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24화 (224/322)

224화 - 작위식(3)

듀라크에게서 루슈리아의 기운이 느껴졌다는 시안의 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리아는 눈을 크게 떠보이며 시안을 바라봤다.

“말 그대로야. 방금 듀라크에게서 미묘하지만 루슈리아의 기운이 느껴졌어.”

“그러니까 그게 무슨···.”

지금 장난을 치는 건가?

하지만 바라본 시안의 표정은 장난을 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장난칠 만한 건덕지도 아니기도 했고.

그렇다는 건 시안은 지금 진심이라는 뜻.

“난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그럼에도 아리아는 시안의 말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신성력과 상극인 악(惡).

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장 먼저 아리아가 그 기운을 눈치챘어야했었으니까.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아리아.

악마가 아리아의 감각을 벗어나기란 거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것이 시안이 가장 먼저 아리아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리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 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루슈리아는 소멸했잖아.”

게다가 루슈리아는 소멸했었다.

뮤리엘의 마지막 의지가 깃든 <뮤리엘의 기적 - 신화>.

그 버프와 함께 증폭된 카일의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

그 일격에 루슈리아는 분명히 소멸했다.

“네가 착각한 거 아니야?”

그렇기에 단순한 착각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럴 수도 있는데···.”

시안은 단순히 착각이라 치부할 수가 없었다.

일단 아리아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말.

아이러니하게도 아리아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에 시안은 어떤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악마 7군주가 지닌 악(惡).

그건 아리아조차 감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레아의 말에 따르면 천 년전의 뮤리엘도 불가능했다.

뮤리엘은 물론 다른 아르나이즈들도 기척을 감춘 악마 7군주를 감지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오로지 카일만이 그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소멸된 루슈리아.

‘진짜 소멸한 것이 맞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정말로 소멸한 것이 맞는건가, 라는 의심이 들었다.

소멸은 확신하지만 정말로 소멸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소멸은 했지만 진짜로 소멸하지 않았냐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곰곰히 한 번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이 안되는 소리는 또 아니었다.

그럤다면 처음부터 시안이 루슈리아를 대적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천 년전.

악마 7군주는 이미 6인의 아르나이즈들에 의해 소멸했었으니까.

한 마디로 루슈리아는 천 년전에 소멸한 상태였다.

그러나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시안은 소멸한 루슈리아와 대적했다.

소멸했으나 소멸하지 않은 악마 7군주.

그리고 듀라크에게서 느껴진 루슈리아의 기운.

듀라크와 루슈리아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만일 악마 7군주들이 부활할 수 있는 거라면···.’

그럼 곤란해도 상당히 곤란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존재.

그런 존재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르나이즈들은 물론, 카일마저 어찌하지 못했다는 뜻이었으니까.

혹시 어쩌면···.

카일은 이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카일이 마지막에 마주했던 진실.

레아와 동료들을 버리고 홀로 떠나야만 했던 어떤 진실.

그 진실이 이러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어지는 생각이 흐름.

‘아, 참.’

시안은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스토리 메인 퀘스트] - ‘풀리지 않은 의문’

▶성물을 찾으세요.』

<보상: ????>

.

.

.

다름 아닌 성물을 찾으라는 스토리 메인 퀘스트.

성물이 무엇인지, 또 뭐에 쓰는 물건이지는 모르겠다만···.

“아리아. 혹시 성물에 대해 아는 게 있어?”

“응? 성물?”

시안의 물음에 아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성물은 왜?”

“그냥. 혹시 너희 교단에 성물이라 불리는 게 있어?”

“성물이야 많지. 그런데 네가 무슨 성물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성물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 모양.

시안은 잠깐의 생각을 하고는 다시 물었다.

“악마 제구나 아니면 아르나이즈와 관련된 성물은?”

“악마 제구나 아르나이즈? 음···.”

아리아가 고민에 잠긴 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정확히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뭐야. 몰라?”

