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69화 (269/322)

269화 - 끝나지 않은 싸움(2)

새로이 떠오른 메인 스토리 퀘스트.

시안은 스마트 폰의 화면을 터치했다.

꾹.

『▶성물과 최후의 드래곤을 찾아 수인족들의 왕국까지 흘러온 당신!

당신은 끝내 그 둘을 찾는데 성공하지만···.

천 년전, 세상을 혼돈으로 물들었던 악마들의 군주.

악마 군주가 당신 앞을 가로막습니다.

심지어 두 명이나!

그것도 성물의 봉인까지이이!!!

세상에 마상에!!

죽을 거예요!! 반드시 죽을 거라고욧!!!

······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당신은 보란 듯이 두 군주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합니다!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가며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이루어냈죠!

진짜 대단해요! 엄청 대단해요!

그야말로 킹왕짱!

아니, 킹갓제네럴엠페러충무공!!

엣헴! 좋아요.

이번만큼은 우쭐대도 뭐라하지 않을게요!

어디 한 번 우쭐대보시라고요!

······ 해서 당신이 우쭐대려던 것도 잠시!

당신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악마 군주들이 이상하리만치 아르나이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물론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 년전에 악마 군주들을 막아낸 것이 바로 아르나이즈들이었으니까요.

둘이 연관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깟!

하지만···.

너무도 이상하리만치 연관이 있었습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악마 군주는 아르나이즈들과 엮여있었거든요.

악마 군주들은 반드시 아르나이즈들과 관련한 무엇에서 부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빠빰!

당신의 뇌리 속을 스치는 생각!

서, 설마!!

아르나이즈들이 실은 악마 군주였던 것일까요?!

······ 라는 식상한 전개마저 떠오를 정도로 말이죠!

어때요! 정확했죠?

당신의 생각을 그대로 꿰뚫어버렸죠?

모바일 영주가 독심술을 배웠낫?! 싶은 생각이 들었죠?

아니라고요?

거, 거짓말 하지 마세욧!!

뭐, 아무튼···.

네? 정말 아르나이즈들이 악마 군주인 것이냐고요?

저야 모르죠!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떡해욧!

뭐, 아무튼 우연치고는 너무도 관련성이 깊었습니다.

물론 정말로 우연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글쎄요···.

그동안 당신이 경험한 것들 모두가 우연이라 하기엔 이상한 것은 사실이죠.

아니, 잠깐! 빠밤!

설마하니 이것이 카일이 마주한 진실이었던 걸까요?

아르나이즈들이 악마 군주였다는 사실이요!

그래서 카일은 동료들을 버리고 홀로 떠나야만 했던 걸까요!

찾았다 요놈!

밝혀냈다 진실!

······ 싶은 생각도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라라? 조금 이상한 점이 엿보입니다.

만일 악마 군주들과 아르나이즈들이 관련이 있다면.

그러니까 당신의 생각처럼 아르나이즈들이 악마 군주였다면.

어째서 누르비아는 평범한 인간 여인에게 잠식이 되었던 걸까요.

지금 그 헬렌이라는 사람이요!

헬렌이라는 사람은 아르나이즈들과 1도 관련이 없는데 말이죠.

그리고 또 있죠.

레이첼이라는 이름의 그 재수없는 여자!

그 여자에게도 악마 군주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아르나이즈들과 1도 관련이 없는데 말이죠.

무엇보다 당신은 루슈리아와 뮤리엘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루슈리아의 싸움 끝에서 고귀한 뮤리엘의 죽음을 보았죠.

정말 그 두 사람이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었나요?

그리고 카일이 마주한 진실이 정말로 '아르나이즈들이 악마 군주 였다.' 라는 사실이었다면.

어째서 카일은 홀로 떠나는 결정을 했던 걸까요.

아르나이즈들과 악마 군주.

이 둘의 진정한 관련성은 대체 무엇인 걸까요.

그 어느 것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죠!

