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 드래곤 탐색(2)
시야가 탁, 트이는 널찍한 공간.
널찍하다 못해 광활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곳엔 무수히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란 책을 끌어모은다면 이러할까.
황궁 내부에 위치한 거대한 도서관은 정말로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두 번째 오는 거긴 하다만, 역시 엄청나긴 하네”
시안은 천천히 도서관 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사내가 시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만 봐도 ‘나 공부 좀 했소.’ 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내.
다름 아닌 황궁 도서관의 사서였다.
그리고 지난 번에 시안이 만난 사서와 같은 이였다.
“시안 백작님···?”
아니나 다를까 사서 또한 시안을 알아봤다.
물론 현재 제국에서 시안을 모르는 이가 없긴 했다만.
그것도 황궁의 사서라는 자가 시안을 모를 리가 없긴 했다만.
시안은 괜시리 반가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또 계셨군요.”
“저야 이곳에서 일하는 사서니까요. 그보다 백작님께서는 또 어인 일로···?”
“다름이 아니라,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드래곤···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사서가 말을 약간 흐리며 답해왔다.
어딘가 난감한 듯한 표정.
이윽고 사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래곤에 관련한 정보는 워낙 많습니다. 아무래도 수많은 마법사분들이 기록을 하다보니···.”
뭐,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
“얼마나 됩니까?”
“자세히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드래곤, 이라는 키워드만 봤을 때 대략··· 3만 권 가량이 됩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드래곤과 관련된 도서가 대략 3만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심지어 이곳은 황궁 도서관이었다.
그러니까 중요한 도서만 추리고 추려서 모아놓은 도서들이었다.
대륙에 퍼진 모든 정보를 모으면 이보다 월등히 많을 터.
괜히 마법사들이 기록벌레라 불리는 것이 아닌 것일까.
‘이러면 좀··· 곤란한데.’
그도 그럴 것이 3만권을 모두 찾아볼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리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3만권을 모두 찾아보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최소 수 개월에서 어쩌면 몇 년.
해서 이를 어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 말씀주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서가 그 해결책을 넌지시 제시해주었다.
“드래곤과 관련된 정보가 많기는 합니다만, 중복된 부분도 많습니다. 중복된 부분들을 쳐내고 키워드로 다시 한 번 걸러내면 괜찮으실 겁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려면 관련한 서적의 정보를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번, 사서는 이 광활한 황궁 도서관의 배열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래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그게 제 일인걸요.”
사서는 맡겨만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시안은 그런 사서에게 최후의 드래곤, 살아남은 드래곤, 아르나이즈 등등.
관련한 중요 키워드들을 말해주었다.
사서는 생각에 잠기며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사서가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아마 관련한 서적들을 찾아주려는 모양.
그 짧은 시간에 관련 서적들을 파악한 듯 싶었다.
“엄청난 능력인데···.”
무(武)의 경지로 따지면 마스터(Master) 그 이상.
왜 황궁 도서관의 사서로 있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뭐, 어쨌든.
시안은 그런 사서를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손에 잡히는 무엇.
다름 아닌 엘레나가 건네준 목걸이였다.
그리고 현재 귀빈실에 남아있는 엘레나와 아리아.
“둘은 괜찮으려나.”
시안은 괜시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대충 보아하니, 엘레나가 손님인 아리아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아리아는 신성 제국의 성녀.
시안의 작위식에 참석한 손님이더라도 샤를롯 제국 입장에서도 귀빈이나 마찬가지였다.
본래라면 콘라드가 마중을 나왔을테지만···.
아무래도 콘라드가 바쁘다 보니 엘레나가 대신 온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콘라드는 샤를롯 검술의 값.
시안에게 줄 2억 5천만 골드를 끌어모으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콘라드를 대신할 이는 엘레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묘하게 신경 쓰인단 말이지···.”
그런데 묘하게 신경쓰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오기 직전에 느꼈던 묘한 분위기.
특히나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
“백작 각하! 이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사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관련한 서적들을 찾은 듯 싶었다.
시안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었다.
“설마하니 싸우지는 않겠지.”
황녀와 성녀라는 위치가 있는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양 제국을 대표하는 두 여인.
그런 두 여인이 싸운다?
그건 단순히 둘만 싸우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둘이 싸울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에이, 모르겠다.”
시안은 생각을 떨쳐내며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시안이 떠나고 난 이후.
