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 전쟁의 서막(2)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시안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궁의 도서관에서 얻은 정보.
정확히는 샤를롯의 아들이 적은 기록에서 발견한 수인족 왕국의 위치.
그 정보에 따르면 거의 다 온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런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어야지.”
다만, 온 사방이 나무와 풀숲뿐인지라 방향 감각이 제대로 서질 않았다.
그렇기에 여기가 기록에 적힌 그곳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리가 연구하여 발명한 나침반.
그리고 세라에게 부탁해 얻은 공간 좌표까지.
“이쯤이 맞는 것 같은데.”
그 모든 것들이 이 부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시안의 눈에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숲의 풍경.
그것도 마기 가득한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숲뿐이었다.
“음··· 이럴 줄 알았으면 세라를 데려올 걸 그랬나.”
시안은 잠시 후회했지만 금방 고개를 저었다.
기록에 따르면 수인족의 왕국은 어둠의 숲에 있었다.
그러나 말만 어둠의 숲에 있다 뿐.
실상은 제국 국경 너머에 존재하고 있었다.
같은 어둠의 숲이라도 루벤과 제법 거리가 있었다.
물론 시간이 조금 있기는 했다만 그렇게 넉넉한 시간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세라가 수준 높은 마법사라 한들 어디까지나 마법사였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가 기사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 없었다.
심지어 시안이 마음 먹고 펼치는 마혼무영보를 따라올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역시나 빠르게 갔다가 빠르게 돌아오려면 시안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편했다.
시안은 제리가 만든 나침반을 보며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역시나 시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울창한 숲의 풍경만 보일 뿐.
수인족들의 왕국 같은 공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환계의 마법을 위치를 감춘 건가?”
마냥 내뱉은 말이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다크 엘프들의 마을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수인족들은 그런 엘프들보다 더 세상과 단절되었다.
필시 어떤 방법으로 그 위치를 감추어놓았을 터.
아마 환계의 마법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문제는 그 환계의 마법을 어떻게 파헤지냐는 것이었다.
무려 수 백년 동안 모습을 드러나지 않게 해주었던 환계의 마법을 말이다.
역시나 세라를 데려와야싶었지만···.
아마 세라가 와도 안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감추어진 왕국을 발견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만.
“되려나 모르겠네.”
시안은 이미 한 번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북부의 사건 당시.
북부 사건의 원흉이자 아스란디즈의 아들이었던 다이슨.
다이슨은 인스티즈의 힘을 빌어 존재를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다이슨이 있던 곳이 바로 환각과 왜곡의 세계.
그리고 그 환각과 왜곡의 세계를 깨부순 것이 바로 시안이었다.
위치를 찾는데 세계수의 힘을 빌긴 했다만.
결국 시안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안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시안의 전신에서 짙은 어둠이 피어올랐다.
철저히 시안의 통제 아래 놓인 근원의 마(魔).
“한 번 찾아볼까.”
시안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며 마기를 흩뿌렸다.
공간을 잠식하며 퍼져나가는 시안의 어둠.
어둠은 순식간에 어둠의 숲 영역을 휘감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움찔.
시안의 감각으로 기이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정확히는 어둠에 장악된 공간 사이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그리고 그건 다크 엘프의 마을에서 느껴던 것과 비슷했다.
또한 다이슨이 펼친 환각과 왜곡의 세계와도 상당히 유사했다.
그 말은 즉.
저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곳 너머에 무언가 감추어져있다는 뜻.
“역시.”
시안은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진 곳을 향해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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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과 엘란두르와의 전쟁.
그 충격적인 사실은 여전히 제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엘란두르와 척을 진 것도 모자라 전쟁까지 선포한다?
그건 시안이 미치지 않은 이상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고 점점 퍼져나갔고.
끝내 황가의 공식이 입장까지 밝혀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소문이 사실임을 믿을 수 있었다.
“에이, 말이 안되지.”
“그냥 영지전만 선포한 거 아니야?”
