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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313화 (313/322)

313화 - 최후의 전투(2)

새빨간 광채로 뒤덮인 100만 쌍의 눈.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 말할 수 없었다.

“신기전 장전!! 장전된 신기전 사수들은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발사하라!!”

“마법 병단 또한 지시를 기다리지 마라!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내어라!!”

푸슈슈슈슉!

콰아아앙!!

빗발치는 화살 소나기와 마법들이 성전사들에게로 쏟아져내렸다.

풍경을 초토화시키며 달려드는 성전사들이 휩쓸려 사라졌다.

“신을 위하여!!”

“신을 위하여!!”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모든 이들을 쓸어버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저들은 더 이상 성전사라 볼 수 없었다.

광전사 혹은 광신도.

앞선 전사가 죽으면 그 시체를 밟으며 나아간다.

죽은 시체를 방패 삼아 저돌적인 돌진을 선보였다.

저들은 인간이라 칭할 수도 없었다.

맹목적인 살의로 빚은 짐승.

그런 짐승들의 수가 무려 100만이었다.

죽음을 도외시하며 달려드는 짐승들이 100만이었다.

차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건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신기전과 마법 병단의 마법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루벤의 방벽이 버텨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이전까지는 루벤의 방벽이 막아주고 있었다.

100만의 광기를 빈틈없이 막아주었기에 마음 놓고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방벽이 뚫렸다.

“모두 무너진 방벽 앞으로 집결하라!!”

루카스는 이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모든 루벤의 병사들이 뚫려버린 방벽 앞.

그렇게 모인 병력은 대략 3천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루벤의 모든 병력이었다.

100만에 달하는 성전사··· 아니, 짐승들을 막아내기엔 터무니 없는 수였다.

“대형을 전개하라!!”

그러나 루카스는 결의를 다졌고.

루벤의 병사들 또한 두려워하지 않았다.

숫자는 터무니 없이 밀리지만 전력은 그렇지 않았다.

3천의 병사들은 모두 루벤의 병사들이다.

병사 하나 하나가 기사급의 수준이었고.

병사 한명 한명이 모두 드래곤의 장비로 무장했다.

대륙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력.

물론 이 정도로는 100만 대군을 모두 대적할 수는 없었다.

“단 한 놈도 루벤 안으로 들여보내서는 안된다!”

그러나 무너진 방벽을 대신하여 새로운 루벤의 방벽이 되어줄 수는 있었다.

루카스와 3천의 병사들은 무너진 방벽 위로 대열을 갖추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아아아아아아─!

또 다시 기이한 힘이 느껴졌다.

그건 방금 전, 루벤의 방벽을 무너뜨렸던 힘과 똑같은 힘이었다.

설마설마하며 바라본 하늘 위.

그곳엔 카이가 검을 앞으로 뻗어 힘을 사출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콰아아아아아─!!!

카이의 검 끝으로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쏘아져나갔다.

어찌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대응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 끔찍한 힘 앞에서 아무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다가오는 힘의 파동을 바라보던 그때.

쉬이익!

한 흐릿한 형체가 힘의 파동으로 쏘아져나갔다.

천 년의 원귀, 레아.

레아는 가진 바 사념을 폭사시켰다.

이윽고 쩌어어엉─!

커다란 굉음과 함께 하흑···!

레아가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추락했다.

기나긴 백은색의 머리가 마구잡이로 휘날리며 콰아앙!

추락한 땅으로 커다란 충격이 터져나왔다.

그런 레아의 희생 덕분일까.

쏘아지던 힘이 상당히 약해져있었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공간을 진동시키며, 루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힘의 파동을 향해 일렁거리는 푸른 안광이 긴 잔상을 남기며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마스터 상급의 기사 데스 나이트, 켄드릭.

켄드릭은 앞선 힘의 파동을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서걱─!

깔끔한 절삭음이 들려오며 힘의 파동이 반으로 갈라져 사라졌다.

카이는 별 다른 놀람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기는 커녕 흥미로운 눈빛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마치 벌레의 움직임을 보기라도 하듯.

카이는 두 사람의 발악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타닥, 바닥으로 착지한 켄드릭이 다시금 푸른 안광을 일렁거렸다.

그리고 뒤쪽의 루카스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흑사자 기사단의 지휘를 맡겨도 되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루카스는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벤의 방벽을 틀어막지 못하면 전쟁은 패배한다.

그러나 카이를 막지 않아도 전쟁은 패배한다.

루벤의 방벽은 루카스가 어찌 틀어막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카이를 막을 수 있는 건 레아와 켄드릭.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최선을 다하겠네.

켄드릭을 그 말과 함께 콰앙!

땅을 박차며 카이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루카스는 그런 켄드릭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저 둘을 믿어야한다.

저 둘이 카이를 막아서줄 것을 믿어야 한다.

“사특한 이단자들에게 죽음을!”

“신의 뜻을 위하여!”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신성 제국의 전사들.

“흑사자 기사단들 또한 합류하라! 차륜 대형으로 변경! 병사와 기사들을 가리지 말고 창병은 앞열로!”

