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89화 (289/322)

289화 - 엘레나와 아리아

수도, 다르칸에 위치한 황궁.

시안은 빠른 걸음으로 황궁의 복도를 거닐었다.

“충!!!”

“충!!!”

거닐며 마주치는 로열 나이츠의 단원들이 자리에 멈춰서 경례를 해보였다.

절도 있게 꺾인 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

일개 백작에게 보일 수 있는 군례치고는 과했다.

백작이 고위 귀족이라고는 하나 이곳은 황궁이었다.

고위 귀족들이 즐비한 제국의 중심이었다.

특히나 로열 나이츠들은 제국과 황가를 수호하는 기사단이었다.

황가의 일원들을 매일 같이 만나는 기사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로열 나이츠들이 보이는 군례.

이는 거진 황가의 일원에게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로열 나이츠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루벤과 엘란두르와의 전쟁.

이 대륙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시피한 대륙의 진정한 패자.

시안은 모든 기사들이 바라마지 않는 경지의 기사였다.

세상 모든 기사들이 우러러보는 대륙 제 1의 검이었다.

“시, 시안 백작님을 만나뵙게 되어 여,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로열 나이츠들에게 있어 시안은 그야말로 바라마지 않는 우상이라 할 수 있었다.

“고생하십니다.”

시안은 그런 로열 나이츠들에게 하나하나 화답하며 지나갔다.

“충!!!”

“충!!!”

그럴 때마다 경례 소리가 귀가 터질 듯하게 들려왔지만, 시안은 개의치 않았다.

정확히는 신경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머릿속에는 모종의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었으니까.

“불안해. 불안해.”

시안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다운로드 받은 카일의 일지.

그 카일의 일지를 실행시키기 위한 DLC 개방.

그리하여 시안은 영지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했다.

엘란두르의 만행들을 낱낱히 고발함으로써 DLC 개방이라는 보상을 얻어야했다.

해서 시안은 아리아를 찾았다.

퀘스트에서 말하는 엘란두르의 추악함을 아리아가 필요했으니까.

정확히는 대륙의 사람들을 빠르게 설득하려면 아리아라는 성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안은 아리아를 찾았고.

“아리아가 왜 황녀님이랑 같이 있다라···.”

곧 아리아가 엘레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뭐,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었다.

아리아 정도의 인물을 대우함에 황가의 일원이 나서는 것이야 그래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황제와 황태자는 현재 엘란두르의 가신들을 심문하느라 바빴다.

그렇기에 황녀인 엘레나가 아리아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연하다시피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뭔가 불안해···.”

드래곤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절대적인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 불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시안은 걸음을 빨리하며 아리아와 엘레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혼무영보를 밟고 싶었지만···.

“충!!”

“충!!”

이곳이 황궁이라는 사실이 애통할 뿐이었다.

#

아리아는 아무런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의식은 분명하나 그 어떠한 사고의 흐름이 이어지질 않았다.

입은 벙긋거리나 그 어떠한 말도 내뱉어지지 않았다.

뜻대로, 의도대로 생각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정말이지 내가 고장이라도 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아리아를 고장낸 것은 별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강대한 신성을 억압하는 악(惡)이 아니었다.

악마 군주가 지닌 악의(惡意)는 더더욱 아니었다.

시안을 좋아하세요?

그저 단 한 마디.

저 단순한 물음 하나가 아리아를 고장내고 망가뜨려버렸다.

그래, 단순한 물음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그저 넌지시 던지는 질문.

듣자하니 귀족들의 사교계에는 이런 일들이 다반사라고 했다.

아리아는 경험해본 적 없지만 여인들끼리 자주 하는 농담이라고 한다.

누구누구 있잖아, 걔 괜찮지 않아?

뭐? 난 별로던데. 너 설마 걔 좋아하냐?

가십거리로서 사내를 이리저리 품평하는 말.

하하호호, 가볍게 즐기는 담소.

그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말.

여기에 나와야하는 반응은 정해져 있었다.

뭐래, 아니거든?

이렇게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질문이었다.

아니, 그렇게 넘겨야만 하는 질문이었다.

“아··· 아아,니.. 저, 저는···.”

그러나 아리아는 그럴 수가 없었다.

고장난 버린 생각에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가, 갑자··· 기 무슨··· 저는···.”

그저 횡설수설 말을 얼버무리는 것.

그것만이 아리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엘레나는 그런 아리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 아뇨. 그게 그러니까···.”

어쩔 줄 몰라하며 고장난 모습이 참으로 순수했다.

저 때묻지 않은 순수함.

청초함의 여신과도 같은 미(美).

괜히 남자들이 환장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 아리아를 지켜보며, 엘레나는 다분히 입을 열었다.

“저는 좋아해요.”

일순간 아리아의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뻗뻗하게 굳어진 고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처음엔 아니었어요.”