물론 그럼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확히는 보여주기식의 퍼포먼스라 생각했다.
신생 가문인 루벤.
그 루벤의 화려한 데뷔식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도 더럿 있었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루벤의 움직임.
그리고 점점 모여드는 제국의 전운.
이제 사람들은 소문이 사실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루벤과 엘란두르.
두 가문의 전쟁으로 제국의 정세가 떠들썩한 가운데.
암흑 도시, 베네르.
그리고 그 베네르에서 가장 어두운 구역에 위치한 허름한 집.
그곳에는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발의 여인이 서 있었다.
“루벤 가(家)가 엘란두르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이자.
암흑가를 지배하는 지하 세계의 길드, 그림자 달(Shadow Moon).
그러나 그건 이제 예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그림자 달은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길드원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버렸고, 다이애나 또한 이렇게 숨어지내고 있었다.
거진 해체가 되어버렸다시피 한 그림자 달 길드.
그리고 그것은 한 가문의 의뢰를 잘못 건드린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두 가문 중 하나, 엘란두르 가(家).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는 엘란두르 앞에서 한낱 정보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와해되어버린 그림자 달 길드.
이렇게 숨어지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었다.
다이애나는 시선을 들어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는 자신의 직속 부하, 흐레스.
“그렇습니다.”
흐레스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해보였다.
그리고 그 행동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정말로 루벤이 엘란두르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뜻.
“듀라크가 시안 엘란두르를 비호하는 것이 아니었나. 시안과 이사벨의 알력 다툼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저희 쪽에서 오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어진 흐레스의 말에 다이애나는 살짝, 시선을 내려보였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판.
그리고 그 오판으로 인한 대가는 너무도 뼈 아팠다.
또한 이제 와 돌이킬 수 없는 대가였다.
다이애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내려앉는 정적.
바로 그때였다.
똑똑.
일순간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흐레스는 황급히 모습을 감추었고.
다이애나는 살며시 문 밖의 상황을 살폈다.
문 밖에는 어떤 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혹시, 루나님이 계십니까.”
그리고 들려온 노쇠한 목소리.
다이애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름 아닌 문 밖에서 들려온 루나라는 이름.
그건 다이애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이름은 오래 전에 버린 이름이었다.
지금은 암흑가를 지배하는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
그런데 어떻게 저 이름을···.
다이애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문밖의 존재에게 말했다.
“누구지?”
“저, 정말 루나님이십니까?”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들려온 답.
다이애나는 기세를 날카롭게 벼리며 말했다.
“묻는 말에 대답해라. 넌 누구지? 누구길래 그 이름을 알고 있는거지.”
잠깐의 정적.
“저··· 파벨입니다. 루나님.”
문 밖에서 다시금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그 목소리에 다이애나의 움직임이 멈칫, 굳어버렸다.
잠깐의 정적.
다이애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 틈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비쳐보였다.
노쇠한 목소리에 걸맞게 희끗한 머리가 인상적인 노인.
그러나 어딘가 분위기가 묘했다.
노인처럼 보이나 노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인간인가···? 싶은 어떤 묘한 존재였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처럼은 보이지 않는 존재.
굉장히 이상하다 싶은 존재였지만 다이애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저 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루나라는 이름이 들려온 순간 짐작을 하고 있었다.
수 년도 전에 버린 루나라는 이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은 딱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수인족(獸人族).
그리고 지금 눈앞의 파벨이라는 노인.
“영감이 여긴 무슨 일이지?”
파벨은 거북이의 특색을 지닌 귀인족(龜人族)의 장로였다.
“저, 정말로··· 정말로 루나 공주님이신─.”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라. 지금의 난 다이애나다.”
싸늘한 다이애나의 말.
입을 꾹, 다문 파벨의 얼굴에는 어떤 복잡미묘한 표정이 지어져있었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지?”
다이애나의 물음에 파벨은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그런 파벨을 기다렸고, 이내 파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루나··· 아니, 다이애나님.”
