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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248화 (248/322)

248화 - 최후의 드래곤(1)

하늘을 가득 메운 목소리에 땅이 작게 진동했다.

천둥이라도 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거대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어떤 기세도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에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온몸을 내리누르는 듯한 존재의 위압감.

“허헉···! 커헉···!”

“하흑···!”

그 위압감을 버티지 못한 루벤의 병사들이 하나 둘 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고참들은 어느 정도 버티고 있었지만 신참들은 하나같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어떤 기세도 첨가되지 않는 단순한 존재감.

“수, 수호자께서···!”

파벨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인족들의 수호자.

만물 위에 군림하는 최강자, 드래곤.

이건 다름 아닌 드래곤 프레셔(Dragon Pressure).

“이, 이건···.”

“말도 안돼···.”

압도적인 존재감에 사람들이 크게 당황해보였다.

오직 한 사람.

사아아아아─!

시안만이 그 위압감에 맞서 담담히 서있을 뿐이었다.

공간 전체를 내리누르는 위압감이 느껴지나 정작 드래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았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단순한 존재감만으로도 이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만일 모습마저 드러낸다면 정말로 사람이 죽을 위험이 있었다.

단순한 존재감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니.

실로 신화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그 순간 시야 앞으로 푸른 뇌전이 튀어올랐다.

이내 쩌어억, 뇌전이 튀어오른 공간이 위 아래로 갈리졌다.

[들어오거라.]

그리고 들려온 천둥과도 같은 목소리.

“······!”

“······!”

파벨과 다이애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모습.

이건 수호자가 직접 시안을 만나보겠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호자가 누군가를 직접 만난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저 이렇게 먼 발치나마 존재감으로 대화를 했을 뿐이었다.

긴 세월을 살아온 귀인족의 파벨조차 수호자를 직접 알현한 적은 없었다.

오로지 대족장들만이 직접 수호자를 알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체···.

파벨과 다이애나의 경악 어린 두 눈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시안은 터벅, 갈라진 공간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뒤로 아리아가 따라붙었다.

바로 그때.

[강대한 신성의 아이로구나.]

재차 천둥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허나,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마력을 한데 모아 폭사시킨 것만 같은 압박감이 온몸을 내리눌러왔다.

“아윽···!”

아리아가 몸을 휘청, 거렸다.

그래도 아리아는 아리아인지라 휘청거리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꽤나 힘겨워보였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압박감이 다시 사라졌다.

드래곤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도는 다분했다.

방금 그 기세를 버틸 수 있다면,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겠다.

“······”

아리아는 차마 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그 힘을 느꼈던 파벨과 다이애나.

둘은 그 동안 수호자가 왜 대족장 이외에 직접적인 알현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 혼자 다녀올게.”

멀쩡한 시안의 모습이 놀라울 뿐이었다.

최소 대족장과 같은 반열이라는 뜻이지 않은가.

경악은 다시 충격이 되어 시안에게로 향했다.

시안은 그 시선들 속에서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쩌억, 벌어진 채 일렁이는 공간.

시안은 그 사이로 몸을 비집어 밀어넣었다.

#

일렁이는 공간 속.

약한 현기증이 일며 일순간 시야가 반전했다.

그리고 보인 풍경은 방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치 같은 공간. 다른 시간 대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보아하니 환계의 공간인 것 같았는데···.

과연 드래곤은 드래곤인 것일까.

시안은 이곳이 환계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아마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동굴이 아니었다면.

[안으로 들어오거라.]

그리고 들려온 천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시안은 그러했을 터였다.

시안은 성큼,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우우우웅.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폭퐁우와 같은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동굴은 꽤나 깊었다.

이게 동굴인지 아니면 산 전체를 뚫어버린 것인지 모를 정도로 깊고 또 거대했다.

이렇게까지 깊게 만들 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까지 깊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시안은 금방 알 수 있엇다.

동굴이 왜 그렇게 깊고 거대한지.

정확히는 깊고 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존재.

이걸···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까.

눈대중으로 가늠한 터라 정확하진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장이나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거진 100M에 이르는 압도적인 크기의 금빛 생명체였다.

꼬리의 길이까지 합친 것이긴 했다만 그럼에도 실로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고 동굴 입구서 부터 느꼈던 거대한 폭퐁우.

그건 폭풍우가 아니었다.

후우우우우웅.

믿기지 않지만 눈앞의 생명체가 단순히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 크기가 워낙 거대한 터라 폭풍우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시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쩌어어억.

이윽고 어떤 굉음이 들려왔다.

커다란 바위가 들어올려지는 것만 소리는 다름 아닌 눈동자가 떠지는 소리였다.

