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 카일이 마주한 진실(2)
카일이 악마를 품고 있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비단 카일의 일만이 아니라는 말.
그 말은 즉.
다른 아르나이즈들도 악마를 품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그게 무슨···.’
그렇기에 시안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정말 맞는 건가? 그런 의심마저 들고 있었다.
“······”
그러나 말이 없는 카일의 모습을 지켜봄에 시안은 모두가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안은 물론이고, 카일과 카르제.
이곳의 그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엔··· 나도 알지 못했다.”
카일이 정적을 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더군. 악마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카르제는 말없이 카일의 말을 들었다.
시안 또한 크게 떠진 눈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내 안에 잠재된 악마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지.”
남들보다 더욱 뛰어난 기감을 지닌 카일.
카일은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에게 깃든 악마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일은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난 한때 악마들과 같이 행동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지금과 같았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 그때 악마들이 내게 말하길, 자신들 또한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했었다.”
시안이 본 적이 있던 기억.
그러나 카르제는 알지 못하는 기억.
카르제의 두 눈이 살짝, 치켜떠졌다.
“허나, 그건 거짓이었다. 모두 날 속이기 위한 계략이었지.”
카일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가만히 허공을 바라봄에, 카일의 눈빛에는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악마들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니었다. 악마들은 처음부터 이 대륙에 존재했다. 정확히는··· 우리들 안에 존재했다고 함이 정확하겠지.”
악마 군주들은 7가지 죄악에 근원한다.
교만, 탐욕, 탐식, 색욕, 분노, 질투, 나태.
그리고 이 죄악들은 존재가 갖는 근원의 죄.
“그들은 우리의 존재에 기생하며 태어난 악(惡)이다.”
이 말은 즉.
“존재가 살아있는 한, 악마들 또한 죽지 않는다.”
계속해서 부활하는 악마들의 존재.
이것이 그들이 불멸(不滅)의 존재라 정의되는 이유였다.
[그 사실을···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지?]
“동료들도 악마들에게 잠식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되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동료들이 악마들에게 노출될 것이라 생각한건가? 나는 드래곤이기에 악마들에게 노출된 위험이 적었던 것이고? 그래서 엘로디가 아닌 나를 찾아온 거였군.]
만물 위에 군림하는 최강의 생명체.
혼(魂)과 백(魄)의 일체인 드래곤.
악마들이 존재의 죄악에 기생하지만, 드래곤은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였다.
[악마들이 내 동족부터 사냥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카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나 혼자 해결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차원으로 갈 방법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잠재된 악마를 처리하지 못하면··· 나는 끔찍한 죄악이 되어버릴테니까.”
[실패하더라도 이 대륙에 피해가 가지 않게끔. 다른 차원에서 행동할 생각이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는 카일의 모습에 카르제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고.
카르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설마하니 다시는 이 대륙으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나?]
“······”
그리고 이 질문에 카일은 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긴 카일의 기억이었으나, 말하지 않은 사실을 알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마··· 카일 또한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곳에서 자신의 악마를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설령 일이 성공한다고 한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렇기에 카일은, 다른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과거, 마교의 교주로서.
천마(天魔)로서.
온 천하의 모든 비명을 짊어지려했던 그때처럼.
카일은 스스로가 모든 죄를 짊어지려 했었다.
결국.
카일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했었다.
정확히는 원래 세계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차원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곳에서 악마를 처리하고 돌아오려고 했었다.
설령 그곳에서 악마에게 패배한다고 한들.
이 대륙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카르제와 함께 타 차원의 이동을 연구했다.
하지만 지금.
[뮤리엘이 내게 찾아와 말하더군. 악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아무래도 자신들에게 깃들어 스며든 것 같다고.]
카일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카일의 생각과는 달리 아르나이즈들은 악마들에게 잠식되었다.
카일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언제나 담담하고 무표정했던 카일의 얼굴.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카일의 얼굴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묵직한 정적이 다시 한 번 내려앉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뮤리엘을 한 번 만나보겠다.”
