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 마주치는 운명(2)
울창한 숲의 시작되는 경계선.
평야와 숲이 공존하는 이곳.
녹빛을 띠는 풀들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풀잎 사이로 똑, 하고 떨어지는 새빨간 피.
온 사방이 피로 물든 살육의 현장이 펼쳐있었다.
마음이 안정되는 숲의 향기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코 끝을 찌르는 피 비린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공포에 질린 목소리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목소리라 할 수 있었다.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이.
개의 특색을 지닌 견인족(犬人族).
“야, 약속대로 성물을 바쳤잖습니까···!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견인족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삻을 갈구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들어올렸다.
그런 견인족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
홀로 떨어진 우두머리의 늑대와도 같은 사내.
엘란두르의 가주, 듀라크 엘란두르.
듀라크는 바닥에 엎드린 견인족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모습.
참으로 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심지어 제 목숨을 위해 자신들의 동족을 팔아버린 상황이었다.
충성의 대명사로 손 꼽히는 견인족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는 있는 법.
인간들이 저마다 성향이 천자만별인 것처럼 견인족들도 저마다의 성향은 천차만별이었다.
평생을 주인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개들이 있는 반면.
제 이득을 위해 주인을 물어버리는 개들도 있었다.
애초에 개는 늑대로부터 파생된 종족이었다.
그리고 늑대는 평생 동안 누군가를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
늑대와는 같지만 다른 종족.
이래서 개새끼들이란.
듀라크는 차분히 시선을 더욱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견인족의 손에 들려있는 황금빛의 구체를 바라봤다.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구체는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구체 안에는 무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영혼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바라보기에 따라 어떤 힘의 잔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구체에서는 신묘한 힘이 깃들어있었다.
또한 그 힘은 신성력의 것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그래서일까.
“꺼림칙하군.”
듀라크는 상당히 꺼림칙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것이 그토록 찾아해매던 수인족들의 성물임을 알 수 있었다.
듀라크는 견인족에게서 성물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슬쩍, 한쪽을 향해 눈짓을 해보였다.
주변으로 포진해 있는 하얀 늑대 기사단.
이윽고 한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서보였다.
마치 설원에 서있는 고고한 한 마리의 늑대와도 같은 사내.
엘란두르의 대공자, 카이 엘란두르.
카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촤악─!
그와 동시에 들려온 섬뜩한 절삭음.
언제 뽑았는지 모를 검은 이미 견인족의 몸을 가르고 지나가있었다.
“어, 어째서···!”
외마디의 단말마와 함께, 견인족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카이는 무심한 눈빛으로 죽어가는 견인족을 바라봤다.
사냥이 끝났으면 사냥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듯.
괜히 이것저것 챙겨줘야하는 귀찮음만 남아있다는 듯.
카이의 눈빛은 너무도 무색(無色)했다.
그리고 그런 카이를 지켜보던 듀라크.
듀라크는 카이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제국의 별이자 자신마저 뛰어넘을 천재인 카이.
현재 카이의 수준은 예전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이미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조차도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지금 당장 카이와 맞붙는다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있을까.
듀라크는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실로 말도 안되는 성장이었다.
도무지 인간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말도 안되는 성장을 이룩한 존재가 한 명 더 있기는 했었다.
그렇기에 듀라크는 카이에게서 어떤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카이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안의 내면은 카이가 아닌 것 같은 어떤 위화감.
그리고 이 위화감은, 카이와 레이첼과의 만남 이후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남은 수인족들은 어떻게 할까요.”
일순간 카이가 듀라크에게 물어왔다.
듀라크는 금방 상념을 떨쳐내었다.
어쨌거나 손 안에 들려있는 성물.
그로써 달성된 목적.
그러니.
“모두 죽여라.”
뒷처리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카이는 작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런 카이의 뒤를 따라 단장인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따라붙었다.
카이와 에런 그리고 하얀 늑대 기사단.
