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 일자천금(1)
전혀 예상치 못한 시안의 답.
“······?”
“······?”
발루아가는 물론, 콘라드의 표정에 물음표가 찍혔다.
마치, 지금 얘가 뭐라는 거야? 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증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발루아가는 혹시나 물었지만 시안의 답은 변하지 않았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시안이 추가로 말을 이어왔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증명할 방법은 있사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발루아가의 물음을 증명할 방법이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레아의 존재를 밝히면 되었다.
레아는 천 년의 원귀이자 다름 아닌 샤를롯의 여동생.
레아의 존재만 밝힌다면 위의 두 물음을 해결할 수 있었다.
콘라드 또한 레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레아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상관 없었다.
시안이 카일의 후계자임을 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찾아본다면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발루아가를 굳이 설득하려하지 않았다.
“허나, 폐하께서 납득할 만한 증명을 할 수가 없사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증명할 방법이 있다고 한들.
그 사실들을 발루아가가 믿을지는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일단 레아의 존재를 밝히는 것부터가 문제가 있었다.
콘라드는 어찌 유야무야 넘어갔다만 발루아가는 이야기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둘을 만나게 하는 것 자체가 시안에게는 피곤한 일.
시안이 카일의 후계자임을 말하는 것은 말할 건덕지도 없었다.
증명을 위해 증명을 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만 연출될 뿐이었다.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렇다고 2억 골드를 포기한다?
그건 때려죽여도 안되는 일이었다.
해서 시안이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은 이것.
“폐하께서 믿지 않으신다면, 저로써도 방법이 없습니다.”
배짱.
즉, ‘아 몰라.’ 였다.
“······”
멍해지는 발루아가의 눈빛.
그와 함께 발루아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표정으로 말을 할 수가 있다면 지금 발루아가의 표정은 ‘ 아니,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 자네 지금 그게 무슨···.”
당황한 콘라드가 시안에게 말해왔다.
그러나 시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이 나와서 말이지.
왜 머리 아프게 이쪽이 증명을 해야한단 말인가.
물론 판매하는 쪽은 시안 쪽.
당연히 증명해야하는 쪽도 시안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냥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수 백년 전에 소실된 샤를롯 대제의 검술입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잃어버린 황가의 명맥이지요.”
일단 소실된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
그로써 황가의 명맥을 다시 이을 수 있다는 것.
“한 번쯤 속아봄직 하지 않겠습니까.”
그 자체만으로 발루아가는 승부를 걸만 했다.
그러니까 못 먹어도 해볼 만한 것.
물론 1억 5천만 골드라는 대가가 작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냥 그렇지 만도 않았다.
“샤를롯 대제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큰 액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샤를롯의 검술.
그 값어치를 생각하면 솔직히 비싼 금액도 아니었다.
아니, 막말로 거저 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기에 못 먹어도 해볼 만한 것.
물론 뻔히 보이는 사기에 대응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못 먹어도 해볼 만한 승부라지만 그래도 먹어볼 가능성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뻔한 사기에 응한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소신이 폐하를 상대로 사기를 치겠습니까.”
솔직히··· 이것도 그랬다.
새로운 제국의 별이자, 이제 정식 백작이 된 시안.
뭐··· 시안의 이미지는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발루아가가 바라본 시안.
시안은 그야말로 돈에 환장한 미친놈이었다.
황실을 상대로 삥을 뜯질 않나.
황제인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돈을 요구하지 않나.
그야말로 염병첨병할 놈팽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진짜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기치고 다니는 놈팽이는 또 아니었다.
그저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요구할 뿐.
사기는 아니었다.
북부 사건의 물자를 풀 때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뭐, 들이미는 명분과 정도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만.
그래도 사기를 치는 놈팽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시안의 말마따나 샤를롯 대제의 검술은 잃어버린 황가의 명맥.
만일 이를 두고 사기를 친다?
그러니까 나중에 이것이 사기라는 정황이 드러난다?
이건 반역은 물론 황실 모욕죄란 모욕죄는 죄다 적용할 수 있었다.
즉각 참형을 해도 할 말 없는 일.
그런 위험천만한 사기를 친다?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했다.
다른 걸로 사기를 치면 쳤지 이런 걸로 사기를 칠리가 없었다.
아무리 돈에 미쳐도 정도가 있었으니까.
“또한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께서 제안을 거절하신다 한들. 소신은 딱히 손해보는 일이 없사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또한 사실이었다.
시안이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하지 않는다 한들.
사실 시안이 받는 손해는 없었다.
물론 시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손해가 아니기는 염병.
어마어마한 손해였다!
이미 질러버린 매몰 비용이긴 했다만 다시 발굴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그리고 레아와 함께 밤낮으로 복원한 샤를롯의 검술.
그 검술이 지금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이거늘.
이게 손해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 모바일 영주가 이 말을 듣는다면.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예욧!!!》
···라며 기겁을 했을 타이밍이었지만 시안의 생각까지는 읽을 수 없는 노릇.
어쨌거나 시안의 철학으로는 손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손해가 없다, 배짱을 부린 이유는 하나.
“저는 단지 잃어버린 황가의 명맥을 잇고자 도움을 주려한 것 뿐입니다.”
아쉬운 건 그쪽일텐데요? 였다.
나는 그저 황가를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뿐이다.
돈을 요구한 것은 말 그대로 부차적인 일.
그러니까 약간의 수고비 개념.
근본은 결국 황가를 위한 일이다.
뭐, 그럼에도 믿지 못하신다면 어쩔 수 없다.
꼭 증명이 필요하다면 나는 어찌 할 수가 없다.
돈을 주지 않아도 괜찮지만.
정말로, 정말로 괜찮지만.
진짜, 진짜로 진짜로 괜찮지만.