그 위로 엘레나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안 백작님과의 첫 만남에서 혼인을 제안했었죠. 당시에는 시안 백작님이 아니라 공자님이었지만요.”

엘레나는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혼인 제안은 결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었어요. 황녀로서의 의무감··· 이라고 해야할까요. 저는 제 존재가 황가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상당히 적나라한 말이었다.

황녀를 도구라 표현하다니. 이는 능히 황족 모욕죄나 다름 없었다.

그것이 설령 엘레나 본인의 입에서 나왔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황족의 일원을 도구라 칭하는 건, 스스로를 넘어 황족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엘레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성녀님이라면···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실 것 같네요.”

엘레나는 나지막히 물었고.

아리아는 어렴풋이 끄덕였다.

신성 제국과 샤를롯 제국.

성녀(聖女)와 황녀(皇女).

아리아와 엘레나.

서로 다른 환경이지만 비슷한 위치의 두 사람.

아리아는 성녀로서 수많은 것들을 받아왔다.

엘레나는 황녀로서 수많은 것들을 받아왔다.

단지 성녀이자 황녀라는 이유로 말이다.

허나, 받아온 권리에는 그에 따른 의무가 따르는 법..

“그래서 시안 백작님께 제안을 했어요. 청혼이 아니라, 제안이었죠. 제가 봤을 때, 당시의 시안 백작님은 충분히 황가에 도움이 될만한 인재였거든요. 그리고···.”

엘레나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차게 까였죠. 고민조차 안 하시던데요.”

솔직히 그때 좀 자존심이 상하긴 했어요.

엘레나는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까이고 나서 별 생각 없었어요.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고, 제게 있어 사랑은 사치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순간이 어느 때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안이 거리낌없이 자신을 루벤에서 내쫓아버릴 때였나.

북부에서의 사건 이후, 단 둘이 만나 담소를 나누었을 때였나.

아니면 루벤에 다시 한 번 방문했을 때였나.

그리고 그때, 영지민들을 위해 밤낮 일하다가 잠든 모습을 봤던 때였나.

어쩌면, 그 모든 순간들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안 백작님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시안 백작님이 황궁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괜시리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죠.”

엘레나가 손수 만든 음식을 시안이 먹고 ‘맛있다.’ 그리 말해주면 세상 행복했다.

시안 때문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되었고.

시안 때문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심으로 시안 백작님과 혼인을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정략 결혼이 아니라, 황가의 도구가 아니라. 엘레나라는 여인으로서요.”

엘레나는 가만히 시선을 들어 아리아를 바라봤다.

아리아는 여전히 굳어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시안 백작님께 정식으로 청혼을 할 거예요. 제국에서 여인이 먼저, 그것도 황녀라는 여인이 먼저 청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 쪽에서 먼저 청혼을 할 생각이에요.”

그만큼 시안 백작님을 좋아하고, 또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성녀님께서 시안 백작님과 친분이 깊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리고 성녀님께서도 백작님께 어느 정도 감정적인 마음이 있으시다는 것도요.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시라면···.”

엘레나는 아리아를 바라봤고, 끝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기나긴 이야기에 목이 마른 것인지 찻잔을 들어 홀짝, 거릴 뿐이었다.

아리아는···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멍한 정신. 고장나버린 생각.

아리아는 성녀로서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아왔었다.

정확히는 초월적인 미모로 인해 셀 수 없는 남자들의 구애를 받아왔다.

그러나 정작 아리아가 좋아한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엘레나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엘레나도 아리아 못지 않은 미모의 여인.

신분 또한 고귀한 황녀로서 아리아 못지 않았다.

그렇기에 엘레나와 아리아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황녀와 성녀라는 다른 위치였지만 누린 권리는 비슷했다.

그렇기에 가진 바 의무는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엘레나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엘레나는 아리아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아리아는 가지지 못한 것을 엘레나는 가지고 있었다.

엘레나는 용기를 내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붙잡고자 용기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아는···.

여전히 생각이 굳어져 흐르지 않는다.

여전히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를 못하겠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뮤리엘은 이렇게, 카일을 놓친 것이 아니었을까.

지난 날, 루벤에서 있었던 레아와의 대화.

까마득한 천 년전에 있었던 일.

뮤리엘은 카일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뮤리엘은 그 어떠한 티도 내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마음을 삭혔고, 그렇기에 붙잡지 못했다.

떠나가는 카일을 잡지 못했다.

물론 레아 또한 카일을 붙잡지 못했다.

그러나 뮤리엘과는 달리 레아는 용기를 내었다.

카일에게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끝내 카일의 마음을 잡아 약혼까지 이루어내었다.

그때···. 뮤리엘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카일과 약혼했다는 레아를 바라보며.

자매와도 같았던 절친한 친우가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지켜보며.

