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32화 (232/322)

232화 - 성녀의 방문

시안은 거침없이 어둠의 숲을 활보했다.

내딛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표정 또한 별 다른 불안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물론 어둠의 숲은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었다.

광폭화(Over Drive) 된 마수가 들끓는 땅.

제국마저 포기해야만 했던 금기의 구역.

하지만 그 정의는 루벤이 발전하면서부터 뒤바뀌기 시작했다.

어둠의 숲을 정화하다시피 하며 발전한 루벤.

현재 루벤은 가장 강대한 세력으로 어둠의 숲에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지금 루벤의 영향이 미치는 어둠의 숲.

여긴 그냥 마기만 끓는 숲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어둠의 숲은 광활했다.

루벤이 위치한 어둠의 숲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에 따라 다른 구역에 창궐한 마수들이 들이닥치고 있긴 했다만···.

역시나 루벤의 저력 앞에 특산물로 화할 뿐이었다.

“야··· 지, 진짜로 여기가 네 집이 맞아···?”

하지만 그 사실을 아리아는 알지 못했다.

아리아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또한 그녀를 보좌하는 여사제, 로라.

둘은 불안한 얼굴로 시안의 뒤를 바싹 쫓아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한 것인지 아리아는 시안에게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로라는 그런 아리아에게 찰싹 달라붙어있었고.

그 때문에 시안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성녀와 여사제.

그야말로 신성력 덩어리들이 달라붙어있는 격이었으니까.

뭐, 로라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로라가 직접적으로 달라붙어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로라의 신성력도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리아는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리아.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야, 넌 성녀면서 이깟 마기들이 뭐가 무섭다고 그래?”

“무, 무섭기는! 그, 그냥··· 상성이 안맞을··· 뿐이야.”

“얼씨구. 상성은 무슨.”

나한테는 잘도 성질만 부리면서.

“그리고 벌벌, 떨리는 몸이나 어떻게 하고서 그런 말을 하지?”

바짝 달라붙어있는 아리아에게서 느껴지는 떨림.

시안은 아리아의 떨리는 숨결조차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거의 안겨있다시피 한 아리아였다.

아리아는 그때서야 그 사실을 인지할 것일까.

“핫···!”

아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시안에게서 황급히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 진짜로···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어···?”

아리아는 금방 불안함에 떨며 다시 시안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하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마혼제법의 진행률을 100% 달성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오면서 몇 번이나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안은 달라붙은 아리아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기. 보여?”

그리고 앞선 시야를 향하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저기가 루벤이야. 다 왔으니까, 호들갑 좀 그만 떨어.”

시안의 말에 아리아의 시선이 시안의 손가락을 따라 이동했다.

시안의 손가락 끝에 달려있는 듯한 어떤 풍경.

다만, 먼 시야로 보이는 터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사람이 사는 어떤 공간처럼 보이긴 했다.

“진짜였네···?”

“그럼 내가 거짓말을─. 아니다. 됐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야, 야. 같이 가···!”

아리아는 그런 시안을 따라 다시금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간을 걸었을까.

아리아는 멀리서 보았던 루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루벤의 모습은 확실히 영지의 모습이었다.

북적북적, 사람이 살고 있는 생기 가득한 영지.

그런데.

“저, 저게 대체···?”

아리아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크게 떠졌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

그러니까 루벤이라는 영지의 모습.

저건··· 결코 평범한 영지라 볼 수 없었으니까.

일단 당장 눈앞에 보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자

그리고 사각 지대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경비탑.

수시로 주변을 순찰하는 수준 높은 루벤의 병사들은 물론.

저게 무너지기는 할까···? 싶은 철옹성 같은 방벽까지.

“이게··· 영지라고?”

이건 결코 영지라 정의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니, 이건 영지라 불러서는 안 되었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영지란 말인가.

천혜의 요새 혹은 철옹성.