그와 동시에 화아아악!
새하얀 빛무리가 다시 한 번 시안의 시야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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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덮친 새하얀 빛무리.
시안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했다.
방금 전의 기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안은 그토록 찾아매해던 카일이 마주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카일이 아르나이즈 동료들을 떠난 이유.
그건 카일에게 잠식된 스스로의 악마를 어찌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잠식된 악마가 풀려남에, 이 대륙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자 함이었다.
카일이 동료들과 레아를 떠난 이유는 그러했다.
시안이 찾아해매던 카일이 마주한 진실은 이러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은 존재했다.
카일을 잠식한 악마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어찌하여 카일은 그 악마를 처리할 수 없었는가.
더 나아가 아르나이즈들을 잠식한 악마는 무엇인가.
‘모바일 영주는 어디서 만난거지?’
의문이 해결됨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도 남아있었다.
시안은 그 모든 의문을 삼킨 채.
빛무리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눈앞의 풍경을 주시했다.
이윽고 시야에 보이는 풍경 앞.
아리아와 닮은 초월적인 미모의 여인.
“카일···.”
신녀(神女)라 불리던 아르나이즈, 뮤리엘.
뮤리엘은 자신을 찾아온 카일을 바라봤다.
오랜 동료를 만난 반가움일까.
카일을 바라보는 뮤리엘의 눈빛에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카일은 그런 뮤리엘을 마주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카르제를 찾아왔다고 들었다.”
“역시··· 카르제와 함께 있었군요.”
뮤리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카일은 그에 따른 답을 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뮤리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확히는 뮤리엘 안에 내재된 악마.
카일은 그 악마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묻지 않았다.
뮤리엘을 잠식한 악마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잠식되었는지.
카일은 묻지 않았다.
이미 과정을 알고 있었고, 기운을 인지함에 악(惡)의 존재를 알 수 있었으니까.
“카일, 당신을 속일 수는 없네요.”
뮤리엘은 자그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초월적인 미모와 어우러지는 미소는 그야말로 여신과 다름 없었다.
뮤리엘은 살며시 시선을 내려 새하얀 손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확신을 가지기 시작한 건 교황청에 악마 추종자들이 스며든 것 같다는 제보때부터였어요.”
실로 충격적인 제보.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사를 할 필요는 있었다.
악마는 소멸했으나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은 있을 수 있었으니까.
악(惡)의 힘을 사용하는 이들은 있을 수 있었다.
이에 뮤리엘은 의심이 가는 이들을 조사했다고 한다.
성(聖)은 악(惡)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
뮤리엘은 악의 힘을 어느 정도 감별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찾지 못했어요.”
그러나 뮤리엘은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헛된 제보라 생각했어요. 악마는 소멸했고, 추종자가 있다고 한들 악(惡)의 힘을 사용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니까요.”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교황청의 분위기가 상당히 묘해지기 시작한 것.
어느 순간부터 미사와 기도를 드리지 않게 되었고.
이상한 의식과 제단을 향해 알 수 없는 숭배를 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의문의 실종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뮤리엘은 이를 지적하며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에 교황조차 그것을 제제하지 않고 빠져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리하여 끝내 교황청 전체가 완전히 물들어버리기 시작했다.
교황청은 확실히 이상했다.
거진 악마의 소굴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변모해갔다.
“그런데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뮤리엘은 별 다른 기색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눈앞에서 선명히 보이고 또 행해지는 일임에도 이상함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보지 못했다.
수상함을 수상함으로 인지할 수 없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제 안에··· 악마가 존재하고 있었어요.”
뮤리엘, 본인 스스로가 이상해져있다는 의미였다.
스스로가 이미 악(惡)에 물들어있다는 의미였다.
뮤리엘은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스스로가 악(惡)에 잠식되었기에.
뮤리엘은 악의 존재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저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요.”
뮤리엘은 답을 바라는 눈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신을 찾는 어린 양처럼 카일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뮤리엘을 바라봄에.