루카스의 외침에 병사들과 기사단원들이 질서정연하게 대형을 갖추었다.

마치 한몸처럼 딱딱, 제 자리를 찾아갔다.

“무너진 방벽을 대신하여, 우리가 루벤의 방벽이 된다!”

루카스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성전사들이 파도처럼 대열을 덮쳐왔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나오며 공간 전체가 뒤흔들렸다.

도무지 사람과 사람의 부닥침이라 볼 수 없는 굉음이었다.

힘과 힘.

서로 다른 두 힘의 충돌.

“크아아악!”

“끄악!”

그 충돌의 승자는 루벤이었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굳건한 대열.

그것은 가히 또 하나의 방벽이나 다름 없었다.

쾅! 콰쾅!

100만의 물결은 끊임없이 새로운 방벽을 두들겼다.

그러나 뚫리지 않았다.

무너지지도 흐트러지지도 않았다.

콰직! 콰사삭!

뿌리 깊은 나무처럼.

또 하나의 방벽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빈틈없이 틀어막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하루까지 버틸 수 없다.’

이 상태로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없다.

정확히는 하루를 버틸 수가 없었다.

하루를 버티면 이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그 하루가 너무도 고되었다.

지금이야 루벤의 병사들이 방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기전의 화살과 마법 병단의 마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룡거를 비롯한 각종 공성병기들이 뒤쪽의 성전사들을 헤집고 있었다.

하지만 성전사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100만 대군이라는 숫자를 모두 감당하기란 불가했다.

루벤의 병사들에게도 한계는 존재했다.

3천의 병력은 반드시 그 한계를 맞이한다.

얼마 나지 않아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차츰차츰, 무너질 것이다.

자그마한 틈이 발생할 것이고.

그 틈은 곧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다.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루카스는 황급히 고개를 거세게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었다.

지휘관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점막처럼 달라붙어 부정적인 생각이 떨쳐내지지 않았다.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자꾸만 루벤의 미래가 환각처럼 펼쳐졌다.

불타올라 스러지는 루벤의 풍경.

무참히 유린당하며 죽어가는 루벤의 영지민들.

하루.

딱 하루를 버티지 못해 생기는 결과였다.

고작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었건만.

그 하루가 너무도···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루카스는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럼에도 해야한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곳을 지켜야한다.

승산은 없으나 최대한 버텨야한다.

루벤의 경비대장으로서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루카스는 검을 꽈드득,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그리고 파도처럼 쏟아지는 성전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그때..

쿠구구구구궁···!

거대한 땅의 울림이 발 아래서 느껴졌다.

숲의 전체가 떨려오는 듯한 진동.

지축이 뒤흔들리는 커다란 진동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만 같았다.

설마 카이가···?

루카스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추었다

황급히 시선을 돌아봤고, 금방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카이는 레아와 켄드릭이 막아서고 있었으니까.

막아선다기보다는 귀찮게하고 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카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뿌우우우우우우─!

기나긴 뿔피리 소리가 고막을 울려왔다.

그것은 숲의 메아리를 타고 전장으로 울려퍼져나갔다.

치열한 전투가 행해지던 전장.

전장의 모든 존재들이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마치 이 공간에 드리운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루카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전장의 모든 이들 또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

그건 어둠의 숲이 지니는 풍경.

그 풍경 끝에서 끝까지 가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인파의 행렬이었다.

“뭐, 뭐지···?”

“갑자기 이게 무슨···?”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성 제국의 성전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루카스를 비롯한 루벤의 병사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당혹스러움 사이로 누군가 앞으로 나서보였다.

태양빛을 품은 듯한 금발의 사내.

더불어 황가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규합한다고 늦으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제국의 황태자, 콘라드.

콘라드는 한 발, 걸음을 내딛어 앞서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은 전장을 바라보며.

“다행히 늦지 않은 것 같군.”

콘라드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게 다 아버님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 콘라드의 뒤쪽으로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숲의 어둠을 가르며 정갈한 사내와 곰과도 같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쨌든 늦지는 않았다.”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북부의 오슬리 바텐베르크.

그의 아들 벤딩턴 바텐베르크.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때가 되었군요.”

“고작 이런 도움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제국 서부의 수많은 백성들.

“성자님께서 위기에 처해있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저희는 천지무식해서 신의 뜻이니 뭐니. 그런 거 잘 모릅니다.”

“하지만 천지무식해도 받은 은혜는 알습죠. 암요!”

신성 제국에서 역병으로 고통받던 자들.

그러나 시안에게 그 목숨을 구제받았던 이들.

“저들은 신의 뜻을 곡해하는 자들이에요. 허나, 같은 교단의 사제로서 저희들 스스로가 과오를 담아야 해요.”

마지막으로 신성 제국의 성녀, 아리아와 그녀를 따르는 여명의 사제들까지.

모두가 시안이 걸어온 길에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모인 그들은 차마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숲의 풍경 끝에서 끝.

시야에 담을 수 있는 모든 풍경 전체.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해있었다.

