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47화 (247/322)

247화 - 수인족(2)

다이애나는 케이든에게서 얻어낸 정보를 낱낱히 말해주었다.

물론 다이애나는 여전히 정신 나간 헛소리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천 년전에 사라졌던 악마라니.

심지어 악마 부활이라니.

여러모로 말이 되지 않은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시안은 헛소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다이애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음···.’

시안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엘란두르는 이곳에서 성물을 찾고 있었다.

그 성물은 천 년전, 뮤리엘의 성물이라 추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물은 악마 부활과 관련되어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추정’이었다.

어디까지나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 케이든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추정.

어쩌면 다이애나의 생각처럼 숱한 고문으로 정신이 나가 횡설수설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넘길 수는 없단 말이지.’

그러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높은 확률로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이 시안의 생각이었다.

일단 첫 번째로 지난 날에 루벤을 습격했던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당시 누르비아는 루벤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둠의 숲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루벤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만일 누르비아가 찾던 것이 그 성물이었다면?

그리고 시안이 만나본 또 다른 악마 7군주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물론 루슈리아는 딱히 무언가를 찾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루슈리아와 관련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는 황혼 교파의 사제들은 아니었다.

어딘가 악(惡)의 기운이 느껴졌던 황혼 교파의 사제들.

그리고 황혼 교파의 대주교, 라히르.

라히르 대주교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찾던 것이 바로 저 성물이었다면?

그리고 작위식 때의 일.

정확히는 듀라크에게서 느꼈던 루슈리아의 기운.

루슈리아는 분명 시안이 소멸했다.

하지만 작위식에서 시안은 듀라크에게서 루슈리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들려온 악마 부활.

‘성물에 무언가 있다.’

결국 성물로 초점이 맞춰졌다.

천 년전, 뮤리엘이 카일이 아닌 노에미에게 맡겨야만 했던 이유.

아무래도 성물을 직접 찾아봐야할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귀인족의 장로, 파벨에게 말했다.

“혹시 성물이 있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시안의 말에 파벨이 순간 멈칫, 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고 있습니다.”

파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곳으로 안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시안은 곧장 물었고 이번엔 파벨은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머뭇머뭇, 파벨은 입을 열지 않았다.

초대 대족장 노에미 이후로 지금까지 지켜온 수인족들의 숭고한 사명.

그 사명을 지키고자 지금도 수많은 수인족들이 희생되었다.

어찌 쉽게 입을 열 수 있을까.

그것도 다름 아닌 인간에게 말이다.

아무리 시안이 다이애나의 부탁을 받고 도움을 주러왔다고는 하나 쉬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파벨은 심히, 심히 고민을 해보였다.

정적은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 알겠습니다.”

파벨은 끝내 입을 열었다.

파벨의 주름진 눈가엔 어떤 결의가 깃들어있었다.

현재 수인족에게 닥쳐온 위기.

비록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온 사명이나, 종족의 사활보다 앞서는 사명은 없다.

수호자는 수인족을 외면했고.

대족장은 현재 실종되었다.

고집을 부려봤자 수인족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어차피 빼앗길 운명이라면···.

“거리가 제법 있습니다. 잠시 다른 동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파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사라진 파벨.

“병사들도 모두 오라고 해야겠다.”

시안 또한 아직 밖에 있는 루카스와 병사들을 데려오고자 걸음을 옮겼다.

#

자리를 떠난 파벨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왔다.

말마따나 다른 동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해준 것 같았다.

다만,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어딘가 숨어 지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파벨이 돌아올 때까지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리아의 신성력으로 되살아난 수인족들의 전사들.

전사들이 다이애나를 두고 숙덕거렸으나, 다이애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에미의 후손이자 대족장의 혈통인 다이애나.

대체 무슨 이유로 그림자 달의 길드장이 된 것일까.

마침 시간도 붕 뜨겠다.

그 사실에 관하여 넌지시 물어보려던 찰나.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떠나갔던 파벨이 다시금 돌아왔다.

시안은 고개를 흔들고는 파벨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시안과 일행들은 파벨을 따라 꽤나 먼 거리를 이동했다.

루벤의 병사들도 모두 함께 이동한 터라 그리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또한 파벨이 거북이의 특색을 지닌 귀인족인 영향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고 도착한 곳.

“음···?”

시안은 걷던 걸음을 멈춰섰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감각에 느껴지는 이 느낌.

정확히는 진득한 피비린내의 후각.

시안은 곧장 마혼무영보를 밟으며 앞으로 쏘아나갔다.

“영주님?”

“야! 갑자기 어디 가!”

갑작스러운 시안의 행동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러나 시안은 대답도 하지 않고 마혼무영보를 밟아나갔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도달한 곳은 어떤 한 마을이었다.

