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 폭풍전야(2)
어둠의 숲에 위치한 이름 모를 곳.
빽빽하게 들어찬 숲이 시야를 가득 가려왔다.
멋 모르고 하늘로 뻗은 나무는 하늘을 가리웠고.
대낮이었음에도 태양마저 가리워 초저녁의 풍경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낮은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 또한 무성하니.
시야 어디에도 수풀이 비어있는 곳이 없었다.
“전열 정비!”
“대열을 갖춰라!”
그런 울창한 숲 사이로 크나큰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앞선 시야로 일련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하얀 갑옷을 입은 순백의 기사단.
다름 아닌 교황청을 수호하는 신성 기사단들이었다.
신성 제국은 샤를롯 제국의 로열 나이츠와 쌍벽을 이루는 기사단이었다.
당연히 그 실력이야 말할 건덕지가 없었다.
물론 신성력을 다루는 신성 기사이기에 오러의 경지를 측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굳이 비유하자면 로열 나이츠들과 같이 모두가 엑스퍼트 경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취이익!!”
그런 신성 기사단의 앞으로 오크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오크들이자, 광폭화(Over Drive)가 진행된 마수.
취이이이익!
취이익!
그 수가 무려 수 천이었다.
수 천의 오크가 내뿜는 콧바람이 바닥으로 깔리며 작은 먼지 바람을 일으켰다.
숲의 어둠 속, 새빨간 광채를 드리우는 오크들.
평범한 오크여도 쉽사리 대적할 수 없는 숫자였다.
“방패 전진!”
그러나 신성 기사단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한 신성 기사가 손을 치켜듦에, 방패를 든 신성 기사들이 한몸처럼 앞으로 나갔다.
착착, 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신성 기사단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화아아아악─!
이윽고 신성의 빛이 터져나오며 방패 위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빛이 스며든 방패들을 하나로 엮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주위로 신성의 빛이 가득채워지며, 이내 하나의 거대한 빛의 방패가 생성되었다.
“취익!”
“취이이익!”
생소한 힘에 오크들이 콧바람을 길게 내뿜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은, 오로지 포악함만을 내포하고 있었다.
곧이어 수 천의 오크들이 땅을 박차며, 내딛는 땅의 울림이 크게 떨려왔다.
그것은 가히 작은 지진이 난 것만 같았고, 이내 그 진동이 방패에 닿았을 때.
꽈앙─!
꽈꽈꽝─!
오크들이 신성의 방패에 튕겨져 날아갔다.
뒤를 이은 오크들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으나 뚫어내지 못했다.
“착검!”
뒤이어 신성 기사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검 위로 깃드는 신성의 빛이 방패 사이를 가로지르며 쇄도해갔다.
콰작─!
퍼서석─!
그리고 펼쳐진 무차별한 학살의 현장.
광폭화가 진행된 마수라는 건 의미가 없었다.
수 천의 오크 무리들이 사라지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패트릭은 그 학살의 현장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처참하게 도륙당하는 오크 무리들은 실로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마수라고는 해도 피륙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였다.
그렇기에 필요한 일이라고는 해도 잔혹함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콰직─!
하지만 신성 기사단들의 손속은 사정이 없었다.
살덩이를 짓이기며 눈을 파내고, 머리 속을 손으로 헤집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법 하건만.
패트릭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시선을 낮게 내리깔며 담담히 혹은 무심히.
도륙되는 수 천의 오크들을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단장님.”
일순간 패트릭의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트릭이 시선을 돌리자, 한 신성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곧 루벤의 영역에 당도할 것 같습니다.”
신성 기사의 말에 패트릭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루벤의 상황은 어떻지?”
“별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엘란두르 쪽으로 병력을 움직인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어진 신성 기사의 보고에 패트릭은 실소를 흘려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 목 앞까지 검이 들이밀어진 상황이거늘.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으니까.