내부의 모습은 방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루벤의 모습은 도무지 영지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게 영지라 불린다면 신성 제국의 수도, 루테아.

거긴 그냥 한적한 시골 동네라 불려야 마땅했다.

“세, 세상에나···.”

로라 또한 눈을 부릅, 뜬 채 루벤의 자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여인이 놀란 심정으로 루벤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영주님이다!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커다란 외침이 들려오며 루벤 안 쪽이 분주해졌다.

이윽고 루벤의 문이 활짝, 열리며 일련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장 상태를 보아하니 루벤의 병사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병사들이 조금 이상했다.

범상치 않은 무장 상태는 넘어간다 치자.

저게 병사인지 기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넘어가보자.

하지만 모여있는 병사들 중 이상한 모습이 보였다.

짜리몽땅한 키와 우락부락한 근육의 소유자.

“드워프···?”

드워프의 모습이 모여있는 병사들 사이에서 비쳐보였다.

그런데 그건 말이 안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워프는 억센 고집과 답답할 정도의 고지식함으로 무장한 종족.

비록 그 고집이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나 인간과 함께 살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보이는 모습은 분명한 드워프의 모습.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루벤의 방벽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과 비슷하나 다른 특색이 뚜렷이 보였다.

게다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미(美)의 소유자들인 존재들.

“엘프···?”

저건 엘프의 모습이었다.

머리색이 검은 것을 보아하니 다크 엘프인 것 같았다.

드워프에 이어 엘프까지.

“이, 이게 무슨···!”

아리아의 두 눈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런 아리아를 지켜보던 시안.

‘그러고보니··· 아리아는 잘 모르겠구나.’

제국에서 루벤에 타종족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북부의 사건부터가 제국 전역으로 소문이 퍼졌으니까.

하지만 아리아는 타국의 성녀.

샤를롯 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잘 알지 못했다.

“뭐, 뭐야··· 이게 대체···?”

그 때문인지 아리아가 받는 충격이 상당해보였다.

로라 또한 그녀의 옆에서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어째, 루벤에 오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단 말이지.’

뭐,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만.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돌아본 시야.

이내 병사들 사이를 비집으며 누군가 앞으로 나서보였다.

루벤의 경비 대장, 루카스.

루카스는 천천히 시안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오셨습니까 백작 각하.”

루카스가 절도있게 군례를 보였다.

어째, 평소보다 더 절제되고 군기잡힌 모습이었다.

이제 정식으로 백작이 되었다고 나름 준비를 한 것일까.

시안은 손을 휘휘, 내저어으며 말했다.

“백작 각하는 무슨. 그냥 영주님이라고 불러.”

“하지만···.”

“됐어. 괜히 불편하니까. 평소대로 해.”

그러자 루카스가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여보였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 동안 별 일 없었지? 보니까 별 일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영주님께서 특별히 신경쓰실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루카스가 저리 말한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으니까.

오우거 무리들이 습격해왔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겠지.

다른 영지였다면 흥망이 달린 심각한 일이었겠지만···.

루벤에는 거진 일상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이내 루카스가 시안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여전히 경악하는 아리아와 로라를 발견하더니.

“그런데 뒤에 두 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마··· 신성 제국의 성녀님입니까?”

“뭐야, 어떻게 알았어?”

이어진 루카스의 말에 시안은 놀라보였다.

루카스가 아리아를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루카스, 너 아리아 만난 적 있어?”

“진짜··· 성녀님이신 겁니까?”

그러자 루카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해왔다.

어째, 알고 물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뭐야, 알고 말한 거 아니었어?”

“몰랐습니다. 다만, 저런 미모를 가진 분은 대륙에 흔치 않은지라···.”

“아.”

시안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같은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아리아의 미모.

대륙에서 아리아 같은 여인은 쉬이 볼 수가 없었다.

