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 전쟁의 서막(3)
감각으로 느껴지는 적막함.
“······ 뭐지?”
시안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착오인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마혼제법을 100% 달성한 지금.
시안은 근원의 마(魔)를 다룰 수 있었고, 카일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기감을 지니고 있었다.
방금 전, 왜곡된 세계의 공간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쩌면 드래곤이 펼쳤을지도 모를 환계의 마법도 시안의 감각을 피해가지 못했다.
“착각은 아닌데.”
그러니 착오나 착각의 일종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이곳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확인해보자.”
시안은 빠른 걸음으로 수인족들의 마을에 발을 디뎠다.
정확히는 수인족들의 마을이라 추정되는 곳이었지만.
그렇게 발을 들인 마을은 굉장히 고요했다.
시안은 하나하나 집의 문을 열어가며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 없어.”
시안은 감각이 잘못되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인기척은 물론,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흔적이 있기는 있었다.
사람이 이 마을에 살았던 흔적이 어렴풋이 보이긴 했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그 흔적이 너무도 희미했다.
허름하다 못해 곧 쓰러질 듯한 집들.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까지.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가까이서 본 마을은 굉장히 낡아있었다.
꽤나 오랜 세월 동안 버려진 마을처럼 보였다.
버려지고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른 듯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설마··· 왕국의 위치를 옮겼나?”
시안은 자연스레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찾아올 수 있었던 건 샤를롯의 아들이 작성한 기록에 기반했다.
즉, 이곳은 무려 천 년전에 수인족들의 왕국이 있던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샤를롯이 아닌 그의 아들이 작성한 기록이었다.
그렇기에 정확히 따지면 천 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그거지.”
그러나 거진 천 년전의 기록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천 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세월이었다.
그 무구한 세월 동안 대륙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번영하고 또 사라졌다.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온 국가는 대륙에 딱 둘뿐.
샤를롯 제국과 신성 제국뿐이었다.
어쨌든 한 국가가 번영하고 또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진짜 다른 데로 옮겼나.”
하물며 왕국의 위치 쯤이야 달라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세월이었다.
“확실히 더 이상 느껴지는 것은 없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조금만 더 찾아보자.”
시안은 마혼무영보를 밟으며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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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수색은 거진 3일에 걸쳐 행해졌다.
마법으로 변형되고 왜곡된 세계였지만 결국은 현실에 기반한 세계.
어둠의 숲을 근간으로 만든 공간이기에 그 크기 또한 굉장히 광활했다.
마혼무영보를 극한으로 사용함에도 무려 3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진행률 91.7%(+6.8%)]
덕분에 마혼무영보의 진행률을 많이 올리긴 했다만.
“조만간 마혼무영보도 100%를 달성하겠는데.”
뭐, 아무튼.
“없네···.”
결과적으로 없었다.
수인족들의 왕국은 커녕 마을로 보이는 곳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봤던 그 마을만이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곳엔 없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수인족들의 왕국은 이곳에 없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천 년전에는 수인족들의 왕국이었던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다른 어디론가 왕국의 위치를 옮긴 것 같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찾아봤자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돌아갈까.”
여러모로 지금 당장 시안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조금 더 면밀히 찾아볼 수는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리 깊게 조사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엘란두르와의 전쟁에 집중해야할 때 였다.
이렇게 찾아온 것도 단순한 확인 차였다.
최후의 드래곤이 오늘 내일 하는지.
수인족의 왕국 위치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딱 그 정도만 확인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왕국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건 예상 외이긴 한데···.”
그러나 이 이상으로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이만 돌아가자.”
시안은 끝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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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금새 루벤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루벤을 떠나올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온 덕분인지 거진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나 90%를 넘어선 마혼무영보의 진행률의 영향이었다.
진행률이 오를수록 빨라지고 또 익숙해지는 마혼무영보.
어느덧 90%를 넘어선 것 때문인지 마혼무영보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져 있었다.
그렇게 하루도 안되는 시간에 루벤에 돌아온 시안.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진행률 93.1%(+1.4%)]
동시에 무려 1.4%의 진행률을 추가로 올릴 수 있었다.
“어째, 진행률 오르는 속도 또한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단 말이지.”
전에는 한 달에 걸쳐도 1%를 올리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하루도 되지 않아서 1.4%가 올라버렸다.
“하긴, 쏟아부은 현질이 얼만데.”
덕지덕지 바르다시피한 성장 버프는 물론.
메긴기요르드와 엘릭서와 같은 각종 아이템의 효과도 있었지.
