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87화 (287/322)

287화 - 아르나이즈 전당(1)

수도, 다르칸에 위치한 주전관(鑄錢官).

주전관은 말 그대로 화폐를 주조하는 기관으로서 제국 경제를 책임지는 핵심 기관이라 할 수 있었다.

제국 경제를 책임지는 핵심 기관인 만큼 그 보안은 엄중했다.

제국에서 내로라 하는 귀족들조차 쉬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

황궁만큼이나 보안이 엄중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전관의 창고.

와르르르르.

창고에는 황금의 보물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황금의 보물들.

주전관 소속의 사람들은 모두 입을 쩌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주전관의 호위를 책임지는 로열 나이츠들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마다의 임무를 망각한 채, 쏟아지는 황금의 폭포를 바라봤다.

와르르르르르.

황금의 폭포는 그야말로 끝도 없이 쏟아져내렸다.

그러나 황금의 샘도 결국 마르기는 하는 걸까.

“후우. 이것들 전부 가져가시면 됩니다.”

쏟아진 황금의 보물들은 주전관의 창고를 흘러넘치게 하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

“······”

주전관의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특히나 황실 재정총관의 표정은 그야말로 얼이 빠져있었다.

주전관의 창고가 가득 채워진 적이 언제였던가.

일단 재정총관의 최근 기억으로는 없었다.

가물가물한 기억까지 더듬어도 없었다.

주전관의 역사를 뒤져봐야 한 두 번 있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에 황실 재정총관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정총관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주전관의 사람들에게 명을 내렸다.

현재 제국을 강타한 화폐 부족 현상.

지금도 관련하여 경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 현상을 빨리 해결려면 부지런히 움직여도 모자랐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황금을 모두 옮긴 이후.

“그럼 바로 처리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황실 재정총관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 걸음,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아, 잠시만요. 아직 더 남아있어서.”

뒤쪽으로 괴상망측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은 생각과 함께 재정총관이 몸을 돌렸다.

와르르르르르르.

그리고 보인 것은 황금의 폭포.

그 끝도 없는 황금의 폭포가 다시 한 번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재정총관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굳어진 몸에 정신이 아찔해지며 기억이 잠시나마 끊겨버렸다.

그 때문에 이후로 몇 번의 와르르르가 이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두 자리는 가볍게 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이 맴돌 뿐이었다.

“후우! 이게 끝입니다.”

그렇게 끝내 폭포의 샘은 말랐고.

“그, 그럼··· 이만 가봐도···?”

재정 총관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안의 모습에 재정총관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확인했다.

진짜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쉽사리 떼지지 않았다.

그러나 천만 다행히도 폭포가 다시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안도감이 들자 이번엔 막막함이 떠올랐다.

저 많은 골드를 언제 처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몇 주는 꼬박 밤을 새야할 것 같은데.

골드를 주조함이 있어 물가 지수, 화폐 유통량 등.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픈 개념들을, 생각만해도 머리가 빠개지는 계산을 해야만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골드 화폐 부족 현상으로 당장 골드를 찍어내도 모자랐으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 머리 아픈 계산을 해야함은 변치 않았다.

“당분간 주전관에서 살아야겠구나···.”

재정총관은 그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 재정 총관이 떠나간 이후.

시안은 긴 적발의 미녀,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아멜리아, 여기서 이분들 삥땅치나 안 치나 감시좀 해줘.”

“아, 네 뭐··· 그거야.”

아멜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주전관에서 삥땅을 치겠냐만은.

아니, 그보다 삥땅이 뭐란 말인가 삥땅이.

횡령이라는 고급진 단어가 있는데 말이다.

애초에 황실 직속의 주전관에서 삥땅을 칠까.

아니, 횡령을 하겠··· 에이, 삥땅이 더 입에 잘 붙긴 하네.

“그리고 골드가 찍어나오는 대로 우리 몫을 여기, 주머니에 담아넣으면 돼. 어떻게 넣는지는 봐서 알지?”

