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 드리우는 전운(2)
제국 동부에 위치한 엘란두르 후작령.
“모든 병력. 집결을 완료했습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 에런의 보고에 듀라크는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저마다의 장병기를 들고 도열해있는 군대.
제식을 맞춘 수많은 병사들이 시야 빼곡히 채워져있었다.
한 왕국의 병력이라해도 쉬이 끄덕여지지 않는 규모였다.
도무지 일개 후작령의 병력 규모라 생각될 수 없었다.
듀라크는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성물의 해방은 어떻게 되었지?”
“마지막 절차만 남았어요.”
레이첼이 한 발 나서며 답을 해보였고.
듀라크는 곧장 입을 열었다.
“곧바로 진행하라.”
“하지만··· 정말로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레이첼은 우려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두 군주의 힘을···.”
“진행하라 말했을텐데.”
그러나 단호한 듀라크의 말.
레이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차분히 시선을 들어 바라본 곳에는 듀라크가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려다 보는 눈빛에는 어떤 섬뜩함이 깃들어있었다.
도무지 인간이라고 생각될 수 없는 어떤 섬뜩함이.
“······ 알겠어요.”
레이첼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듀라크는 다시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지평선 너머까지 가득 드리운 군대.
“전 병력. 진군하라.”
내뱉어지는 듀라크의 말과 함께, 군대가 물결치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
루벤에 위치한 영주성 Lv.4
그런 영주성에 위치한 대회의실.
대회의실에는 수많은 루벤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각 종족을 대표하는 핵심인물들부터 시작해.
각기 역할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까지.
거진 루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지금 대회의실에 모여있었다.
“엘란두르가 움직였다는 것이 참말이오?”
“그렇다고 하더군. 나도 그렇게 듣기만 한 터라 자세히는 모르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엘란두르의 침공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소란스러운 사이.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대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루벤의 영주, 시안.
시안의 등장에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시안은 정적을 가로지르며 성큼, 대회의실의 가장 상석에 자리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을테니, 쓰잘데기 없는 설명은 건너뛸게. 다이애나?”
시안이 한 쪽으로 손짓하자 다이애나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보였다.
“관련한 정보들을 사람들에게 브리핑 해줘.”
다이애나는 시안을 향해 한 번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곧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현재 엘란두르 후작령을 중심으로 대규모 병력이 움직였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에 저희 정보부에서는···.”
줄줄이 이어지는 다이애나의 브리핑.
“또한 엘란두르에 속한 모든 가신들이 이번 전쟁에 참여했으며, 총사령관으로는 엘란두르의 가주인 듀라크 엘란두르가 내정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듀라크 엘란두르.
다이애나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오직 시안만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뿐이었다.
“병력 규모는? 확인해봤어?”
“급히 확인한 터라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대략 30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들려온 다이애나의 답.
“30만···!!”
“30만이라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터져나왔다.
대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잔혹한 놀람이 떠올랐다.
실로 말이 안되는 규모였으니까.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백작령에서 차출하는 병력은 1만을 채 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으로 용병을 끌어모은다 한들, 끽해야 1만 5천을 넘기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 날에 루벤과 영지전을 행했던 크라우드 백작가.
그때의 병력 규모가 대략 1만 2천 정도였으니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말이 1만 2천이다 뿐.
직접 그 규모를 보면 1만 2천도 상당한 규모였다.
그런데 들려온 답은 자그마치 30만.
아무리 엘란두르가 후작령이라 한들 말이 안되는 규모였다.
이는 거진 한 왕국의 병력과 유사한 규모였다.
“3만을 착각한 거 아니오? 아무리 그래도 30만이라니···.”
“그렇소이다. 어떻게 30만이란 병력이···.”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이애나의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차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그래봤자 1~2만 내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확고했다.
실수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제국 최고 정보 길드의 수장이었던 다이애나.
그런 다이애나가 저렇게 말한다는 건 거진 확실하다고 봐야했다.
“허어···.”
“이를 어찌···.”
그렇기에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더했다.
이건··· 이건 싸움 자체가 되지 않았다.
체급 자체가 달라도 차원이 달랐다.
루벤이 끌어모을 수 있는 병력은 끽해야 2~3천 내외.