특히나 이번에 시안의 성명절기가 된 초월 등급의 장비, 멸살(滅殺)과 불멸(不滅).
“어째, 움직임이 더 편해졌단 말이야.”
단순한 장비의 성능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초월 장비는 초월 장비라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혼무영보 또한 100%를 달성할 것 같았다.
뭐, 어쨌든.
돌아온 루벤은 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루벤까지 오는 데 하루가 걸리지 않긴 했다만,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소모해야만 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녘.
“영주님? 이제 돌아오신 겁니까?”
불침번을 서는 몇몇 병사들만이 깨어있을 뿐이었다.
경비탑의 병사들이 시안을 발견하고는 금방 루벤의 성문을 열어주었다.
“지금 바로 대장님을 불러오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시안은 그런 손을 내저으며 병사를 말렸다.
보아하니 루카스를 불러 깨우려는 것 같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물론 전쟁 준비가 다 끝났는지는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깨워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내일 아침에 확인하면 되니까, 지금은 자게 둬.”
“알겠습니다.”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경비탑의 근무지로 향했다.
시안이 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것도 그렇고.
전쟁 직전이라 그런지 군기가 바짝 잡힌 모습이었다.
시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영주성.
영주성 역시 내려앉은 어둠으로 고요함이 가득했다.
“아리아는 잘 있나.”
설마, 지금도 레아한테 교육받고 있는 건 아니겠지?
싶은 생각이 들던 그때.
“도련님?”
복도 한 쪽 어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한스가 저 멀리, 복도 끝에 서있었다.
시안을 발견한 한스는 성큼, 복도를 가로질러왔다.
“지금 돌아오신 겁니까?”
“응. 방금 막 돌아온 참이야. 그보다 한스, 지금 시간까지 깨어있었네?”
“누가 일거리를 던져버리고 휙, 떠나버려서 말입니다. 도통 잠을 잘 시간이 없었습니다.”
한스는 그 누가 누구인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퀭한 한스의 두 눈은 어째서인지 시안을 향하고 있었다.
“하하··· 급히 확인해야할 일이 있어서.”
시안은 그저 멋쩍게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떠나셨던 일은 마무리 지으신 겁니까?”
“대충. 마무리 지은 건 아닌데. 확인은 하고 왔어. 그보다 전쟁 준비는 어떻게 되었어? 모두 끝났어?”
“오늘 자로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바로 보고를 들으시겠습니까?”
“지금? 나야 괜찮은데··· 안 피곤하겠어?”
시안은 가만히 한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글한 주름과 더불어 박살이 난 얼굴.
며칠 밤낮을 샌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한스의 눈 밑으로는 다크 써클이 짙게 내려앉아있었다.
아마 시안이 떠나가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밤을 샌 거 같았다.
루벤의 행정관이자 시안이 자리를 비울 때면 시안의 역할을 대신하는 한스.
이 정도면 거진 부영주라 볼 수 있는 한스였다.
‘그러고보니··· 한스한테 자작의 직위를 내려도 되지 않나?’
백작은 산하의 귀족을 둘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리고 제국법상 자작의 정의는 백작의 보좌관.
한스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시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 지.
“어떻게 자는 건지 까먹기도 했고, 지금 자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한스가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말해왔다.
그런데 표정과는 달리 그 내용이 굉장히 살벌했다.
“크흠.”
시안은 괜시리 헛기침을 하며 한스의 눈을 피했다.
“그럼 지금 끝내버리자.”
시안은 한스와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시안의 집무실.
“준비를 마친 루벤의 전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안이 자리하기가 무섭게 한스가 곧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루카스를 필두로 한 병사 2,000. 켄드릭님이 이끄는 기사 200. 그리고 세라님을 포함한 마법 병단이 500. 도합 2,700의 전력입니다.”
물론 루벤의 모든 인구를 따지면 이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루벤의 모든 이들을 전력에 포함시킬 수는 없었다.
일단 물자들을 생산할 인력들이 필요했고.
그 물자들을 보급을 할 보급 인원들은 물론.
여기에 병사들이 다치면 치료해줄 인력들.
병기들을 수리하고 또 운반할 이들.
그리고 전투를 하지 못하는 아이와 노약자들까지.
“2,700이라···.”
2,700이라 함은 그런 이들을 모두 뺀 순수 전력을 의미했다.
솔직히 많은 규모는 아니었다.
많기는 커녕, 백작령의 규모치고 상당히 적은 병력이었다.
하물며 그 공격 대상이 엘란두르라면야 적어도 너무 적었다.