귀빈실에는 묘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정확히는 귀빈실에 남은 두 명의 여인.
태양빛을 닮은 금발의 여인, 엘레나.
화사한 백금발의 여인, 아리아.
황녀와 성녀.
그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묘한 분위기 속에 내려앉은 정적.
“성녀님께서는 시안 백작님과 친분이 있으신가봐요.”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엘레나 쪽이었다.
엘레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리아에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정말 순수히 궁금한 척.
“서로 이름으로 부르시던데···.”
엘레나는 넌지시 아리아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리아가 작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답했다.
“황녀님께서도 그렇게 보이셨나요? 사실 시안과 저는 굉장히 막역한 사이거든요.”
엘레나의 눈썹이 살짝, 꿈틀 거렸다.
정확히는 ‘시안’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막역하다’라는 말.
엘레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시안 백작님은 이제 정식으로 백작의 작위를 받으신 분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귀족을 함부로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요?”
“제국의 법도가 그러하다만야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저는 타국의 성녀인걸요. 저에게도 그런 법도를 적용하시는 건 좀···.”
“제국에 오셨으면 제국의 법에 따라야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시안은 시안인 걸요. 무엇보다 시안과 저는 그런 걸 따지는 사이도 아닌 지라···.”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떻게 된 게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아리아였다.
황녀인 자신 앞에서 기조차도 죽지 않았다.
황제와 황태자 이외에 그 누구도 이렇게 나온 이는 없었건만.
뭐, 아리아는 타국의 인물.
무엇보다 성녀라는 위치는 충분히 그럴 만한 지위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여인.
기가 죽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엘레나가 속으로 삼키고 있자니.
이번엔 아리아가 담담한 표정으로 아리아가 물어왔다.
“그보다 아까 황녀님께서 시안에게 목걸이를 주신던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정말 순수히 궁금한 척.
“혹시 시안이 황녀님께 만들어준 목걸이 인가요?”
“아뇨. 황실에서 제작한 목걸이에요.”
“아··· 그렇군요.”
그러자 아리아가 안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답을 해왔다.
안도한다···?
엘레나는 그런 아리아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이가 본다면 별 다를 바 없는 아리아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그 안에 깃든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목걸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아리아.
엘레나는 그때서야 아리아가 차고 있는 장신구를 볼 수 있었다.
한쌍의 귀걸이와 목걸이.
그리고 반지 하나.
그 장신구들은 아리아의 미모를 한껏 돋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초월적인 미모의 아리아였거늘.
장신구들은 퇴색이 되지 않고 아리아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초월적인 미(美)에 다시 한 번 미(美)가 더해지니.
이게 정녕 같은 인간인가 싶은 의문마저 들었다.
솔직히··· 같은 여자가 봐도 예뻤다.
예쁘다 못해 초월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자, 장신구가 굉장히 예쁘시네요.”
엘레나는 아리아가 예쁘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엘레나는 끝내 장신구에 대한 칭찬을 해보였다.
그런데 어째, 그게 실수였던 것일까.
“어머. 황녀님께서 보시기에도 그런가요?”
아리아가 반색을 하며 눈을 치켜떠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아리아의 말.
“사실 이게··· 시안이 저한테 선물해준거거든요.”
“······!!!”
엘레나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크게 떠졌다.
“시, 시안 백작님이··· 주신 거라고요···?”
“그럼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아의 모습.
그에 따라 엘레나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는 뭘 받은 기억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시안에게 무언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돈이나 뜯기면 뜯겼지.
시안에게도 뭘 받은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아리아는 시안에게 받았다고···?
“서, 선물로···?”
“네. 저랑 꼭 어울린다면서요.”
심지어 선물로 받았단다.
그 말은 즉, 시안이 공짜로 저 장신구를 주었다는 뜻.
그 돈에 미친 시안이 말이다.
돈에 미치다 못해 환장한 시안이 공짜로 주었단다.
“정말 예쁘죠?”
아리아는 자랑이라도 하듯 착용한 장신구들을 선보였다.
손을 펼치며 반지를 내보이고.
백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귀걸이를 보이고.
목걸이를 꺼내어 그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은 마치 엘레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저와 시안의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 이제 알겠죠?
이런 선물을 주고 받고 할 정도로 깊은 사이랍니다?
물론 아리아가 정말로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아를 바라보는 엘레나는, 분명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충격을 받은 엘레나의 표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엘레나는 아리아의 미모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초월적인 미모의 성녀.