“아, 네 그것도 뭐··· 아니, 영주님. 이게 맞아요?”

“안 맞을 건 뭐가 있어.”

“아니 뭐··· 그건 그렇지만요···.”

솔직히 안 맞을 건 없긴 했었다.

애초에 이쪽에서 손해를 보면서 하는 일이지 않은가.

물론 골드 화폐 품귀 현상이 발생한 이유도 이쪽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으로 발생한 일.

불법도 아니었고, 죄를 물은 건 더더욱 없었다.

사실 상 시안이 제국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 부탁할게 아멜리아.”

그런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건 대저 무슨 이유일까.

시안은 그렇게 아멜리아에게 뒤를 맡긴 뒤, 주전관 한 쪽.

대기 중이던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루카스, 기사단들이랑 여기서 아멜리아 잘 지켜. 아멜리아한테 무슨 일 생기면 큰일 난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카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째, 대답이 조금 느렸다.

그리고 어딘가 서운한 듯한 표정까지.

“표정이 왜 그래?”

“예? 제 표정이 어때서 그렇습니까.”

“뭔가 나한테 서운한 게 있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제가 영주님께 서운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면서 루카스가 군기 바짝 어린 모습을 보였다.

평소의 루카스와 다를 바 없었지만, 시안은 그 안에 깃든 작은 불만을 엿볼 수 있었다.

“아멜리아랑 있는 게 불편해서 그래? 너 원래 브라헤 가문의 기사였잖아.”

루벤에 오기 전, 루카스는 본디 브라헤 가문의 기사였다.

지금은 루벤의 경비대장이었지만, 그 전에는 아멜리아를 호위하는 기사였다.

“그런 것 아닙니다. 아멜리아 아가씨를 제가 왜 불편해하겠습니까.”

당연하게도 루카스가 아멜리아를 불편해 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루카스가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역시 하나.

“황궁에 가서 아리아 만나면, 로라를 슬쩍 이쪽으로 빼줄테니까. 너무 시무룩해있지마.”

시안은 루카스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지나쳐 걸어갔다.

“제, 제가 언제 시무룩해있었다고 그러십니까!”

그러자 뒤쪽으로 루카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방금 전보다 목소리에 확실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그럼 다녀올게.”

시안은 걸음을 옮겨 황궁으로 향했다.

#

황궁으로 돌아온 시안은 이런저런 절차를 마친 뒤.

곧장 아르나이즈 전당으로 향했다.

『[메인 스토리 퀘스트] - ‘끝나지 않은 싸움’』

<아르나이즈 전당으로 향하세요.>

<보상: ???>

.

.

.

카르제의 마지막 유언이자 메인 스토리 퀘스트.

카일이 마주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를 퀘스트.

문제는 아르나이즈 전당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건국일 행사에서 행해지는 조디악 소드의 선택.

그것을 받아야만 전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샤를롯 제국의 건국일이 특이하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달이 기운이 충만한 윤달의 해.

그 윤달의 마지막 날이 샤를롯 제국의 건국일이었다.

해서 건국일 행사는 4년마다 진행한다.

더불어 조디악 소드의 선택은 5번째 건국일 행사마다 진행한다.

한 마디로 조디악 소드의 선택은 20년마다 있는 행사.

그 때문에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이는 당대 최고의 인재라 불린다.

그리고 지난 날, 시안이 그 선택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아리아와 함께 선택받았지만 뭐, 아무튼.

당연하게도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기다린다고 한들.

막말로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을지는 미지수였다.

만일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낭패.

여러모로 기다린다는 선택지는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 시안이 선택한 것은 이것.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조디악 소드를 빌리려는 이유가··· 아르나이즈 전당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나?”

조디악 소드, 자체를 빌려서 입성한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당에 입성하기 위해 조디악 소드의 선택이 필요한 이유.

그것은 결국 전당에 깃든 강력한 결계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한 설화가 전해져내려오긴 했다만···.

‘모두 레아가 조작한 이야기였지.’

당시 전당의 망령이었던 레아가 조작한 이야기였다.