“도와달라? 내 도움이 필요할 일이 뭐가 있다고?”
파벨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답했다.
“카리스 대족장님께서 실종되셨습니다.”
“뭐라고? 카리스 오빠가 실종돼?”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파벨의 답.
다이애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치켜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리스가 실종될 이유가 없었으니까.
카리스는 수인족 왕국의 국왕.
즉, 수인족의 대족장이었다.
물론 대족장이라고 한들 실종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카리스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괜히 대족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인족의 특수한 상황을 생각하면 카리스의 실종은 더더욱 말이 안되었다.
수인족은 세상으로부터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으니까.
그런데도 카리스가 실종되었다는 것.
그건 상당히 심각한 일임과 동시에 수인족에게 어떤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어쩐지, 파벨이 왜 갑자기 찾아왔나 싶었다.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거절한다.”
다이애나는 단호히 파벨의 도움을 거절했다.
루나라는 이름을 버린지 수 년.
수인족은 더 이상 다이애나와 관련이 없었다.
무엇보다.
“수호자께 부탁해라. 수호자께서라면 충분히 그 일을 해결하실 수 있을테니까.”
수인족들에게는 수호자가 있었다.
수호자는 세상 모든 종족들의 가장 꼭대기에 군림하는 자.
비록 수호자는 늙고 쇠약해져있었다.
그럼에도 대족장인 카리스는 물론, 다이애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존재였다.
굳이 다이애나가 이 일에 나설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수호자께서는··· 더 이상 저희를 위해 힘을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들려온 파벨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수호자께서 힘을 사용하시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수 년전부터 수호자께서는 저희들을 만나주시지 않으십니다.”
“그게 무슨···.”
다이애나의 눈이 다시 한 번 치켜떠졌다.
수인족들의 수호자는 말 그대로 수인족의 수호자였다.
수많은 위기와 시련 속에서 수인족들을 수호해온 존재.
무구한 세월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수호자는 그 역할을 방임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수인족들을 위해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만나주지도 않는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파벨이 다이애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정말이지 꽤나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돌아가.”
그러나 다이애나는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루나님···!”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다이애나는 싸늘하게 일갈했다.
그러나 파벨은 위축되고 않고 소리쳤다.
“카리스님은 어쩌면 살해당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즉, 카리스님조차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저희 수인족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 수인족들은 그 위협에 맞설 힘이 없습니다. 카리스님은 실종되었고, 수호자님 마저 등을 돌린 지금. 이대로라면 저희 수인족들은 멸족을···!”
“그 또한 운명이자, 자연스러운 흐름인 거겠지.”
다이애나는 그 뜻을 꺾지 않았다.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이듯.
흥함이 있으면 쇠함이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불멸의 삶을 살 것 같았던 수호자.
그 수호자조차 병들고 쇠약해지고 있었다.
수호자도 결국은 필멸의 존재에 불과했다.
하물며 수인족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종족의 흥망성쇠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이자 흐름.
“너희들의 문제는 너희들끼리 해결해. 나랑은 관계 없으니까.”
다이애나는 파벨에게서 돌린 등을 끝내 돌아보이지 않았다.
파벨은 그런 다이애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둠과 대비되어 빛나는 다이애나의 은발.
그 안에서 느껴지는 확고한 의지.
그리고 오래된 기억.
“······ 실례했습니다.”
파벨은 끝내 천천히 몸을 돌려, 문 밖을 나섰다.
다이애나는 그때까지도 파벨을 향한 등을 돌아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파벨이 사라지고.
스으윽─.
공간을 비집으며 흐레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흐레스는 방금 전 다이애나와 파벨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다이애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흐레스는 다이애나의 직속 부하이자 다이애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이였으니까.
흐레스는 파벨이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의 수장이자.
한때는 수인족의 가장 강력한 발톱이었던 다이애나.
“조사해볼까요.”
흐레스는 다이애나에게 물었고.
“······”
다이애나는 아무런 답을 해보이지 않았다.
