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45화 (245/322)

245화 - 역지사지(2)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어버린 공간.

꽈아아아아아아앙!!

뒤이어 섬뜩한 굉음에 공간 전체가 박살이 나버렸다.

그건 어떤 힘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착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이 공간에 어떤 힘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가 공간을 완벽하게 부서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사방으로 어둠이 퍼져나간다.

어둠이 바람처럼 휘몰아치며 흩어진다.

그리고 보인 것은 잘려진 단면.

시야로 담을 수 있는 풍경 전체가, 깔끔하게 잘려져 있었다.

“······!!!”

케이든의 두 눈이 경악으로 떠졌다.

공간 전체를 휩쓸어버린 압도적인 힘.

저 힘은 케이든,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케이든은 압도되었다.

단순한 힘의 여파임에도 선명한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케이든임에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저것은 단순한 힘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개체가 닿을 수 없는 너머.

초월적인 무언가라 정의함이 옳았다.

“이, 이게 대체···.”

케이든의 얼굴에는 충격을 넘어선 경약이 자리잡고 있었다.

케이든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향한다.

다름 아닌 이 초월적인 광경을 만들어낸 당사자.

“오···.”

시안은 눈을 크게 떠보이며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월 장비로 업그레이드하고서 처음 펼치는 수라천살.

심지어 케이든이 행여 죽을까, 약간의 힘을 조절한 일격이었다.

그러니까 메긴기요로드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으로 보이는 풍경.

“예상 밖인데?”

어째 시안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심지어 초월 스킬도 쓰지 않고도 이 정도였다.

『<멸살(滅殺)>

[효과] - 시전 직후, 단 한 번. 착용자가 주는 피해가 +200% 증가합니다.』

-해당 효과는 24시간 마다 한 번 사용 가능합니다.

.

.

아무 조건 없이 3배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사기이자 그야말로 초월 스킬.

“이거에 뮤리엘의 축복까지 쓰면 어떻게 되는거야?”

진짜 카일과 맞먹는 거 아닌가 몰라.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과연 신화 속, 아르나이즈 무구들과 같은 반열이라는 것일까.

시안의 성명절기이자 초월의 검, 멸살(滅殺).

“정말 멸살이잖아.”

이름처럼 정말로 멸살(滅殺)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세상 전체가 절삭되어있는 풍경.

콰지지직─!

잘려진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너지고 있었다.

그로써 왜곡된 세계의 틈이 쩌억,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수인족들의 왕국이자 드래곤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왜곡의 세계.

즉, 이것은 드래곤의 마법을 파훼함과 동시에 현실의 왜곡을 깨부쉈다는 것과 다름 없었다.

파장창─!

산산히 깨어지는 공간의 틈.

그 사이로 일련의 사람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짙은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는 이들.

갑옷 위로 새겨진 선명한 흑사자의 문양.

“후아···! 겨우 따라잡았네···.”

“영주님! 혼자 그렇게 휙, 하니 가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다름 아닌 루벤의 기사단, 흑사자 기사단이었다.

“어째 전보다 더 빨라지신 것 같단 말이지.”

“우리도 열심히 수련했는데···.”

“이 정도면 켄드릭 단장님도 못 따라잡겠는데?”

흑사자 기사단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그리고 바라본 눈앞의 풍경.

무너져내리는 공간의 틈.

주변으로 가득한 수인족들의 시체.

경악으로 물들어있는 케이든과 하얀 늑대 기사단.

마지막으로 무장을 갖추고 있는 시안의 모습까지.

“잔챙이들 처리하면 됩니까?”

단원들은 금방 자신들의 할 일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할 수 있겠어?”

시안은 약간의 걱정을 담으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래도 하얀 늑대 기사단이었다.

전원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제국 제 1의 기사단.

잔챙이라 부를 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예전의 격돌에서도 루벤의 기사단은 한 번 하얀 늑대 기사단들에게 한 번 밀린 적이 있었다.

솔직히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에이, 저희를 뭘로 보시고.”

“예전의 저희가 아닙니다!”

그러나 흑사자 기사단은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지금은 그때와 차원이 달랐으니까.

시간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시안이 쏟아부은 현질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샤를롯의 전당>만 하더라도 2억 골드에 달했다.

여기에 업그레이드한 훈련 시설과 각종 성장 버프까지 덕지덕지.

그 버프들을 기반으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지금.

“저희가 누굽니까! 흑사자 기사단입니다!”

“늑대 새끼들이야 한 입에 콱!”

