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 성장과 발전(1)
영주성 Lv.4에 위치한 연무장.
시안은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켄드릭은 짙은 어둠을 피워올리며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마스터 상급의 데스 나이트, 켄드릭.
쇄도한 시안의 검이 켄드릭을 향해 날아들었다.
켄드릭은 그때서야 검을 형상화하며 휘둘렀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검과 검이 맞닿기 직전, 시안이 검의 궤적을 틀어 마혼무영보를 밟았다.
사아아─!
기이한 소리와 함께 시안의 몸이 어둠이 되어 흩어진다.
켄드릭은 휘두른 검을 곧바로 어둠으로 흩어버렸다.
스으으─!
흩어진 켄드릭의 어둠이 다른 한 쪽 손을 휘감았다.
다시 하나로 뭉쳐진 어둠은 방패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충돌음이 일었다. 휘둘러진 시안의 검은 켄드릭의 방패에 가로막혔고.
켄드릭은 그 충격에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
켄드릭의 검푸른 안광이 크게 일렁였다.
전보다 빠르고 또 신묘해진 시안의 움직임.
눈을 현혹하는 움직임이었으나 감각으로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모습.
파츠츠─!
형상화 한 방패에 가느다란 실금이 새겨져있었다.
거미줄과 같은 새하얀 실금은 그 사이로 짙은 어둠을 내뱉고 있었다.
시안의 일격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한 것.
그렇기에 이건 막았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방패와 함께 후드려 맞았다, 라고 표현함이 바람직했다.
방패 너머에서 다시금 검은빛이 번쩍였다.
시안의 몸이 다시금 어둠으로 흩어지며, 안 쪽으로 예리한 검날이 쏘아졌다.
보이는 것은 찌르기였다. 그러나 검의 궤도가 일순간에 바뀐다.
휘둘러지는 커다란 참격. 그것은 흉측한 짐승의 발톱을 연상케 했다.
이대로 막기만 해서는 안된다.
켄드릭은 균열이 새겨진 방패를 흩어버렸다.
흩어진 어둠은 커다란 도끼가 되어 전방위를 휩쓸었다.
연달아 휘두른 도끼의 일격이 짐승의 발톱을 찢었다.
시안과 켄드릭 사이에 쉼없이 어둠이 터져나왔다.
콰르르릉···!
충격을 버티지 못한 연무장의 한쪽이 무너져내렸다.
꽈아앙!
공간이 진동하는 듯한 착각.
일순간 시안의 시야가 뒤흔들렸다.
‘달라.’
지금 검을 마주대고 있는 켄드릭.
시안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켄드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기존 켄드릭과의 대련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느껴졌다.
켄드릭은 시안을 상대로 어느 정도 힘을 조절하며 싸웠으니까.
약간의 틈도 허용해주기도 하며.
일부러 허점을 노출시켜주기도 하며 시안과 대련을 이어나갔었다.
대련보다는 어떤 가르침이라 볼 수 있었다.
그간 켄드릭과 했던 대련은 일종의 지도 대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달랐다.
한 단계 진보한 시안의 성장.
초월 등급으로 강화한 장비.
파바바박!
켄드릭에게는 더 이상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켄드릭은 일말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켄드릭은 지금, 시안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꽈꽝!
격한 폭발음와 함께 켄드릭이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와 함께 내보인 것은 비죽비죽, 가시가 돋아난 거대한 쇠공.
휘둘렀던 도끼는 어느덧 거대한 철퇴가 되어 시안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시안은 황급히 몸을 비틀어 마혼무영보를 밟았다.
꽈아아아앙!
내려찍힌 연무장의 바닥이 움푹, 파이며 터져나갔다.
지반이 통째로 무너져내리며, 연무장의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땅이 그대로 터져나간 듯한 광경.
거대한 구멍 안 쪽에서 시커먼 어둠이 솟구쳐올랐다.
잠식하는 어둠 속에서 켄드릭의 검푸른 안광이 일렁거린다.
시안은 고민하지 않고 켄드릭과의 거리를 좁혔다.
좁혀지는 거리 사이로 거대한 대검이 시야를 가득히 덮어왔다.
그 짧은 순간, 다시 대검으로 무기를 바꾼 켄드릭.
그러나 피하지 않는다.