“······”
카일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또 무색하게, 뮤리엘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매정하다 생각될 만큼.
“다시 찾아오겠다.”
카일은 등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뿐만이 아닐 수 있어요! 아니, 아마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뮤리엘은 떠나가는 카일을 향해 소리쳤다.
카일은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뮤리엘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내가 한 번 만나보겠다.”
카일은 그저 자리를 떠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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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엘을 떠난 카일이 다음으로 만난 아르나이즈는 엘프들의 숲지기이자 대마도사, 엘로디였다.
그리고 뮤리엘의 우려대로.
그리고 카일의 우려대로.
“저를··· 죽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엘로디 또한 악마에게 잠식당한 상태였다.
엘로디는 카일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부탁했다.
이는 지난 날, 시안이 다크 엘프 마을을 찾아갔을 때.
모바일 영주 퀘스트에서 한 번 보았던 내용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엘로디가 카일에게 자신을 죽여달라니.
하지만 모든 진실을 알고 난 지금에서야 시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엘로디는 스스로의 악마를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신 안에 내재된 악마가 부활한다면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악이 될 것이라 생각할 것이었다.
실제로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시안의 시대에서 그 일은 현실이 되었다.
악마의 힘은 끝내 인스티즈에 깃든 엘로디의 힘을 타락시켰고.
그것은 다이슨과 더불어 아스란디즈를 광기로 물들어버렸다.
최악이자 최흉이 될 뻔 했던 악(惡).
엘로디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일은 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일은 끝내 검을 잡지 않았다.
그저 매정하다 생각될 만큼.
“······ 다시 찾아오겠다.”
이 말만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카일은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갔다.
그리고 그 어느 하나 예외가 없었다.
“카일··· 오셨소이까···.”
신장(神匠) 모르크루는 초점 풀린 눈으로 카일을 맞이했고.
“우걱우걱, 카일. 자네도 꺼억! 먹겠나?”
상천술사 노에미는 입가에 끊임없이 음식들을 집어넣으며 카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카일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아르나이즈.
지금의 아르나이즈가 있게 만들어준 리더.
“샤를롯.”
카일은 나지막히 샤를롯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봄에.
‘그때다.’
시안은 이것이 샤를롯이 작성한 비망록의 마지막 장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카일이 다시 샤를롯을 찾아왔을 때의 시점.
그러나 당시 시안이 확인한 기록에는 그 이후의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다.
카일이 샤를롯을 다시 찾아왔다는 내용을 끝으로 그 뒤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카일···.”
그 때의 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
샤를롯은 공허한 눈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그러나 공허함 속에 비치는 감정은 공허하지 않았다.
“네가··· 네가 무슨 낯짝으로 날 찾아와?”
“미안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미안해?”
샤를롯은 실소를 한 번 흘려보였다.
그것은 비아냥 혹은 비웃음.
정상적이지 않은 감정이 담겨있는 조소였다.
“네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야?”
“······”
“레아가, 레아가 너 때문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냐고!!”
“그게··· 무슨 뜻이지? 레아가 왜···?”
카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샤를롯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한 번 조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넌 아무것도 알지 못했구나?”
샤를롯은 이를 까드득, 씹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 넌 아무것도 몰랐어. 애초에 우리한테 관심이 없었으니까.”
이상했다.
지금 샤를롯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넌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괴상했다.
지금 샤를롯에게서 보이는 모습이.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 우리를 동료라고 생각한 적이 있기는 해?”
“난 너희들을 진심으로 동료라 생각했다. 그리고 레아 또한···.”
“웃기지 마! 그랬다면 넌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었어. 저 혼자. 너 혼자! 언제나 네 잘난 맛에 살았으면 안 되었다고!”
또한 익숙했다.
지금 샤를롯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거···.’
“샤를롯 너···.”
시안의 생각과 카일의 말이 겹쳐 떠올랐다.
다른 아르나이즈들은 모두 악마들에게 잠식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완전히 잠식당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샤를롯의 모습.