물론 미(美)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취향이었다.
누군가에겐 세계 최고의 미녀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최악의 추녀가 되는 것이 미(美)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아리아는 아니었다.
청초함과 청순함의 화신.
화사하게 내려앉은 백금발은 또 어떠한가.
도무지 같은 인간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미모였다.
같은 여자가 봐도 황홀해지는 미모거늘.
이 정도의 미모에 취향이라는 개념을 들이밀 것이 못 되었다.
위험하다.
엘레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엘레나는 아리아의 존재에 대한 정의를 수정했다.
제국의 손님에서.
“그, 그런가요? 어쩐지 장신구가 굉장히 아름답다 싶었어요.”
제국의 공적으로.
엘레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을 어투로 말했다.
충격 어린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시안 백작님께서 그런 손재주가 있으셨다면, 저도 루벤에 갔을 때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걸 그랬나봐요.”
엘레나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엘레나의 말에 장신구를 선보이던 아리아의 움직임이 잠깐, 멈추었다.
“루벤··· 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
시안과 관련한 무엇이었던 것 같은데···.
“시안 백작님의 영지 말이에요.”
그 순간 들려온 엘레나의 말.
“······!!!”
이번엔 아리아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크게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들려온 엘레나의 말.
“화, 황녀님께서··· 시안의 영지에 가신 적이 있으시다고요?”
“네. 시안 백작님이 직접 초대해주신 걸요.”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시안의 영지라 함은 곧 시안의 집.
그, 그러니까··· 시안의 집에 가봤다고?
나도 못 가본 시안의 집을?
그것도 직접 초대를 받아서?
“한달 동안 루벤에 머물렀거든요.”
심지어 한달 동안 있었단다.
그리고 한달이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없던 정도 붙어버릴 시간일 수도 있었고.
전혀 생각이 없다가도 눈이 맞아버릴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이렇고 저렇고··· 남녀 간에 막, 막···.
아무튼 그런 것들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한 지붕 아래서 백작님과 생활도 같이 했었죠. 지내는 동안 제가 시안 백작님의 식사도 책임졌는걸요.”
하물며 한 지붕 아래라면야 더더욱!
게다가 식사까지 책임졌다면 말 할 건덕지도 없었다!
물론 정말로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드넓은 영주성에 엘레나의 방이 있었을 뿐.
시안과 같은 방을 쓴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한 지붕은 한 지붕이긴 했다만.
실상은 완벽히 다른 공간에서 생활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식사 또한 수련 중간에 간식으로 만두를 만들어준 것이 전부.
“······!!!”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리아가 알 수나 있을까.
충격을 받은 아리아의 표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 아리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안 백작님께서 만두를 특히나 좋아하시는데···.”
엘레나는 루벤에서 있었던 생활을 말해주었다.
그런 엘레나의 모습은 마치 아리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뭐, 선물 정도야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
그런 성녀님의 친분 정도는 저희 사이에 끼어들 것이 못 된답니다?
물론 엘레나가 정말로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레나를 바라보는 아리아는, 분명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리아는 어떤 강력한 적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지금껏 마주한 적 없는 강자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를 보라.
지위며, 미모며 어느 하나 자신에게 꿇리는 것이 없었다.
특히나 미모는 더욱 그러했다.
청순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분위기.
태양빛을 닮은 금발의 아름다움은 또 어떠한가.
아리아 앞에서도 엘레나의 미모는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뭐, 그럼에도 아리아의 초월적인 미모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아는 알고 있었다.
시안은 자신의 미모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위험하다.
아리아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리아는 엘레나의 존재에 대한 정의를 수정했다.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여인에서.
“시, 시안의 집에서 재밌는 일들이 있으셨나봐요.”
아리아가 만나본 역대 최강으로 위험한 여인으로.
아리아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을 어투로 말했다.
충격 어린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엘레나를 바라보는 아리아의 눈빛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아리아를 바라보는 엘레나의 눈빛 또한 묘하게 변했다.
그로써 귀빈실 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그보다 시안 백작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중대한 이야기여서요. 아무리 황녀님이시라도 말씀을 드릴 수가··· 죄송해요.”
그 묘한 분위기는 사그라들지 않고 더욱 묘하게 흘러만 갔다.
#
수북히 쌓여있는 책자.
시안은 그 위로 또 하나의 책을 올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전신으로 휘몰아치는 어떤 탈력감.
