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33화 (233/322)

233화 - 초월의 강화(1)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팡파레 소리.

그 소리에 세미르조차 망치질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봤다.

시안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급격하게 내려앉는 정적.

“어···?”

《에···?》

얼빠진 듯한 시안의 목소리와 함께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 또한 같이 떠올랐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안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리고 내려앉아있는 정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안은 그 정적에 어떤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조용했으니까.

물론 방금 전, 들려온 스마트 폰의 팡파레 소리.

그 소리는 분명 성공의 팡파레 소리와 같았다.

그것도 단 한 번에 성공했던 초월 등급의 검.

그 강화를 대성공했을 때의 팡파레 소리와 똑같았다.

그런데 뭔가··· 뭔가 이상했다.

일단 추가 알림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무 조용했다.

무엇보다 강화를 시도한 SSS등급의 방어구.

그 방어구에서 아무런 빛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때 띠링!

경쾌한 알림음이 터져나왔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스마트 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화면 위로 떠오른 하나의 알림창.

《업적: 성공이 마!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뭐? 실패하신다고?! (달성!)》

[달성 조건: 누적 강화 실패 200회 달성]

.

.

그건 뭔 말 같지도 않은 업적이었다!

시안은 순간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굳어진 몸으로 자연스레 업적의 내용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공이 마!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뭐? 실패하신다고?!]

그러니까··· 성공이의 아버지가 실패라는 것.

한 마디로 실패는 성공의 아버지라는 뜻?

“이게 뭔─.”

개같은 업적이 다있단 말인가!

콰앙!

애초에 실패는 성공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아니 뭐, 그게 그 소리이긴 하다만.

무엇보다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업적이 있었다.

아마, ‘우리 성공이. 실패 딸이에요.’ 이런 거였던 것 같은데.

물론 여기서는 실패가 성공이의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는 밝히진 않았지만─.

아니, 아니지.

이런 것들이야 어찌되었든.

결국 저 업적이 가리키는 바는 하나였다.

《모르크루의 기운 33.3%(+0.37%)》

“실패··· 했다고?”

강화가 실패했다는 것.

띠링!

《예쓰! 예쓰으으!!》

《예쓰요오오오오오!!》

모바일 영주가 쾌재를 부르며 소리쳤다.

물론 어디까지나 알림창의 일환이긴 했다.

그러나 시안은 알림창에서 분명한 쾌재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시안은 꽈득, 스마트 폰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울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며 울화를 억눌렀다.

“한 번. 고작 한 번 실패했을 뿐이야.”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일이었으니까.

애초에 성공 확률은 고작 1%.

100번의 시도 끝에 1번 성공할 확률이었다.

지금은 고작 한 번의 실패를 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시안은 초월 강화에 아직 100번의 시도를 하지 않았다.

위의 말 같지도 않은 업적은 앞선 S등급, SS등급 그리고 SSS등급까지 더한 것.

초월 등급의 강화에는 아직 100번의 실패가 없었다.

즉, 확률 기대값을 따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난 번, 초월 등급의 검이 말도 안 되는 운이었던 것.

그래, 처음부터 한 번에 될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미르! 계속 방어구를 만들어주세요!”

시안은 세미르에게 소리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강화】버튼을 눌렀다.

《강화를 시작합니드아아아앗!!!!》

비명을 지르듯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환한 빛무리가 터져나왔고.

《강화 실패》

《모르크루의 기운 33.67%(+0.37%)》

강화가 실패했다는 알림창과 함께 모르크루의 기운이 다시 한 번 쌓였다.

“제기랄!”

시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물론 아직 두 번의 실패이긴 했다.

그래도 속상한 건 변함 없었다.

무엇보다.

《실패입니다! 땡땡!》

《강화 대~~~ 실팻!》

저 깐족거리는 모바일 영주.

억누른 울화가 스멀스멀, 다시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시안은 끝끝내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여기서 이성을 잃으면 안된다.

이럴 수록 침착하고 또 절제해야한다.

아직도 강화 재료는 수북히 쌓여있었고.

