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 전무후무의 전력(2)
병사들의 장비를 드래곤 장비로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시안의 말.
“······!!”
세미르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드래곤 장비.
이 말이 갖는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세미르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세미르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 무엇이냐.
그리 묻는다면 단연 금강석. 그러니까 다이아몬드라 답을 할 터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 묻는다면 세미르는 지체할 것도 없이 답을 바꿔야만 했다.
드래곤 스킨(Dragon Skin).
혹은 드래곤 본(Dragon Bone).
오직 피부의 강도만으로 오러를 가뿐히 막아낸다.
오직 뼈의 강도만으로 강철의 방패를 가뿐히 뚫어낸다.
과거, 모순(矛盾)이라는 비화가 생각날 정도로 아이러니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걸 병사들에게 보급한다···?
그리하여 병사들이 드래곤의 장비로 무장을 한다?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군대가 탄생될 것이다.
대륙의 역사를 헤집어 봐도 존재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군대.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흑사자 기사단들의 장비도 업그레이드하고··· 마법 병단의 장비도 전부 업그레이드 하죠. 세미르, 혹시 마법 장비도 만드실 수 있으신가요?”
흑사자 기사들과 다크 엘프 마법 병단까지.
물론 마법사들의 무기는 단단함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마력 전도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마법사들에게 가장 뛰어난 재료는 역시나 세계수였다.
엘로디의 지팡이, 인스티즈(Instiz)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세계수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었다.
궁극의 생명체, 드래곤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한없이 무색해졌다.
드래곤은 무려 마법의 주종이라 불리는 존재.
드래곤의 육체는 마력의 전도율이 무한대에 가까웠다.
일명 초전도체(Superconductor).
이론 상으로만 존재하는 궁극의 영역이었다.
이 세상에서 드래곤보다 완벽한 존재는 없었다.
그렇기에.
“다룰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소.”
세미르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일단 경험이 없었다.
비단 세미르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대장장이가 그러할 터였다.
또한 과거에도 아무도 없었을 것이었다.
세미르의 선조이자 아르나이즈인 신장(神匠) 모르크루조차 말이다.
드래곤은 그 사체를 남기지 않았으니까.
역사를 통틀어 드래곤의 사체는 지금 카르제가 유일했으니까.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소이다.
세미르는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해왔다.
당연하게도 시안 또한 그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엘로디의 지식과 모르크루의 제련 기술을 조만간 현질해서 드리겠습니다. 그걸 참고하셔서 한 번 연구해보시죠.”
과거, 드래곤를 연구했던 존재는 있었으니까.
그 중에서도 엘로디는 드래곤에 진심이었다.
마법사로서 마법의 주종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
엘로디는 용언 마법의 아류로서 언령 마법까지 했다.
그리고 솔직히 모르크루도 가만히 있었을리가 없었다.
카일의 검을 개량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모르크루.
아마... 가장 먼저 드래곤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른 아르나이즈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에 관련해서 연구를 진행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노력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그 둘은 끝내 해낼 수 있었다.
엘로디는 언령 마법을 창시했고.
모르크루는 끝내 흑석을 만들어 카일의 검을 개량했다.
“그러고보니 흑석의 연구는 어떻게 되었나요?”
문득 든 생각에 시안이 세미르에게 물었다.
초월 장비 강화에 사용되는 흑석(黑石).
시안은 흑석을 제작하고자 세미르에게 연구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계속 연구를 했소만···.”
세미르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괜찮습니다.”
시안은 손을 내저으며 세미르를 위로했다.
애초에 이렇게 쉽게 얻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금와서 문득 드는 생각이.
‘설마 흑석도 드래곤이 관여한 것인가?’
모르크루조차 건드릴 수 없었던 카일의 무기.
그 무기를 개량하려면 드래곤 정도가 개입되어야 했지 않았을까.
어쩌면 드래곤의 장비를 연구함과 동시에.
흑석 연구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지도 몰랐다.
그에 필요한 것은 엘로디의 지식과 모르크루의 제련 기술.
물론 그 지식들은 이미 천 년전에 소실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시안에게만큼은 아니었다.
띠링!
《깨, 깨꼬닥!!》
모바일 영주에는 그 지식과 기술들이 온전히 남아있었으니까.
현질만 하면 그 지식과 기술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어마어마한 현질이 필요하겠지만.