쉬이 보기는 커녕 대륙에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지난 날, 시안이 아리아를 처음 봤음에도 알아본 것처럼 루카스 또한 그러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성녀님의 미모가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아리아를 바라보는 루카스는 살짝 넋이 나가있었다.

그리고 비단 루카스 뿐만이 아니었다.

루카스와 더불어 나왔던 루벤의 병사들.

드워프는 물론, 방벽 위의 다크 엘프들.

시안이 왔다는 소식에 마중을 나온 방벽 근처의 영지민들까지.

“와···.”

“와···.”

남녀노소. 종족까지 막론하고 아리아의 미(美)에 넋을 잃어버렸다.

존재만으로 넋을 놓게 만들어버리는 아리아의 미(美).

종족마저 뛰어넘는 초월적인 미모.

“와···.”

“와···.”

루벤에는 한동안 감탄 섞인 탄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있은 직후.

시안은 곧바로 영주성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곧장 영주성으로 향했다.

‘오자마자 문제가 생기냐.’

일단 아리아부터 어떻게 해야했으니까.

정말 미모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영지민들 전부가 아리아를 넋놓고 바라만 봤다.

심지어 안쪽에서 소문을 들은 것일까.

영지민들이 하나 둘씩 안쪽에서

정확히는 시안이 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나온 것.

하지만 아리아를 보고는 다시 멍···.

정확히는 ‘와···.’ 라는 감탄만 터트릴 뿐이었다.

어째, 종족마저 가리지 않고 모두 아리아에게 홀리고 있었다.

그대로 둔다면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길 것 같았다.

그렇기에 시안은 만사를 제쳐두고 아리아를 끌고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도달한 영주성.

“여기가 시안. 네 집이야···?”

아리아는 두리번두리번 영주성의 내부를 훑어봤다.

깔끔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그럼에도 고풍스러운 느낌마저 잃지 않고 있었다.

성녀로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맞나··· 싶었지만.

교황청은 이곳과 비교하면 거적대기나 다름 없었다.

아리아는 감탄스러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 옆의 로라 또한 그런 아리아를 따라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당분간 여기서 생활해. 아마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을거야.”

그 순간 들려온 시안의 말.

아리아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여, 여기서? 너랑 같이?”

“나도 여기서 생활하긴 하는데. 같이··· 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아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영주성의 크기가 커도 너무 컸으니까.

과장 조금 섞어서 교황청에 버금갔다.

솔직히 같은 공간에만 있다 뿐, 완벽히 다른 생활을 한다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아리아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약간의 아쉬움.

다른 하나는 약간의 안도감.

아쉬움은 역시나 너무도 큰 영주성의 크기 때문이었다.

안도감 또한 역시나 너무도 큰 영주성의 크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집에 왔다던 황녀, 엘레나.

그녀 또한 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엘레나도 시안이랑 같이 생활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옆에 로라라는 분은··· 둘이 방을 같이 써? 아니면 따로?”

“어···.”

“아니다, 그냥 붙어있는 방 두 개 줄테니까. 알아서 써.”

어차피 영주성에 남아있는 방은 많았으니까.

“붙어있는 방이···.”

시안은 가만히 영주성의 구조를 떠올렸다.

바로 그때.

“도련님?”

복도 한쪽 끝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바라본 그곳엔 다름 아닌 한스가 서있었다.

그런데··· 어째 한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스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들.

위고, 보니타, 막심, 토마.

다름 아닌 한스의 옛 동료들도 있었다.

지난 번에 루벤에 오고 싶다하여 방문했던 이들.

하지만 시안이 황궁에 간 이후 각자 떠난 줄 알았건만.

‘아직도 안 갔어?’

어째, 아직도 가지 않은 것 같았다.

뭐··· 딱히 문제될 것은 없긴 했다만.

“오셨다는 말을 듣고, 나가보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이내 한스가 빠른 걸음으로 시안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스는 금방 시안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시안 뒤에 있던 아리아를 발견하더니.

“······?”