이들이라면 수인족들을 멸족시키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듀라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아아아아─!
듀라크의 귓가로 바람이 흘러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울창한 숲과 평야가 공존하는 경계 구역.
당연하다 여길 만큼 들려올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러나 듀라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챙!
듀라크의 검이 벼락처럼 뽑혀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번쩍!
갑자기 한줄기 검은 섬광이 듀라크를 향해 쏘아져왔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틈.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듀라크의 앞선 시야로 커다란 폭발이 터져나왔다.
시야를 뒤흔들어버린 폭발은 자욱한 먼지 안개를 일으켰다.
사방을 드리운 먼지는 한치 앞의 시야도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가라앉은 먼지 안개.
그리고 보인 한 사내의 모습.
“······!”
듀라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
뒤흔들리는 시야 속.
카가각─!
맞닿은 검에서 끔찍한 쇠음이 일어났다.
힘과 힘의 충돌.
그 충돌에 파편들이 부서져 비산한다.
부서져 비산하는 잔재 속.
듀라크는 놀란 눈으로 앞선 사내를 바라봤다.
어딘가 어벙한 분위기의 사내.
그리고 묘하게 자신을 닮아있는 사내, 시안.
“네가 어떻게···.”
듀라크의 두 눈은 시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안은 듀라크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듀라크의 한 쪽 손에 들려있는 황금빛의 구체.
구체는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구체 안에서는 신묘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안은 저 힘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뮤리엘의 신성.
시안은 뮤리엘의 신성임을 경험해봤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저 구체에서 느껴지는 힘은 분명한 뮤리엘의 신성이었다.
따라서 시안은 저것이 그토록 찾던 뮤리엘의 성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카가가각─!!
시안의 검과 듀라크의 검이 얽혀간다.
그 끔찍한 힘의 충돌에 사방팔방으로 힘의 잔재가 흩뿌려졌다.
그렇게 뻗어나간 힘의 잔재들은 땅거죽을 거칠게 뒤집었다.
쩌어엉!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며 시안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힘에 휘말린 몸이 휘청거리며 흔들린다.
가까스로 힘을 주어 균형을 잡았다.
고개를 홱, 치켜들며 바라본 시야.
듀라크의 신형 또한 뒤로 쭈욱, 밀려져있었다.
바닥으로 긴 자국을 남기며 듀라크가 크게 밀려나있었다.
“······!!”
듀라크의 두 눈에는 여전히 당황이라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듀라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시안의 난입.
“너, 너는···!”
“어떻에 여길···!”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크게 당황해보였다.
시안은 차분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피로 물든 숲의 풍경.
듀라크 손에 들려있는 성물.
아무래도 한 발 늦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완전히 늦지는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다.
아직 돌이킬 여지는 있었다.
시안은 듀라크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크게 떠져있던 듀라크의 두 눈은 어느덧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당황으로 물들었던 표정 또한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아있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이지?”
듀라크는 그 특유의 담담한 어투로 물어왔다.
그리고 시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되려 듀라크는 루벤이 회군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정보만 얻어갈 뿐이었다.
시안은 듀라크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러는 후작께서는 어찌하여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일순간 듀라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주가 아닌 후작.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지금 엘란두르가 난리난 것을 모르십니까?”
꿈틀거리던 듀라크의 눈썹이 한순간에 와락, 일그러졌다.
보이는 표정에는 확실한 당황의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이 이곳에 있다는 것.
그건 이미 엘란두르가 함락되었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자신들이 한 발 늦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헛소리군.”
듀라크가 툭,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일그러진 표정이 다시금 제 자리를 찾았다.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니까.
시안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어찌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들려온 듀라크의 목소리.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군.”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세가 듀라크의 전신으로 쏟아져나왔다.
시안은 전신을 옥죄어오는 끔찍한 억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리는 듀라크.
듀라크가 내뿜는 기세는 단순한 기세라 볼 수 없었다.