눈동자는 뱀의 것을 닮았으나 그보다 더 소름끼치는 형상을 띠고 있었다.

이윽고 눈동자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시안은 황급히 마(魔)를 제어하며 몸을 보호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버티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위압감이었다.

어떻게 존재만으로 이런 위압감을 줄 수 있을까.

천 년전, 악마들에 의해 멸종한 드래곤.

시안은 왜 악마들이 드래곤들을 가장 먼저 사냥했는지 대번 알 수 있었다.

[천 년전.]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들려온 목소리.

그것은 고막을 타고 정신까지 울려왔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의식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세상을 오시하던 한 인간이 있었다.]

드래곤은 시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실로 경이로운 존재였지. 나조차도 감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저런 존재도 과연 죽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강대하고 또 경이로운 존재였다.]

드래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그러나 시안은 알 수 있었다.

드래곤이 말한 세상을 오시하던 인간.

그 인간이 누구인지 시안은 알 수 있었다.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Kyle).

[그러나 그 강대한 존재도 결국은 필멸의 운명 앞에 굴복해버렸지. 그리고 다시는, 그 힘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세월 속에서도 그 힘을 다루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운명에 스러져 소멸된 힘이라 생각했거늘···.]

시안을 바라보는 거대한 두 눈동자.

[어찌하여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가.]

드래곤은 시안을 향한 어떤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안은 그런 드래곤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심력이 소모되는 것만 같았지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 전에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안은 드래곤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호기심을 자극해야만 했으니까.

눈앞의 드래곤은 어떤 이유로 수인족들을 만나고 있지 않았다.

수인족들의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방관하고 있었다.

그러니 시안이라고 다르지 않을 터였다.

지금 모습을 드러내 시안을 만난 것은 다름 아닌 호기심 때문이었다.

만일 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 그걸로 끝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답이 아닌 호기심을 유지해야할 때였다.

드래곤은 가만히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안은 한껏 긴장을 끌어올렸다.

사실 말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지.

그냥 드래곤의 말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드래곤의 입장에서 인간은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벌레가 드래곤의 말을 무시한다?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도 시안은 그런 위압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박하건대.

시안은 눈앞의 드래곤과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악마 7군주보다도 더한 위압감.

물론 어디까지나 제약된 악마 7군주와 비교했을 때였지만, 그래도 실로 말이 안 되는 존재였다.

시안은 왜 대륙 역사상 드래곤 슬레이어가 존재하지 않았는지.

더하여 드래곤이 경이롭다, 그리 평가한 카일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존재인지.

시안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시안은 긴장을 끌어올리며 드래곤의 행동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일까.

드래곤은 그것 외에 별 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렴 상관 없다는 듯 무시한 눈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드래곤은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시안은 그런 드래곤의 반응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려앉는 침묵.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카르제.]

일순간 드래곤이 시안의 말을 끊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곧 자연으로 돌아갈 나의 이름이로다.]

어째, 드래곤의 이름이 카르제인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자연으로 돌아갈’ 이라는 말.

아무래도 카르제는 곧 죽을 때가 되었음을 시안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안은 카르제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1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

그러나 드래곤도 결국 필멸(必滅)의 존재인 것일까.

천 년전, 새끼 해츨링이었던 카르제는 무구한 세월 속에서 고룡(古龍)이 되어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시안은 카르제가 타성에 젖어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물이 어디에 있는지 카르제님은 알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성물이라···.]

카르제가 침음 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꽤나 오랫동안 답을 해오지 않았다.

답을 하지 않기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시안이 말한 성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천 년의 고룡, 카르제.

모르긴 몰라도 카르제가 알고 있는 성물은 무궁무진할 터였다.

아마, 시안이 아니라 수인족들이 찾아와 성물의 위치를 물었다면 별 고민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시안은 수인족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에게 성물이라 불리는 것들은 무궁무진했다.

시안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말을 정정했다.

“천 년전, 뮤리엘께서 남기신 성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갑자기 카르제의 기세가 일변했다.

타성에 젖어있던 무심한 눈빛은 분명한 호기심으로 물들어있었다.

[어찌하여···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지?]

아니나 다를까 카르제가 시안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역시나 시안은 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해야만 했으니까.

호기심을 자극하여 계속 이 만남을 이어나가야 했으니까.

시안이 얻고 싶은 정보는 비단 성물의 위치만이 아니었다.

카일이 마주한 진실.

동료들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모종의 진실.

지금은 세월 속에 묻혀 사라졌으나 카르제는 아니었다.

카레는 카일을 직접 만나보았다.

카일의 죽음 또한 두 눈으로 목격했다.

카르제라면 시안이 쫓던 진실의 파편을 알고 있으리라.

시안은 입을 꾹, 다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화를 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카르제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다시 무심해진 시선과 눈빛.