“교단에서 관리하는 성유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어떻게 하나하나 다 외워?”

“성녀라며? 네가 관리하고 있는 거 아니야?”

“성녀가 무슨 만능인 줄 알아? 무엇보다 악마 제구도 그렇고 아르나이즈도 그렇고. 모두 천 년전의 것들이라 있는지도 모르겠단 말이야.”

아리아가 눈을 살짝 흘기며 답을 해보였다.

“그럼 있기는 있다는 뜻?”

“아마··· 하나 쯤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로라한테 물어봐야 알 것 같아.”

“로라···?”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나랑 같이 다니는 사제 말이야. 저번에 신성 제국에 왔을 때 만났었잖아.”

“아. 그 분.”

시안은 그때서야 로라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아리아를 보좌하는 여사제.

그리고 아리아의 말마따나 시안이 신성 제국에 갔을 당시 만났던 기억도 있었다.

“로라가 성유물을 관리하거든. 아마 로라가 잘 알거야.”

이윽고 들려온 아리아의 말.

어쨌든 로라에게 물어보면 잘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로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설마 신성 제국에 있는 건···.”

“곧 올거야. 중간에 일이 있어서 잠시 따로 행동했거든. 난 작위식 시간에 맞춘다고 먼저 온 거고.”

아리아는 걱정 말라는 듯 답을 해왔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리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성물에 관해서는 그때 다시 물어봐야할 것 같았다.

“그럼 네가 지금 당장 더 말해줄 건 없다는 거지?”

“그렇지···?”

“알았다.”

시안은 가볍게 답을 하고는 아리아에게서 등을 돌렸다.

“응? 야! 갑자기 어디가!”

그러자 등 뒤로 아리아가 다급히 소리쳐왔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뒤로 돌리며 답했다.

“더 아는 게 없다며.”

“그게 끝이야?”

“그럼?”

시안은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러자 아리아가 살짝,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다.

“그,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또 잘 지냈는지. 이, 이런 안부 같은 건 안 물어봐?”

“굳이?”

“뭐, 뭐?”

“보니까 잘 지내고 있었네.”

어디서 신성력이라도 주워먹은 건지 전보다 더 강대해져있고 말이야.

‘그 때문인지 머리가 아직도 어질하고.’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너, 너 진짜···!”

그러자 아리아가 두 주먹을 꽉, 말아쥐며 시안을 쏘아붙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잔뜩 서운한 표정을 지어보이기까지.

‘왜 저래?’

시안은 순간 뭔가 싶었지만···.

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에그리트 후작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단 말이지.’

정확히는 다른 쪽에 신경이 쏠려있었다.

이곳 연회장에 찾아온 수많은 귀족들은 모두가 시안의 작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한 마디로 시안의 손님.

뭐, 모든 손님들을 응대할 필요는 없었지만···.

‘에그리트 후작은 좀··· 예외지.’

반드시 응대할 손님은 있는 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에그리트를 홀대할 수는 없는 법.

“그럼 로라라는 분이 오면 말 좀 해줘.”

시안은 아리아를 뒤로한 채, 에그리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휑하니 가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야 오는 군.”

시안이 다가가자 들려온 오슬리의 말.

오슬리가 코웃음을 쳐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보다 여인이 먼저라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오슬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리아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시안도 그런 오슬리를 따라 아리아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리아는 정말이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다 못해 파묻혀있었다.

연회장에 있는 사내란 사내는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아리아에게 말을 걸어보고자 서있었다.

이게 시안의 작위식인지.

아니면 아리아의 팬미팅인지 모를 정도.

아리아는 그런 이들을 상대로 한껏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다 쫓아내버리고 싶은데 꾹, 눌러참는 듯한 모습.

그래도 여기가 타국이라는 자각은 있는 걸까.

꽤나 성질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흘깃.

그 순간 아리아의 시선이 시안과 마주쳤다.

이윽고 아리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이내 앞선 남자 귀족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언제 귀찮은 표정을 지었냐는 듯.