정확히는 마을 이었던 곳.

이제는 마을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입구서부터 쌓여있는 수많은 수인족들의 시체는 더 이상 마을이라 할 수가 없었으니까.

멀리서 느껴진 피비리내는 어느덧 코 끝을 찌르고 있었다.

또한 시체의 부패가 진행된 상태를 보아 죽은 지 3~4일 정도 지난 것 같았다.

시안은 감각을 최대한으로 확장시켰다.

역시나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상황은 끝난 듯 싶었다.

“세상에나···!”

“이, 이게 대체···!!”

황급히 시안의 뒤를 따라온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사람들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시안은 슬쩍, 아리아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되겠어?”

아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미 죽은 사람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아무리 아리아라도 완전히 꺼진 생명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었으니까.

“어찌··· 어찌 이런 일이···!”

파벨의 충격 어린 말이 새어나왔다.

주름진 두 눈은 충격을 넘어 경악의 감정이 새겨져 있었다.

모두가 충격에 빠져있는 상황.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황상 이 모든 짓은 엘란두르가 자행한 짓이다.

그 이유는 성물을 찾기 위함이었다.

냉정하다 생각될지 모르나 지금은 충격에 빠져 허우적 거릴 시간이 없었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시안은 조심스럽게 파벨에게 물었다.

“성물이 있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런 시안의 말에 파벨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수인족의 장로이자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귀인족, 파벨.

파벨은 시안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았다.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파벨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충격이 가신 것은 아니었으나 파벨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마을 한쪽 어귀.

파벨은 그닥 특별할 것이 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시안은 파벨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았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 또한 특별할 것이 없었다.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집 구조와는 완전히 달랐다.

심지어 같은 수인족끼리도 그 구조가 천차만별이었다.

각 동물들의 특색과 생활에 맞춰 집이 지어져있었다.

지금 이 집은 봉 같은 것이 사방에 있었다.

잘만 하면 봉을 타고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아마 이 집의 주인은 원숭이의 특색을 지닌 후인족(猴人族)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어쨌거나 성물을 숨겨둔 곳이라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일까.

아무래도 이곳에 성물을 숨겨둔 것 같았다.

파벨은 주저없이 집의 방 한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 없습니다.”

어째, 한 발 늦은 것 같았다.

엘란두르가 한 발 앞서 성물을···.

“하지만··· 빼앗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들려온 파벨의 말.

파벨은 한 구석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비밀 통로가 작동한 흔적이 있습니다. 한 번 작동하면 다시는 작동하지 않는 비밀통로이온데···.”

물론 수인족이 도망치고자 작동시킨 것일 수도 있었다.

엘란두르가 습격해오자 살기 위해 작동시킨 것일 수도 있었다.

“성물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비밀 통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망칠 때 성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설마하니 엘란두르가 이 비밀 통로를 작동시킬리는 없었을테니까.

“누군가 성물을 들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주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습니까?”

파벨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말씀드렸다시피 한 번 작동하면 다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온지라, 어디로 연결되어있는지는 저도 잘···.”

한 마디로 모른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엘란두르도 아직 성물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쪽도 더 이상 성물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꽤나 난감한 상황.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수호자께서라면··· 성물의 위치를 알고 계실 겁니다.”

“수호자라면···?”

“실은··· 저희 수인족들을 수호하시는 위대하신 존재가 계십니다.”

파벨은 조심스럽게 언급했으나 시안은 금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수인족들의 수호자.

그에 관해 이미 다이애나에게 들은 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체에 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대륙에 마지막 남은 최후의 드래곤.

그가 바로 수인족들의 수호자였다.

‘잠깐, 이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시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스토리 메인 퀘스트] - ‘풀리지 않은 의문’

▶최후의 드래곤을 찾으세요.』

<보상: ???>

.

.

.

다름 아닌 스토리 메인 퀘스트.

카일이 마주한 진실에서 부터 파생되어온 퀘스트.

어차피 성물의 위치도 알 수 없겠다.

정확히는 성물의 위치를 수호자가 알고 있겠다.

“수호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파벨에게 물었다.

그리고 파벨은 바로 답을 해오지 않았다.

주저하는 눈짓.

“그게 실은··· 수호자께서는 더 이상 저희들을 만나주시지 않으십니다.”

파벨은 난감한 표정으로 답을 해보였다.

대륙에 마지막 남은 드래곤이자 수인족들의 수호자.

그러나 수호자는 더 이상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방관만하고 있었다.

“찾아간다고 한들··· 아마 저희를 만나주시지 않을 겁니다.”

파벨은 침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

수인족들이 모여사는 왕국.

그 한적한 어딘가.