“누가 사특한 이단의 무리들이 아니라고.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군.”
패트릭은 비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현재 패트릭이 지휘하는 2만의 신성 기사단.
신성 기사단은 교황청을 수호하는 정예의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오크 무리들을 도륙내고 있는 신성 기사들은 평범한 신성 기사들이 아니었다.
이단자들을 처단하는 이단 심문관 소속의 신성 기사들.
신의 뜻을 저해하는 사특한 무리를 심판하고.
가장 앞서서 신의 뜻을 실현하는 교황청 최고 전력.
이단의 무리들에게 신의 잔혹함을 선보이는 최강의 전력들이었다.
그리고 패트릭은 신성 기사단의 단장임과 동시에.
이단 심문을 총괄하는 이단 심문장이었다.
그만큼 신에 대한 믿음이 깊었고.
그만큼 신을 위한 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신성의 힘 또한 강력했다.
물론 루벤의 힘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엘란두르의 30만 대군을 막아낸 저력이 있는 영지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 루벤은 병력이 없었다.
엘란두르에 대한 반역.
그 반역을 위해 대부분의 병력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으니까.
그야말로 빈집이나 다름 없었다.
병력이 없는 루벤을 점령하는 건 그닥 일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패트릭의 말과 함께 앞선 신성 기사가 성호를 그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대열을 갖춰 다시 진군을 함에.
얼마 지나지 않아 루벤의 영역에 당도할 수 있었다.
아울러 루벤의 풍경을 실제로 두 눈으로 마주함에.
“확실히···.”
패트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벤을 둘러싼 저 방벽.
그 주위를 에워싼 수많은 방비 시설들.
천혜의 요새 혹은 철벽.
저게 과연 뚫리기는 하는걸까?
쉬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 만큼 루벤의 방벽은 견고했다.
엘란두르의 30만 병력이 뚫어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2만의 병력으로는 전혀 생채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온전한 루벤일 때의 일이었다.
방벽은 그 방벽을 지키는 병사가 있어야 철벽이 된다.
텅 빈 방벽은 그저 주인 없는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사특한 이단의 본거지다. 모두 성전을 준비하라!”
패트릭의 외침과 동시에 신성 기사들이 가진 바 무기를 꺼내들었다.
무려 2만의 신성 기사들에게 터져나오는 신성의 빛은 어둠의 숲에 드리운 어둠을 잠시나마 몰아내었다.
패트릭은 2만의 신성 기사단 가장 앞에 서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뽑아들며, 앞선 루벤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 여인?”
웬 여인이 루벤의 방벽 위에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다른 누구와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인은 말 그대로 홀로 방벽 위에 서 있었다.
시야가 멀어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특징 지을 수 있는 것은 태양빛을 닮은 금발뿐이었다.
“당신들은 루벤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입했습니다!”
이윽고 여인에게서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는다면, 관련한 책임을 묻겠습니다!”
또한 외침에는 당돌한 기세가 깃들어있었다.
멍청하지 않은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여기 2만의 신성 기사들이 루벤을 공격하려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루벤은 스스로를 지킬 병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여인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응당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여인은 위축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하니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패트릭은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그리고 살짝, 기세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정신을 집중하여 루벤의 방벽 너머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알 수가 없었다.
탐색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루벤을 둘러싼 방벽은 단순한 방벽이 아니었다.
패트릭은 기세를 갈무리하며, 옆의 신성 기사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루벤 안에 숨어있는 병력들이 있나?”
“일부 경비병 정도는 남아있겠으나··· 군대 단위의 병력은 없습니다.”
“확신할 수 있나?”
“루벤의 병력들이 떠나는 광경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신성 기사의 확답에 패트릭은 침음을 삼켰다.
혹시라는 가정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되돌아왔을 가능성은?”
“정찰을 붙여놨습니다. 되돌아오는 기색이라도 있었으면 아마 제게 바로 보고가 올라왔을겁니다.”