청초한 얼굴로 여러 귀족들과 말을 섞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흘깃, 시안 쪽으로 눈짓을 해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자, 봐라. 내가 이렇게 인기 많은 여자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뭐, 그 여인이 성녀라면 이해할만 하다만.”

일순간 들려온 오슬리의 목소리.

바라본 그곳엔 오슬리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아리아와 시안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리아에게 급히 물어볼 일이 있어서 먼저 찾아간 것 뿐입니다.”

“아리아?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인가?”

시안을 바라보는 오슬리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오해와 상상을 하는 것 같았다.

해서 시안이 오해를 정정하려던 찰나.

“아버님. 그만 하시지요. 은인께서 불편해하시지 않습니까.”

그보다 먼저 오슬리를 제지하는 말이 들려왔다.

다름 아닌 오슬리의 아들이자 바텐베르크 가문의 대공자, 벤딩턴.

“벤딩턴님께서도 오셨군요.”

“은인의 경사인데 저희가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시안은 그때서야 벤딩턴과 가볍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오슬리와 벤딩턴과 인사를 나눈 직후.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새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

마치 세상을 통달한 현자와도 같은 노인.

“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제 작위식의 자리를 빚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에그리트 로르실트 후작.

로르실트 가(家)의 가주이자 무려 8위계(位界)에 닿은 대마법사.

듀라크와 쌍벽을 이루는 절대적인 실력자였다.

“이 늙은이가 무어라고.”

에그리트는 가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오슬리와는 다르게 에그리트는 딱히 불편하다는 기색이 없었다.

물론 오슬리도 불편하다기보다는 농담식에 가까웠지만.

뭐, 어쨌든.

“그보다 내가 듣기로 시안 백작. 자네가 어둠의 마나를 다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에그리트가 하얀 수염을 매만지며 조심스레 시안에게 물어왔다.

“역시, 엉덩이 무거운 후작이 그냥 찾아왔을리가 없지.”

그와 동시에 오슬리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말을 거들었고.

시안 또한 오슬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쩐지, 다른 누구도 아닌 에그리트가 움직인다 싶었다.

그리고 에그리트가 방금 언급한 어둠의 마나.

정확히는 시안이 어둠의 마나를 다룬다는 이야기를 에그리트가 알고 있는 이유.

시안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에그리트 옆으로 한 사내가 비쳐보였다.

파란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

“하하···.”

파나트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시안의 시선을 회피했다.

역시나 파나트가 에그리트에게 말한 것 같았다.

지난 날, 북부의 사건에서 만났던 파나트.

파나트는 시안이 어둠의 마나를 다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어둠의 마나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존재의 마음을 제물로 삼는 어둠의 마나.

흑마법을 사용하는 다크 엘프들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되어온 이유가 있었다.

“자네가 심지어 어둠의 마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나 어둠의 마나를 언급하는 에그리트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조심스러울지언정 질책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그 모습에서 시안은 얼추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비단 파나트 뿐만 아니었던 듯 싶었다.

그러니까 어둠의 마나를 연구하는 마법사가 파나트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에그리트를 비롯한 로르실트 가문.

그들에게 있어 주된 화제였던 모양이었다.

뭐,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그러했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진리.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

그 진실을 인간 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

그리하여 모든 섭리를 법칙으로서 정의하고.

모든 진리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어둠의 마나는 아직 미개척된 영역이었다.

그 힘을 다룰 수 없다 알려진 종류였다.

그런 미지의 힘을 시안이 다룬다고 하니.

엉덩이 무거운 에그리트로서도 자리를 들고 일어날 수밖에.

“겉핥기 식으로나마 알고 있는 것뿐입니다. 해박하다, 라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만. 그래도 짧게나마 말씀드리면 사실 어둠의 마나는···.”

시안은 짤막하게 에그리트에게 어둠의 마나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단 손님으로 온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괜히 얼버무리면 상황만 골치 아파질 것이니까.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의 탐구욕은 굉장히 강했다.