바로 아르나이즈들과 악마 군주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그리고 그와 관련한 진실은 어느 한 곳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카르제의 마지막 유언.

샤를롯이 잠든 곳, 아르나이즈 전당.

카르제는 왜 당신에게 아르나이즈 전당에 가보라고 한 것일까요.

과연 그곳엔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음··· 저야 당연히 모르죠!

그건 당신이 파헤치고 밝혀야할 일!

자, 이쯤 되면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겠죠?

숨겨진 진실을 찾아~!

렛츠고고 후비고고~! 』

<아르나이즈 전당으로 향하세요.>

<보상: ???>

.

.

.

성물을 찾은 이후 새로이 떠오른 퀘스트.

‘음···.’

퀘스트 내용을 읽은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아르나이즈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르나이즈 혹은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카일이 마주한 진실.

지금까지 시안이 쫓아온 진실.

카일이 동료들을 뒤로 한 채 홀연히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

그 진실 또한 이와 관련한 어떤 것인 것 같았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현재로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아르나이즈 전당으로 향하세요.>

아르나이즈 전당에 가봐야 의문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저···.”

한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을 떨쳐내며 바라본 그곳.

그곳엔 귀인족(龜人族)의 장로, 파벨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비단 파벨뿐만이 아니었다.

견인족, 어인족, 묘인족, 호인족, 편인족, 둔인족 등등.

수인족들의 모든 종족들이 시야에 비쳐보였다.

파벨은 거북이 다운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수인족들 또한 다가왔다.

파벨은 시안과 카리스, 그 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뒤를 따르던 수인족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아리아와 다이애나 그리고 헬렌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몰려온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대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안은 알고 있었다.

수인족들과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며 떠나갔던 파벨.

그 순간부터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내게 할 말이 있는 눈치오. 파벨 장로.”

카리스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방금 전에 깨어난 카리스였건만, 카리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러자 되려 당황한 것은 파벨 쪽이었다.

파벨은 우물쭈물하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뒤의 수인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리스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여기, 시안이라는 인간들의 대족장분께 몸을 의탁하고자 함이겠지.”

그러자 파벨을 비롯한 수인족들이 흠칫, 몸을 떨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카리스는 확신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카리스는 눈치 정도만 챘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카리스는 방금 깨어났다.

또한 시안이 이야기를 꺼낸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와 관련한 이 사정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다만, 카리스는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다이애나로부터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수호자의 부재. 세상의 풍파에 내던져진 수인족들.

파벨을 비롯한 수인족들이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들을 받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카리스는 시안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바라본 카리스는 절박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카리스는 고맙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파벨과 수인족들을 바라봤다.

“다행히 이 분께서 우리 수인족들을 받아들여주신다고 한다네.”

그리고는 정말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에 파벨과 수인족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너무도 쉬운 결정이었으니까.

물론 바라마지 않는 결정이라 할 수는 있었다.

현재 수인족들의 상황에서 시안에게 보호받을 수 있다면 무릎을 꿇어서라도 얻어낼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대족장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되는 상황.

그러나 카리스는 너무도 쉽게 결정을 내버렸다.

정확히는 카리스가 이 일과는 한 발짝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족장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겁니까?”

파벨은 의문을 참지 못하고 끝내 카리스에게 물었다.

카리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네들이 원한다면. 내가 무슨 염치로 그것을 막겠나.”

수인족들의 대족장, 카리스.

카리스는 대족장으로서 수인족들을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것이 대족장이라는 존재였다.

그러나 카리스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못함을 넘어 스스로가 악(惡)이 되었다.

대족장이라는 자가 수인족들을 지키지 못할망정 멸족을 시키고자 발톱을 세웠다.

만일 시안이 없었더라면, 시안이 자신을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났을 일이었다.

그렇기에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대족장으로서 실격이네.”

카리스는 스스로가 대족장이 될 수 없음을 알았으니까.

“······”

“······”

카리스의 말에 수인족들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적막한 정적이 내려앉으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어지는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파벨이었다.