‘아멜리아가 언제쯤 돌아오려나···.’
시안은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루벤에 위치한 영주성 Lv.4
그 지하에 위치한 영주 개인 연무장.
꽈앙─!
연무장 전체로 폭음이 터져나왔다.
짙게 피어나는 먼지 안개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번뜩!
먼지 안개 사이로 짙고 짙은 푸른 안광이 일렁였다.
비록 먼지 안개로 시야는 가려져있었다.
그러나 마스터 상급의 기사에겐 큰 방해 요소는 아니었다.
새까만 참격이 안개를 베어낸다.
그리고 쐐액!
참격은 그렇게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
켄드릭의 안광이 당황으로 타올랐다.
켄드릭은 안개 너머에 시안이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공을 갈랐다···?
설마 착각을 한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마스터 상급의 기감이 착각일리 만무했다.
그렇다는 건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켄드릭의 참격이 닿기도 전, 시안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지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도, 감각에 잡히지도 않았다.
시안이 언제 움직였는지. 그리고 어디로 움직였는지.
쐐──액!
켄드릭은 그 어느 것 하나 파악하지 못했다.
상념의 틈을 파고들며, 섬뜩한 소리가 들려온다.
본능의 경고에 켄드릭은 황급히 검을 방패로 바꿔 형상화했다.
꽈앙!
거대한 힘의 충돌에 공간이 크게 진동해왔다.
그리고 켄드릭의 신형이 뒤로 멀리 날아갔다.
켄드릭의 몸이 바닥에 한 번 부딪히며 튕겨올랐고 콰앙!
이어진 폭음에 튕겨오른 켄드릭의 몸이 연무장의 벽에 쳐박혔다.
-커헉···!
켄드릭의 안광이 흐릿하게 일렁거렸다.
보이지··· 않았다. 시안의 움직임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마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린 것이 아니었다면···.
본능의 경고를 찰나 간 무시했더라면.
방금 일격에서 켄드릭은 끝이 났을 터.
그렇기에 막아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게다가 이 힘.’
살며시 내린 시야. 어둠의 방패가 완전히 우그러져있었다.
방금 시안의 일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일반적인 방패가 아니었다.
형체가 없는 어둠의 방패.
방패의 모습만 하고있다 뿐, 실체 없는 어둠이나 다름 없었다.
우그러지다, 라는 개념이 적용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어둠의 방패는 완벽하게 우그러져있었다.
보다 한 차원 높은 힘에 의해 눌린 것이다.
아니, 한 차원 정도가 아니었다.
까마득한 힘의 격차.
마스터 상급의 기사를 힘의 격차로 찍어누른다?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존재는 없었다.
있다면 딱 한 명.
-이건···.
끼야아아아아아악!
켄드릭의 상념을 비집으며, 귀곡성이 터져나왔다.
뇌리를 강하게 진동시키는 곡성은 시안의 움직임을 구속했다.
레아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듯 시안을 향해 날아들었다.
짙은 사념을 끌어올리며 시안을 억압했다.
-켄드릭!
레아의 외침에 켄드릭이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우그러진 방패를 어둠으로 흩어버리며 칠흑의 대검을 손에 말아쥐었다.
거리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켄드릭은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콰콱─!
소리가 찢어지며, 검격이 휘몰아쳤다.
어둠은 수 십갈래로 쪼개지며 수 백 갈래의 검격으로 날아들었다.
수 백의 검격은 다시 분열하며 수 천 갈래로 쇄도해갔다.
전방위를 찢어발기는 소름끼치는 위력.
일순간, 시안의 두 눈에서 어둠이 번들거렸다.
카──가가──가각!
소리가 끊어진다.
소리가 베어내지듯,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듯.
끊어지고 또 베어지진다. 일격이 이어진다.
카──가─각!
튕겨져 나간 힘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땅거죽을 깊숙이 할퀴었다.
-······!!
-······!!
켄드릭와 레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사념의 압박을 견디면서도 이 검격들을 하나하나 인지하고 있다는 말인가.
실로 말이 안되는 일이다.
경이롭다, 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꽈아아아아앙!
바닥에 내리꽂힌 시안의 검이 바닥을 폭사하며 쩌저적.
수십 갈래의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일어나며 폭발했다.
