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 드러나는 진실(3)
시안은 바로 다이애나를 루벤의 치료원으로 보냈다.
아리아에게 다시 치료를 부탁할까 했지만···.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아리아의 신성으로 다이애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으니까.
해서 시안은 거듭되는 현질로 업그레이드한 ‘신의원(神醫院) Lv.10’으로 다이애나를 이송했다.
그렇게 다이애나를 치로원으로 보낸 이후.
시안은 집무실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다이애나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신성 제국이 루벤을 노리고 있었다라.”
실로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시안에게만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이사벨···.”
이사벨에게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더하여 앞선 모든 것들은 이를 위한 연막이었다.
이사벨이 반역을 일으킨 것.
그리하여 황궁을 비롯한 루벤의 병력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이사벨은 엘란두르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시킬 생각이었다.
황가는 물론, 루벤의 병력을 엘란두르에게 향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주 교묘히.
신성 제국을 움직여 루벤을 칠 계획이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당할 뻔했다.
말 그대로 눈뜨고 코 베일 뻔했다.
그러나 천만다행히 먼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추기경, 알베르토의 전언.
다이애나가 목숨을 걸어가며 얻어온 정보.
두 가지를 토대로 이사벨의 계략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
이사벨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계획을 시안이 눈치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정보의 격차가 역으로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를 이용할 수 있다면···.”
하여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면.
그러니까 이사벨의 계획에 당하는 척, 함정을 파놓을 수 있다면.
이사벨이 짜놓은 계획을 엉크려뜨릴 수가 있었다.
치밀하게 짜여진 판을 완전히 엎어버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일환 중 하나.
“내가 신성 제국으로 돌아갈게.”
갑작스러운 아리아의 말에 시안은 상념을 털어내었다.
그리고 아리아를 바라보자 아리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을 걸어왔다.
“내가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모아볼게.”
신성 제국으로 돌아간다는 아리아의 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금방 고개를 저어보였다.
“네가 가더라도 큰 의미는 없을거야.”
물론 성녀로서 아리아의 위명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성녀(聖女)였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존재.
허나, 신성 제국에는 이미 신께서 실재하신다.
그곳에서 한낱 성녀 따위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의 신성 제국은 하나의 광신도 집단과 같은 단체.
“무엇보다 넌 지금 성녀직을 파면당한 상태잖아. 알베르토 추기경이라는 사람의 말이 맞아. 넌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선 안돼.”
여러모로 아리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되려 위험에만 빠질 뿐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난 내가 가서 남은 사제들이라도 규합해야한다고 생각해.”
아리아의 생각은 달라보였다.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야. 알베르토 예하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하지만 알베르토 예하만으로는 무리일거야. 어쩌면··· 알베르토 예하는 이미 당했을 수도 있어. 그러니 내가 가야만 해.”
아리아는 여명 교파의 수장 격인 존재.
여명의 뜻을 모으려면 아리아가 반드시 필요했다.
“무엇보다 신성 제국 전체가 한 마음 한 뜻은 아닐거야.”
아리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당장 알베르토 추기경만 봐도 그렇잖아? 신이 실재한다고 한들, 어딜 가나 신의 말씀을 거역하는 이단자들은 언제나 있어. 신께서는 모든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시니까.”
이는 신께서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아리아는 마지막 말을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런 아리아의 말에 시안은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신에 관련한 논점은 차치하고서라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성 제국 전체가 이사벨··· 그러니까 신의 뜻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당장 알베르토처럼 여명 교파의 사제들은 동조하고 있지 않았다.
만일 아리아가 그들을 규합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신성 제국의 발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더 나아가 신성 제국 전체를 흔들 수만 있다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시안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네가 너무 위험해져.”
아리아가 너무 위험해지니까.
어쨌거나 아리아가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만 했다.
한 마디로 드래곤의 소굴에 머리를 들이미는 격이었다.
만에 하나 아리아가 볼모로 붙잡힌다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가 없었다.
시안이 아리아를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걸 아리아라고 모르지는 않을 터.
“내가 보호만 받는 어린애인 줄 알아?”
그럼에도 아리아의 생각은 확고했다.