목표한 대상을 짓눌러 죽이는 살의(殺意).
오로지 기세만으로 대상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안은 억눌리지 않았다.
듀라크의 기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마혼제법을 100% 달성하기도 했거니와.
최후의 드래곤, 카르제가 내뿜던 드래곤 프레셔.
드래곤 프레셔에 비하면 듀라크의 기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시안의 모습에 듀라크의 눈썹이 또 한 번 꿈틀거렸다.
이윽고 약간의 분노가 담긴 어투로 말했다.
“혼자서 무얼할 수 있다 생각하느냐.”
뭐,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듀라크 한 명도 시안에게는 버거웠다.
그런데 이곳에는 듀라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엘란두르의 최정예 전력, 하얀 늑대 기사단.
숲의 풍경에 가려져 전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감각으로 느껴지는 기세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도합 13개로 이루어진 하얀 늑대 기사단.
엘란두르의 최정예이자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기사단이 이곳에 모두 집결해있었다.
아무리 시안이라도 이 모든 이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정확히는 듀라크 한 명도 벅차다.
하지만.
“설마하니 제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시안 또한 이곳에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내뱉어진 시안의 말과 함께 뒤쪽으로 크나큰 인기척이 일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나 한 두 명의 것이 아니었다.
수 십, 수 백의 것도 아니었다.
1,000여명에 달하는 루벤의 병사.
100명에 달하는 흑사자 기사단.
어둠을 흩뿌리듯 다가오는 기세.
“저, 저들은···!”
“대체 어떻게 여기에···!”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안은 차분히 머리를 가라앉혔다.
얼핏 본다면 판도가 뒤집혀진 것처럼 보였다.
전력이 비등비등해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일단 마스터의 부재가 너무도 컸다.
현재 엘란두르의 마스터 기사는 무려 셋.
듀라크, 카이 그리고 에런.
반면에 루벤 측은 시안 혼자였다.
루카스가 있긴 했지만 루카스는 아직 마스터가 아니었다.
마스터의 벽을 두드리고 있지만 마스터는 아니었다.
그래도 루카스 정도면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터였다.
카이는 모르겠으나 에런을 상대로 시간을 벌 수는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끌지는 못할 터였다.
에런은 마스터 중급의 기사.
온갖 버프를 받을 수 있는 루벤이라면 모를까 이곳에서는 안 되었다.
또한 루벤의 병사들과 흑사자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하얀 늑대 기사단은 하얀 늑대 기사단이었다.
전원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제국 제 1의 기사단.
도합 13개로 이루어진 하얀 늑대 기사단 모두가 이곳에 있었다.
정확히는 부단장, 케이든이 빠진 12개의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하얀 늑대 기사단의 모든 전력이나 다름 없었다.
루벤 또한 모든 전력을 대동했다면 모를까.
지금의 전력으로는 하얀 늑대 기사단을 대적할 수 없었다.
전력 상으로는 이쪽이 명백히 밀렸다.
따라서 지금의 싸움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이쪽이 진다.
하지만 시안에게는 전력 이외의 것이 있었다.
시안은 곧장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띠링!
《시스템! 보고 있나요! 보고 있죠!!》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았다고욧!》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 위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 깐족거림은 참···.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르나이트 특전 항목에 들어갔다.
【아르나이즈의 축복】
③【<뮤리엘의 축복>: 그대에게 무궁한 영광의 축복을.】
.
.
『《뮤리엘의 축복》
[강화 효과 1](+5) - 1분 간, 업적 보유자의 모든 신체 능력이 +7,000% 상승합니다!
[강화 효과 2](+5) - 반경 100미터 지정 범위 내, 모든 아군의 신체 능력이 10분 간 +450% 상승합니다!
《[강화 효과 1]과 [강화 효과 2]는 중복해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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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깜빡이는 알림창.
시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Y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효과 1]이 아닌, [효과 2]의 선택지를 눌렀다.