원하는 바 혹은 궁구하고자 하는 진실이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마법사들의 습성.

오죽하면 ‘마법사에게 물릴 바에는 미친개에게 물리고 말지’ 라는 말이 있을까.

특히 에그리트 정도 대마법사라면 그 정도는 더했다.

그러니 괜히 얼버무릴 바에는 조금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뭐, 알려준다고 해도 쉬이 사용할 수 있는 종류는 또 아니었다.

시안이야 카일의 마혼제법(魔魂制法)이 있으니 상관 없었을 뿐.

솔직히 시안도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안이 들려주는 이야기.

“세계의 법칙을 설명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 이게 맞았나? 잠시만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 역시, 엘로디가 정리해놓은 지식들을 읊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적혀있는 글자들을 읽는 것이었다.

그런데.

“······!!!”

에그리트는 조금 다르게 들렸나보다.

일순간 에그리트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파나트 또한 두 눈을 찢어져라 떠보였다.

뭐, 지난 번에 파나트에게 해주었던 이야기와 사뭇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이번에 <엘로디의 마탑>을 개방하면서 조금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업그레이드 된 엘로디의 지식.

단순히 읊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무려 10위계(位界)의 대마도사이자.

엑시드(Exceed)의 아르나이즈, 엘로디가 정립한 지식이었다.

그런 엘로디의 지식들이 시안의 입에서 술술, 나오고 있으니.

“어, 어찌 이런···!!”

에그리트로서는 눈을 찢어져라 떠보일 수 밖에.

“그, 그럼. 그럼···! 어둠의 마나가 갖는 광기는 본질의 궤도가 다르다는 뜻인가?”

이윽고 에그리트가 한껏 흥미로운 표정으로 시안에게 물어왔다.

마법사로서의 탐구욕이 발동된 모양.

어째, 대충 떼어내려다 더 심하게 얽혀버린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말을 섞었다가는 괜히 복잡하게 될 터.

시안은 에그리트를 떼어낼 생각으로 그냥 되는대로 말을 내뱉었다.

“죄송하지만 그 이후의 지식은 그··· 추가 결제가 필요한지라···.”

“······?”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에그리트의 표정이 붕, 떠버렸다.

정확히는 에그리트는 시안의 말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제라니?

그것도 뭔 놈의 추가 결제?

설마 돈을 결제하다, 할 때의 그 결제?

그러니까 돈을 내야 그 이후의 지식을 들을 수 있다?

에그리트는 지금 자신이 이해한 말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이건 또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멍한 에그리트의 눈빛.

“크흠.”

시안은 슬쩍, 시선을 회피하며 헛기침을 해보였다.

뭐, 에그리트를 떼어낼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긴 했다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내뱉은 말은 또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의 지식을 얻으려면 정말로 골드가 필요했으니까.

상위 등급의 엘로디 지식은 열람하고 싶다고 열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연구소에서 관련 지식들을 연구할 필요도 있었고.

또한 엘로디의 연구소의 자체 레벨도 올려야만 했다.

새로운 지식 열람을 위해서 여러모로 골드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러니까 추가 결제가 필요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추가 결제가 없어도 말해줄 지식들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솔직히 귀찮으니까!

상대가 에그리트고 나발이고.

시덥지도 않은 마법 강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기사가 마법사에게 마법적 지식을 가르친다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게다가 공짜로 말해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얻은 지식들인데 그걸 술술, 내뱉는단 말인가.

물론.

“어, 얼마··· 정도가 필요하나?”

결제를 한다면야 이야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에그리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어처구니 없는 심정이었지만 그 안에 깃든 것은 분명한 관심.

어째,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잠깐··· 이거.’

생각 외의 반응이 있었다.

시안은 눈을 반짝거리며 곧장 말을 내뱉었다.

“얻고자 하는 지식의 수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만···.”

시안은 말을 흐리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엘로디의 연구소에서 연구한 지식들.