【그건 그렇고···.】

누르비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악마 7군주 중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그 도마뱀 새끼는 그냥 둬도 괜찮겠어?】

누르비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누르비아의 의문을 받는 당사자.

“도마뱀이라면···.”

레이첼은 마주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설마 드래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 다 죽어가는 도마뱀 새끼 말이야.】

이어진 누르비아의 대답에 레이첼은 헛웃음을 흘렸다.

드래곤한테 도마뱀 새끼라니.

세상 어떤 누가 드래곤을 그렇게 칭할 수 있을까.

아마, 대륙의 모든 역사를 뒤적여도 없을 터였다.

정확히는 손가락 안에 꼽을 터였다.

그리고 누르비아.

아이러니하게도 누르비아는 그 손가락에 충분히 꼽을 수 있었다.

【그거 그냥 두면 나중에 골치 아플텐데.】

누르비아는 미심쩍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만물 위에 군림하는 최강의 종족.

범접할 수 없는 최강자.

드래곤(Dragon).

비록 다 죽어가는 드래곤일지라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라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우리가 괜히 드래곤들부터 사냥한 것이 아니라고.】

천 년전, 악마들이 대륙을 침공했을 당시.

악마들은 가장 먼저 드래곤을 사냥했다.

홀로 동떨어진 드래곤들을 각개격파하며 대륙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렸다.

【그래봤자 도마뱀이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처리하는 게 낫지 않아?】

누르비아는 의아하다는 듯 레이첼에게 물었다.

레이첼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존재가 변수이긴 해요. 하지만··· 그 변수를 없애자고 지불해야하는 대가가 너무 커요. 말씀 그대로 드래곤은 드래곤이니까요.”

【도마뱀 새끼 하나 잡는데 뭐가 그리···.】

“예전과 같은 상태가 아니시잖아요?”

【......】

누르비아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과거, 온전한 힘을 발휘할때도 드래곤은 여간 골치 아픈 놈들이 아니었다.

한놈한놈, 사냥했음에도 꽤나 고역을 면치 못했다.

만약 드래곤이 뭉치기라도 했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터였다.

말마따나 드래곤을 가장 먼저 사냥한 이유가 있었다.

천 년 전에도 그러했을진대 하물며 지금은 대부분의 힘이 제약되어있는 상태였다.

“괜히 이쪽이 피해를 볼 수 있어요.”

어쩌면 악마 7군주 중 한 명이 희생해야할 수도 있었다.

천 년전이라면 어림도 없었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힘이 제약되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드래곤이 계획에 방해가 되지는 않아요.”

드래곤이 계획에 방해가 된다면 모를까.

아무런 방해도 없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저대로 두기엔 영 찜찜한데.】

“걱정하지 마세요. 드래곤은 절대 나서지 않을테니까요.”

드래곤은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지금의 드래곤은 죽음을 목전에 둔 드래곤.

“그러니 괜히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레이첼은 신경쓰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그런 레이첼의 확언에 누르비아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보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어?】

“지금쯤이면 깨어나시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한 번 확인하러 가볼까요?”

【흐응··· 귀찮은데.】

미적지근한 누르비아의 반응.

하여간, 누가 나태의 악마 아니랄까봐.

레이첼은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오랜 만에 보시는 것 아닌가요?”

【뭐,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한 번 가볼까.】

그와 동시에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붉은 마력이 사방으로 넘실거렸다.

그리고 다시.

사아아아아─!

흐릿한 바람 소리와 함께 두 여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

시안은 파벨을 따라 수호자가 있다는 곳을 향했다.

역시나 그 거리는 제법 되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그리 멀지는 않았다.

그렇게 수호자의 둥지로 가는 길.

“드래곤이라니···? 나한텐 그런 말 없었잖아.”

시안은 아리아에게 드래곤에 관한 설명을 짤막하게 해주었다.

정확히는 아리아를 비롯한 루벤의 병사들에게도 설명해주었다.

병사들도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으니까.

엘란두르와 악마에 관련한 것들은 알고 있었다만 드래곤은 아니었다.

시안은 그런 이들에게 드래곤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냥 뭐··· 최후의 드래곤이 살아있다 정도였다.

더 설명해주고 싶어도 시안도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아리아를 비롯한 루벤의 병사들은 역시나 놀란 눈치였다.

또한 시안의 설명에도 반신반의한 눈치였다.

“정말 드래곤이 살아있다고?”

정확히는 아리아가 반신반의한 눈치였다.

하기사, 천 년전에 멸종한 드래곤이 살아있다니.

시안도 모바일 영주가 아니었다면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믿지 않았을 터였다.

“직접 확인해봐.”

하지만 사실인 것 어쩌랴.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수호자의 둥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높디 높은 산의 정상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안은 가만히 눈을 감아 기감을 확장했다.