뮤리엘은 과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을까.

아니면 속으로 저주를 내렸을까.

천 년전의 일이었기에 알 수는 없었다.

또한 아리아는 뮤리엘이 아니었기에 알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마··· 축하를 해주었을 것 같았다.

레아의 말마따나 뮤리엘은 자애로운 성녀이자 여신이었으니까.

아리아와 달리 성격과 천성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사실··· 아리아도 그럴 것 같았으니까.

뮤리엘와 아리아.

그 둘은 어딘가 상당히 닮아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뮤리엘과 아리아뿐만이 아니었다.

레아와 엘레나.

이 둘 또한 어딘가 상당히 닮아있었다.

샤를롯의 여동생, 레아.

콘라드의 여동생, 엘레나.

천 년이라는 시간의 격차가 있을 뿐이다.

아리아가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듯.

엘레나는 레아의 환생이라 불릴 수 있었다.

물론 정말로 환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둘은 닮아있었다.

그리고 지금.

레아가 카일을 붙잡았듯, 엘레나는 시안을 붙잡으려하고 있었다.

뮤리엘이 카일을 붙잡지 못했었듯, 아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운명은 반복되는 것일까.

악마들이 끊임없이 부활하는 것처럼, 이 운명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나는···.

똑똑.

그 순간 들려온 노크 소리.

누군가 싶은 것도 잠시.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 밖에서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시안이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리던 찰나.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귀빈실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보인 것은 두 명의 여인이었다.

“어머? 백작님께서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문을 열어준 엘레나.

“······”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아리아였다.

멍하다기보다는··· 어딘가 고장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시안은 엘레나와 아리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방 안에 흐르는 묘한 기류.

둘 사이에 무언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리아를 좀 만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시안의 말에 엘레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아리아 또한 약간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엘레나가 아닌 아리아를 찾아왔다는 시안의 말.

방금 전, 엘레나의 말을 들은 아리아.

엘레나의 입장에서는 저 말이 굉장히 서운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엘레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제가 있으면 불편하겠네요. 두 분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되려 엘레나는 자리를 비켜줄 뿐이었다.

엘레나는 시안이 들어온 문을 열어 귀빈실 밖으로 나갔다.

스쳐지나가는 엘레나를 보며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묘하게 평소의 엘레나와는 달라보였으니까.

어느덧 엘레나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시안은 귀빈실 안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직도 고장나있는 아리아에게 말했다.

“야. 너 설마 황녀님께 말한 거야?”

“······”

그런데 아리아가 별 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정말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멍한 표정으로 엘레나가 떠난 자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얘가 왜 이러나 싶은 것도 잠시.

“시안.”

“왜.”

“넌 황녀님을 어떻게 생각해?”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녀님? 그건 갑자기 왜 물어?”

“그냥. 황녀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그걸 왜 궁금해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무엇보다 왜 나한테 묻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야··· 좋은 분이시지?”

시안은 잠깐의 생각 끝에 답을 해보였다.

엘레나는 시안의 기준에서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다.

물론 생각 자체가 조금 어긋나있는 면은 있었다.

황녀의 의무감.

스스로를 도구로서 취급하는 생각.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환경이 만든 생각에 불과했다.

황녀라는 지위에 대한 환경.

자신이 누리는 권위에 대한 책임의 일환.

이를 다시 말하면 본인의 배경이 스스로의 능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누린 권리와 지닌 배경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배경이 어떤 희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간과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범한 귀족가의 자식들조차 스스로를 고귀한 자라 칭한다.

미천한 평민들이라 일컬으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지닌다.

태어날 적부터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그들이 누리는 권리는 언제나 그러했으니까.

하물며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황가의 일원이라면 말해 무엇할까.

그런 배경 속에서 저런 생각을 한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조금은 어긋나 있을지언정, 시안의 기준에서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황녀님이 결혼하자고 하면 할거야?”

“그건 뜬금없이 무슨 헛소리야.”

시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정도가 있지.

“진짜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아 몰라! 그냥 대답이나 해!”

그러자 아리아가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신성의 파동이 귀빈실 전체로 터져나왔다.

꽤나 강력한 신성을 담았는지, 시안의 마기가 약간 요동칠 정도였다.

하여간, 저 성질머리하고는.

그보다 얘는 루벤에서 오우거 폐라도 삶아먹었나.

시안은 작게 고개를 흔들어보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히···?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왜? 황녀님 정도면 예쁘잖아.”

“예쁜 거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인데?”

“왜 상관이 없어? 예쁜 여자랑 결혼하면 좋잖아. 남자들은··· 다 그렇지 않아?”

아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시안은 딱히 부정의 의사를 내보이지 않았다.

“뭐, 예쁘면 좋긴 하다만 결혼은 좀 이야기가 다르지?”

“뭐가 다른데?”