지금도 세미르가 찍어내듯이 만들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골드 또한 아직 넉넉했다.

말 같지도 않은 업적임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이가 실패의 딸이라는 것.

그러니까 실패는 성공의 아버지··· 아니, 어머니.

아무튼 부모님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시안은 거침없이 【강화】버튼을 눌렀다.

꾹.

《저 멀리 도망쳐버리는 성공이!》

꾹.

《실패가 부릅니다!》

꾹.

《더 멀리멀리 도망 가렴~!》

꾹. 꾹. 꾸구구구국.

《모르크루의 기운 33.67%(+0.37%)》

《모르크루의 기운 34.04%(+0.37%)》

《모르크루의 기운 34.41%(+0.37%)》

.

.

.

“이런 제기라아아아아알!!!”

#

영주성 내부에 위치한 복도.

-어딜 시안한테 꼬리쳐? 하여간, 뮤리엘을 닮아서 얼굴은 예뻐가지고는···!

레아는 사념을 피워올리며 공간을 장악해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념에 대항하는 찬란한 빛.

“꼬리치기는 무슨···! 오히려 그쪽이야말로 꼬리쳐서 여기에 있는 거잖아···!”

아리아가 신성력을 터트리며 드리우는 사념을 몰아내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화아아아아아악!

충돌하는 사념과 신성력.

어마어마한 힘이 영주성의 복도로 휘몰아쳤다.

“이, 이게 무슨···!”

“이러다 야단나겠어···!”

“성녀님!!!”

그 끔찍한 힘에 한스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로라가 어쩔 줄 몰라하며 소리쳤다.

정말이지 누구 하나 어떻게 될 법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렇기에 당장이라도 말려야했다.

그런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콰콰콰콰콰쾅!

괜히 나섰다가는 저 힘의 격류에 그대로 휘말려버릴테니까.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발만 동동, 구르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당의 망령 주제에 왜 이렇게 쎈거야···!”

-이게 노련한 경험이라는 거란다, 꼬맹아.

레아와 아리아는 서로를 향한 사념과 신성력을 거두지 않았다.

“경험은 무슨! 할머니의 연륜이겠지!”

-뭐 이 년아?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레아의 표정.

이윽고 어마어마한 사념이 레아의 전신으로 터져나왔다.

삼켜진 어둠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날카롭게 선 정신이 몸을 옭아맨다.

그 끝에 신성력의 빛이 점점 퇴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아아아아아아악!!

아리아의 전신으로 더없이 찬란한 빛이 터져나왔다.

어둠을 몰아내는 절대적인 힘.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어둠과 빛이 서로의 목덜미를 탐하듯, 얽혀들어갔다.

“누가 두 사람 좀 말려봐!”

“성녀님!!!”

그 힘의 격류에 사람들은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저 휘몰아치는 힘의 파동을 견디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어보자.

“그쪽은 이미 죽은 주제에!”

끼야아아아아아악!

화아아아아아악!

사념과 신성력이 한 곳으로 뭉쳐졌다.

어둠과 빛. 빛과 어둠.

공간 전체가 둘의 힘으로 물들어갔다.

이내 두 힘이 서로를 향해 충돌하려던 그때.

“잠깐!!!”

어디선가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어떤 어둠이 공간을 장악하며 펴쳐져갔다.

이미 레아의 어둠에 잠식된 공간.

그러나 새로이 피어난 레아의 어둠을 집어삼켜버렸다.

어둠에 어둠을 덧칠하는 듯한 광경.

그러나 본질적인 무언가가 달랐다.

어떤 근원적인 힘.

레아의 사념이 새로이 피어난 어둠에 굴복하는 것만 같았다.

-이, 이게 무슨···?

레아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새로이 피어난 어둠은 그 힘을 뻗쳐 아리아의 신성력을 덮쳐갔다.

화아아아아아악!!

폭사한 아리아의 신성력이 찬란하게 터져나왔다.

새로이 피어난 어둠을 향해 그 힘을 발산했다.