이번 수인족들이 합류하면서 어찌 5천까지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자그마치 30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은 거진 두부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
“······”
대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경악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충격과 경악이 내려앉은 침묵 속.
“음···.”
시안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3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
솔직히 시안도 믿기지 않는 규모였다.
이건 과장 하나 섞지 않고 반역을 감행해도 충분했다.
제국의 황가를 향해 반기를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규모였으니까.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는 확실했다.
듀라크는 진심이다.
듀라크는 진심으로 루벤과 시안을 멸족시키려하고 있었다.
시안은 다시 다이애나에게 물었다.
“루벤에 도착할 예상 시간은?”
“병력의 규모가 많다보니 진군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3주 이내로 당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3주라···.”
시안은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이러면··· 아무래도 황궁으로 가는 것은 잠시 미뤄야할 것 같았다.
적군이 대규모 병력을 끌고 오는 상황에서 영주란 자가 자리를 비운다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뭐, 골드를 못 바꿔온다는 것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당장 골드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아니, 그리고 말이 나와서 꺼낸다만.
사실 시안이 황궁으로 가려는 이유는 마냥 골드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골드는 부가적인 이유라 할 수 있었다.
시안이 황궁에 가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것.
『[메인 스토리 퀘스트] - ‘끝나지 않은 싸움’』
<아르나이즈 전당으로 향하세요.>
<보상:???>
.
.
카르제의 마지막 유언이자, 메인 스토리 퀘스트.
시안이 그동안 찾던 카일이 마주한 진실.
골드를 찍어내려는 것은 겸사겸사한 일이었다.
······ 진짜로.
뭐, 아무튼.
지금은 골드와 퀘스트는 잠시 접어두고, 전쟁 준비를 해야만 했다.
“세미르. 3주 안에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 병단에 드래곤 장비 보급이 가능하겠습니까?”
“시제품의 성능은 확인했으나··· 양산의 과정이 쉽지 않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에 선조들의 지식들이 필요한 터라. 모든 제련 과정에 내가 직접 개입해야하니 말이오.”
드래곤의 장비는 드워프들조차도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아무리 드워프가 장인의 종족이라고하나, 드래곤의 장비는 그 궤를 달리했으니까.
모르크루의 후손인 세미르.
그가 아니었다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어떻게든 기한을 맞춰보겠소.”
세미르는 결연한 표정으로 답을 해보였다.
“평소였다면 무리하지 말라고 그랬을텐데··· 이번엔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세미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고.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본격적인 전쟁을 대비했다.
“루카스. 너는 병사들과 함께 계속 훈련에 집중해.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세미르가 저런다고 너희들까지 무리하면 안된다.”
“알겠습니다.
“켄드릭도 마찬가지야. 흑사자 기사단들을 잘 다독여줘.”
-걱정마십시오 주군.
“아스란디즈님은 마법 병단의 통솔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번에 드래곤 지팡이에 관련한 적응을 위주로요.”
다크 엘프의 전 숲지기, 아스란디즈.
비록 지금은 모든 힘을 잃었으나 아스란디즈는 8위계(位界)에 닿았던 대마법사였다.
그러나 그 지식까지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세라가 마법 병단을 이끌고 있었지만, 아스란디즈는 정신적 지주로서 세라를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스란디즈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리스님은···.”
수인족들의 대족장, 카리스.
“루벤에 오자마자 죄송스럽긴 하지만, 같이 싸워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희들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도 어엿한 루벤의 영지민. 루벤이 위협받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카리스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카리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뒤쪽의 수인족들이 진득한 투지를 끌어올렸다.
확실히 예전의 수인족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수인족들의 모습에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시안은 사람들에게 각각 저마다의 역할을 명령했다.
전쟁은 단순히 전투력만으로 행해지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이번엔 그 전쟁터가 이곳, 루벤이었다.
그 피해가 최소한이 되도록.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시안은 세심하고 또 꼼꼼하게 사람들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 그럼. 다들 그렇게 알고 바로 움직여줘.”
시안의 말에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저마다 의지를 다지며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얼굴에 드리운 어둠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엘란두르라는 거대한 적에 대한 두려움.