파벨은 터벅, 카리스 앞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리고는 시안 앞에 서보여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아니, 저희 귀인족은.”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결연한 표정.

파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남겠습니다.”

시안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

카리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비단 카리스 뿐만 아니라 다른 수인족들도 놀란 눈을 떠보였다.

“파벨 장로! 지금 그게 무슨···!”

놀라 소리치는 카리스.

파벨은 그런 카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호자께서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저희 수인족들을 수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이에 카리스가 할 말이 있다는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파벨이 한 박자 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압니다. 저희 수인족들은 굉장히 위태롭다는 것을요. 세상의 풍파에 그대로 내던져졌고. 지금 상황에서 저희 수인족들은 그 풍파를 견뎌낼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니 여기 시안이라는 분께 의탁해야하지 않겠나. 이 분이라면 우리 수인족들을 지켜줄 수 있을 걸세. 그런데 대체 왜···?”

카리스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파벨은 단호했다.

“저희는 또 다른 수호자님께 몸을 의탁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파벨의 말.

“오랜 시간. 수인족들은 수호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해왔습니다.”

세상과 등을 지고 평화 속에 찌든 세월이 무려 수 백년.

수인족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평화란, 반드시 주체적인 힘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파벨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시안님을 따라간다면 수인족들은 다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전과 같은 평화를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또 다른 수호자님께 의지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카르제와 시안.

결국 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게 유지되는 평화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저 평화에 찌들고, 싸우지 않는. 휘둘리기만 하는 그런 평화가,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파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의미를 찾는다면야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희는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했습니다. 세상의 풍파가 두려울지라도. 그것이 설령 패배가 정해진 싸움일지라도. 저희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그것이.

“수호자님께서 저희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지시니까요.”

찰나의 깜빡임에 불과한 삶.

그러나 그 속에서 찾는 삶의 의미.

“저희들에겐 수호만 해주는 수호자의 존재는 필요치 않습니다. 따라서 저희들이 진정으로 믿고 따라야하는 것은 수호자님이 아니라···.”

파벨은 굳은 결의로 카리스를 바라봤다.

노쇠하고 주름진 눈가.

그러나 그 안에 깃든 무언가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들의 대족장. 카리스님입니다.”

파벨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카리스는 멍하니, 정말 멍하니 파벨을 바라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뻐금거렸지만 끝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카리스의 뒤로.

“파벨 장로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는 이제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수많은 수인족들이 소리쳐왔다.

“대족장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저희도 가지 않습니다.”

“대족장께서 저희를 이끌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도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이윽고 모든 수인족들이 카리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카리스는 역시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어떤 감격.

그리고 현실이라는 벽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수인족들은 결국 세상 속에 내던져졌고, 현실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수인족들을 집어삼킬 터였다.

그리고 수인족들은 그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

험난 파도를 스스로 헤쳐나갈 힘이 없었다.

현실의 벽은 차디찰 정도로 냉혹했다.

그렇기에 필요한 일이다.

카리스의 시선이 천천히 시안에게로 향했다.

시안은 그런 카리스의 눈빛을 마주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저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제 앞에서 카리스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을. 이제 와 제가 받아달라는 이야기입니까?”

“······”

카리스는 역시나 말이 없었다.

본인 스스로가 얼마나 어이 없는 요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카리스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방금 전 파벨의 말과 지금 보이는 수인족들의 모습 때문일까.

시안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오래 된 일화가 스쳐지나갔다.

그건 샤를롯 제국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일화였다.

아주 오래 전, 제국에는 태평성군이라 불리던 황제가 있었다고 한다.

제국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황제.

그런 황제의 밑에는 굉장히 뛰어난 대장군이 있었다.

대장군은 제국의 검이자 방패로서 제국을 단단히 지켜내었다.

황제는 그런 대장군의 수호 아래 제국을 태평성대로 다스릴 수 있었다.

그 어떤 적들도 뚫어내지 못하는 대장군의 존재.