계란은 커녕, 순두부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격이나 다름 없었다.
실로 미친 짓.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루벤은 단순히 2,700의 전력으로 보면 안되었으니까.
“루카스의 보고를 정리하면 현재 루벤의 병사들은 모두 오러 유저(User) 상급 이상이라고 합니다.”
일단 <샤를롯의 전당>이 갖는 효과로 인해 루벤의 병사 2,000이 그냥 2,000이 아니었다.
훈련소를 수료함과 동시에 오러 중급이 되는 사기적인 효과.
여기에 성장 버프까지 더해져 시안이 황궁에 다녀온 사이.
병사들은 오러 유저 상급의 수준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이는 웬만한 영지의 기사나 다름 없었다.
아니, 기사나 다름 없는 게 아니라 그냥 기사라 정의해야했다.
오러 유저 상급은 제국 어딜 가나 떳떳한 한 명의 기사로서 대우받았으니까.
한 마디로 루벤의 병사 2,000은 병사가 아니라 기사단 2,000과 다름 없었다.
“켄드릭님은 루벤의 기사단원들도 전원이 엑스퍼트(Expert)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루벤의 기사단은 말 할 건덕지도 없었다.
전원이 엑스퍼트의 기사로 이루어진 기사단.
이는 제국 제1의 기사단을 다투는 반열에 올라온 셈이었다.
“또한 세라님의 마법 병단은 모두 4위계(位界)에 올랐다고 합니다.”
거기에 시안이 현질한 <엘로디의 마탑> 효과.
이 역시 3위계(位界)부터 시작하는 효과로 마법 병단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진보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로르실트의 아르카닉 마법 병단.
대륙 최강이라 손꼽히는 그들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 적으로는 밀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준만 따지고 보면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전력의 질적인 면을 따지면 결코 2,700이라 볼 수 없었다.
또 그 뿐이랴.
“오룡거의 훈련 또한 모두 마친 상황입니다.”
시안이 광고에서 구매한 오룡거(五龍車).
광고에서는 한 대로 능히 1만의 군대를 대적할 수 있다 했었다.
그러나 그건 진품 오룡거에 5마리의 용을 매달았을 때의 일.
시안이 구매한 것은 가품에 당연히 용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가품이라도 그 성능은 확실했다.
그리고 용은 없더라도 루벤에서 사육한 마수들은 있었다.
광폭화(Over Dirve)로 인해 포악해진 마수들.
현재 오룡거에는 그런 흉포한 마수들이 길들여진 채로 5마리가 매달려있었다.
1만의 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1천의 군대는 능히 대적할 수 있을 터.
여기에 신기전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병력의 수는 큰 의미가 없었다.
물론 신기전은 한 번 쏘아올림에 200발의 화살이 소모되었다.
또한 동력원으로 최상급 마정석까지 필요했다.
한 마디로 많은 물자가 필요한 전쟁 병기.
하지만 그 또한 큰 걱정이 없었다.
“드워프분들이 생산한 화살들과 물자들이 창고에 가득 찼습니다.”
장인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들이 영지민으로 있었으니까.
여기에 현질을 통해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가진 루벤의 시설들.
그리고 1+1 파격행사를 진행하는 <모르크루의 단철장> 효과까지.
물자 생산은 전혀 걱정이 없었다.
“다만, 철광석이 없어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만···.”
하지만 루벤에서 자급자족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식량과 마나석 같은 경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화살을 제작하고 병장기를 만드는 철광석과 같은 재료들은 루벤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타영지에서 수입해와야하는 것들.
하지만 시안은 전쟁 자금으로 1억 골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아멜리아님께서 여기저기서 물자들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보급은 그야말로 꽉, 잡고 있다봐도 무방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황.
뭐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카데미를 지으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양성된 것일까.
“내가 없어도 잘 진행했네?”
시안의 별 다른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척척, 진행되었다.
이 정도면 시안의 출정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나 다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아리아는?”
“성녀님께서는···.”
한스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 바로 답을 해오지 않았다.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있기는 한 모양.
“도련님의 말씀처럼 걱정하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레아님께서 성녀님을 전담하신 터라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그래도 성녀님과 함께 루벤의 거리를 자주 활보하셨습니다. 아마, 레아님께서 루벤을 구경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
역시, 말은 그렇게 해도 뮤리엘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았다.
전쟁을 시작하면 아리아는 어쩌나 싶었건만.
이 참에 아리아를 레아게에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레아는 루벤 밖을 나갈 수가 없는 몸.