실상은 아르나이즈, 엘로디가 펼친 결계였다.

그리고 그 결계를 뚫을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조디악 소드.

한 마디로 조디악 소드의 선택이 아니라.

‘조디악 소드’라는 열쇠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해서 시안은 1골드당 0.7골드.

무려 9억 골드의 대여비를 지출하여 조디악 소드를 빌렸다.

황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검, 조디악 소드.

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빌려준다는 건 천 년의 역사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만일 제국에 화폐 품귀 현상이 없었더라면.

그로써 제국의 경제가 파탄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 들어가보도록 하지.”

그리고 그 마저도 황태자, 콘라드가 동행한다는 조건이 붙어버렸다.

그래도 뭐, 어쨌든.

어떻게든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

시안은 우여곡절 끝에 아르나이즈 전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시작하겠네.”

콘라드는 전당의 입구에 서서 조디악 소드를 들어보였다.

그와 동시에 우우웅─.

작은 진동이 일며 결계의 기운이 약해졌다.

지난 날,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확실히 열쇠의 힘을 비는 것과 열쇠 자체를 사용하는 것은 달랐다.

“된 것 같네요.”

시안은 천천히 입구로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콘라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뭇거렸다.

“이게 느껴지나? 난 잘 모르겠─.”

쑤욱.

거침없이 전당 안으로 들어가는 시안의 모습.

“······ 자네를 따라가려면 정말 한참이나 멀었군.”

콘라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안의 뒤를 따랐다.

#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커다란 공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보이는 6개의 석상.

검신(劍神) 샤를롯.

신녀(神女) 뮤리엘.

대마도사 엘로디.

신장(神匠) 모르크루.

상천술사 노에미.

마지막으로 카일까지.

물론 카일의 모습은 진짜 카일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 또한 레아가 조작한 모습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오랜 만에 돌아온 아르나이즈 전당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관리는 커녕, 그대로 방치만 되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결계 때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시안에게는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전당이 대체 왜···?”

하지만 콘라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콘라드는 눈을 크게 뜨며 전당의 모습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여기저기 부서지고 패여있는 광경에 콘라드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에 시안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제가 들어왔을 때, 싸웠던 흔적들입니다.”

“싸워? 자네가? 대체 누구랑? 설마 성녀랑···?”

콘라드는 설마하는 표정으로 시안에게 물었다.

당시 시안은 아리아와 함께 전당에 들어왔었으니까.

“아뇨. 레아와 싸웠습니다. 그때 당시 레아가 갑자기 습격을 해온 터라 어쩔 수 없이···.”

“레아?”

콘라드가 일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아라는 이름이 생소한지 잠깐의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곧 떠오른 생각에 곧장 시안에게 물어왔다.

“설마 분관조님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분관조께서 이 전당에 잠들어있었다고 했었지.”

분관조(分貫祖)라 함은 분관시조(分貫始祖).

본관을 달리하는 조상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샤를롯의 여동생인 레아는 콘라드에게 있어 시조와 다름 없는 존재.

이는 지난 날, 콘라드가 루벤에 왔을 때 들었던 사정이었다.

그렇기에 콘라드는 망가진 전당에 관해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랜 선조인 레아가 망가뜨린 것이지 않은가.

사실상 이 전당의 주인이나 다름 없거늘.

대체 뭘 탓한단 말인가.

“분관조께서는 잘 지내는가?”

“그때 보셨을 때보다 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아리아가 떠나면서 왜인지 좀 시무룩해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다행이군. 이번에 돌아가면 안부좀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자,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지?”

이어 콘라드가 시안을 향해 다음 행동을 물어왔다.

이 전당에 들어온 이유는 오로지 시안 때문.

또한 그 이유를 콘라드는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콘라드는 시안에게 물었건만.

“그러게··· 말입니다?”

시안도 모르는 눈치였다?

“음?”

콘라드의 고개가 약간 기울어졌다.

의문을 표하는 얼굴로 시안을 바라봤지만 시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제 뭐 어쩌라는거지?’

