 원인(因).
인과의 법칙에 구속된 인(因)을 지워버림으로써 말이다.
그 인(因)은 ‘존재의 죄악에 기생한다.’ 였다.
그렇게 인(因)이 지워지면 악마들은 더 이상 존재의 죄악에 기생할 수 없다.
존재의 죄악에 기생할 수 없으니 부활 또한 없다.
원인(因)이 없으면 결과(果) 또한 없으니.
부활이라는 과(果)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적인 인과의 법칙.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세계의 법칙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카일은 이를 이렇게 명명했다.
‘신(神)을 베어내는 검(劍).’
카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 검(劍)을 안배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카일은 첨언했다.
‘이 검(劍)은 인과에 기록되어있지 않은 검이다. 그렇기에 인과를 베어낼 수 있는 검이기도 하다.’
허나.
‘한 번 시행되면 이 검(劍)은 인과의 기록으로 남는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그 위에 무엇을 적든 그것은 기록되지 않은 새로움이다.
허나, 그 위에 무언가가 적히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니라 적혀진 하나의 기록이 된다.
‘기회는 한 번이다.’
그래서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
인과의 법칙이라는 도화지 위에.
인(因)을 지워 없앤다라는 새로움을 남기는 순간은 딱 한 번뿐이다.
그 이후엔 적혀진 하나의 기록이 된다.
그리고 인과의 법칙은 그것을 새로운 법칙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법칙 밖의 모순은 존재할 수 있다.
허나, 법칙 안의 모순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악마들의 인(因)을 없애는 기회는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시도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카일은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천 년이란 세월을 바쳤다.
천 년전부터 이 모든 것들을 안배했다.
그런 카일의 유지를 시안은 이어받았다.
해서, 시안은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발을 디뎌야만 했다.
신(神)을 베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인과의 법칙이라는 도화지 위에 깃펜을 들 자격.
그것이 바로 엑시드(Exceed)의 경지였으니까.
그래서 시안은 동료들의 희생에도 검을 잡아야만 했다.
또한 모든 죄악들을 하나로 묶어야만 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기에 모든 악마들의 인(因)을 한 번에 지워야만 했다.
그래서 시안은 악마에게 기꺼이 정신을 열어주어만 했다.
그리하여 당장이라도 시안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군주들을 시안의 존재 속에 가둬놓아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교만이 갖는 신격.
그 신격을 깨부숴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만 했다.
그리하여 지금.
천 년전부터 이어져온 수많은 이들의 유지.
그 모든 것들이 맞물리며, 단 한 번의 기회가 다가왔다.
【“어, 어찌하여···!”】
카이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만일 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죽음은 곧 끝이다.
악마들은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시안의 손에 잡혀있는 교만의 죄악은 물론.
시안 안에 구속된 여섯의 죄악들도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부활이라는 결과(果)가 발동될 원인(因)이 없어지기에.
원인이 없으면 그에 따른 결과도 없기에.
【“허나, 그 또한 인과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에 따른 대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과의 인(因)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결국 인과의 법칙에 관여하는 셈이었으니까.
그렇게 인과의 법칙을 거스른 대가는 마땅히 정해져있었다.
오로지 신(神)만이 가능한 일.
허나, 한낱 피조물이 신(神)이라는 인(因)을 얻을 수 없으니.
합당하지 않은 인(因)에 따른 결과(果)는 존재의 소멸이었다.
그 어떤 예외도 없었다.
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년 전.
카일 또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으니까.
인과의 법칙에 관여하고 안배한 것.
그것만으로 카일은 죽어 스러졌다는 뜻이다.
【“대체··· 대체 왜···!”】
그렇기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카일의 희생이었다.
카일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스스로의 파멸을 만들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말이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그건 시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일의 기억을 보고 겪었음에도 시안은 알 수가 없었다.
카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카일은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던 것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속에서.
자신의 의지조차 의심해야하는 상황에서.
카일은 무엇을 위해 싸워왔던 것일까.
시안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시안이 지켜본 카일의 마지막 기억 속.
‘만에 하나. 왕대주를 만날 수 있다면. 행여, 왕대주가 살아있다면··· 전해다오.’
카일은 이렇게 말을 할 뿐이었다.
‘천하를 마(魔)로 물들이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노라고. 반드시 돌아가 복수를 하겠다는 약속 또한 지키지 못할 것 같노라고.’
허나.
난 샤를롯.
이름이··· 캉일이라고 했었나?
‘동고동락하는 벗을 만들겠다는 약속과.’
아, 아무튼! 어, 어디 다친 데 있으면 저한테 말해요.
저기, 뮤리엘이라는 성녀말고 저한테요! 알겠죠? 꼭이요!
‘온 천하를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정인을 만들겠다는 약속과.’
카일님! 이 감자 하나 드셔보시지요! 실한 것이 아주 맛나다고요!
어제 아저씨가 그러던데요. 노에미님은 엄마가 없···읍읍!
하, 하하하!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천하에는 울부짖는 비명만이 있지 않음을 깨닫겠다는 약속.’
그리하여 천하를 할퀴는 검이 아니라.
천하를 담아내는 검이 되어라달라는 약속.
‘그 약속만큼은. 지킬 수 있었노라고.’
왕대주를 만나게 된다면, 부디 나의 이야기를 전해다오.
그렇게 카일은 자신의 존재를 불태웠다.