바로 그때.
“저··· 외람된 말오만, 내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갑자기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크마루?”
그곳엔 우락부락한 근육의 드워프, 크마루가 서 있었다.
오래 전, 루벤을 방문했던 첫 드워프.
그리고 시안을 드워프 마을로 안내주었던 장본인.
“별 다른 건 아니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서 말이외다.”
크마루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어왔다.
“긍금한 것이요?”
“지금이 아니면 물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크마루는 그러면서 우물쭈물한 태도를 엿보였다.
호탕한 성격의 크마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대체 뭐가 궁금하길래···.
“말씀하세요.”
“그, 영주가 아니라 저기. 카리스라는 수인족에게 궁금한 것이 있소이다.”
“저··· 말입니까?”
크마루의 지목에 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마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 듣기로 용인족이라고 들었소.”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만.”
“천 년전의 아르나이즈, 노에미 또한 용인족이었다지 아마?”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는 노에미의 후손이라는 뜻이겠지.”
“오랜 세월이긴 하다만, 계보를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만큼 노에미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을거고.”
“뭐···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카리스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회의실의 모든 시선은 어느덧 크마루에게 집중되어있었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저러는 걸까.
“그럼 내 정말 순전히 궁금해서 묻는 거외만···.”
이내 크마루가 크흠, 헛기침을 해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르나이즈 노에미말이요. 그··· 노에미는 애미가 없었던 거요?”
일순간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찍혔다.
그리고 시안 또한 잠시 정신이 정지했다.
저게··· 저게 대체 무슨···.
“아니, 그렇지 않소이까. 노에미, 노에미 하는데.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그렇게 짓는단 말이오. 이는 틀림없이 애미가 없었으니 지어진 이름이 아니외까.”
그리고 이어진 크마루의 말.
그와 동시에 짙은 정적이 내려 앉았다.
아니, 이걸 정적이라고 해야할까.
놀람, 당황, 당혹, 어이없음.
갖가지 감정이 섞인 정적이 대회의실에 내려앉았다.
뭐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카리스는 물론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는 게. 내 모욕하려는 생각은 결단코 아니오. 정말 순전히 궁금해서 묻는 거이니 정말 오해는 마시구려.”
오직 크마루만이 눈치없이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런 의미로 노에미는 애미가 있었던 거요? 없었던 거요?”
사람들은 역시나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기색들도 엿보였다.
그러니까 크흠, 거리는 헛기침.
슬쩍, 곁눈질을 하며 뭔가 기대하는 눈치.
마치 자기도 정말로 궁금했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물음이라는 이상한 기색들이 엿보였다.
-어··· 나도 그건 좀 궁금하네··· 내가 노에미를 만났을 때는 부모가 없긴 했는데···.
그리고 들려온 레아의 중얼거림.
레아는 천 년의 원귀이자, 샤를롯의 여동생이었다.
한 마디로 아르나이즈들과 직접 대면한 존재였다.
그런 레아가 저런 말을 하니, 사람들의 뇌리 속으로 ‘설마 그런 것이었나···!’.
······ 하는 생각이 스쳐가던 찰나.
“그런 거 아닙니다!”
다이애나가 발끈, 하며 소리쳐왔다.
갑자기 다이애나가 왜 저러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다이애나도 노에미의 후손이었다.
다이애나는 카리스의 여동생.
비록 용인족의 힘을 잘 발현하지 못했지만 다이애나 또한 카리스와 마찬가지로 노에미의 후손이었다.
다이애나가 눈을 홱, 치켜뜨며 크마루에게 소리쳤다.
평소 차갑고 몽환적인 분위기였던 다이애나였건만, 이번에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보였다.
“세상 어떤 존재가 부모 없이 태어날 수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건 그렇긴 하오만···.”
크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을 이었다.
“그럼 노에미의 애미는 드래곤인 것이오? 그러니까 드래곤이랑 이것저것 해서 태어난···.”
“그런 것도 아니라고요!”
“그럼 대체 뭐요. 노에미의 애미가 대체 누구란 말이요. 이리저리 말을 돌리지만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보시구려.”