진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카르제의 유언이자 ,아르나이즈 전당으로 향하라는 퀘스트의 내용.

그렇게 시안은 아르나이즈 전당에 왔다.

‘왜 아무 반응이 없어?’

그런데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평소라면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클리어가 되던가.

아니면 띠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퀘스트가 변동되거나.

둘 중 하나는 되어야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잠잠했다.

“······”

진짜 뭐 어쩌라는거지?

뭐라도 반응이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의 생각.

‘설마 모바일 영주가 점검 중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생각해보니 있었다.

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했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점검 중에는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었다.

‘이러면···.’

꽤나 높은 가능성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모바일 영주의 점검이 끝나기 전까지 뭘 할 수가 없다는 뜻.

뭐, 점검이 끝나면 다시 오는 방법이 있었다.

‘점검이 언제 끝날 줄 알고?’

무려 15억에 달하는 현질의 점검.

평소보다 배는 길어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무엇보다 전당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조디악 소드가 필요했다.

해서 시안은 1골드 당 0.7 골드.

무려 30%의 손해를 봐가며 조디악 소드를 빌렸다.

‘그걸 한 번 더 빌려야만 한다···?’

절대 안된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더 빌려줄지도 모를 뿐더러, 또 대여비를 내야할지도 몰랐다!

“이런 제기랄···!”

시안은 말을 씹듯이 내뱉으며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자네, 갑자기 어디가나!”

그러자 뒤쪽으로 들려오는 콘라드의 외침.

‘어떻게든 여기서 끝내야한다.’

시안은 이를 뿌드득, 갈며 전당 내부를 수색했다.

#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전당 내부를 샅샅히 조사했다.

온 기감을 확장하며 수색했다.

드래곤의 감각과 더불어 초월의 마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올려 여기저기 들쑤셨다.

“없어···.”

그런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나오지 않았다.

“이런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콘라드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시안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진짜··· 진짜···.”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일이란 말인가!

모바일 영주의 점검으로 인해 퀘스트가 진행이 안되다니.

그 때문에 대여비를 생으로 날려야한다니!

‘점검이 끝나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고객 센터에 문의해서 정식으로 항의할 것이다.

손해란 손해는 모조리 배상 청구할 것이고.

그를 넘어 시간 보상, 정신적 피해 보상.

명예 훼손 및 기만과 사기 그리고 또또···.

아무튼 모조리 고소할 것이다!

“내 반드시 그러할 것이야!”

시안은 꺼져있는 스마트 폰을 화면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곧 밀려오는 허탈함.

“하아···.”

시안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자네··· 괜찮은가?”

그 뒤를 이어 콘라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전하, 외람되지만··· 나중에 조디악 소드를 한 번 더 빌릴 수는 없을지···.”

그러자 콘라드가 살짝, 난처한 기색을 선보였다.

“아무래도 폐하의 윤허가 필요한 일이지라··· 내가 확답을 줄 수가 없군.”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한 번 더 빌려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긴 했다.

아주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전당에 입성하는 것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가능성.

황제가 배짱을 부리면 시안으로서도 할 말은 없었다.

아마 콘라드였다면 시안은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필 황제였기에 시안은 혹시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콘라드였다면 걱정도 하지 않지만 황제였기에 혹시나는 염두에 두어야 했다.

어쨌거나 그대로 대여비만 날아가는 셈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베스트는 지금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안되고 있으니.

“하아···.”

시안의 한숨은 끊이질 않고 새어나왔다.

샅샅히 수색했음에도 그 어느 것 하나 나오지 않은 상황.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거 아니야?’

아니,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지난 날, 시안이 전당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레아도 모르는 거였잖아?’

심지어 레아도 모르고 있었다.

무려 천 년간 이 전당에 잠들어있었던 레아였다.

비밀 공간? 숨겨진 장치?

천 년의 세월 동안 있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샤를롯이 만들어둔 비밀 공간도 레아가 알려주지 않았는가.