#
이질감이 느껴진 곳.
가까이서 확인하자 그 느낌은 더욱 확신으로 다가왔다.
정확히는 그때와 상당히 유사했다.
다크 엘프들의 마을이 숨겨져 있던 방식.
또 다이슨이 펼쳤던 환계와 왜곡의 세계.
그 말은 즉.
“마법의 일종인 건 확실하네.”
마법인 것은 변함 없었다.
“그런데 수인족들도 마법을 사용했던가?”
뭐, 사용하지 못할 건 없었다만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요소도 없잖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수인족들의 왕국을 감춘 마법.
이 환계의 마법은 웬만한 수준으로는 펼칠 수 없는 마법이었으니까.
다이슨이 인스티즈의 힘을 빌어 펼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8위계(位界).
어쩌면 그 이상의 마법사만이 펼칠 수 있는 마법이었다.
“그런 수준 높은 마법사가 수인족에 있다고?”
뭐, 이것도 그럴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 역시나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요소가 있었다.
동물들의 특색을 지닌 수인족(獸人族).
시안이 확인한 기록에 따르면 수인족은 대체로 무투파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인족은 무투 쪽으로 재능을 타고났다 할 수 있었다.
묘인족의 날카로운 발톱.
견인족과 랑인족은 단단한 이빨.
곰의 특색을 지닌 웅인족의 폭발적인 힘.
호인족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수인족의 신체는 인간을 월등히 상회했고,
그에 따라 수인족은 무투파가 다수 포진해있었다.
“그런데 이런 마법을 사용한다라···.”
역시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정말로 수준 높은 수인족의 마법사가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인가?”
이쪽이 더 합당한 해석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점점 수인족과 최후의 드래곤이 연관 지어지고 있는 상황.
그리고 정말로 수인족들의 왕국에 최후의 드래곤이 있다면.
이 최후의 드래곤은 천 년전의 진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존재해온 최후의 드래곤.
그 말은 즉, 천 년전에도 이 최후의 드래곤은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당시 막 태어난 새끼 해츨링이었든 뭐든.
이 최후의 드래곤은 분명 천 년전에 존재했다.
악마와의 전투를 겪어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르나이즈들과 직접 만나봤을 가능성은 농후했다.
그리고 아르나이즈들의 죽음 또한 지켜봤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았다.
신화 속 이야기를 직접 겪고 목격한 유일한 존재.
“카일이 마주한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지 않을까.”
카일이 동료들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 악마 7군주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이유.
드래곤은 그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확인해보면 되겠지.”
시안은 오른손을 옆으로 길게 뻗어보였다.
그와 동시에 파지직─!
검은색의 전류가 튀며 멸살(滅殺)이 시안의 손에 쥐어졌다.
드래곤이 펼친 것이라 생각되는 환계의 마법.
다이슨이 펼친 환계와 왜곡의 세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힘으로 찍어눌러야만 했다.
환계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왜곡된 현상을 깨부숴야만 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라천살을 시전해서 왜곡된 세계를 부숴버려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시안의 손에 들려있는 멸살.
시안은 멸살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그리고는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멸살의 검날.
서걱─!
그러나 들려온 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들려오는 절삭음과 함께 공간이 찢어졌다.
마치 허공에서 떠진 커다란 눈동자와 같은 모습.
잠깐의 고민.
“가보자.”
시안은 그 갈라진 공간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일렁이는 공간 사이로 몸을 비집어 넣자 일순간 시야가 반전되었다.
약한 현기증이 일며 뒤집힌 시야.
앞을 바라보자 전혀 다른 풍경이 비쳐보였다.
다붓이 소담하게 모여있는 특색있는 집들.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되는 평안한 분위기.
마기로 가득하던 어둠의 숲은 온데간데 없었다.
역시, 이곳이 수인족들이 모여사는 왕국인 것 같았다.
시안은 마을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안은 점점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감각.
“아무도 없어···?”
어째서인지 그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