“흐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옆에 수북히 쌓여있는 드래곤과 관련한 책자들.
척 보기에도 거진 수 백권에 달하는 분량.
가만히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것에 불과하거늘.
어째,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을 수련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마법사들은 어떻게 이 짓을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거지.”
하여간,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마법사들이었다.
“그건 그렇고···.”
시안은 축, 늘어진 자세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더 이상 읽을 것들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금 게 마지막이었나.”
착 가라앉는 시선.
시안은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하나로 취합했다.
수 백권에 달하는 분량에서 얻어낸 정보.
그 안에는 역시나 드래곤에 관련한 수많은 정보들이 있었다.
드래곤의 강함은··· 어쩌고.
드래곤에게도 다양한 종족이 있었고··· 저쩌고.
그런 드래곤들의 특색이라 함은··· 이러쿵.
드래곤이 멸종한 게 맞는걸까? 싶을 정도로 정보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정작 시안이 원하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드래곤에 관련되어 있지만 시안이 찾던 정보는 몇 없었다.
하지만 적지만 있기는 있었다.
일단 그 첫 번째.
“드래곤의 수명이 1천년이란 말이지···.”
드래곤의 수명은 약 1천년 가량이다.
기록상 2천년을 넘게 살았다는 드래곤이 있기는 있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런 드래곤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드래곤들 중에서도 특별히 장수하는 드래곤도 있었을 터.
드래곤의 평균 수명은 1천년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시안에게 중요한 정보인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건 무려 천 년전이었다.
그러니 지금 퀘스트에서 말하는 최후의 드래곤.
그 드래곤이 천 년전에 막 태어난 새끼 드래곤, 해츨링이었다 치자.
그렇다하더라도 지금쯤이면 천 년의 고룡이 되어있을 시간이었다.
어쩌면 오늘 내일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천 년의 세월 속에서 갑자기 떠날 리는 없겠지만.
“되도록 빨리 찾아야 해.”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해서 그런 최후의 드래곤 행방.
그 첫 번째 단서이자 두 번째 정보는 다름 아닌 신화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아르나이즈와 관련이 있었다.
천 년전, 대륙을 구원한 6명의 영웅, 아르나이즈(Arnaiz).
검신(劍神) 샤를롯.
신녀(神女) 뮤리엘.
대마도사 엘로디.
신장(神匠) 모르크루.
별 달리 알려진 바가 없는 카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에미··· 노에미라···.”
상천술사 노에미.
노에미는 아르나이즈의 일원이자 수인족의 대족장이었다.
그리고 수인족이라 함은 드워프와 엘프 같은 아인족을 지칭했다.
말 그대로 수인족(獸人族).
직역하자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모습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특성 또한 빼다박았다.
이에 수인족 내에서도 수많은 종족들이 있었는데.
개의 특성을 지닌 견인족.
늑대의 특성을 지닌 랑인족.
고양이의 특성을 지닌 묘인족.
호랑이의 특성을 지닌 호인족 등등.
동물들의 특색을 지닌 수많은 수인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인족들을 이끌었던 대족장, 노에미.
“노에미가 용인족이었단 말이지···.”
노에미는 드래곤의 특성을 지닌 용인족(龍人族)이었다.
물론 수인족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건 없었다.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지금까지도 분분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단순히 특색만 닮은 건 아니라는 것.
즉, 해당 동물의 피가 섞여있다는 뜻이었다.
한 마디로 노에미는 드래곤의 피가 흐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용인족인 노에미를 쫓다보면 드래곤에 관련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 터.
어쩌면 최후의 드래곤에 관해 노에미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와 노에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노에미 또한 천 년전에 죽어 사라졌으니까.
그러나 노에미가 남긴 흔적.
그 흔적은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남아있었다.
“수인족의 왕국.”
수인족들이 모여사는 왕국.
솔직히 말만 왕국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수인족들끼리 모여사는 마을이라 할 수 있엇다.
물론 마을이라 부를 만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뭐, 아무튼.
수인족들은 그 명맥을 이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왕국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건데···.”
다만, 수인족들의 왕국은 그 위치가 감추어져있었다.
예전이야 인간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수인족과의 교류가 끊겨버렸다.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린 엘프들도 가끔 인간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수인족들은 그것조차 없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 때문에 시안도 수인족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수인족이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존재하지도 않는 종족이라 의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수인족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이 세운 왕국 또한 대륙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인간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라는 정보.