공간을 찢어발기던 켄드릭의 검격이 되려 찢어진다.
주변을 장악하던 레아의 사념이 역으로 장악된다.
사출되는 압도적인 힘.
휩쓸린 힘은 구조과 흐름이 통째로 무너져내렸다.
타닥.
그 틈을 비집듯, 시안이 앞으로 뛰어들어왔다.
켄드릭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뻗은 손 위로 칠흑의 어둠이 맴돌며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꽈아아앙!
공간이 폭발했다.
쿨럭! 켄드릭의 단말마와 같은 격통이 들려온다.
시안은 멈추지 않았다. 허리를 낮추며, 몸을 반바퀴 빙글.
회전을 실어 뒤쪽으로 멸살의 검을 휘둘렀다.
사각!
섬뜩한 절삭음. 시안을 덮쳐오던 사념이 베어져 소멸한다.
-이게 무슨···!
레아가 당황하며 물러섰다.
시안은 그 틈을 비집으며 사아아─! 마혼무영보를 밟았다.
공간 자체가 쑤욱, 당겨지듯. 시안과 레아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늦었다. 아니, 늦었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인지의 과정이 시안의 움직임을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도와줄 켄드릭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이윽고 공간을 잠식하는 끔찍한 어둠이 레아의 눈앞에 펼쳐진 순간.
레아는 저도 모르게 죽음(死)이라는 개념을 떠올려버렸다.
질끈, 감은 두 눈.
그리고.
톡.
레아의 이마로 약하디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에···?
레아가 어벙한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떠보였다.
바라본 시야. 시안이 작게 미소 띤 얼굴로 레아 앞에 서 있었다.
그런 시안의 손에는 검이 들려있지 않았다.
언제 검을 집어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안의 검지와 엄지만이 동그랗게 말려있을 뿐이었다.
방금··· 딱콩을 맞은 건가?
레아는 그때서야 이마로 느껴지던 약한 통증의 정체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윽고 시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아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아까 사념만 노린다고는 했는데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리고는 레아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고?
레아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설마 봐주신 건 아니죠?”
진짜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네가 우리를 봐준 게 아니야?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저기, 비적비적 일어나는 켄드릭의 상태를 보라.
갑옷 여기저기가 우그러진 것하며.
우그러진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어둠하며.
“켄드릭. 괜찮아?”
누가 봐도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다.
-괜찮··· 습니다.
켄드릭은 억지로 말을 내뱉으며 자리에 서보였다.
누가봐도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켄드릭은 내색하지 않았다.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완벽한 패배였다.
솔직히 이렇게 패배할 줄은 몰랐다.
방금 전, 시안이 둘이 동시에 덤벼보라 할 때.
레아는 오기이자 객기라고 생각했었다.
레아와 켄드릭의 합공.
악마 군주조차 쉽사리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완벽한 패배.
-어떻게···.
레아는 심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역시나 켄드릭 또한 레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레아와 켄드릭이 경악과 충격에 빠져있을 때.
‘내 생각보다··· 경지가 높은 것 같은데.’
시안은 스스로의 경지에 대해 판단을 해보았다.
마일리지의 영약과 카르제의 힘을 이어받은 지금.
역시나 마스터 상급은 넘어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마스터 상급 그 윗단계, 마스터 최상급.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최정점이라 불리는 경지.
대륙 역사상 몇 존재하지 않았던 궁극의 경지.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시안의 현재 경지는 그 궁극의 경지에 닿아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간 것 같기도 하고.’
비교 대조군이 없으니 확실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 그 다음의 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오직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전설의 경지.
대륙 역사상 단 6명, 아르나이즈들만이 닿았던 경지였으니까.
그렇기에 단순한 기사의 경지로만 판단되지 않는다.
그저 ‘엑시드(Exceed)’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이었다.
물론 시안이 지금 엑시드의 경지에 닿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벽을 두드릴 자격을 갖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켄드릭, 난감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말이야.”
-말씀··· 하십시오.
켄드릭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괜시리 미안해지는 마음에 시안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지금 나는 과거의 카일과 비교하면 어때?”
지금의 시안은 카일에게 어느 정도 다가갔을까.
켄드릭은 쉽사리 답을 해오지 않았다.