그러나 레아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에 카일과 관련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천 년동안 이곳에 생활한 레아조차 모르는 것이 있다?

불가능한 일이나, 가능성은 딱 하나였다.

‘레아도 모를 정도로 숨겨두었다···?’

레아의 감각도 알지 못하게 숨긴 것.

형체가 없는 레아의 몸이 통할 수도 없는 것.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냐 싶지만.

그런 의미로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아르나이즈들의 석상.

시안은 이 석상들에서만큼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니 걸리는 것이 없는 건 당연하지 않냐.

그리 말할 수 있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카르제의 힘을 이어받아 확장된 기감.

드래곤 하트에 잠재된 초월의 마력.

현재로서 시안의 기감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예를 들어 지금 바닥에 채이는 돌.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돌이었지만, 시안의 감각은 그렇지 않았다.

최소한 ‘돌’ 이라는 개념과 인지가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석상들은 아니었다.

석상이었으니 당연히 돌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돌이라는 개념과 인지가 느껴져야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져.’

하지만 석상들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시안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넘어갔지만···.

‘레아도 모르던 것이라···.’

이렇게 생각해보니 너무도 수상했다.

천 년간 잠들어있던 레아의 감각을 속인다.

더 나아가 지금, 시안의 감각마저 속인다.

앞선 레아의 감각을 속이는 것은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시안의 감각을 속이는 것은 거진 불가능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가능한 존재는 딱 한 명.

‘카일.’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

현재 시안의 수준을 가늠하면 오로지 카일만이 가능하다.

카일만이 시안의 감각을 현혹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일 그런 카일의 힘이 개입되어있다면?

시안의 감각에 걸리지 않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었다.

레아가 천 년간 눈치채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확실하지 않으나, 유일한 가능성.

시안은 천천히 카일의 석상으로 다가갔다.

감각에 걸리지 않은 건 아르나이즈의 석상 모두였다.

그럼에도 시안은 카일의 석상으로 다가갔다.

비록 레아로 인해 석상의 모습은 카일이 아니었다.

카일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하지만 그건 레아가 석상을 다시 깎은 것.

본디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아니었다.

레아가 건드리기 천 년전에는 진짜 카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겉모습만 다르다 뿐.

이 석상은 정말 카일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석상이었다.

시안은 살며시 카일의 석상에 손을 대보였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과거에 시안이 전당에서 얻은 카일의 유산이 하나 있었다.

근원의 마(魔)를 다루고 제어하는 방법, 마혼제법(魔魂制法).

그리고 그건 오로지 카일만이 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대마도사였던 엘로디조차 범접할 수 없었다.

이것만큼 카일을 증명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시안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아 마혼제법의 구결을 되뇌였다.

그와 동시에 사아아아─!

칠흑의 어둠이 시안의 전신으로 피어올랐다.

시안은 끌어올린 어둠의 힘을 카일의 석상으로 밀어넣었다.

“자네 지금 무슨···?”

이에 의문을 표하는 콘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시안 또한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뿐.

무엇보다 석상이 어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시안은 계속해서 어둠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달칵.

석상 한 쪽에서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감각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온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시안은 어둠을 거두고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살폈다.

그리고 카일의 석상 한쪽, 자그마한 뚜껑 같은 것이 열려있었다.

정확히는 네모반듯한 홈의 모양으로 석상의 일부가 떼어져나가있었다.

끼워맞춘다면 어떤 명패.

무심코 보면 그냥 세월에 패인 흔적처럼 보였다.

하지만 왜일까.

“스마트 폰?”

시안은 스마트 폰이라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네모반듯하게 패인 홈이 딱 스마트 폰의 크기와 비슷했으니까.

아니, 비슷한 수준을 넘어 딱 들어맞아보였다.

고민할 것이 무얼까.

시안은 곧장 스마트 폰을 홈에 끼워넣었고 달칵.

예상처럼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화아악, 하는 빛무리와 함께 스마트 폰 화면 위로 복잡한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시안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재 다운로드 중인 DLC 컨텐츠] - 카일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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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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