“내가 누군지 몰라?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성녀라고. 내 한 몸 충분히 지킬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리고 내가 저번에 말했지. 넌 너무 너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이윽고 아리아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누나한테 기대라니까 그러네.”
그러면서 우쭐대는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누님만 믿으라니까 그러네.”
“나이도 같으면서 그 놈의 누나는···. 그리고 생일로만 따지면 내가 오빠 아니냐?”
“야. 이럴 땐 그냥 ‘네 누나!’ 하는 거야. 꼬치꼬치 따지기는···.”
아리아는 새침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음이 새어나오는 한편.
“괜찮겠어?”
시안은 조심스레 아리아에게 물었다.
“걱정하지마.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들었던 교황. 이 참에 뺨 따귀를 날려주고 올테니까.”
아리아는 결의에 찬 얼굴로 마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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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마저 신성 제국으로 떠난 이후.
시안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신성 제국이 루벤을 향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여유롭게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
물론 전쟁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울이나마 명분이라는 것이 필요했고.
또 여러모로 준비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시안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없었다.
신의 뜻으로 통일된 신성 제국은 하나처럼 움직일테니까.
명분 또한 성전(聖戰)이니 뭐니 하는 신의 뜻을 들먹이면 되었다.
신성 제국은 발 빠르게 움직일 것이고.
루벤은 그런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해서 시안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저보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신가요?”
황녀, 엘레나.
그녀를 다시 황궁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렇습니다 황녀님.”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 제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쟁터는 다름 아닌 이곳, 루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루벤은 쑥대밭이 되어버릴 터.
황녀인 엘레나를 그런 전쟁터에 남겨둘 수는 없었다.
엘레나는 가만히 시안을 바라봄에 그 눈빛에는 서운함이 비쳐보였다.
그러나 주된 감정은 어디까지나 의문이었다.
말없이 시안을 바라보는 엘레나의 눈빛은, 그 이유를 묻고 있었다.
시안은 그 이유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신성 제국이 루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할 겁니다.”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길게 이야기하려면 부차적인 설명들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시안은 짤막하게나마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설명 같지도 않은 통보나 다름 없었다.
“이사벨 후작 부인이 대놓고 반역을 저지른 이유가 있었군요.”
그럼에도 엘레나는 상황을 모두 이해해보였다.
“그로써 황가의 시선을 자신들 쪽으로 돌리려는 속셈이었고요.”
이해함을 넘어 상황 전체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시안은 엘레나의 통찰력에 약간의 감탄을 해보였다.
또 그렇기에 시안은 더 이상의 설득을 하지 않았다.
현명한 엘레나라면 순순히 황궁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아니요. 돌아가지 않겠어요.”
그러나 엘레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에 시안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돌려말하지 않을게요. 현재 루벤의 전력으로 신성 제국을 감당하실 수 있으신가요?”
엘레나가 한 박자 빠르게 물어왔다.
그리고 시안은 섣불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신성 제국이었으니까.
엘란두르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엘란두르가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성 제국은 하나의 국가였다.
무려 제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
샤를롯 제국과 쌍벽을 이루는 이 대륙의 패자였다.
반면에 루벤은 어둠의 숲에 위치한 변방의 작은 영지.
솔직히 신성 제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버티는 것이 고작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도 그나마 전쟁터가 루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수의 버프와 각종 영지 버프를 두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작은 영지가 제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버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버티는 것과 승리하는 것은 다른 일.
“솔직히··· 어렵습니다.”
시안은 고개를 내저으며 답을 해보였고.
엘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장 입을 열어보였다.
“백작님에게는 황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하지만 제가 이대로 돌아간다면··· 황가는 백작님께 도움을 줄 수가 없어요.”
엘레나의 말에 시안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곧, 엘레나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가는 엘란두르의 반역을 먼저 처리해야한다는 말씀이시죠.”
“맞아요.”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엘란두르는 황가를 향해 반역을 저지른 상황이었다.
황궁의 조사단을 참살함으로써 만천하에 반역의 사실을 알렸다.
이에 따른 황가의 반응은 응당 즉결 처형이었다.
엘란두르라는 가문을 이 대륙에서 멸족시켜야했다.
그로써 황가의 위엄을 알려야했다.