혹시 드래곤이 모습을 감춘 것이 아닐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감각 사이로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인위적인 마력의 흐름을 발견할 수는 있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한 번 수호자님께 만남을 청해보겠습니다.”

파벨이 한 발 앞으로 나서보였다.

“귀인족의 일원인 파벨이옵니다. 위대하신 존재의 알현을 청하옵니다.”

파벨은 예를 갖추며 수호자를 불렀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

“······”

어째,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드래곤의 존재라 생각되는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인위적인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지만 역시나 그뿐이었다.

정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시안은 뭔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안 만나준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솔직히 모습 정도는 드러낼 줄 알았다.

정 아니면 목소리라도 들려올 줄 알았다.

돌아가라 혹은 안된다.

그런 의사 표현을 내보일 줄 알았건만 그런 것도 없었다.

그냥 개무시.

“수 년전부터 수호자께서는 저희를 만나주시지 않으십니다.”

파벨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보아하니 이미 수없이 겪어본 상황인 것 같았다.

하기사, 지금 수인족들의 상황을 보면 수 백번도 더 찾아왔을테지.

그런데도 수호자는 수인족들을 외면한 것 같았다.

“이러면···.”

조금 문제가 있었다.

모습이나 목소리라도 보인다면 어떻게 대화라도 해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러면 대화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설득을 하더라도 얼굴은 보고, 말은 섞어봐야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왜 외면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이유라도 알 면 어떻게 해볼 건덕지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뭘 할 수가 없었다.

실로 난감한 상황.

“이제 어쩌려고?”

“음···.”

아리아의 물음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어쩔 수 없지.”

시안은 끝내 고개를 흔들어버렸다.

모습조차 안 보이면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런 시안의 모습에 아리아가 다시 물어왔다.

“그냥 돌아가게?”

“응? 아니. 여기까지 와서 왜 그냥 돌아가?”

시안은 무슨 소리 하냐는 듯 아리아를 바라봤다.

“방금 어쩔 수 없다며.”

“그게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잖아. 이렇게 모습도 안 드러내는데 어떻게···.”

“그러니 호기심을 자극해봐야지.”

“호기심?”

아리아의 물음에 시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터벅, 한 발 앞으로 나서보였다.

어째서 드래곤이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방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수인족들과 만나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시안이 드래곤을 끌어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스스로 나오게 만들어야지.’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호기심을 자극해서 말이다.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을 자극하는 호기심.

그 호기심은 거진 없다고 봄이 옳았지만 딱 하나가 있었다.

시안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최후의 드래곤은 천 년전에 존재했던 드래곤이었다.

악마와의 전투를 겪어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아르나이즈를 모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인족들의 수호자이자 최후의 드래곤.

그는 천 년 전, 아르나이즈들과 직접 만나봤다.

그리고 아르나이즈들의 죽음 또한 지켜봤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았다.

신화 속 이야기를 직접 겪고 목격한 유일한 존재.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드래곤은 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대륙에 존재해왔다.

아마··· 수없이 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르나이즈가 죽고, 그 뒤를 잇는 수많은 후예들을 말이다.

드래곤은 그들은 수없이 목도했을 터였다.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아리아.

그러나 아리아 이전에도 성녀라 불리던 이들은 존재했었다.

샤를롯은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르크루는 부족의 족장으로 후예들을 남겼고.

엘로디는 다크 엘프라는 새로운 종족의 계보를 이어갔다.

수인족들의 대족장, 노에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없었을 것이다.

천 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 동안 그 누구도 없었을 것이다.

최강의 아르나이즈.

엑시드(Exceed) 그 너머의 경지에 닿은 자, 카일(Kyle).

카일의 후예는 결단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었다.

지난 천 년동안 카일의 후예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안의 전신으로 흉측한 어둠이 피어오른다.

피어오른 어둠은 순식간에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다.

그런데 왜일까.

어둡지 않았다. 분명 새까만 어둠이다.

그러나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魔).

그 근원의 힘.

근원의 힘에 공간을 장악되며 어둠으로 물든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드리운 어둠을 몰아내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궁─!

공간 전체가 크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안의 어둠으로 행해진 일이 아니었다.

감각 끝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

그건 시안이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존재보다 강대했다.

듀라크, 레아, 켄드릭과 견줄 것이 아니었다.

악마 7군주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더 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전신이 짓눌리는 것만 같은 위압감.

“끄윽···!”

“아으윽···!”

그 위압감에 루벤의 병사들이 신음을 터트렸다.

심지어 흑사자 기사단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카스는 물론 아리아를 비롯한 다이애나, 파벨.

이곳에 있는 모두가 위압감에 짓눌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직 시안만이 담담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힘은···.]

천둥과도 같은 목소리가, 하늘 가득히 울려퍼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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