통증 때문인가 싶었지만··· 작게 일렁이는 안광을 보니, 생각을 깊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켄드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견문이 낮은 저의 생각임을 감안하여 주십시오.
스스로를 낮추었지만 켄드릭은 무려 마스터 상급의 기사였다.
무엇보다 켄드릭은 과거, 검은 사자 기사단의 단장.
그러니까 카일에게 직접 사사하며 카일과 검을 맞대어 본 경험이 있는 존재였다.
켄드릭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는 없을 터.
-전대 주군에 비하면 지금의 주군은··· 조금 부족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켄드릭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고.
시안은 당연하게도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실망할 건덕지도 없었다.
-허나, 그건 전대 주군이 너무도 뛰어났던 것일 뿐. 지금의 주군의 수준이 낮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켄드릭의 말마따나 그건 카일이 너무도 뛰어난 것이었으니까.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
되려 카일과 비교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이미 전대 주군을 뛰어넘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
-전대 주군께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셨으니 말입니다.
“아.”
시안은 그때서야 켄드릭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저 말을 ‘직접 경험해봤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개체가 갖는 한계.
그 한계로 인해 시안은 존재가 붕괴될 뻔하지 않았는가.
허나, 시안은 카르제의 힘을 이어받아 그 한계를 뛰어넘어버렸다.
인간이되 드래곤인 존재.
드래곤이되 인간인 존재.
시안은 인과의 법칙을 탈피한 새로운 종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과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 그야말로 무한의 가능성을 품은 존재였다.
비록 지금은 카일보다 뒤떨어졌다.
그러나 언젠가, 그 언젠가.
카일이 닿았던 경지보다 더 높게 나아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존재
‘참···.’
그렇기에 시안은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카일보다 더 높은 경지라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어떤 경지인지 상상도 안되네.’
아니, 그건 그렇고.
“그보다 카일은 인간이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거지?”
생각해보면 이게 도무지 말이 안되었다.
카일이라고 인간이라는 개체가 갖는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카일은 보란 듯이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에도 누구도 믿지 않았어. 카일이 인간이라는 것을.
들려온 답은 다름 아닌 레아의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레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하물며 우리 오빠도 믿지 않았으니까.
레아의 오빠라 함은 아르나이즈, 샤를롯.
카일만큼은 아니더라도 샤를롯 또한 엑시드(Exceed)의 경지에 닿은 기사였다.
그런 샤를롯조차 카일이 인간임을 믿지 않을 정도로 카일은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오빠가 나보고 밤에 꼭 확인해보라고 그랬었지.
레아는 장난스러운 표정과 더불어 실실,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확인하지 못했지만.
레아가 쓸쓸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워보였다.
시안은 그런 레아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의미로···.
다시 들려온 레아의 목소리.
이윽고 레아가 두 팔로 시안의 목덜미를 가볍게 휘감았다.
백은색의 머리칼이 길게 내려앉으며, 시안의 시야 아래로 흘러내렸다.
레아가 시안의 귓가로 속삭여왔다.
-시안, 너는 인간인지 한 번 확인해볼까?
귓가로 나지막히 속삭이는 소리는 굉장히 고혹적으로 다가왔다.
시안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왜 그렇게 됩니까?”
-흐응···.
레아는 그저 콧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사념까지 끌어올리는데···.
어째, 마냥 농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시안은 가볍게 마기를 끌어올리며 레아를 떨쳐내었다.
그러자 레아가 힘없이 밀려났다.
정확히는 레아가 시안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 쳇.
레아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비실비실했을 때 확, 덮쳐버렸어야했는데.
“큰일날 소리를 하십니다.”
-흥!
레아가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나쁜 시안.
그리고는 레아가 연무장의 벽을 뚫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찌나 빨리 사라지는지, 시안이 붙잡을 새도 없었다.
아무래도 삐친 것 같은데···.
-주모님께서 전대 주군 생각이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시안의 귓가로 켄드릭이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지금의 주군은··· 확실히 전대 주군과 많이 닮아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카일이랑?”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마혼수라검의 수련에서 모바일 영주가 보여준 카일.
그리고 시안의 환상 속에서 보인 카일.
아무리 봐도 카일은 시안과 닮아있지 않았다.
-하시는 행동과 양상은 완전히 다릅니다만, 뭐라고 말씀드려야할까··· 분위기는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주군께서는 전대 주군을 직접 만나보신 적이 없으시니 잘 느끼시질 못하실 겁니다.