[아주 오래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자들이 있었지.]

카르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르나이즈에 관련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다만, 카일과는 달리 아르나이즈들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존재’ 라고 표현했다.

물론 카일도 아르나이즈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카르제는 카일은 별개의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세상에 찾아온 혼란을 몰아내었고, 평화를 되찾았지.]

대륙을 구원한 6명의 영웅, 아르나이즈(Arnaiz).

대륙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신화의 이야기였다.

[허나, 그 평화는 거짓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아니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

신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카일이 마주했던 진실의 이야기.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던 악마들과 그들을 몰아내었던 영웅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들은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지..]

[악마들은 단지, 잠시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카르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악마들은 소멸되지 않았고, 언제고 다시 세상에 찾아올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악마들과는 달리 그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필멸(必滅)의 존재. 언젠가 다시 찾아올 악마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지.]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아르나이즈였다.

샤를롯, 뮤리엘, 엘로디, 모르크루, 노에미 그리고 카일.

[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일부 봉인하여 악마들을 막고자 하였다. 대륙에 다시금 악마가 찾아왔을 때, 그들이 온전한 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아마··· 뮤리엘의 성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성물을 뮤리엘 혼자 만든 것인 줄 알았건만.

듣자하니 아르나이즈들 모두가 합심해서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성물의 역할은 악마들의 힘을 봉인하는 것.

시안은 그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날, 누르비아와 루슈리아가 왜 온전한 힘을 사용치 못했는지.

또한 왜 그토록 이 성물을 찾고자 했는지.

[그러나 이 또한 무구한 세월 속에서 분실될 위험이 있었다. 하여, 그들은 가장 신뢰할 만한 이에게 성물을 맡겼지.]

그 존재가 바로 노에미였던 것.

해서 지금까지 그 성물이 수인족들의 성물로서 전해져 내려온 것.

처음엔 왜 카일이 아니었나 싶었다.

가장 믿을 만하고 안전한 곳은 카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보니 시안은 알 수 있었다.

노에미가 아니었다.

지금 눈앞의 드래곤, 카르제.

아마 카르제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용인족(龍人族)이었던 노에미.

노에미는 천 년전에 지금의 드래곤과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지금 카르제가 수인족의 수호자로서 존재하는 것.

그 이유도 노에미의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하여 노에미에게 맡긴다 함은, 곧 카르제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드래곤의 평균 수명은 1천년.

훗날 노에미가 죽는다고 한들 카르제는 살아있을 터였다.

모든 아르나이즈들이 죽은 이후에도 카르제는 살아있을 터였다.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카르제의 힘을 빌어 성물을 지킬 수가 있었다.

아마 그래서 카일이 아닌, 노에미에게 성물이 맡겨진 것 같았다.

카일은 인간이었고, 또 그렇기에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존재였으니까.

[허나, 그 사실은 철저한 비밀에 붙여져 있었다. 진실을 말해줄 자는··· 그 이후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애매모한 말이었다.

그러나 시안은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뮤리엘의 갑작스러운 자결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지난 날, 시안이 뮤리엘의 유적에서 파헤친 진실.

뮤리엘은 모종의 이유로 자결을 했다.

켄드릭과 검은 사자 기사단들을 가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자결을 했다.

자결을 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뮤리엘이 자결한 시점.

카르제의 말을 듣자하니 성물을 노에미에게 맡긴 이후에 자결한 것 같았다.

설마 성물을 맡겼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자결을 한 것인가?

노에미에게 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기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다.

뮤리엘이 자결한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카르제의 시안은 알 수 없어야 했다.

수인족들의 성물이 뮤리엘의 성물이라는 것.

뮤리엘이 노에미에게 성물을 맡겼다는 것.

그것은 천 년 전에 뮤리엘의 자결과 함께 사라진 진실이었으니까.

수인족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었으니까.

그러니 시안은 ‘수인족들의 성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이렇게 말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결단코 ‘천 년전, 뮤리엘께서 남기신 성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라고는 말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시안의 입에서 나온 것은 뮤리엘이라는 이름이었다.

[답하라.]

무심하기만 하던 카르제의 눈빛에 뚜렷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그 사실을, 네가 알고 있는 것인지.]

그 말을 끝으로 소름끼치는 기세가 터져나왔다.

존재감과 더해진 카르제의 기세.

시안은 전신을 옥죄어 오는 끔찍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숨조차 쉬이 내뱉어지지 못하는 강력한 억제력이 시안의 전신을 얽매어왔다.

그 사이로.

띠링!

『[스토리 메인 퀘스트] - ‘풀리지 않은 의문’ (클리어!)』

품 속에서 경쾌한 스마트 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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