한 번은 황제가 대장군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대 덕분에 제국을 평화로이 다스릴 수 있었네.’

‘과찬이십니다 폐하.’

‘허나, 내가 보기에 그대의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네. 솔직히 말하면 내 밑에서 있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솔직히 말해줄 수 있겠나.’

‘말씀하시지요 폐하.’

‘그대가 보기에 나의 능력은 어느 정도 되어보이나. 아니, 내가 몇 명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황제의 물음에 대장군은 이렇게 답을 해보였다.

‘한 10,000 여명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샤를롯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의 그릇으로는 한없이 작은 셈.

그러나 황제는 아무런 내색을 않고 대장군에게 물었다.

‘1만 여명이라··· 그렇다면 자네는 어떠한가? 자네는 몇 명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겠는가.’

이때 들려온 답이 바로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황제는 그저 작게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화를 낼 법도 하건만 황제는 미소로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황제의 모습에 대장군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는 저 같은 이를 1만 여명 다루실 수 있으십니다.’

군주와 리더의 덕목은 다르다.

군주란 리더들의 리더.

뭐, 그렇다고 시안이 군주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받아들이고 싶은 핑계 말이다.

‘어쩌면 카르제의 마음일지도.’

뭐, 아무렴.

“같이 가시죠.”

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카리스가 눈을 크게 떠보이며 놀라보였다.

설마하니 시안이 흔쾌히 허락할 줄 몰랐던 눈치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말이다.

시안은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은 대족장이다. 카리스는.

그렇기에 좋은 지도자고, 또 좋은 리더다.

그리고 그런 대족장을 둔 수인족들 또한 좋은 이들이다.

비록 수인족들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굴복하고 눌러진 모습으로 숨어만 지내던 이들.

그러나 이들은 끝내 나아갈 줄 알았다.

실패 속에서 좌절할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았다.

“움직이시려면 바쁘실 겁니다. 이것저것 처리하실 일도 많으실테고요.”

시안은 수인족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라는 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자리를 벗어나려던 그때.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뒤 쪽으로 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스윽.

그곳엔 카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인지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카리스는 꿋꿋이, 똑바로 자리에 서보였다.

“저 수인족의 대족장이자.”

이어 시안을 향해 다붓이 고개를 숙인다.

“루벤의 영지민. 카리스는 이 자리를 빌어···.”

그리고 나지막히 들려오는 카리스의 목소리.

“시안 영주님께 충성을 다할 것임을 맹세하겠습니다.”

그런 카리스의 말과 동시에 수많은 수인족들이 하나같이 모두 고개를 숙여보였다.

“귀인족의 장로이자 루벤의 영지민, 파벨.”

“편인족의 대표이자 루벤의 영지민, 레빌.”

“둔인족의 대표이자 루벤의 영지민, 밍구.”

.

.

.

“루벤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루벤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루벤의 영주님을 뵙습니다.”

그와 동시에 띠링!

《전설 업적, ‘진정한 수인족의 대족장’ 달성!》

스마트 폰 화면으로 업적 달성 알림창이 떠올랐다.

《대, 대, 대족장이라고요?!?!》

《당신 진짜 뭡니까! 대족장이라니요!》

《드워프의 족장에 이어 다크 엘프의 숲지기까지 모자라, 이번엔 수인족들의 대족장까지?!?》

《이종족들을 혼자서 다 쌈싸먹으셨네요?!》

《아주 그냥 혼자 다 해먹을 작정이십니까?!!!》

《아니. 아니죠!》

띠링!

《이미 다 해먹어버리셨잖아요!!!》

모바일 영주의 외침 뒤로 또 하나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전설 등급 업적 달성으로 특별 항목이 추가 개방됩니다!》

【아르나이즈의 축복】

⑤【<노에미의 자연>: 우주 만물은 스스로 그러하답니다.】

[효과 1] - 영지 내 정령들이 출현하여 영지민이 정령술사가 될 가능성이 열립니다!

[효과 2] - 마수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을 길들이고 사육할 수 있습니다!