이로써 시안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 굳이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드래곤을 찾지 못한 것은 약간 아쉬웠다만.
“내일 바로 출정한다.”
시안은 곧바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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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동부에 위치한 엘란두르 후작령.
그리고 그런 저택에 위치한 이사벨의 집무실.
“어제 오후 경, 루벤의 병력들이 출정을 했다는 보고입니다.”
이사벨은 집무실 책상에 앉아 총관, 레리트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살며시 말아쥔 찻잔.
이사벨은 찻잔을 가볍게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척후병의 보고에 따르면 규모는 3천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멈칫.
찻잔을 들려올리던 이사벨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방금 들려온 레리트의 보고.
정확히는 루벤의 병력 규모가 3천이 채 되지 않는다는 보고.
고작 3천도 되지 않는 규모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도 엘란두르를 상대로?
“선발대에 불과한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루벤의 규모를 생각해봤을 때는 아마, 본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사벨은 정말이지 코웃음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사벨은 루벤을 우습게 보지 않았다.
루벤이 숨겨둔 저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크라우드와의 영지전이 어떠했는지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초전박살. 크라우드는 루벤에게 상대가 안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마냥 겁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크라우드와의 영지전은 그 이면을 살펴보면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었으니까.
일단 크라우드는 싸우기도 전에 전력이 반토막난 상황이었다.
다름 아닌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들 때문에 전력이 반의 반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루벤과 싸웠던 것.
또한 크라우드는 어디까지나 공성의 입장이었다.
수성과 공성은 엄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3배의 전력 차를 수성하는 자가 이점으로 먹고 들어간다.
그리고 당시의 루벤은 수성의 입장.
그러나 이번엔 공성의 입장이다.
한 마디로 엘란두르가 3배의 전력 차를 먹고 들어가는 격이었다.
그러니 루벤은 엘란두르보다 3배의 전력을 앞서있어야 헀다.
“이에 브란코 남작과 본데르 남작, 프레밍고 남작 그리고 라퍼빌스 자작이 합세해 도합 3만의 병력을 끌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되려 엘란두르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3천도 채 되지 않은 루벤의 병력.
3만에 달하는 엘란두르 가신들의 병력.
루벤은 공성.
엘란두르는 수성.
“하얀 늑대 기사단을 파견할 필요도 없었군.”
결과야 어찌될지는, 멍청이가 아닌 이상 모르지 않았다.
이사벨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러면 괜히 걱정을 했지 않은가.
그러니까 수인족들의 왕국을 찾는 일을 괜히 걱정했지 않은가.
전쟁 중에 한눈을 파는 것이 꽤나 우려되었거늘.
이사벨은 가벼운 마음으로 찻잔을 홀짝, 거렸다.
아니, 홀짝거리려던 바로 그때였다.
“후작 부인!! 후작 부이이이인!!!!”
갑자기 이사벨의 집무실 밖으로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방정맞다 못해 호들갑스러운 외침은 괜시리 눈쌀이 찌푸려지는 천박함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벌컥!
이사벨의 집무실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그리고 보인 것은 숨을 헐떡, 거리는 엘란두르 저택의 병사였다.
보아하니 굉장히 다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다급해도 예의는 지켜야하는 법이었다.
이곳은 엘란두르의 저택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지금 이 무슨 무례한 짓이지?”
총관, 레리트가 서늘한 눈빛과 함께 일갈했다.
그러나 병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되려 다급하고 또 다급한 표정으로 저 할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루벤의 병력들을 막고자 나선 가신들의 병력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병사.
그리고 다시 이어진 병사의 말.
“모, 모두 궤멸되었다고 합니다!!!”
레리트는 순간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사벨 또한 그런 레리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가에 멈춰있는 찻잔.
찻잔에 가려진 이사벨의 얼굴 위로 두 눈만은 크게 떠져있었다.
“뭐라···?”
궤멸되다니? 루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게 맞는 말이었다.
루벤의 병력이 궤멸되었다.
이게 마땅히 들려와야할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되짚고 되뇌어봐도 병사가 말한 주어는 엘란두르의 가신들이었다.
즉, 엘란두르의 병력들이 궤멸되었다는 뜻.
3만의 병력이 3천도 안되는 병력에 궤멸되었다?
이 짧은 시간에?
그것도 수성의 입장이었는데?
이사벨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는 커녕 병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크, 큰일 났습니다!!!”
그런데 열린 문밖으로 들려오는 또 다른 다급한 외침.
“이, 이게 무슨···.”
이사벨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