끊긴 황가의 명맥은 이대로 계속 끊기는 수밖에 없다.
이로써 시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
“소신은 폐하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겠사옵니다.”
배짱.
즉, ‘어쩔건데.’ 였다.
“······”
“······”
발루아가와 콘라드의 얼굴이 동시에 멍해졌다.
아닌 척 빙빙 돌려 말했지만 시안이 무얼 말하려는 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의문들을 증명할 수 없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물건을 살지 안살지는 전적으로 구매자의 몫.
그러니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금 나더러 도박을 하라?”
그것도 판돈 1억 5천만 골드짜리 도박을 말이다.
시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발루아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저가 생각하기에도 맞는 말이라 반박을 못하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황제 앞에서 대놓고 도박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으니.
“그, 그런 뜻은 아니옵고···.”
그저 시선을 슬쩍, 피하며 헛기침을 반복할 뿐이었다.
발루아가는 그런 시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승천할 지경이었다.
아마 도박하라는 말만 들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터였다.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서 그쳤을 터였다.
그럼에도 끝내 어처구니가 승천한 이유는 하나.
“······”
생각해보면 시안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도박을 한 번 해보라는 것도.
아니, 생각해보면 황제 앞에서 도박하라니?
세상 어떤 미친 놈이 그런 이야기를 꺼낼까.
그것도 황제의 면전 앞에서 말이다.
일단 발루아가의 기억으로는 그런 귀족은 없었다.
있었다하더라도 지금쯤 존재하지 않지 않았을까.
아니 그래. 뭐, 아무튼.
그건 그렇다치자.
도박의 판돈으로 1억 5천만 골드가 저렴하다는 말도.
그리고 시안이 설마하니 사기칠리가 없다는 것까지.
“······”
솔직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반박은 뭔놈의 반박을 한단 말인가.
물론 그럼에도 일종의 도박인 건 맞았다.
시안이 저렇게 자신있게 나옴에도 발루아가로서 께름칙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황태자인 콘라드는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콘라드는 시안이 말하는 것이 샤를롯 검술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총명한 콘라드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리 믿지는 않을 터.
발루아가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얼추 해볼만한 도박인 건 맞았다.
한 마디로 못 먹어도 해봄직한 승부.
그러나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1억 5천만···.”
1억 5천만이 뉘집 개이름이 아니었으니까!
발루아가는 한동안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안 또한 별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고.
그렇게 적막한 침묵이 알현실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 좋다.”
끝내 발루아가의 입에서 긍정의 말이 들려왔다.
바라본 발루아가의 눈빛은 확고해져있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도 해볼만한 승부였으니까.
물론 1억 5천만 골드가 문제가 되었다만.
내탕금을 끌어모으면 어찌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무엇보다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복원할 수 있다면.
그로써 끊겨버린 황가의 명맥을 이을 수만 있다면.
1억 5천만 골드는 거저나 다름 없었다.
발루아가는 생각을 확신하며 시안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런데 진짜 왜일까.
“그···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추가로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시안의 표정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주저하는 얼굴이 발루아가로 하여금 묘한 불안감마저 느끼게 했다.
“말하라.”
시안은 슬쩍, 시선을 회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복원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예상 시간으로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뭐, 이건 예상하던 바였다.
수 백년 전에 소실된 샤를롯의 검술이 하루 아침 사이에 복원될리가 없었으니까.
대충 2~3년을 예상하고 있던 상황.
1년이면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온 시안의 말은 예상을 꽤나 벗어나있었다.
“하지만 추가 골드를 결제하시면 복원 작업을 상당히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복원 작업을 단축시킬 수 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어느 정도로 단축시킬 수 있지?”
“지금 바로 만나 보실 수···!”
시안은 일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인벤토리에 복원한 검술이 있긴 하다만···.
이걸 그대로 말해도 되나?
그러니까 ‘짜잔,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지금 바로···?”
그대로 사지가 찢길 것만 같았다.
“아니, 3일 안쪽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안은 황급히 말을 바꾸어 대충 그럴 듯한 시간을 제시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3일···?”
발루아가의 표정이 붕, 떠버렸다.
3달이 아니라?
발루아가는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아니, 1년의 시간을 3일로 단축시키는게 가능한 일이던가?
그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또 얼마의 돈이 추가로 필요하고?
“대체 얼마의 골드가 필요하길래?”
“그··· 즉시 완료권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즉시 완료권?”
“말 그대로 즉시 완료해주는 기능이온데. 이 기능을 사용하시면 추가로 2억 골드 정도···.”
띠링!
《지랄하지마요!!!》
그 순간 품 속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알림음.
“야이···!”
그와 동시에 발루아가의 목소리 또한 같이 들려왔다.
다행히 황제의 체면 덕분일까.
그 뒤로 험한 말까지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발루아가는 눈썹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시안을 바라봤다.
복원 작업에 필요한 1억 5천만 골드.
그리고 시간 단축에 필요한 2억 골드.
그러니까 도합 3억 5천만 골드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않은가.
아니, 복원 작업에 1억 5천만인데.
시간 단축에는 왜 2억 골드란 말인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도 정도가 있거늘!
“이런 염병할···!”
발루아가는 끝내 험한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러자 시안이 몸을 움찔, 떨며 발루아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 아니, 생각해보니 1억 골드면 충분할지도···?”
그리고 들려온 시안의 나지막한 목소리.
그 순간 영혼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오르는 어떤 울화.
“하 나···.”
발루아가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발루아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락, 일그러진 발루아가의 표정.
황제의 체면이고, 위엄이고.
나발이고, 염병이고.
“황가의 명맥은 물론, 오늘 루벤 가(家)의 명맥도 같이 끊겨보자꾸나.”
“폐,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콘라드가 황급히 발루아가의 몸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