신(神)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을 안배하며 죽어 사라졌다.
그리하여 지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치솟아올랐다.
그 아득한 너머의 힘을 마주하며 카이는 소리쳤다.
【“이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뜻이냐!”】
현재 시안의 경지를 인정한다.
천 년전, 카일의 안배 또한 인정한다.
세계를 규정하는 인과의 법칙.
그 법칙의 모순을 비집은 것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악마들은 죽을 것임 또한 인정한다.
결국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더없이 인정한다.
【“너 또한···! 너 또한 죽어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시안의 희생이 기반되어야한다.
카일과 마찬가지로 시안 또한 희생을 해야만 했다.
카일조차 이 일을 안배하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바쳤다.
아무리 시안이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았다고 한들.
시안이 인과로 정립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라고 한들.
【“너 또한 반드시 소멸할 것이다!”】
시안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죽는다.
인(因)을 지우는 존재의 격이 합당하지 못하기에.
시안 또한 결코 신(神)은 아니었기에.
그 결과는 소멸이다.
단순히 안배하는 것만으로도 카일이 죽었다.
하물며 직접 그 일을 실현하는 것은 말할 건덕지도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시안은 망설이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존재가 붕괴되며, 타오르는 와중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아마 어쩌면.
카일도 이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 아마 그래서 였던 모양이었다.
카일은 마교의 교주, 천마(天魔)였다.
카일은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낼 수 없는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자였고.
힘없는 자들의 울분을 대신하여 부르짖는 첫 번째 검이었다.
시안은 그런 카일의 후계자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안은 카일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카일은 애초에 후계자를 남기지도 않았다.
시안 스스로가 카일의 후계자라고 자처했을 뿐이었다.
시안은 카일의 후계자가 아니다.
엘란두르의 막내, 시안 엘란두르도 아니었다.
세상을 구원한 아르나이즈도 아니었고.
아르나이즈들을 이끄는 리더는 더더욱 아니었다.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카르제의 후계자 또한 아니었다.
천하의 둔재.
아주 볼품 없는 사내.
그렇기에 평범조차 할 수 없었던 남자.
그리하여 변방에 위치한 작디 작은 영지.
버림 받은 자들의 성지에서 살아가는.
영지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픈 이름.
“저는 루벤의 영주니까요.”
시안 루벤이라는 이름.
그 이름 하나면, 이유는 충분했다.
사아아아···.
시안의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 사이로 알 수 없는 환각이 비쳐보였다.
아니, 알 수 없다는 말은 이제 와 조금 우스웠다.
펼쳐진 지옥도.
그 사이로 드리운 기나긴 길.
그 길의 끝에는.
그리고 시안의 옆에는.
한 명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이 미남자가 누군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 또한 이제 와 우스웠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어느덧 카일과 어깨를 나란히 했음에.
또한 카일과 똑같은 죽음을 마주함에.
시안은 시선을 들어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의 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절벽의 낭떠러지였다.
시안이 걸어온 이 지옥길의 끝은, 역시나 파멸이었다.
그토록 노력했던 결과가 파멸이라니.
시안은 허무했지만 딱히 후회하지는 않았다.
루벤의 영주로서 영지민들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이로써 루벤과 대륙에는 더 이상의 위협이 없을테니까.
그거 하나면 만족한다.
시안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어딘가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시안은 긴 숨을 내뱉으며 카일에게 말했다.
결국, 당신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되었네요.
조금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안의 말에 카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안 또한 고개를 돌려 카일을 마주 바라봤다.
그리고 카일이 툭.
시안의 등을 떠밀었다.
무슨···? 이라는 의문이 들기도 잠시.
시안의 몸이 일순간 앞으로 기울어졌다.
시안은 황급히 중심을 잡고자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이미 떠밀린 발은 낭떠러지의 허공을 딛고 있었다.
몸은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탁.
추락하는 허공 위로,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촤아아아─.
그와 함께 허공 위로 새로운 길이 펼쳐졌다.
그 길은 지금까지 시안이 걸어온 길보다 더 길고 까마득했다.
나의 길은 여기서 끝이 났지만···.
뒤쪽으로 카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 바라본 그곳엔 카일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윽고 카일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져갔다.
마치 그곳에 원래 없었던 것처럼.
미처 잡을 틈도 없이, 카일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렇게 사라지는 카일의 모습에 시안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카일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시안은 그렇게 홀로, 끝도 없이 펼쳐진 까마득한 길에 남겨졌다.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까마득한 길의 끝.
시안은 어떤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시안의 기억 속에 있는 사내였다.
정확히는 시안이 아닌 카일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사내였다.
사내는 시안을 바라보며 씨익.
사아아아아···.
환각이 흩어진다.
그리고 부서지는 환각 속.
【“아니다··· 아니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발버둥치는 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는 발악을 하며 시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폭사하는 끔찍한 힘.
붕괴되는 시안의 육체로 치솟는 형용할 수 없는 어둠.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그리고 펼쳐지는 경이로운 힘에.
무(武)의 영역을 뛰어넘는 아득한 힘에.
“오의(澳意).”
카이는 까마득한 너머의 영역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감히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차마 닿는다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곳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발악을 해도.
거짓된 신(神)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엑시드(Exceed).
그 너머.
초월(超越).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오의(澳意).
극마수라(極魔修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