그럼에도 신성 기사는 망설임을 내보이지 않았고.
그에 따라 패트릭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기사, 누구의 뜻이고, 누구의 계획이란 말인가.
이 계획에 있어 허점은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저건 허세였다.
패트릭은 자그마한 실소를 지어보였다.
잠깐이나마 망설였던 검에 힘을 가득 불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
패트릭이 검을 휘둘러 앞선 공간을 베어내었다.
새하얀 신성의 검기가 전방을 향해 쇄도해갔다.
쇄도한 검기는 루벤의 방벽과 충돌하며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루벤의 방벽이 크게 흔들려왔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역시나 루벤의 방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기는 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방벽 위에 있던 여인은 그렇지 못했다.
“하흑···!”
여인이 휘청거리며 고통의 신음을 터트렸다.
충격의 여파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것일까.
자욱히 피어난 먼지 뒤로, 여인의 모습은 초췌해져있었다.
그리고 패트릭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여인의 모습.
왜인지 두려움과 당황의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응당 살려달라며 목숨을 구걸해야만 했다.
허세임을 들켰으면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어야만 했다.
헌데 여인은 그러지 않았다.
뭐지···? 싶은 물음도 잠시.
“저는 제국의 황녀 엘레나입니다!”
여인에게서 또 다른 외침이 터져나왔고.
패트릭은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자신은 황녀를 위협한 셈이었다.
그 결과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쓴 셈이었다.
어째서 제국의 황녀가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패트릭은 지금 제국의 황녀를 위협한 셈이었다.
더 나아가 신성 제국을 향한 제국의 명분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명백한 실수.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황가가 개입하기도 전에 모든 일을 끝내버리면 되었으니까.
현재 루벤을 지킬 병사들은 없었고.
그렇기에 엘레나를 지켜줄 이들 또한 없었다.
따라서 이대로 루벤을 삼켜버리면 그만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질 뿐이었다.
패트릭은 그 생각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분관조님. 부탁드려도 될까요?”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건 분명 작디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패트릭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엘레나의 목소리를 들은 건 아니었다.
엘레나의 말과 함께 느껴진 어떤 기운.
-후손이 조상님을 막 부려먹는 것 봐. 요즘 황가에서는 그리 가르치니?
실로 끔찍한 사념(死念)을 느꼈을 뿐이었다.
“······!”
패트릭의 두 눈에 뚜렷한 경악이 떠올랐다.
비단 패트릭 뿐만 아니라 2만의 신성 기사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사방으로 드리우는 짙고도 짙은 마기.
먹구름과도 같은 칠흑의 안개가 공간을 잠식한다.
어둠이 대지를 적시며,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다.
패트릭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단 심문장으로서 수준 높은 신성력을 다루는 신성 기사, 패트릭.
그런데···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 피부 끝으로 느껴지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투기.
이건 감히···.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다.
“부려먹다뇨. 제가 어찌 분관조님을 부려먹겠어요. 시안 백작님과 루벤을 위해서 부탁드리는 거죠.”
-말이나 못하면. 이런 것이 후손이라니. 넌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거니?
“그야 당연히 분관조님 아닐까요?”
-······ 쳇.
이윽고 방벽 위로 또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존재.
저건···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어떤 존재였다.
긴 백은색의 머리.
초점 없는 회백색의 눈동자.
천 년의 원귀, 레아.
레아의 회백색 눈동자가 패트릭과 2만의 신성 기사를 훑었다.
-저것들 전부 처리하면 돼?
“네. 그런데 힘들다 싶으시면 시간만 끄셔도 돼요. 결국 목적은 신성 제국의 본대니까요.”
-시간 끌기는 무슨. 저런 잔챙이들이야 금방이지.
“괜찮으시겠어요? 숫자도 숫자고. 그래도 이단 심문관들인데···.”