“너만 없었다면··· 너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샤를롯은 이미.
【“우린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악마에게 완전히 잠식되어있었다.
꽈꽈꽈꽈꽈꽝!!
샤를롯의 전신으로 피처럼 끈쩍한 마력이 터져나왔다.
그건 샤를롯 안에 내재되어있던 악(惡)의 힘.
‘이건···.’
또한 시안이 언젠가 마주한 적이 있던 악의 힘이었다.
질투의 악마, 엔비리아(Enviria).
분노의 악마, 이라리아(Iraria).
듀라크에게서 보았던 칠흑의 두 군주.
그러나 샤를롯은 듀라크와는 달랐다.
듀라크는 두 군주의 힘에 먹혀 혐오스러운 흉물이 되었다.
그러나 샤를롯은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은 기사.
【“네가··· 네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 카일.”】
샤를롯은 두 군주의 힘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완벽히 통제함을 넘어 그 힘을 지배 하에 두고 있었다.
【“나는 너를 증오해··· 카일.”】
그러나 저건 더 이상 샤를롯이 아니었다.
분노에 삼켜진 정신.
【“너만 없었다면, 난 더욱 뛰어날 수 있었는데.”】
질투에 눈이 멀어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의식.
그렇기에 샤를롯은 더 이상 샤를롯이 아니었다.
세상을 구원한 아르나이즈는 더더욱 아니었다.
악마에게 삼켜진 악의 존재.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샤를롯은 주저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샤를롯 주변 공간이 거세게 일렁거렸다.
일렁거리는 궤변의 현상은 공간을 모조리 깨부서버렸다.
깨져나간 공간의 파편.
그것은 수많은 검격이 되어 온 사방을 할퀴었다.
단순히 검을 휘둘러 만들어낸 검격과는 다르다.
공간 자체가 참격으로 바뀌어 덮쳐오는 괴현상.
실체가 없는 무형의 기운이 온 사방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듀라크가 사용했던 엘란두르의 비기.
샤를롯의 검,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다르다.’
그러나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엑시드의 기사가 사용하는 진검(眞劍).
진짜의 힘이었다.
지금의 시안이 저 참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차원과 수준 자체를 달리했다.
그러나.
캉! 카캉─!
저 끔찍한 참격도 카일에게는 닿지 못했다.
공간 자체가 박살이 나는 풍경 속.
카일은 쇄도하는 참격을 모조리 튕겨내고 있었다.
“정신차려라 샤를롯! 악마에게 삼켜지지 마라!”
카일은 샤를롯을 향해 소리쳤다.
절실함과 어떤 간절함을 담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샤를롯의 참격이 카일에게 닿지 못했듯.
【“너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카일의 외침 또한 샤를롯에게 닿지 못했다.
【“너만 없었더라면···!!”】
샤를롯의 기세는 더더욱 거세어져만 갔다.
그에 따라 피어나는 악(惡)의 힘도 증폭되어갔다.
샤를롯과 두 군주.
이미 엉켜붙어 하나가 된 존재.
‘······’
그렇기에 시안은 그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이 기억의 결말이 어떠한 지 알고 있었으니까.
시안 또한 이 기억과 똑같은 일을 겪어봤으니까.
시안이 듀라크를 구할 수 없었듯.
카일 또한 샤를롯을 구할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 샤를롯.”
그렇기에 카일은 끝내, 샤를롯을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형(第 一形).
진(眞) - 아수라(阿修羅).
.
.
.
삼켜지는 무(無)의 세계.
땡그렁.
샤를롯의 검이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는 샤를롯의 시선.
카일의 검은 샤를롯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샤를롯의 두 눈이 쉼없이 떨려왔다.
떨리는 샤를롯의 두 눈이 앞으로 향하며, 카일을 바라본다.
빠져나가는 생기와 악의 힘.
내비치는 샤를롯의 두 눈에는 더 이상 악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샤를롯이 비틀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