여기에 <엘로디의 마탑>을 개방한 비용이랑─.

“······”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던 시안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대충 견적이 나오긴 했는데···.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말하면 엘란두르와 더불어 로르실트까지 적으로 돌아설 것 같은데.

제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 모두를 적으로 돌려버릴 것 같은데.

여기에 샤를롯의 검술 복원으로 콘라드에게 뜯어낼···.

아니, 얻을 골드까지 생각하면···.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거 아니야?’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기에 심히 주저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시안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는 뭐, 깊게 생각했었나.

시안은 저도 모르게 살짝,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열었다.

“기본 1억 골드 정도···.”

우뚝.

그러자 이런 소리가··· 들려온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마냥 착각만은 아닌 것이, 실제로 에그리트의 움직임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파나트의 입은 쩌억, 벌어진 채 멈춰있었다.

“······ 미친놈.”

그 옆에서 들려오는 오슬리의 말.

오슬리는 정말이지 미친놈 보는 듯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오슬리 옆의 벤딩턴.

얼핏 무례한 오슬리의 말이었지만 벤딩턴은 이번만큼은 나서지 않았다.

“1···억?”

벤딩턴도 오슬리와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1억 골드라니···?

심지어 기본이란다.

그러니까 기본으로 1억 골드를 깔고 간단다.

그 말은 그 이상의 금액을 더 결제해야할 수도 있다는 뜻.

한 번도 결제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결제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

어쩌면 2억, 3억을 넘어설 수도 있었다!

물론 로르실트 가문에 억 단위의 골드가 없겠냐만은.

아무리 그래도 순순히 내뱉을 규모의 금액은 절대 아니었다!

소리 없는 충격이 내려앉았다.

오슬리와 벤딩턴은 여전히 미친놈 보듯 시안을 보고 있었고.

에그리트와 파나트는 여전히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았다.

띠링!

그리고 품 속에서 들려오는 알림음.

《인과를 소모한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아, 안대···! 넘어가지 마요!! 에그머니!!》

《안대애애애!!!》

모바일 영주가 기겁을 하는 알림창이 화면 가득히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에그머니가 아니라 에그리트였지만···.

뭐, 아무튼.

“곧 작위식이 시작됩니다! 귀빈 내외 분들은 행사장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순간 연회장의 문이 벌컥,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곧 작위식이 시작되려는 모양.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다시 말씀해주시죠.”

시안은 걸음을 옮겨 연회장 밖으로 나섰다.

#

작위식은 다름 아닌 크나큰 행사장에서 행해졌다.

정확히는 지난 날, 건국일 행사에서 조디악 소드의 선택이 이루어졌던 행사장.

수 천명은 물론 수 만명은 가볍게 수용할 정도의 커다란 행사장이었다.

시야 빼곡히 자리한 수많은 귀족들.

시안은 행사장의 가장 앞선 곳.

그리고 단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홀로 자리해 있었다.

시안은 슬쩍, 행사장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해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들은 역시나 오슬리와 벤딩턴.

그리고 에그리트와 파나트였다.

다만, 오슬리와 벤딩턴은 묵묵히 자리해있는 반면.

에그리트와 파나트는 서로 숙덕숙덕,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다음으로는 아리아.

아리아는 왜인지 토라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물론 얼굴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리아 옆에서 한 여사제가 아리아를 달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이는 역시나 듀라크.

‘아까 떠난 게 아니었나?’

듀라크는 어째서인지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 떨어진 늑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한 쪽에 묵묵히 자리해있었다.

시안은 감각을 집중하며 듀라크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듀라크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시안의 시선을 느낀 모양.

시안과 듀라크의 시선이 잠시나마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그리고.

‘조금 더··· 짙어졌어?’

시안은 아까보다 조금 더 짙어진 루슈리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듀라크가 기세를 발산하고 있지 않음에도 잔재된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께서 드십니다!!”

행사장 전체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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