황가가 우습게 보이지 않도록 그 힘을 보여야했다.
“하지만 황가에서 엘란두르의 반역이 아닌 시안 백작님을 도와준다면···.”
“황가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지겠죠.”
현재 상황에서 엘란두르를 내버려둔다면 어떨까.
반역자를 내버려두고, 루벤을 도와준다면 어떠할까.
사람들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이렇게 생각한다.
대놓고 반역을 저질러도 별 조치를 안 취하네?
설마 반역을 제압할 자신이 없는 건가?
뭐야, 황가도 별 거 없네.
이런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조차도 그런 말이 슬슬, 나오고 있었다.
시안의 부탁으로 황가가 행동에 나서지 않는 지금.
주변에서 조금씩 이야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따라서 황가는 시안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엘란두르를 멸족시키는 것이 황가의 우선 사항이었으니까.
도와주더라도 엘란두르를 먼저 멸족시킨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사벨 후작 부인이 정말로 치밀하게 계획을 짰어요.”
이것이 이사벨이 대놓고 반역을 저지른 이유였다.
황가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려 루벤을 향한 황가의 지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여러모로 외통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나 시안이 먼저 계획을 눈치챈 상황.
이를 역으로 이용할 수가 있었다.
“제가 루벤에 남아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요.”
이사벨의 허를 찌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저는 제국의 황녀에요. 저를 향해 검을 들이민다면, 그 역시나 반역이죠.”
그것이 신성 제국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이 대륙에서 그 누구라도 황가의 일원에게 검을 들이민다면 그건 반역의 죄다.
그리하여 신성 제국이 루벤과 전쟁을 하는 순간.
정확히는 황녀, 엘레나가 있는 루벤의 영토를 무단으로 밟는 순간.
“황가는 저를 지킨다는 명분과 동시에 엘란두르와 똑같은 반역의 명분이 생기게 돼요.”
그로써 황가는 굳이 엘란두르를 먼저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황녀인 엘레나를 위협하는 또 다른 반역자.
신성 제국을 향해 먼저 검을 뽑아들 명분이 생긴다.
“그래야만 황가는 시안 백작님을 도와줄 수가 있어요.”
이유와 명분.
둘 모두가 예쁜 모양새가 갖춰진다.
더하여 이사벨이 짜놓은 판을 엎어버릴 수가 있었다.
엘레나는 그렇게 말을 끝마쳤고.
시안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엘레나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으니까.
솔직히 놀랐다고 할 수 있었다.
별 다른 설명이 없었음에도 상황을 이해하는 현명함.
더 나아가 정세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통찰력까지.
황가의 핏줄은 황가의 핏줄이라는 걸까.
엘레나는 군주의 자질이 있었다.
그렇기에 엘레나의 말은 더없는 해결책이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 황녀님께서 너무 위험해집니다.”
결국 엘레나의 희생이 뒷받침 되어야했으니까.
그 모든 것들이 엘레나가 이곳, 루벤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루벤의 방벽이 견고하다고는 하나 무적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그 대상이 신성 제국이었다.
루벤에 있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험이 있다.
“괜찮아요.”
그럼에도 엘레나는 단호했다.
“저도··· 백작님과 함께 위험을 헤쳐나가고 싶어요.”
이윽고 엘레나가 시안을 바라봤다.
그 눈빛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시안은 그 눈빛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순간이 오면 백작님이 저를 지켜주실 거잖아요. 백마 탄 왕자님이 나오는 동화처럼요.”
물론 시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엘레나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현실.
동화는 동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무엇보다.
“저는 왕자가 아닙니다만.”
서로의 지위가 좀··· 바뀐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엘레나는 아무렴 상관 없다는 걸까.
“제게는 왕자님이신 걸요.”
엘레나는 수줍은 미소 지어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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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와 이야기를 마친 직후.
시안은 곧장 영주성 지하에 위치한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본래라면 연무장으로 향해서는 안되었다.
루벤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 회의를 열어야만 했다.
해서 현 루벤의 상황에 대해 세세히 설명해주고.
곧 있을 전쟁을 위해 빠듯한 준비들을 한시라도 빨리 진행해야했다.