그러나 짓눌린다.

어둠을 몰아내는 절대적인 힘.

그러나 찬란한 신성력은 어둠에 짓눌리며 맥을 못추고 있었다.

“이게 무슨···?”

아리아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순식간에 사념과 신성력이 소멸해버렸고.

레아와 아리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리고 보인 어떤 한 사내.

“시안?”

-시안?

그곳엔 다름 아닌 시안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시안은 왼손을 옆으로 뻗은 자세로 서있었다.

뻗은 왼손에는 새까만 어둠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레아의 사념과 아리아의 신성력을 억누른 어둠.

시안은 그 어둠을 다루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바, 방금···.

“어, 어떻게···?”

레아와 아리아의 두 눈이 동시에 크게 떠졌다.

지금 시안이 다루고 있는 저 어둠.

저 어둠에서 도무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힘이 느껴졌으니까.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저 어둠은 레아와 아리아를 동시에 억눌렀다.

그 말은 즉.

두 사람의 힘이 시안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천 년의 원귀, 레아.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리아.

둘의 힘이 시안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시안을 바라보는 레아와 아리아의 두 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 두 여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안은 터벅, 걸음을 레아와 아리아의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리아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잠깐 타임하고. 아리아, 나한테 축복 좀 걸어줘.”

웬 뜬금없는 소리를 해왔다?

“뭐··· 라고?”

아리아는 저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진짜 뭔 소리인가 싶었다.

축복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다짜고짜?

아니, 애초에 시안은 아리아의 신성력을 꺼려했다.

꺼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질색팔색을 했다.

그런데 그런 축복을 해달라?

그것도 갑자기 지금 이 타이밍에?

이건 뜬금없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이 없는 수준이지 않은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시안?

레아 또한 정말이지 저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시안은 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화해야돼요.”

강화···?

저건 또 뭔 소린가 싶었다.

시안은 다시 아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축복 좀 걸어줘봐. 혹시 운을 끌어모으는 축복 같은 거 있어?”

“운을 끌어모으는 축복?”

“운이 좋아지는 축복 말이야.”

“불운한 것을 몰아내는 건 있지만··· 직접적으로 운이 좋아지는 건 없는데.”

“그래? 그럼 그거라도 좀 걸어줘. 되도록 모든 힘을 발휘해서. 작위식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더 좋고.”

시안은 급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진짜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아리아는 결국 두 손을 모으며 가진 바 신성력을 끌어모았다.

아리아는 여전히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걸 왜 해줘야되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간 시안이라는 남자를 경험해본 바.

이럴 땐 그냥 생각을 포기하는 게 편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아리아의 전신으로 찬란한 빛이 터져나왔다.

아리아는 작은 기도와 함께 그 빛무리를 시안에게 쏘아보냈다.

빛무리는 순식간에 시안의 몸으로 빨려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시안의 얼굴 또한 와락, 일그러졌다.

와락, 일그러지다 못해 거진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부가 실시간으로 뒤틀리는 사람의 표정이 꼭 저러할까.

“우웨에에엑···!!!”

아니나 다를까 시안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웨에에에에엑···!!”

누가 봐도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다.

좋아보이기는 커녕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하하하···! 하하하! 이거야! 그래, 이거라고!”

시안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희번뜩한 두 눈. 새빨간 광채.

터져나오는 웃음에는 어떤 광기 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냥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리아는 어떤 경고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신성력,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아리아.

“너··· 너···!”

아리아의 신성력이 당장 저 미친 놈으로부터 떨어지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저도 모르게 주춤, 시안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비단 아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시안··· 너한테서 지금 광기가 느껴져···.

레아 또한 당황스러운 얼굴로 시안을 바라봤다.

레아가 아르나이즈 전당에 있을 당시 품고 있었던 광기.

타락한 마기(魔氣)의 힘.

그 힘이 시안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레아와 아리아가 주춤, 시안에게서 멀어졌다.

떨리는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럼 둘이··· 우우욱···! 하던 일 계속··· 우웨에에엑! 해.”