-다른 곳이었다면 모르겠는데, 여긴 루벤이잖니. 그리고 이런 다수전은 켄드릭보다 내가 더 잘해. 그래서 켄드릭이 아니라 날 여기에 남긴 거 아니였어?
“그건 그렇지만···.”
-됐으니까, 넌 뒤쪽에서 이 언니의 활약을 지켜보고나 있어.
일순간 레아가 방벽 앞으로 나서보였다.
허공을 부유하며 긴 백은색의 머리가 휘날려왔다.
-너희들은 반역자들이니까. 빨리 끝내줄게.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끼야아아아아아악─!
동시에 터져나오는 귀곡성.
사방으로 새까만 사념(死念)들이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살의와 악의. 절망과 분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덩어리 지어져 끓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숲의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여왔다.
치명적인 본능이 경고해온다.
차마··· 인간의 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패트릭은 황급히 신성력을 끌어올려 정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천 년의 세월 속.
끔찍한 해방을 맞이한 포악한 사념.
“끄, 끄윽···.!”
패트릭은 끝내 드리운 사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커헉···!”
패트릭은 각혈하며 쓰러졌고.
“끄아아아악!”
“크하학!”
그 뒤를 따라 2만의 신성 기사단들이 하나 둘씩, 무릎을 꿇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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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으로 향하는 어둠의 숲.
그곳엔 끝도 없는 병력들이 줄을 지어 진군하고 있었다.
새하얀 갑옷을 입고 있는 신성 제국의 성전사들.
성전사들의 대군은 어둠의 숲을 당당히 진군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도려내어진 마수들.
그러나 생존의 본능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둠의 숲을 진군하는 신성 제국의 병력은 자그마치 수 십만에 달한다.
아무리 두려움이 도려내어져있다고는 하나.
저 강대한 대군에 달려들 정신 나간 마수들은 없었다.
그렇게 신성 제국의 병력들은 거침없이 루벤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성 제국의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이단자들의 본거지는 언제 쯤 도착하는가.”
교황, 성(聖) 아나리스토.
“이 속도라면 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듯 하옵니다.”
“5일이라···.”
교황은 자그마한 침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진군의 속도가 느렸으니까.
물론 이목을 속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돌아서 가는 영향이 가장 컸다.
광활한 영역의 어둠의 숲.
대륙에서 가장 큰 영역 차지하는 어둠의 숲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에 뻗어 있었다.
따라서 신성 제국에도 어둠의 숲이 있었다.
그리고 루벤 또한 어둠의 숲에 위치한 영지.
해서 신성 제국은의 본대는 어둠의 숲을 통해 빙 돌아서 진군하고 있었다.
샤를롯 제국의 국경을 밟지 않고, 루벤을 습격하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보다 진군이 느리구려.”
그럼에도 생각보다 진군이 느렸다.
“진군 속도를 빠르게 하는 건 어떠하나.”
“지금도 한계까지 닿은 상황입니다. 이 이상으로 빨리한다면 신민들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신의 뜻을 실현하는데 체력이 문제라니.”
교황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사특한 이단자들이 신의 뜻을 알기라도 하면 안되지 않은가. 그 전에 본거지를 치려면 진군을 빨리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시지요 성하. 그를 대비하여 이단 심문관 소속의 신성 기사단을 미리 보내지 않았습니까. 이단 심문장께서 미리 손을 쓰고 있을 겁니다.”
“음···.”
교황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단 심문관은 그 누구보다 신에 대한 믿음이 투철한 신성 기사.
특히나 이단 심문장, 패트릭은 그 믿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애초에 루벤을 지키는 병력도 없는 상황.
이단 심문장인 패트릭이 충분히 잘 해줄 터였다.
“이단 심문장에게 맡겨보시지요.”
이어진 사제의 말에 교황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정확히는 끄덕이려던 바로 그때였다.
“교, 교황 성하!!”