흑사자 기사단은 자신만만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이에 하얀 늑대 기사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기세를 피워올리며 흑사자 기사단을 노려봤다.

경악으로 물들었던 얼굴에는 어느새 분노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시안의 경이로운 힘에 압도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시안에게 압도된 것이다.

저 수준 낮은 놈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리고 잔챙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잔챙이라 한단 말인가.

프스스스스─!

하얀 늑대 기사들이 기세가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연 하얀 늑대 기사단은 하얀 늑대 기사단인 것일까.

살의를 머금은 기세는 피부 끝으로 찌르듯이 느껴졌다.

엘란두르의 가신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역시나 엘란두르의 최정예 전력들.

시안은 다시 한 번 걱정을 담으며 말했다.

“정 안된다 싶으면 시간만 끌고 있어봐. 금방 끝내고 도와줄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영주님!”

“영주님께서는 하시던 일. 쭈욱, 하시면 됩니다!”

흑사자 기사단들은 마주 기세를 피워올렸다.

짙은 마기가 일며 새까만 어둠이 몰려온다.

칠흑의 오러와 새파란 오러.

“주제를 알게 해주지.”

“어디서 늑대 새끼가 짖나본데?”

대립하는 두 힘.

이내 상기 다른 두 힘이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름끼치는 힘의 충돌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들려온 비명.

“이게 무슨···!”

“커허헉!”

그것은 다름 아닌 하얀 늑대 기사단의 비명이었다.

새파란 오러는 칠흑으로 뒤덮인 어둠에 집어 삼켜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케이든의 입에서 경악 어린 충격이 새어나왔다.

밀린··· 다? 하얀 늑대 기사단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도와줄 필요는 없겠네.”

시안은 괜한 걱정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케이든을 바라봤다.

여전히 부릅, 떠져있는 케이든의 두 눈.

“그래도 빨리 끝내야 하니까.”

시안의 몸이 일순간 어둠으로 흩어졌다.

‘위험!’

그와 동시에 케이든의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려왔다.

마스터의 감각이 보내오는 경고일까.

아니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생존 본능일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케이든은 오러 블레이드를 형상화하며 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공간이 뒤흔들리는 듯한 착각.

“커헉···!”

케이든의 몸이 쭈욱, 뒤로 밀려났다.

터무니 없는 힘이다.

케이든은 떨리는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오러 블레이드를 둘렀음에도 검의 날이 상해있었다.

저도 모르게 손목이 덜덜, 떨려왔다.

말이 안되는 수준이다.

이건··· 이건 감당할 수가 없다.

대적할 수 없다.

케이든은 순식간에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 순간에도 시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까득, 깨문 입술.

“나는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이다!”

케이든은 시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시안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걸 누가 몰라? 갑자기 뭔 헛소리야.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케이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네 행동은 엘란두르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안은 케이든이 왜 저러는 알 수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을 건드리는 것은 곧 엘란두르를 건드리는 일.

즉, 엘란두르가 이 일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 이상으로 건들지 말라는 의미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엘란두르를 건드리는 짓은 결단코 해서는 안되는 미친짓이었다.

하지만.

“어쩌라고.”

시안에게만큼은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시안은 그 딴건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진짜 뭐 어쩌란 말인가.

“우리 전쟁 중인거 몰라?”

이미 갈 때까지 간 상황인데 말이다.

물론 루벤이 병력을 회군했지만 어디까지나 회군일 뿐이었다.

전쟁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루벤과 엘란두르는 전쟁 중이었다.

심지어 이곳은 국경 밖에서 행해지는 일.

“무엇보다 여기서 일어난 일을 누가 안다고?”

제국의 법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애초에 법 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일이긴 했지만.

“······”

케이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안 죽일거니까.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했어. 그런데 너한테는 물어볼 게 있다니까?”

본진이 쑥대밭이 되어감에도 엘란두르는 회군하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일을 이곳에서 행하고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들은 아마 모를 가능성이 있었다.

최정예 전력이라고는 하나 최정예 전력 중에서는 잔챙이가 맞았으니까.

하지만 케이든은 아니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급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순순히 말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케이든은 이를 까득, 씹으며 말했다.

본인 딴에는 어떤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케이든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했다.

그리고 역시나 순순히 말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역시나.

“알아.”

시안 또한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케이든은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

엘란두르에 대한 충성심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스터(Master)의 반열에 오른 기사였다.

그런 기사에게 순순히, 라는 말은 들먹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설령 순순히 대답해준다고 한들. 믿지도 않을 거였어.”