한스의 고개가 좌로 기울어졌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성녀님···?”

한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안이 알기로 한스는 아리아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아리아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도 아니었을 뿐더러.

아리아는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었으니까.

그럼에도 한스는 아리아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마 루카스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성녀? 설마 신성 제국의 성녀?”

“성녀가 왜 여기에 있어?”

한스의 말의 그의 동료들이 저마다 의아함을 표출했다.

그리고 이내 아리아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성녀님···?”

“성녀님···?”

한스와 똑같은 반응을 내보였다.

그렇게 한스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

그들은 넋을 놓고 아리아를 바라봤다.

방금 전, 영지민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

정말이지 미모에 홀린다, 라는 말이 딱 이러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미모가 하나의 죄악이 아닐까?

시안은 심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시안이 보기에도 아리아는 예뻤으니까.

게다가 아리아가 시안의 작위식을 축하한다고 더욱 꾸민 것이 문제가 되었다.

화사한 백금발과 순백의 드레스.

그 아찔한 분위기와 더불어 화장까지 한 것인지 한층 미모가 돋보였다.

여기에 시안이 주었던 뮤리엘의 장신구까지.

미모로만 따지면 가히 여신(女神)이라 부름직했다.

‘실상은 아닌데 말이야.’

물론 시안에게는 그냥 천방지축 말괄량이나 다름 없었지만.

뭐, 아무튼.

어째, 아리아를 보는 사람 족족 넋을 놓아버렸다.

종족까지 막론하고 모두 저렇게 홀려버리니.

‘이러면··· 아리아를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조금··· 상황이 곤란해졌다.

존재만으로도 대상을 홀려버리는 아리아.

누군가 아리아를 컨트롤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현재로서 시안밖에 없었다.

아리아 혼자 놀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더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아리아가 루벤의 거리를 활보하면 그대로 루벤이 마비가 될 터였으니까.

결국 시안이 아리아 옆에 붙어있어야했다.

‘난 할 일이 좀 있는데.’

해서 이를 어찌해야하나 하던 그때.

-뭐야?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라기보다는 뇌리에 박히는 어떤 의지.

그와 동시에 영주성의 복도로 서늘한 한기가 내려앉았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 와봤는데···.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어떤 의지.

이내 쑤욱, 복도의 벽을 뚫고 한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긴 백은색의 머리와 회백색의 눈동자.

고혹적인 미모의 여인.

-이게 무슨 상황인거야?

루벤의 수호령이자 천 년의 원귀, 레아였다.

갑작스러운 레아의 등장.

하지만 시안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딱히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적응할대로 적응을 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아리아와 로라는 아니었다.

움찔.

아리아가 크게 몸을 떨어보였다.

“뭐, 뭐, 뭐죠···!?”

그에 반해 로라는 기겁을 하며 경악해보였다.

로라의 두 눈은 거의 찢어져라 떠져있었다.

또한 공포를 느끼는 것인지 손이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로라는 아리아를 보좌하는 여사제.

비록 아리아만큼은 아닐지라도 로라 또한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였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레아.

그런 레아에게서 느껴지는 사념(死念).

“세, 세, 세, 세상에···!!”

저 사념이 얼마나 끔찍한지 로라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로라가 몸을 벌벌, 떨며 레아를 바라봤다.

레아의 회백색 눈동자가 로라에게로 향했다.

그에 따라 로라의 떨림이 더욱 격해졌다.

하지만 레아는 그런 로라를 신경쓰지 않았다.

이내 레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리고 로라의 앞을 가로막는 한 여인.

-너 그때 걔 아니야?

레아의 시선이 아리아에게로 향했다.

이내 레아가 다시 시선을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야? 얘가 왜 여기에 있어?

“그게···.”

잠깐의 고민.

“어쩌다보니요.”

시안은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어쩌다보니?

“네.”

-어쩌다보니 얘랑 엮였다고?