그들 모두가 진득한 투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루벤을 위협하는 광신도들을 향하고 있었다.

내려앉는 긴장감.

일촉즉발의 상황.

그 긴장감 사이로 콘라드가 한 발 앞으로 나서보였다.

더하여 선명하게 빛나는 조디악 소드(Zodiac Sword)를 하늘 높이 뽑아듦에.

“긍지 높은 샤를롯의 후예들이여!!!!”

콘라드의 기세가 폭발한다.

폭발하는 기세를 이어 받으며, 로열 나이츠들이 질서 정연하게 도열했다.

콘라드는 그들의 가장 앞에 서서, 조디악 소드를 앞으로 내지르며 소리쳤다.

“제국을 위협하는 적들을 섬멸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숲과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함성.

반격의 함성이, 전방위를 휩쓸며 퍼져나갔다.

#

제국의 로열 나이츠와 북부의 기사들.

서부의 병사들과 신성 제국의 신민들.

마지막으로 여명 교파의 사제들까지.

와아아아아아아아─!!

쿠구구구구구궁···!!

거대한 해일과도 같은 대군의 뜀박질에 지축이 뒤흔들리며 떨려왔다 100만의 대군을 휩쓸어갔다.

그들이 내뿜는 전의와 기세에 공간이 진동해왔다.

“이, 이건···!”

“저들이 대체 왜···!”

그것은 100만의 대군마저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이성 마저 도려내어진 광신도들이자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터져나오는 전장의 기세는 그들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타닥!

가장 앞선 대열로 콘라드가 치고 달려갔다.

“전하!”

갑작스러운 콘라드의 행동에 예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로열 나이츠 제 2기사단의 단장이자 황태자 직속 호위 기사.

“예일!! 로열 나이츠의 지휘를 부탁한다!”

콘라드는 그런 예일에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콘라드가 향한 곳.

-네가 왜 여기에···?

그곳은 다름 아닌 레아와 켄드릭이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콘라드의 난입에 레아가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켄드릭을 도와 카이를 막아야한다는 사실조차 잠시나마 망각해보였다.

카앙─!

다행히 콘라드가 그 자리를 메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켄드릭이 크게 당할 뻔한 상황이었다.

-여긴 위험해!

그렇기에 레아는 콘라드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레아와 켄드릭이 막고 있는 카이.

카이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칠흑의 절대 군주이자 첫 번째 죄악, 교만.

실재하는 신(神)과도 같은 존재였다.

-네가 끼어들 곳이 아니야!

콘라드가 감히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애들 장난과도 같은 일이 아니다.

신의 자비를 바라는 일도 없었다.

죽는다.

한순간의 실수로 죽음이 오고 간다.

그렇기에 콘라드는 여기에 있으면 안된다.

저쪽 로열 나이츠들에게 호위 받으며 있어야 한다.

레아는 콘라드에게 질책하며 소리쳤다.

“카이를 막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콘라드의 의지는 확고했다.

천 년전, 샤를롯이 사용했던 조디악 소드.

샤를롯은 조디악 소드를 움켜쥐며 전의를 다졌다.

“루벤은 로열 나이츠와 변경백이 있으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카이가 개입하면 안됩니다. 카이가 루벤에 개입하면···.”

그리하여 루벤의 방벽 자체를 다시 한 번 무너뜨린다면.

“모두가 끝입니다.”

이 전쟁은 더 이상의 희망이 없었다.

“그러니 카이를 막아야만 합니다.”

콘라드는 그렇게 말을 끝마쳤고.

레아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콘라드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켄드릭과 레아가 카이를 막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켄드릭과 레아. 둘 만으로 카이를 막기엔 버거웠다.

솔직히 막고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귀찮게 하고 있다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었다.

그만큼 카이의 강함은 말이 안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던 순간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콘라드를 끌어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기도 했다.

그런데 콘라드는 전혀 말을 들어먹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저는 샤를롯 대제의 피를 이어받은 후예입니다. 분관조님의 떳떳한 후손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복원해주신 샤를롯 대제의 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께 방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의지 가득한 콘라드의 말에 레아는 실소를 흘렸다.

아까 전, 엘레나도 그렇고.

지금 콘라드도 그렇고.

-너희들은 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는 건지.

“칭찬으로 새겨듣겠습니다.”

콘라드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카이는 하늘 위에 가만히 떠 있었다.

아래로 향한 군림의 시선은 난입한 불청객, 콘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황태자를 맞이하는 건데. 그리 내려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콘라드는 질책하듯 말했고.

카이는 마땅한 답을 내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찮은 벌레를 마주하듯.

무의미한 발악을 관조하기라도 하듯.

【“우둔한 피조물이로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런 카이의 모습에 콘라드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더 이상 카이가 아니다.

아니, 카이는 카이가 맞았다.

그러나 콘라드가 알고 있는 제국의 별, 카이가 아니었다.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교만의 끝.

그 끝에 서 있는 자.

【“보기에 심히 가련하구나.”】

실재하는 신(神).

키이이이잉─!

카이의 전신으로 절대적인 기세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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