그런 크마루의 말에 다이애나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잖소. 드래곤의 특색이 있는 용인족인데 드래곤이랑은 안했다. 그리고 이름이 노에미다.”
크마루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럼 애미가 없었던 거 아니요?”
“이 땅딸만한 드워프가 진짜!”
다이애나가 끝내 폭발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크마루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맞받아쳤다.
“뭐? 땅딸만한? 내 비록 몸은 땅딸만하나, 애미는 있는 몸이외다!!”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어보자!”
그러면서 진짜로 싸우기 시작하는 둘이었다.
아니,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드워프들의 수준하고는···!”
“어허! 수준이라니! 솔직히 궁금한 건 맞지 않소!”
다른 수인족들과 드워프들도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진짜 뭐요? 노에미는 애미가 있었던 거요? 없었던 거요?”
“이것들이 진짜!”
아니, 아주 파벌을 갈라서 죽어라 싸우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난감한 건, 그 둘 사이에 끼어있던 인간들이었다.
“아, 아니. 다들 진정을 좀···.”
인간들은 둘의 싸움을 말리기 급급했다.
반면에 멀찍이 떨어진 다크 엘프들.
“꺄하핫! 드워프 친구들 너무 재밌어!”
“수인족 친구들도 재밌어!”
다크 엘프들은 재밌다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시안.
“하아···.”
시안은 짙은 한숨밖에 새어나오지 않았다.
인간, 드워프, 다크 엘프, 수인족.
대륙의 모든 이종족들이 혼합되어있는 루벤 영지.
“용인족이라고 부모가 드래곤이면. 저기, 견인족들은 부모가 개라는 뜻이냐?”
“엇? 그런 것 아니었소?”
“그럴 리가 없잖아!”
“가만히 있는 우리는 왜 건드리는 거야!”
정말이지 난리도 이런 생난리가 없었다.
설마 천 년전에 모르크루와 노에미도 이렇게 싸웠던 것은 아니겠지?
아니, 그보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전쟁 중인 영지의 풍경이란 말인가.
‘뭐, 축 쳐져있는 것보단 낫긴 하다만.’
콰당탕!
우당탕!
그리고 뭐, 서로 잘 친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만.
또한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워있던 어둠도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해서 시안은 굳이 저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진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도 정말 싸우는 건 아니었으니까.
‘근데 나도 궁금하긴 하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긴 했다만.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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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과 엘란두르의 전쟁.
정확히는 엘란두르가 일으킨 대규모 군대.
“엘란두르가 루벤을 향해 칼을 뽑아들었다고?!”
그 소식이 제국 전역을 강타하며 휩쓸었다.
그에 따라 제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가 떠들썩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렇다니까! 병력 규모만 무려 30만이라는데?”
“30만!!!”
제국 어딜 가나, 대륙 어디를 가나.
루벤과 엘란두르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물론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지지는 않았다.
“에이,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만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아니, 글쎄 진짜라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30만이라니. 어떻게 일개 후작령에서 30만을 끌어올 수 있나.”
말이 안되었으니까.
이건 루머 축에도 속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왕국도 아니고 일개 후작령의 병력이 30만이라니.
아니, 30만은 왕국이라도 쉽게 차출할 수 없는 병력이었다.
“헛소문이로구만.”
“난 또 진짜인 줄 알았네.”
그래서 처음 이 소식을 접했던 사람들은 헛소문이라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소문은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계속해서 퍼져나가며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끝내 샤를롯 제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왔을 때.
“사, 사실이었다고?!”
“맙소사···. 에, 엘란두르가 그 정도였다고?”
“세상에나···.”
사람들은 엘란두르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수 백년의 아성(牙城).
그리고 이것이 가리키는 진실은 하나.
“루벤도 이제 끝이군.”
“수 백년만에 초신성의 가문이 나오나 했더니···.”
루벤의 마지막.
아무리 기적과도 같은 행보를 보인 루벤이었지만.
한 때는 엘란두르를 압박한 루벤이었지만.
결국 엘란두르라는 이름 앞에 무너질 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루벤의 패배를 점지했다.
어느 누구 하나 단 하나의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만큼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가 떠들썩한 가운데.
[엘란두르의 선봉대가 곧 루벤의 영역에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