일순간 레아가 눈을 게슴츠레 떠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떻게 된 게 밖에 나갔다오면, 매번 여자들이 꼬이는 거야 정말. 마음 같아선 내가 따라붙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레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아리아를 바라봤다.

-야.

아니, 아리아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털렸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흠칫.

아리아가 다시 한 번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아리아의 눈빛 또한 심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아리아인 것일까.

“왜, 왜···!”

-왜? 이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사, 사람은 머리에 피가 마르면 죽거든? 그, 그쪽은 이미 죽은 몸이라서 상관 없겠지···!”

시안은 속으로 감탄 아닌 감탄을 터트렸다.

당돌하다 못해 당찬 아리아의 말.

곧 죽어도 레아에게 개기겠다는 건가.

뭐, 아리아답다면 아리아다운 모습이긴 했다만.

-이게 아주 그냥···!

아니나 다를까 레아가 눈을 치켜떠보였다.

초점 없는 회백색의 눈동자가 새까맣게 물들며 끔찍한 마기가 터져나왔다.

물결치는 어둠.

끼야아아아아악!!

터져나오는 귀곡성(鬼哭聲)에 사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 성녀님···!!!”

그 끔찍한 사기에 로라가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아리아는 되려 한 발 앞으로 나서보였다.

“예전의 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이윽고 아리아가 사념에 대응하며 신성력을 피워올렸다.

화아아아아아아악!

터져나온 신성력이 드리운 사념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아르아니즈 전당에서 아리아는 레아에게 털린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아리아와 지금의 아리아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뮤리엘의 장신구로 증폭된 신성력.

그리고 그동안 갈고닦은 신성력까지.

화아아아아아아악!

레아의 사념은 아리아의 신성력을 쉽게 밀어내지 못했다.

그 힘에 레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 그래봤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레아가 더 짙은 사념을 끌어올리며 아리아를 압박해들어갔다.

“머리에 피가 마르면 죽는다니까!”

그에 따라 아리아 또한 더욱 찬란한 신성력을 터트렸다.

끼야아아아아아악!

화아아아아아악!

터져나오는 귀곡성(鬼哭聲)과 신성력.

-우웁···! 이 년이 어디서 신성력이라도 주워먹고 온 거야? 너는 진짜 안 되겠다.

“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그래봤자 독기 빠진 귀신 주제에!”

그러면서 레아와 아리아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게 투닥거린다··· 라고 할 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얽히고설키는 사념과 신성력.

“이, 이게 무슨···!”

“두, 두 분. 모두 진정을···!”

“성녀님···!!”

한스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크게 당황해보였다.

로라는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레아와 아리아.

그러니까 터져나오는 귀곡성과 신성력.

그 섬뜩한 힘의 충돌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딜 봐도 투닥거린다고 볼 수 없었다.

사생결단을 낸다, 라고 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옆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안.

-날 이기려면 500년은 더 살고 오라고 했지!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시안이 보기엔 그냥 투닥거리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를 진심으로 어떻게 해볼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냥 기세 싸움?

이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주관적인 의견을 조금 섞자면 반갑게 인사하는 둘 만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시안은 천 년전에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레아와 뮤리엘.

아마 그 둘도 저렇게 투닥거리지 않았을까?

‘그때는 레아가 검을 사용했겠지만.’

그리고 뮤리엘의 성격도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뭐, 아무튼.

그런 느낌적인 느낌 때문일까.

-하! 너는 나이 안 먹을 것 같지?

“그쪽처럼 먹고 싶어도 못 먹거든!”

둘이 생각보다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다.

저게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하는 건가.

그리고 뭐, 보아하니···.

조만간 아리아가 밀릴 것 같았다.

역시나 레아에겐 안 되었다.

레아 또한 그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 말은 즉.

‘아리아를 잠깐 레아한테 맡겨두면 되겠네.’

레아가 아리아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화아아아아아악!