켄드릭은 안광을 일렁이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만···.
바로 그때.
띠링!
갑자기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의 알림음이 돌려왔다.
그렇게 확인한 스마트 폰.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상급 진행률 100%]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진행률 100%]
그곳엔 100%를 달성한 진행률이 떠올라있었다.
악마와의 혈전과 더불어 카르제의 힘까지 이어받은 지금.
방금 레아와 켄드릭과의 대련을 끝으로 모두 완성이 된 것 같았다.
《업적 ‘마혼수라검 상급자’ 달성!》
《특별 할인 항목이 추가 개방됩니다!》
이윽고 업적 달성의 알림창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응?”
그리고 시안은 갸웃거렸다.
업적, 마혼수라검 상급자는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특별 할인 항목이 추가 개방된다고?”
기울어진 시야 위로 새로운 패키지 팝업창이 떠올랐다.
『[영주 전용] - 초보자 성장 지원 울트라 패키지 (10,000,000 G)
구성품: 아르나이즈 최상급 무공(武功)』
-본 제품은 단 1회만 구매 가능합니다.
-본 제품은 인과 초특가 할인 제품으로 구매 시 환불이 불가합니다.
.
.
특급에 이은 울트라 패키지.
상급 무공에 이은 최상급 무공.
그 다음 패키지가 개방되어있었다.
뭐, 그간 모바일 영주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수라 상위의 과정이 또 있어?”
그런데 또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아수라 상위의 과정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시안은 검의 형태를 이루는 본질, 베기와 찌르기를 모두 깨달을 상황이었다.
1식, 수라천살에 깃든 베기(斬)의 묘리.
2식, 멸천수라에 찌르기(衝)의 묘리.
마지막으로 1형, 아수라에 깃든 두 묘리의 결합.
시안은 검의 본질을 모두 배우고 또 마스터했다.
그런데 그 이후의 과정이 또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더 성장할 건덕지가 있다고?
“이 뭔···.”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아니, 그러고보니 성장할 건덕지는 비단 마혼수라검만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새로이 개방된 아르나이즈 특전, <노에미의 자연>
『《자연지기(自然志氣)》
▶업적 보유자의 신체가 자연의 성질을 닮아갑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기(氣)를 온전히 흡수합니다. (마력 축적 효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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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축적 효율을 무한으로 늘려주는 사기적인 효과.
물론 정말로 무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당장 가진 바 골드가 없어서 현질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보다 보다 높은 마력의 힘을 갖게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여기에 아수라 상위 등급의 마혼수라검까지 더한다?
카일을 뛰어넘는 가능성.
엑시드 너머의 너머의 경지.
그야말로 역사상 전무후무의 경지.
시안은 그것이 무엇인지 살짝, 느낌이 오는 기분이었다.
물론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다.
복권 당첨의 확률이 0.000000000001%라도 당첨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시안에게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기적의 마법이 있었으니.
“영주님. 아멜리아님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연무장 한 쪽으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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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루벤 안 쪽으로 기나긴 마차 행렬이 들어섰다.
이어지고 이어지는 마차의 행렬은 그야말로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차의 행렬 가장 앞.
피곤에 찌든 얼굴과 퀭한 두 눈을 하고 있는 긴 적발의 미녀.
“다녀왔어요 영주님···.”
아멜리아는 혼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고생했어 아멜리아.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어?”
“뭐··· 보다시피요.”
아멜리아는 뒤쪽으로 끝없이 이어져있는 마차 행렬을 가리켰다.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아멜리아는 본인이 타고 있는 마차 안의 내용물을 열어보였다.
그리고 보인 것은 마차 안을 가득 메운 금화.
무려 수 만개의 금화가 햇살에 반짝거리며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차 한 대당 대략 1,000만 골드쯤 돼요. 그리고···.”
아멜리아는 다시 한 번 뒤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마차 행렬을 가리켰다.
그리고 시안은 그때서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저 줄줄이 이어진 마차에 모두 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띠링! 띠리링!
《저, 저렇게 큰 게 들어오면 전 버티지 못할 거예요!》
《저렇게 큰 것이 제 안에 들어올 수 있을리가 없다고욧!》
《꾸에에에에에에엑!!》
까무러치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