순순히 답해준다고 해도 시안은 믿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혹시 제갈 공명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네.”

손자 선생님에 이은 또 다른 인물.

듣자하니 병법과 관련하여 굉장히 뛰어난 인물인 것 같았다.

“아마 못 들어봤을 거야. 나도 누군지 모르거든.”

물론 시안은 듣도보도 못한 이름이었지만.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띠링!

《전쟁에서 지휘관을 잡아 족칠 때는 항상 이것을 명심하세요!》

“사지가 멀쩡한 놈의 말은 믿지 마라.”

그러니.

“죽이진 않아. 너도 수인족들을 그렇게 고문했잖아?”

시안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수인족들.

그들 모두가 갖은 고문을 당한 채로 쓰러져있었다.

“그럼 그 반대의 입장도 되어봐야지.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시안의 기세가 날카롭게 일변했다.

이윽고 사방으로 뒤덮이는 어둠의 마력.

“자, 잠깐···!”

케이든은 저항할 의지조차 일지 않았다.

#

화아아아아아악!

어둠을 몰아내는 찬란한 신성력의 빛.

“후우···.”

그 빛 사이로 아리아의 기나긴 숨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점점 사그라 들었다.

“치료는 되었어요. 다만, 충격이 심했던 터라 정신을 차리는 데는 조금 걸릴거예요.”

들려온 아리아의 목소리.

다이애나가 황급히 흐레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창백했던 흐레스의 안색은 혈색이 돌고 있었다.

심장 박동에 맞춰 쏟아지는 피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헐떡거리던 호흡 또한 상당히 안정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죽어가던 것이 아니라 솔직히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심장의 혈류가 죄다 빨린 이를 두고 살아있다, 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이건 죽음에서 건져올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웬만한 사제들은 커녕 추기경과 교황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존재는 대륙에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성녀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야 뭐.”

성녀, 아리아.

살아움직이는 기적.

다이애나는 사람들이 아리아를 두고 왜 그렇게 말하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흐레스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이애나는 진심을 담아 아리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뭘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요.”

아리아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그 미소가 참으로 아름답다, 라고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으윽···.”

흐레스에게서 자그마한 신음이 들려왔다.

“흐레스? 정신이 들어?”

“누, 누구···.”

흐레스가 살며시 눈을 떠보였다.

“길드장···? 길드장께서 왜 여기에···?”

흐레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 도망치셔야합니다!”

흐레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수인족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어서, 어서 도망치셔야합니다!”

“뭐, 뭐라고?”

다이애나는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리고 다이애나의 머릿속으로 두 가지 의문이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하얀 늑대 기사단이 벌써 그리고 어떻게.

하지만 이제 와 큰 의미가 없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수인족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이애나는 주먹을 꽈득,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뒤이은 흐레스의 외침.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다이애나는 멈칫, 움직임을 멈추었다.

흐레스는 순화해서 말했지만 그 의미는 이러했다.

가봤자 개죽음이다.

엘란두르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차마 저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 그리고 엘란두르.

그 앞에서 다이애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개죽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이애나는 그 자리에 박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사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번쩍!

한줄기 검은 섬광이 시야 한켠에서 터져나왔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치료 다 끝났어?”

언제 다가온 것인지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아리아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넌 그새 또 어딜 갔다 온 거야?”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잠깐, 이 녀석 좀 잡아왔어.”

이윽고 시안이 무언가를 앞으로 내던졌다.

철푸덕.

맥없이 날아와 바닥에 쳐박히는 무언가.

그건 어떤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처럼 생긴 어떤 덩어리였다.

뭔가··· 아니, 누군가 싶은 것도 잠시.

“······!!”

갑자기 흐레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안이 내던진 덩어리··· 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게··· 뭐야?”

이어진 아리아의 물음에 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답을 해보였다.

“케이든. 하얀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이야.”

그리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흐레스는 여전히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시안의 말을 이해하고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왜 흐레스가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을 왜···?”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데 이거, 끝까지 입을 안 열더라고. 그래도 부단장이라고 버티다 기절해버린 거 있지. 내버려뒀다간 죽을 거 같아서 좀 데려왔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시안의 말.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혹시, 이 놈 입 좀 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 네?”

다이애나는 진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제가 고문 쪽에는 영 젬병이라 잘 못하겠더라고요. 별로 취향도 아니고. 길드장이 이 놈 입 좀 열어주세요.”

“그걸 왜 제게···?”

“그림자 달 길드장이시지 않습니까.”