시안은 휘둘러져오는 거대한 대검을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꽈──앙!
거대한 힘의 충돌에 공간이 크게 진동해왔다.
연무장 전체가 크게 떨리며 부서진 잔해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맞닿은 검과 대검. 시안은 검을 끝까지 휘둘렀다. 콰드드득! 밀어붙인 검이 켄드릭을 뒤로 물러나게했다.
당황하는 켄드릭의 안광이 크게 타올랐다.
그 틈을 비집으며 시안의 몸이 움직인다. 마혼무영보를 밟으며 몸을 어둠으로 흩어버렸다. 일시에 켄드릭의 뒤를 점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껏 자세를 낮추며 휘둘러지는 시안의 검.
켄드릭이 황급히 대검의 궤적을 틀었다.
콰쾅!!
켄드릭의 신형이 뒤로 멀리 날아갔다.
켄드릭의 몸이 연무장의 벽에 부딪히며 콰앙! 크게 떨려왔다.
-어찌 이런···!
부서진 잔해 속에서 걸어나온 켄드릭의 안광이 크게 떠졌다.
급하게 궤적을 틀어버렸으나 그럼에도 온전히 힘이 실린 일격이었다.
그러나 밀렸다.
명백한 힘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잠깐이지만 켄드릭이 느낀 시안의 힘은 그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하고 또 거대했다.
게다가 시안이 휘두르는 저 검.
저 검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켄드릭의 어둠이 저 검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었다.
거기에 말도 안되는 성장을 한 시안의 수준은 또 뭐란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전력을 다함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면 당할 수가 있다는 예감이 머릿속에서 떨쳐내지지 않았다.
부릅, 떠진 켄드릭의 두 눈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일순간 시안이 검을 휘둘러 풍경을 베어냈다.
베어낸 풍경 사이로 새까만 어둠이 새어나온다.
이윽고 공간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며, 새로운 풍경이 창조된다.
세상의 윤곽이 붕괴하며 모든 것들이 마(魔)로 화한다.
그리하여 펼쳐지는 지옥도(地獄圖).
시안은 검을 휘둘러 하나의 지옥을 만들어내었다.
그 사이로 비친 시안의 모습은 결코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어둠.
악귀보다 더 악독한 악귀.
위험하다. 그리고 저건 상대할 수 없다.
완성되기 전에 제지해야한다.
켄드릭에게서 불길한 어둠이 피어올랐다.
전신에서 솟구친 어둠이 지옥도로 스며들며 잠식된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켄드릭은 로즈웰과 네이슨과는 다르다.
마스터 상급이자 천 년의 데스 나이트.
심지어 켄드릭은 가진 바 모든 힘을 다하고 있었다.
켄드릭에게서 피어난 어둠이 지옥도를 잠식한다.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선사했지만, 어둠을 다루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검은빛이 반짝이며, 시안의 몸이 사라진다.
어둠에 몸을 맡긴다. 어둠이 공간 전체를 휩쓴다. 꽈앙! 어둠이 터진다.
크게 뚫린 구멍 사이로 켄드릭의 모습이 비쳐보인다. 다시 어둠이 순식간에 메워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펼쳐진 지옥도가 일시에 타오른다.
지옥도를 휘감은 어둠이 바닥으로 내리깔린다.
참된 주군을 맞이하듯. 드리우는 힘에 경배하듯.
피어난 어둠이 일시에 바닥으로 내리깔리며 흩어진다.
전신에 가득한 마(魔)의 기운이 모조리 터져나온다. 모든 혈관마다 끔찍한 어둠이 흐른다.
덮쳐오는 어둠. 소름끼치는 예기.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 없는 무엇.
팟!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시안과 켄드릭의 움직임 또한 멈춰있었다.
시안의 검은 켄드릭의 옆구리 바로 앞에서 멈춰있었다.
켄드릭의 검은 시안의 어깨를 파고들며 멈춰있었다.
푸확─!
붉은 선혈이, 시안의 어깨를 비집으며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그와 함께 끔찍한 통증이 전신으로 휘몰아쳤다.
“크학···!”
시안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 주군! 괜찮으십니까!
켄드릭이 황급히 검을 거두며 시안을 부축했다.