“할머니 주제에 뭐가 이리 쎄···!”

-뭐, 뭐? 하, 할머니?! 넌 진짜 오늘 제대로 교육 좀 해야겠다.

계속해서 투닥거리는 둘.

시안은 슬며시, 영주성을 빠져나갔다.

#

깡! 깡!

천둥처럼 들려오는 쇠망치 소리.

영주성을 빠져나온 시안은 곧장 세미르를 찾아갔다.

망치를 두들기는 세미르의 손은 현란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그 때문인지 S등급의 방어구가 거의 찍어나오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미 옆에 수북히 쌓여있는 S등급의 방어구들까지.

저것들 모두가 초월 등급의 방어구를 강화하기 위한 재료들이었다.

물론 우선적으로 처리할 것들은 많았다.

엘란두르와의 영지전을 영지민들에게 알려줘야했고.

병사들의 향상된 수준을 확인하여 전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했다.

거기에 어떻게 공격할지에 대한 전략과 전술도 준비해야했다.

그리고 전쟁 물자를 준비하고.

또 전쟁을 대비해 현질을 해야하는 것들도 정리해야했고.

게다가 최후의 드래곤 행방까지─.

‘나 방금 루벤에 왔는데···.’

어째, 일이 끊이질 않는걸까.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

아무튼,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시안은 일단 그 일들을 뒤로 미루었다.

‘영지 분위기가 너무 들떠있어.’

지금은 그 일들을 처리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아리아의 존재로 현재 영지 분위기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여러모로 중대한 일을 처리하기엔 영지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했다.

진정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아보였다.

해서 시안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손에 잡았다.

《SSS등급 → 초월(超越) 등급》

다름 아닌 초월 등급의 방어구 강화.

[SSS등급 강화 비용 200,000G]

[강화 성공 확률 0.5%]

순수 강화 비용 20만 골드.

성공 확률 0.5%.

<세계수의 잎사귀> (강화 확률 +0.1%)

<세계수의 가지> (강화 확률 +0.15%)

<세계수의 열매> (강화 확률 +0.25%)

세계수의 부산물을 바른다면 확률을 1%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모르크루의 기운 32.93%》

현재 쌓여있는 모르크루의 기운은 32.93%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350,098,000G

그리고 인벤토리에 보유 중인 골드는 무려 3억 5천만하고도 9만 8천.

‘골드는 충분하다.’

다만, 얼만큼의 골드가 소모될지는 순전한 운의 영역.

20만 골드가 될 수도 있었고.

2억 골드가 될 수도 있었다.

시안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고 있던 SSS등급의 갑옷을 벗었다.

띠링!

그 순간 스마트 폰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바라본 화면.

《제발···! 제발···!! 시스템이시여···! 차원의 절대적인 인과율의 법칙이시여···!!》

그곳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부디, 부디 이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정의(正義)라는 것이 인과율의 법칙에 살아숨쉬고 있다면···!》

띠링!

《저 간악무도한 자의 강화가 실패하게 해주세요오오오!!!》

모바일 영주는 절실하다못해 절박하게 기도를 해보였다.

그런데 뭐?

간악무도한 자?

시안은 심호흡을 크게 내뱉었다.

저런 것에 흔들리면 안 된다.

시안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을 펼쳐 화면 위의 버튼.

깜빡깜빡, 빛나고 있는【강화】 버튼을 눌렀다.

꾹.

《강화를 시작합니드아아아앗!!!!》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제발···!”

《제발···!!》

시안과 모바일 영주가 동시에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화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터져나오는 환한 빛무리.

“제바아아알···!!!”

《제발요오오···!!!》

똑같은 소리 그러나 다른 내용의 기도.

상반된 두 기도가 공명이라도 하듯 울려퍼져왔다.

그리고 잠시.

빰빠라라밤 빰빰빰빰!!!

스마트 폰으로 크나큰 팡파레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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