갑자기 한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 병사가 허겁지겁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런 병사를 향해 주변의 신성 기사들이 나서보였다.
교황을 향해 달려드는 병사를 제지하려던 찰나.
“이, 이단 심문장께서··· 사특한 이단자들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재차 들려온 외침에 모두가 자리에 멈춰섰다.
“뭐, 뭐라?”
교황은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두 눈을 크게 뜨다 못해 정신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마···.”
교황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설마하니 저 병사가 거짓 보고를 했을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저 보고는 분명한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단 심문장이 당해서는 안 되었다.
되려 루벤을 함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와야했다.
현재 루벤을 지키는 병력은 없었고.
엘란두르에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들려온 소식은 그 반대였다.
그 말은 즉.
“신의 뜻이··· 간파당했단 말인가!”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었다.
루벤은 이 모든 것을 알아채고 대비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함정이다.
“후퇴··· 해야하네.”
루벤이 대비가 되어있다면··· 꺾을 수 없었다.
수 십만에 달하는 신성 제국의 전사들?
루벤의 저력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엘란두르의 30만 대군조차 흠집을 내지 못하지 않았는가.
물론 신성 제국의 힘은 엘란두르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하나의 가문과 제국이라는 국가.
체급 차이부터가 말이 안되지 않은가.
하지만 현재 신성 제국은 급하게 움직인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전쟁 준비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병력을 끌고 온 상황이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돌아가야했다.
돌아가 더욱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했다.
조금 더 골치가 아파지겠지만 차라리 지금보다는 나았다.
이단 심문장의 희생이 있었지만···.
솔직히 싸게 먹힌 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삼켜질 뻔했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야 한다.
가서 신께 알려 다시 상황을 대비해야한다.
필요하다면 지지부진 시간을 끌어야한다.
······ 라고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
서걱─!
어디선가··· 섬뜩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그건 섬뜩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절삭음이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었다.
서걱─! 서걱─!
교황의 귓가로 절삭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끊이지 않고 계속, 계속.
교황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인 풍경은···.
콰직─!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스러지는 병사들.
새까만 마기를 흩뿌리며, 전장을 유린하는 어둠의 기사들이었다.
“이, 이 무슨···.”
교황은 일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런 멍해진 정신 사이로.
“루, 루벤의 병사들이다!!!”
누군가 소리치는 경악이 들려왔다.
“뭐, 뭐라고?”
“루벤의 병사들이 왜 여기에···!”
크나큰 충격이 신성 제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 말도··· 말도···.”
교황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모두 짜여진 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짜여진 판이 뒤엎어졌다.
루벤은 엘란두르를 향해 병력을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루벤은, 여기 신성 제국의 본대를 노렸다.
루벤은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주군께서 명하셨다.
짙은 마기의 갑옷을 두른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켄드릭.
그리고 천 년전부터 이어져 온 하나의 임무.
-교황청의 사람들을 척살하라.
이윽고 교황은 일렁이는 켄드릭의 푸른 안광을 마주함에.
그 뒤로 도열하는 루벤의 흑사자 기사단을 바라봄에.
“존명.”
“존명.”
또한 들려오는 흑사자 기사단의 절도 있는 목소리에.
동시에 흑사자 기사단들의 마기가 일제히 타오름에.
하여, 그 안광이 오롯이 교황인 자신에게 향함에.
엘란두르의 30만 대군도 어찌할 수 없었던 그 힘.
그 아득한 힘을 눈앞으로 마주함에.
“······ 신이시여.”
교황은 차마 항전의 뜻을 내비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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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제국 루테아.
그런 루테아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
이사벨은 줄줄이 들려오는 보고에 뭘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이단 심문관 소속의 신성 기사들이 모두 당했다고합니다···!”
이걸,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교, 교황 성하께서··· 교황 성하께서 루벤에 포로로 붙잡히셨다고 합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보고들의 연속.
“······!!”
이사벨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