하지만 시안은 회의실이 아닌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루벤의 전력은 충분히 신성 제국에 대항할 힘이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 있는 법.
시안은 나름 대로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띠링!
《DLC 점검이 종료되었습니다.》
《현 시간 이후로 DLC 컨텐츠를 이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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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지 못한 카일의 기억.
여기서 마혼수라검의 최상급 과정을 끝내야한다.
또한 이 카일의 기억 속에서 찾아야만 한다.
실재하는 신(神)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시안은 연무장 중앙에 서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허공을 휘저으며 망막 위로 비치는 【DLC 항목】을 터치.
떠오르는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 를 실행시켰다.
이윽고 ‘Loading···.’이라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서서히 올라가는 숫자에 시안은 심호흡을 크게 들이 쉬었다.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엑시드의 경지는 말 그대로 신화 속의 경지였으니까.
그리고 설령 엑시드의 경지에 딛는다 한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의심이 들었다.
교만의 악마는 카일과 버금가는 존재다.
잠식된 이후로는 카일조차 어찌하지 못했던 존재였다.
말 그대로 신(神)과 다름 없는 존재다.
그런 존재를 죽일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카일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다.
카일조차 결국 실패한 일이다.
그 일을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온갖 상념들이 휘몰아쳐왔다.
그러나 시안은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생각과 걱정은 나중에.
지금은 해야만 할 때다.
무엇보다 카일은 분명 방법을 찾았다.
그 길의 끝에서 카일은 자신을 잠식한 교만을 다스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 년전에 세상은 이미 멸망했을테니까.
시안이 카일의 후계자가 될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카일은 신(神)을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또 시도했다.
비록 그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지만, 그의 유지는 아직 남아있었다.
하여, 카일이 남긴 모든 것이 담겨있는 마지막 기억.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 를 실행합니다.]
여기서 찾아야한다.
여기서 끝내야한다.
시안은 굳건히 결의를 다졌고.
이윽고 화아아악!
새하얀 빛무리가, 시안의 시야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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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전체를 가려온 빛.
태양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만 같은 눈부심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야를 가렸던 빛무리가 서서히 즐어듬에 시안은 천천히 눈을 떠보였다.
그렇게 시야는 희미하게 회복되듯 떠지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역시나.
“허억···! 허억···!”
카일의 모습이었다.
시안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현재의 기억이 어느 시점인지를 파악했다.
무슨 일인지 거친 호흡을 내쉬고 있는 카일.
식은땀으로 전신을 흠뻑 젖어있는 모습.
‘그 공간에 다녀온 이후의 기억인가?’
다름 아닌 새하얀 백광만이 가득했던 공간.
그 공간에서 만난 정체 불명의 사내.
“허억···!”
아무래도 그 공간에서 나온 직후의 기억인 것 같았다.
한 마디로 기억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안의 입장에서는 그 기억만 도려내어진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시안만 추방되었다는 뜻이었다.
카일은 그 공간에서 정체 불명의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뜻이 된다.
시안은 가만히 카일의 상태를 살폈다.
백광의 공간에 다녀온 직후의 카일.
카일은 그 전과 두 가지 요소가 달라져 있었다.
‘교만의 악마가 느껴지지 않아.’
첫째로는 카일에게서 교만의 악마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 기억 속, 카일은 샤를롯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카일의 심경에 허점이 생겼고.
그 틈을 교만의 악마가 비집고 들어왔었다.
해서 카일은 교만에게 완전히 잠식되었다.
치솟는 교만의 죄악을 어찌할 수가 없었고, 그 끝에 신(神)이 되고자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카일을 잠식했던 교만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또 아니었다.
카일 안에 잠식되어 있지만, 무언가에 억눌려 있었다.
의지? 결계? 속박?
그건 시안의 기감으로도 정의를 낼 수 없는 힘이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힘에 교만이 억눌려있었다.
보아하니 그 공간에서 한 일인 것 같은데···..
‘그 공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굉장히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그 기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달라진 것.
다름 아닌 카일의 손에 들려있는 무엇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네모난 물건.
이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생소한 디자인.
그러나 시안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것.
‘스마트 폰···?’
카일의 손에는, 어느샌가 스마트 폰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