시안은 이 정보를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추적해들어갔고.
끝내 황궁의 비밀 서고.
엘레나의 목걸이로 얻은 비밀 서고의 서적에서 그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역대 황제들이 남긴 기록들이 모여있는 비밀 서고.
시안은 그 중에서 샤를롯의 아들이 남긴 기록에 집중했다.
원래는 샤를롯의 기록을 찾아보려 했었다.
하지만 카일의 비망록 이후로 샤를롯이 직접 작성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 어쨌든.
시안이 찾은 기록에 따르면 수인족들의 왕국을 세운 것이 다름 아닌 노에미였다.
그리고 노에미가 수인족의 왕국을 세울 당시.
샤를롯이 노에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같은 아르나이즈 동료이기도 했던 샤를롯과 노에미.
그 인연이 이어져 수인족들은 인간과 교류가 활발했었다고 한다.
그것은 샤를롯이 죽고 난 이후에도 이어졌다.
샤를롯 다음으로 즉위한 그의 아들과도 그 교류는 여전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교류가 끊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샤를롯의 아들은 수인족들과 교류를 해오고 있었다.
해서 샤를롯의 아들이 남긴 기록.
그 기록에 적혀있는 수인족의 왕국.
“어둠의 숲 너머에 있다라···.”
다름 아닌 어둠의 숲 너머에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러나 샤를롯 제국의 국경 너머.
타국에 걸쳐있는 어둠의 숲에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론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지금도 그곳에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루벤에서 출발한다면 그리 멀지 않게 도착할 거리이긴 한데···.”
기록에 적힌 곳은 루벤과 그리 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루벤은 어둠의 숲에 위치한 영지였으니까.
“일단은··· 여기까지인가.”
여기까지가 시안이 알아낸 정보였다.
뭐, 조금 더 찾아보면 추가 정보는 얻을 수 있을 터였다.
“······ 못해.”
하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언제 또 이 많은 걸 뒤적이고 있단 말인가!
차라리 켄드릭과 어깨가 잘릴 뻔한 대련하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이걸 찾는다고 사서가 아주 죽을라 하고 있었다.
이 이상으로 탐색하는 건 시안도, 사서도 못할 짓.
애초에 아예 소득이 없었다면 모를까.
어느 정도 소득이 있지 않았는가.
“여기까지만 하자.”
시안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북히 쌓인 책이야 그냥 두면 사서가 정리한다고 했으니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건드릴 수도 없었다.
이것들을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도 몰랐으니까.
뭐, 아무튼.
“이쯤이면 전하께서 돈을 준비해두셨을라나···.”
책을 뒤적거린다고 보낸 시간이 꽤 되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얼추 자금을 마련해두었을 터.
시안은 콘라드의 집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아, 참. 황녀님께 목걸이 돌려줘야지.”
엘레나에게 받은 목걸이가 생각났다.
나중에 돌려줘도 상관없었지만···.
엘레나를 상징하는 목걸이라 했으니 꽤나 귀중한 것일 터.
“생각난 김에 돌려주고 가자.”
시안은 콘라드의 집무실이 아닌 엘레나가 있는 곳.
황궁의 귀빈실로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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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귀빈실로 돌아온 시안.
똑똑.
“시안입니다. 안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시안은 귀빈실의 방문을 가볍게 노크를 해보였다.
그런데 왜일까.
안에서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응?”
시안은 뭔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확실히 느껴졌으니까.
그것도 엘레나와 아리아의 인기척.
그와 동시에 어떤 소란까지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둘이 안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정작 되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뭐지?”
싶은 것도 잠시.
시안은 살며시 귀빈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인 것은 역시나 엘레나와 아리아였다.
둘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어머. 시안 백작님이 만들어주신 게 아니라, 그냥 주운 걸 선물이랍시고 주신 거였군요?”
“그러는 황녀님은 같이 생활한 게 아니라, 그냥 같은 영지에 있으셨던 거였군요?”
느껴지는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저게 이야기를 나눈 건지, 기싸움을 하는 건지 모를 분위기.
일순간 시안의 인기척을 느낀 것일까.
엘레나와 아리아의 고개가 동시에 이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안의 모습을 확인한 둘.
“저도 장신구 갖고 싶어요!”
“나도 너네 집 갈래!”
두 여인이 경쟁이라도 하듯, 시안에게 소리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