시안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휘청거리는 몸. 그러나 시안은 꾸역꾸역,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시안은 영주성 밖으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멍한 표정의 아리아와 레아.

“······”

-······

둘은 한동안 시안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

아리아의 축복에 깃든 신성력.

그 신성력이 시안의 내부에 잔재하여 마기를 폭발 직전까지 몰아넣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하아···! 하아···!”

거칠어지는 숨.

극심한 현기증과 함께 정신이 점멸한다.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며 떠나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물론 지금이라도 신성력을 몰아낼 수는 있었다.

“내가··· 포기할 줄··· 우우욱···!”

하지만 시안은 그러지 않았다.

《모르크루의 기운 67.84%》

이 빌어먹을 강화를 성공할 수만 있다면!

이 까짓 고통쯤은! 통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괘, 괜찮으시오··· 영주?”

그 순간 세미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세미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답을 하고 싶어도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에 답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시안의 전신을 잠식한 아리아의 축복.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영혼의 충만함을 느끼는 황홀한 심정일 터였다.

그러나 시안은 아니었다.

시안은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참았다.

‘이것도··· 이것도 부족해···!’

아니, 되려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시안은 곧장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아르나이즈의 축복】

③【<뮤리엘의 축복>: 그대에게 무궁한 영광의 축복을.】

.

.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깜빡이는 알림창.

시안은 알림창의 화면에 Y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장 [효과 1]의 선택지를 눌렀다.

[강화 효과 1](+5) - 1분 간, 업적 보유자의 모든 신체 능력이 +7,000% 상승합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환한 빛무리와 함께 시안의 전신으로 뮤리엘의 신성이 차올랐다.

그리고 과연 아르나이즈는 아르나이즈인 것일까.

아리아와는 달리 뮤리엘의 신성은 역하지 않았다.

역하기는 커녕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조금은 안정되는 심신.

“후우···!”

시안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이로써 아리아와 뮤리엘.

시안은 두 성녀(聖女)의 축복을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정말로 아리아가 뮤리엘의 환생이라면.

시안은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축복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대륙 역사상 가장 고결한 성녀(聖女)의 축복을 말이다.

그 말은 즉.

현재 시안에게는 그 어떤 부정(不正)의 것이 침범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강화를 하기에 최적의 상태.

시안은 스마트 폰을 조작해 강화 항목에 들어갔다.

깜빡깜빡, 점멸하는 【강화】 탭.

시안은 두 성녀(聖女)가 걸어준 축복의 힘을 폭사시켰다.

그러자 뚝.

일순간 시안의 시간이 정지했다.

지난 날, 인스티즈의 광기에 사로잡혔던 아스란디즈.

최악, 최흉의 악이 될 뻔했던 아스란디즈.

그 아스란디즈를 꺾었던 찰나의 세계.

정지한 시간이 쪼개지고 또 쪼개진다.

시안의 눈이 부릅, 떠지며 붉어진다.

붉어지는 시야로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허락되지 않은 아득한 너머의 영역.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

그러나 견딘다.

반드시 견뎌야한다.

‘강화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이 정지한 시간 속.

‘가즈아아아아아아!!!’

시안의 검지 손가락이 스마트 폰 화면을 향해 쇄도해들어갔다.

꾸우우우우욱!

.

.

.

.

정지된 세계가 제 시간을 되찾는다.

그리고 찰나.

빰빠라라밤 빰빰빰빰!!!

스마트 폰으로 크나큰 팡파레 소리가 들려왔다.

“서, 성공했나···!”

시안은 황급히 스마트 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신규 업적: 도박사의 오류. 어째, 미신 좀 믿으시나봐요? (달성!)》

.

.

.

뭔 시덥지도 않은 업적 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띠링!

《당신 설마···!》

《축복을 받으면 강화가 잘 된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그런 미신 같은 걸 믿으신 건 아니죠?!》

이윽고 떠오르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

《어마맛? 정말··· 그런 생각이셨나요?》

《아니죠? 아닌거죠?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니죠?》

모바일 영주는 끊임없이 알림창을 떠올려보냈다.