[강화 효과 2](+5) - 반경 100미터 지정 범위 내, 모든 아군의 신체 능력이 10분 간 +450% 상승합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찬란한 빛과 함께 뮤리엘의 신성이 사방을 잠식했다.
신성은 이윽고 루벤의 병사들에게 깃들었다.
마기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시안은 스마트 폰을 품 속으로 집어넣으며 루카스에게 말했다.
“루카스. 지휘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나서보였다.
“영주님의 명을 받들어 현 시간부로 내가 전장을 통솔한다. 흑사자 기사단 또한 켄드릭 단장님의 부재로 내가 임시로 통솔하겠다.”
나지막히 내뱉어진 루카스의 말.
그와 동시에 루벤의 병사들과 흑사자 기사단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는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며 질서정연하게 루카스의 뒤로 도열했다.
피어나는 짙은 어둠의 오러.
“······”
“······”
폭팔하는 기세에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주춤 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
하얀 늑대 기사단들 또한 물러나지 않았다.
단장인 에런을 위시로 12개의 기사단들이 도열했다.
폭발하는 푸른 빛의 오러.
그것은 드리운 어둠의 오러와 얽히기 시작했다.
기세가 충돌하며 대치가 이어졌다.
그리고 영원할 것처럼 이어지는 대치 속.
파박! 팍!
루카스와 에런이 가장 먼저 서로를 향해 쇄도해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루벤의 병사들과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맞부딪혔다.
충돌하는 서로 다른 힘.
시작된 루벤과 엘란두르의 진정한 전쟁.
꽈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이어진 커다란 폭음과 함께.
“······!!”
지켜보던 듀라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
크게 떠진 듀라크의 두 눈은 격돌하는 전쟁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듀라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표정에는 일말의 당황이 새겨져있었다.
루벤과 하얀 늑대 기사단의 격돌.
“크윽···!”
“이것들이···!”
밀리고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밀리고 있었다.
제국을 넘어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기사단들이 맥을 못추고 있었다.
12개에 달하는 모든 기사단이 왔음에도 밀리고 있었다.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수준으로나 뭐로 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으로 보이는 광경.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
충격이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듀라크는 그 충격을 오래 이어갈 수가 없었다.
꽈앙!
터져나온 폭발과 함께 듀라크의 몸이 뒤로 멀리 날아갔다.
듀라크가 나무의 기둥에 부딪히며 콰앙! 커다란 나무가 부러졌다.
이윽고 듀라크가 부러진 잔해 틈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듀라크의 두 눈이 정면으로 향한다.
그런 듀라크의 시선에는 시안이 서 있었다.
어둠을 제련해 만들어낸 듯한 갑옷.
흑뢰(黑雷)를 벼려낸 듯한 검.
시안의 전신에는 짙은 어둠의 아우라가 흩뿌려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욱씬거리는 손목.
듀라크는 방금 전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방금 전의 갑작스러운 일격은 분명 시안이 행한 일격이었다.
또한 듀라크가 처음 인지한 것은 찌르기였다. 그러나 검의 궤도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휘둘러지는 커다란 참격. 흉측한 짐승의 발톱은 듀라크를 향해 할퀴어져왔다.
그 이후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대응조차 힘겨웠다.
피할 순간이 인지되지 않았고, 반격의 틈을 엿보아도 역시나 보이지가 않았다.
그 결과는 지금 이것.
주륵.
듀라크의 볼 아래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듀라크의 시선이 다시 시안에게로 향한다.
“······ 시건방진.”
듀라크의 기세가 폭발한다.
감각 사이로 파고드는 분노. 시안으로 하여금 죽음을 윽박지른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대답을 요하는 질문도 아니었다.
마주치는 시선.
꽈아앙!
듀라크가 먼저 땅을 박찼다.
터져나온 폭발에 듀라크가 내딛은 땅이 쩌저적,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쏘아진 듀라크의 몸이 쭈욱, 기나긴 잔상을 남기며 앞으로 쏘아져왔다.