“가족이 된다는 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난 루벤의 영주잖아. 나와 결혼하면 루벤의 안주인이 되는 건데, 얼굴만 보고 결혼하기엔 좀···.”

그러자 아리아가 몸을 움찔, 떨어보였다.

괜시리 스스로가 찔리는 것처럼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럼 황녀님은? 네가 말한 좋은 사람이라는 건, 루벤의 안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야?”

“글쎄···.”

뭐, 자격을 논한다면야 충분했다.

애초에 황녀라는 지위에 무슨 자격을 논할까.

그리고 말마따나 시안이 본 엘레나는 어긋나있을지언정 좋은 사람이었다.

루벤의 안주인으로서 내정을 맡겨도 믿을 수 있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하지만 역시나 시안은 별 생각이 없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니, 그건 그렇고. 갑자기 이걸 왜 묻는건데? 설마 황녀님이 나랑 결혼하겠고 하셔?”

“알고··· 있었어?”

그러자 아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또 뭐라고. 황녀님은 내게 습관처럼 결혼하자고 말씀하셔. 첫 만남부터 결혼하자고 하시는 분인데 뭘.”

“하지만 그때는···!”

아리아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소리쳐왔다.

그러나 주저하는 눈치와 함께 이내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아리아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왜 저래?’

시안은 아리아가 왜 저러나 싶었다.

평소와 사뭇 다른 아리아의 태도.

황녀님과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시안은 그에 대해 물으려던 찰나.

“쓸데없는 소리말고 나 퀘스트 깨야하거든? 그러니 나 좀 도와줘.”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기에 따로 묻지는 않았다.

#

루벤과 엘란두르의 전쟁 이후.

그 충격적인 소식은 여전히 대륙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소문이란 본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사그라드는 법.

그러나 이번 일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제국 어딜가나. 대륙 어딜가나.

시안과 루벤에 관련한 이야기가 끝이질 않았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소식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엘란두르가 악마와··· 결탁이 되어있었다고?”

황궁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엘란두르가 악마와 결탁되어있었다는데?”

“그 뭔···.”

충격적인 소식은 다시 한 번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를 강타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충격에 경악을 끼얹으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반응은 이것.

“에이,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악마라니.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망발인가.”

악마는 신화 속의 존재로서 이미 사라진 악이었다.

솔직히 천 년전에 존재했다는 것도 아리송한 일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엘란두르가 악마와 결탁되어있다니?

“누가 헛소문을 퍼트렸나보군.”

“어쩌면 루벤에서 작정하고 루머를 만든 것일지도.”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아니, 잠깐 들어봐. 이게 그렇게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헛소문이라기엔 그 증거가 너무 명백해.”

그 소문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뚜렷했으니까.

일단 그 소문의 출처가 다름 아닌 황궁이라는 것.

“엘란두르의 가신들이 모두 입을 모아 증언을 했네.”

그리고 엘란두르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똑같이 증언했다는 것.

“신성 제국의 성녀 또한 엘란두르를 악마의 소굴이라 공언했다네.”

무엇보다 신성 제국의 성녀가 공언했다는 것.

“뭐라고? 그게 참말인가?”

“그래. 이에 관해서 신성 제국도 움직인다더군.”

“조만간 샤를롯 제국과 협력하여 엘란두르를 조사한다고 해.”

사람들은 그때서야 소문을 믿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믿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냥 헛소문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헛소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수 백년간 엘란두르가 쌓아온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후에 들려온 소식이 치명적인 결정타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루벤에서 그동안 엘란두르가 저지른 만행들을 낱낱이 모두 고발했다네.”

루벤에서 밝힌 수많은 엘란두르의 악행들.

엘란두르가 지난 수 십년간 음지에서 행한 수많은 범죄 행각들.

“이, 이보게. 이거 그때 그 일 아닌가···?”

“잠깐, 이거 설마···?”

그것엔 제국의 무수한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작게는 평민들부터 시작해 제국의 수많은 가문들이 얽혀있었다.

“우리··· 우리 아버지를···!”

“아아···.”

갑자기 실종되어 사라진 부모와 형제들.

뜬금없이 죽어간 가문의 사람들.

당시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

그 모든 것들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며, 엘란두르의 이미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제국을 지탱하는 두 가문에서.

“엘란두르···! 이 악마같은 새끼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들!”

제국의 공적으로.

그렇게 엘란두르와 관련한 이야기가 대륙을 뒤집어 놓은 가운데.

황궁에 위치한 귀빈 대기실.

띠링!

『[영지 퀘스트] - ‘저 엘란두르, 순 나쁜새끼에요!’ (클리어!)

▶장막 속에 감추어진 엘란두르의 진실.

그 진실을 파헤쳐 온 세상에 엘란두르의 추악함을 밝히세요!!』

-보상: DLC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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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경쾌한 스마트 폰의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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