《설마하니 그런 멍청하고 바보 같고 못난이에 맹꽁이, 꺼벙이, 맹추, 천치같은 생각을 했을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이때다 싶은 것일까.

아주 제대로 깐족거리는 모바일 영주였다.

《그렇죠? 그런 생각을 하신 게 아니죠?》

《아닐 거예요. 암요! 그렇고 말고요!》

시안은 차마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 시도였다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의 그 갸륵한 시도.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았으니까요!》

《왜냐하면 당신의 그 바보 같고 멍청하고 또. 멍텅구리에 맹물, 미련퉁이, 둔치 같은 생각에 인과율도 감탄을 금치 못한 것 같으니까요!!》

띠링!

[법칙을 벗어난 새로운 요소에 인과율의 법칙이 새로이 정립됩니다.]

[신규 업적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신규 업적 달성 보상] - 강화 확률 0.00001% 영구 증가.

.

.

“······”

승천하는 어이.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기는 개뿔이 무슨!

“야이, 개─!!”

0.00001% 따위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저 정도의 확률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 마디로 놀리는 것이나 똑같았다!

시안의 손이 분노로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띠링!

《아아···!! 아아아아···!!!》

스마트 폰이 크게 진동하며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 폰은 쉴새없이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 진동 때문에 스마트 폰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감전을 넘어 접신이라도 하는 듯한 어떤 움직임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시안이 어마어마한 골드 앞에서 매번 보였던 황홀한 몸부림.

그 몸부림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띠리링!!

《이거예요! 이거라고요!!!》

《바로 이 맛이라고요오오요오오옷!!》

모바일 영주가 몸을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물론 정말로 몸을 떨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우우웅, 진동하는 스마트 폰.

시안은 모바일 영주가 몸을 파르르, 떨어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빠직.

시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존재들이 갖는 광폭화(Over Drive).

시안의 눈이 뒤집히며, 이성의 영역이 도려내어진다.

오냐. 오늘 네가 죽냐, 내가 죽냐.

어디 한 번 해보자.

남아 있는 골드는 여전히 많았다.

물론 100번의 시도는 진즉에 넘었지만 상관 없었다.

“이제는 성공할 때가 된 것이니까.”

그건 곧 성공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물론 이 또한 도박사의 오류.

그러나 이성이 끊어진 시안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강화 확률은 1%.”

아니, 이제는 1.00001%

“어디 끝까지 가보자.”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와 함께 시안의 시간이 정지하며 시간의 파편이 쪼개진다.

인지 너머의 영역.

시안은 그 찰나의 순간을 내딛으며 검지 손가락을 내질렀다.

꾸우우우욱!

#

“하하···.”

시안은 허탈한 웃음을 흘려버렸다.

웃고 싶지 않은데 그냥, 그냥 웃음이 새어나왔다.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

인지 너머의 영역을 수없이 넘나든 대가일까.

잔 실핏줄이 터져 눈가엔 정말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괘, 괜찮으시오···?”

세미르가 심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하지만 시안은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신성력의 축복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그냥 답을 할 여력이 없었다.

멍한 표정은 마치 정신과 영혼이 빠져버린 듯 해보였으며.

남은 육체는 빈 껍데기 마냥 힘없이 떨구어져있었다.

그렇게 떨구어진 시선으로 보이는 하나의 알림창.

《모르크루의 기운 100%》

그 어떤 긍정의 확언도.

시안에게는 들리지가 않았다.

물론 모든 골드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벤토리에는 1억 골드 가량의 어마어마한 골드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안이 그 전에 가지고 있던 골드는 무려 3억 5천만 골드.

그리고 지금 남은 골드는 약 1억 골드.

다시 말해 2억 5천만 골드가··· 사라져버렸다.

그 찰나의 순간에 2억 5천만 골드가 타올랐다.

그것도 활활.

어쩌면 화르륵.

시안은 도무지···.

“하, 하하···.”

인생을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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