[효과 3] - 자연지기(自然志氣)의 효과가 상시 적용됩니다!

[해금 조건: 수인족의 대족장 칭호 획득.]

.

.

.

『《자연지기(自然肢氣)》

▶업적 보유자의 신체가 자연의 성질을 닮아갑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기(氣)를 온전히 흡수합니다. (마력 축적 효율 +∞%)』

.

.

“······”

시안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

제국 동부, 엘란두르 후작령에 위치한 엘란두르 저택.

“······”

레이첼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알지 못했다.

성물을 되찾은 것까지는 완벽했다.

물론 예상 밖으로 계획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방향 자체는 틀어지지 않았다.

지금 레이첼 앞에 놓여있는 성물.

이 성물이 바로 그 중거였으니까.

그런데.

“소멸···했다···?”

이건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흘러가던 방향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결과였다.

누르비아와 굴네리아의 소멸.

6군주 중의 2군주가 동시에 소멸해버렸다.

심지어 성물의 봉인을 해방한 두 군주였다.

물론 성물이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의 해방에 지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레이첼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두 군주가 소멸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믿기 힘들지만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이다.

“대체 누가···?”

그렇다면 대체 누가 두 군주를 소멸시켰나.

설마 시안이?

가장 먼저 떠오른 존재는 역시나 시안이었다.

그러나 레이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안이 상정 밖의 전력이었던 건 인정한다.

그럼에도 역시 말이 안된다.

레이첼이 마지막으로 지켜본 시안.

그때의 시안은 두 군주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마지막으로 본 시안은 두 군주에게 억압 당하고 있었다.

해방된 두 군주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복귀를 한 터라 어떻게 상황이 흘러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안이 두 군주에게 죽으면 죽었지.

시안은 결코 두 군주를 소멸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시안이 아니다.

그렇기에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드래곤이 나섰다···?”

이 변수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드래곤이 나섰을라고?

레이첼은 심히 의심했지만 이것말고는 가능성이 없었다.

절대로, 결단코 시안이 해결했다는 생각은 떠올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드래곤 또한 사라졌다라···.”

그 드래곤의 존재 또한 사라져버렸다.

수명이 깔딱깔딱 하던 드래곤이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너끈한 드래곤이었다.

그런 드래곤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아마··· 자멸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두 군주와 함께 드래곤이 자멸한 것 같았다.

악마 군주의 힘은 절대적이나 천 년의 고룡 또한 절대적이다.

문제는 드래곤이 왜 갑자기 나섰냐는 것이었다.

세상사 아무런 관심 없던 늙은 용이 왜. 갑자기.

“변덕··· 인 것인가.”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었다.

솔직히 이 마저도 의심스러웠지만 결과만 보면 그러했다.

어쨌거나 드래곤이 나선 것은 분명했으니까.

해서 두 군주는 드래곤과 자멸했다.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방향은 틀어지지 않았다.

이번 계획에 가장 큰 목적, 성물.

그것은 무사히 되찾아올 수 있었으니까.

시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쉬웠다.

그러나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가장 큰 변수였던 드래곤은 죽었다.

정확히는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시안은 그곳에서 죽었다는 뜻이었다.

시안은 두 군주를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시안을 지켜줄 것은 없었다.

홀로 남은 시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이첼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밖에 누구 있으신가요?”

레이첼의 말에 밖에 대기 중이던 하얀 늑대 기사가 들어왔다.

계획은 틀어지지 않았지만 방심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시간을 주어서는 안된다.

루벤으로 복귀한 시안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행여, 황가라도 끌어들인다면 상당히 골치 아팠다.

물론 그럼에도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골치 아프게 전에 끝장 내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이제 상황은 뒤집혔다.

한 마디로 더 이상 이쪽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드디어.

“가서 가주께 말씀드리세요.”

시안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루벤을 치러 갈 때가 되었다고요.”

천 년 동안 이어진 기나긴 싸움을 끝낼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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