콰아아아아─!
강맹한 힘이 터져나오며 듀라크의 검이 휘둘러졌다.
번개와도 같은 일격에 호흡마저 끊어진다.
꽈아아앙!!
충돌한 힘의 파편에 시안이 딛고 있던 대지가 통째로 주저앉았다.
그 끔찍한 힘 속에서 듀라크는 개의치 않았다.
폭발하는 힘 사이로 듀라크의 검이 휘몰아친다.
쾅! 콰쾅! 카카카각!
보이지도 않는 일격들이 행해진다.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틈도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대적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보이고 또 느껴졌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경지.
캉─!
그 듀라크의 검이, 보인다.
뚝.
시안의 호흡이 끊어진다. 뒤덮인 전장의 소리.
그러나 시안은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잡음이 들려오지 않고 시야가 좁아진다.
오로지 듀라크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카──가가──가각!
소리가 끊어진다.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소리가 행동 뒤에 이어진다.
끊어지고 또 베어진다.
카──가─각!
만들어지는 잔상 속에서 이어져서는 안되는 일격들이 이어진다.
튕겨져 나간 힘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대지를 할퀴었다.
“······!”
듀라크의 눈이 치켜떠졌다.
이 찰나의 순간에 도대체 몇 번의 일격이 행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와락, 일그러지는 얼굴. 듀라크가 휘청거리며 물러선다.
그 사이로 시안의 일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저돌적인 공세는 어느덧 수세가 되어 시안의 일격을 막아서고 있었다.
카─가가──가각!
파삭─!
끊어지는 소리. 그 사이로 얕은 절삭음이 인다.
뭐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어깨 사이로 찌릿한 통증이 인다.
흩뿌려지는 선혈이 잔상처럼 뒤로 스쳐지나간다
공격을 놓쳤다···?
듀라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와 동시에 얼마 전, 레이첼의 말이 떠올랐다.
‘후작께서는, 시안이라는 자를 꺾을 수 없을 거예요.’
처음엔 헛소리라 무시했다.
웃기는 소리라며 귀담아 듣지않았다.
그러나 지금.
천천히 세상이 어두워진다.
하늘은 그리 맑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다.
구름에 가려져 있으나 태양은 분명 하늘 높이 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은 밤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시안이 만들어내는 어둠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듀라크는 시안의 어둠을 인지했다.
사방으로 힘이 터져나간다. 시안을 담고 있는 풍경이 거세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듀라크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자칫 잘못하면 당할 수가 있다는─.
당한다고? 내가?
생각이 그곳까지 닿아버린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륙 제 1의 검이란 그런 자리다.
모두를 발 아래 두어 군림하는 절대자.
핏발이 선 두 눈동자에 분노가 담긴다.
듀라크의 기세가 첨예하게 벼려진다.
그런데 왜일까.
‘그동안 대륙 제 1의 검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가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레이첼이 했던 말의 기억이 계속해서 스쳐지나간다.
‘대륙의 역사만큼이나 있었어요. 그리고 대륙의 역사는 굉장히 길죠.’
레이첼은 말했었다.
과거와 현재.
고금(古今)이라는 모든 시간을 통틀어, 제 1이라 손꼽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있었노라고.
헛소리라 생각했다.
‘진정한 대륙 제 1의 검은 오직 한 명 뿐이었어요.’
말도 안되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대체 왜.
‘시안이라는 자는, 그 존재가 걸어간 길을 걷고 있어요.’
생각은 예감으로 변질되며 머릿속에서 떨쳐내지지 않는다.
떨쳐내려해도 점막처럼 진득히 달라붙어 늘어진다.
“이건···.”
불안함이 짙어져 간다.
그것은 불길하고도, 아주 기분 나쁜 예감으로 확산되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는.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번쩍!
실로 아주 불길한 예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