그림자 달은 암흑가에 적을 둔 길드였다.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짐승이자 개새끼들의 소굴, 암흑가.

다이애나는 그런 암흑가의 정점에 올라선 인물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이런 쪽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많을 터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그런 범죄자들을 상대하는데 모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도 다이애나는 많은 방법들을 알고 있었다.

일단 정보 길드의 수장이라는 것도 있었고.

암흑가에 전전하다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죄책감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놈들, 수인족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하다가 죽을 것 같으면 다시 살려서 쓰세요. 그··· 로라라고 하셨죠?”

“네? 아, 네. 네.”

갑작스러운 호명에 로라가 살짝 당황해보였다.

아리아를 보좌하는 여사제, 로라.

“신성력을 사용하실 수 있으시죠?”

“그, 그렇죠···?”

로라 또한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였다.

“혹시 케이든이 고문받다가 죽을 것 같으면 치료해주세요.”

그렇기에 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아리아가 더 확실할텐데?

그런 로라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시안이 고개를 돌려 아리아에게 말했다.

“아리아. 너는 나랑 같이 좀 가자. 아까 말했다시피 저쪽에서 이것들이 수인족들을 고문하고 학살했거든. 위급한 수인족들이 많아.”

“뭐?”

“시간 없으니까 바로 가자.”

“그게 무슨─ 꺄앗!”

시안은 아리아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두 팔로 각각 등과 무릎을 받치며 아리아를 들어올렸다.

아리아는 공주님처럼 시안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꽉잡아.”

번쩍!

그리고 터져나온 검은 섬광.

다시 눈을 비비고 바라봤을 땐 시안과 아리아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럼 부탁 드립니다!

잔상처럼 시안의 목소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다시 한 번 정적이 내려앉았다.

“······!!”

흐레스는 여전히 경악 어린 눈을 뜨고 있었다.

다만, 그 경악이 아까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다이애나.

“······”

다이애나는 이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

두더지의 특색을 지닌 언인족(鼴人族), 밍구.

갑작스러운 밍구의 말에 수인족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상에 난리가 나부렀다니께!”

지상에 난리가 났다는 말.

그런데 대체 무슨 난리가 났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인가. 난리가 났다니?”

이에 거북이의 특색을 지닌 귀인족(龜人族)이자 수인족의 장로 파벨.

파벨이 대표로 밍구에게 물었다.

밍구는 짧은 팔을 휘적거리며 크게 소리쳤다.

“막 막! 공간이 무너지고! 인간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막막! 인간들이 픽픽 쓰러지고!!”

공간이 무너지고 인간들이 쏟아져 나와?

그리고 인간들이 픽픽 쓰러져?

수인족들이 아니라?

“아주 난리가 나부렀다니께!!”

저게 대체 무슨 말일까.

파벨은 도무지 밍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단 파벨 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수인족들 모두가 밍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수인족들의 태도가 답답했던 것일까.

“따라와 보랑께!”

밍구가 몸을 돌려 파바바박!

지상으로 향하는 땅굴을 맹렬하게 파기 시작했다.

파벨은 밍구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상에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해볼 필요는 있어보였다.

“내가 밍구를 따라가보겠네.”

파벨은 밍구가 파놓은 땅굴로 몸을 밀어넣었다.

“빨리! 빨리!”

파벨은 밍구가 뚫어주는 길을 따라 지상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봐보랑께!”

파벨은 굴 위로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 파벨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떤 빛이었다.

그것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찬란한 빛.

그렇기에 파벨은 또한 볼 수 있었고 또 말할 수 있었다.

밍구의 말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밍구는 분명 인간들이 픽픽, 쓰러진다고 했었다.

그러나 정작 파벨의 눈에 보인 것은 그렇지 않았다.

“난 분명 죽었는데···?”

“이, 이게···?”

쓰러진 수인족들이 픽픽, 일어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시간을 벌겠다고 희생한 수인족들의 전사들이 말이다!

그 순간.

“아윽··· 야, 내 쪽으로는 못 오게 못 하냐?”

파벨의 귓가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이게 쉬운 줄 알아?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알았어. 알았어. 그냥 물어본 거야. 성질은.”

그곳엔 한쌍의 인간 남녀가 투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수인족들이 픽픽,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저 정도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죽은 자가 되살아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마 지금 사방을 밝히는 찬란한 빛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느껴지는 이 따스한 기운이 아니었다면.

파벨은 저들이 사령술사(死靈術士)가 아닐까.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을 터였다.

멍한 정신.

“이, 이게 무슨···.”

파벨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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