어깨를 파고든 검이 사라지자 시뻘건 피가 더욱 크게 터져나왔다.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피를 보아하니 잘려나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다행히 잘려나가진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켄드릭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어깨가 잘려나갔을 터.
-시안!! 괘, 괜찮아?!
레아가 기겁을 하며 시안에게로 날아들었다.
연무장 한 쪽에서 대련을 지켜보던 레아.
-세상에! 세상에! 어쩜 좋아! 이를 어쩜 좋아!
레아가 어쩔 줄 몰라하며 시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괜찮··· 아요.”
시안은 통증을 억누르며 그런 레아를 진정시켰다.
물론 괜찮다, 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할 수준은 또 아니었다.
어깨가 거진 잘려나갈 뻔한 상태이긴 했다만 그래도 잘려나가진 않았으니까.
그 덕분에 세계수의 축복 효과로 인해 점점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시안의 답에 레아는 안심을 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고개를 홱, 돌려 켄드릭을 향해 쏘아붙였다.
-켄드릭!!!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일순간 터져나오는 짙은 사념(死念).
아무래도 레아가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켄드릭은 그저 고개를 푹, 숙여보일 뿐이었다.
-시안이 크게 다쳤잖아! 중간에 멈출 수도 있었는데 지금 이게 뭐야!
-중간에 멈춰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제가 되려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켄드릭의 말에 레아가 회백색의 눈동자를 치켜떠보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켄드릭을 책하지는 않았다.
레아 또한 대련을 지켜본 바, 켄드릭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한 끝 차이의 싸움.
그 끝에 승리한 건 켄드릭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베어지는 건 시안의 어깨가 아닌 켄드릭의 옆구리였을 터였다.
그 때문에 켄드릭의 안광은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놀람, 경악, 당황.
갖가지 감정이 섞인 안광이 투구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주, 주군··· 대체 어떻게···.
켄드릭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은 뭐라도 대꾸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끄윽···!”
차오르는 통증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점점 아물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 얕지만은 않은 상처.
-기, 기다려 내가 금방 엘리를 불러올게!
레아가 황급히 연무장의 뚫으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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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다 끝났어요. 어떻게··· 좀 괜찮으세요?”
엘리의 말에 시안은 가볍게 어깨를 돌려보았다.
잘려진 부분은 완벽하게 붙어있었고.
역시나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이전보다 더 활동하기 편한 기분이었다.
“완벽해.”
시안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엘리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금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보다 대련을 어떻게 하셨길래 이렇게 다치신 거예요?”
“좀··· 격렬하긴 했지?”
-죄송합니다 주군.
시안의 멋쩍은 웃음에 한쪽에서 켄드릭의 말이 들려왔다.
켄드릭은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 시안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레아가 팔짱을 낀 채, 켄드릭을 흘겨보고 있었다.
“괜찮아. 최선을 다한 건데 죄송하긴 무슨.”
-하지만···.
“됐어. 오히려 현재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시안의 말에도 켄드릭은 여전히 죽을 죄를 지었다는 안광을 일렁이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해봤자 똑같을 것 같았다.
해서 시안은 그냥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이 이상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어.’
마스터(Master)의 경지와 더불어 초월(超越) 등급으로 강화한 검.
현재 시안은 켄드릭이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듀라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시안은 듀라크와도 대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리는 듀라크.
듀라크의 수준은 켄드릭보다 약간 우위를 점할 정도라 추측되었다.
직접 검을 맞대어본 적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시안은 켄드릭과 한 끝 차이로 시안이 패배하긴 했었다.
듀라크와의 승부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도 조만간이었다.
[마혼제법(魔魂制法) 진행률 100%]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상급 진행률 56.8%]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진행률 84.9%]
현재 시안의 진행률.
상급의 마혼수라검은 벌써 절반을 넘어서 있었고.
마혼무영보는 벌써 84%를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나 마혼제법(魔魂制法)은 100%를 달성하여 수료한 상태였다.
그로 인해 마(魔)를 다루는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황.
‘엘릭서의 힘도 곧 흡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릭서의 힘도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 보유 중인 마일리지] - 1,123,220 M
여기에 현재 보유 중인 약 110만 마일리지.
이 마일리지면 엘릭서와 같은 『특수품목』의 물건을 하나 더 살 수 있었다.
더불어 초월 스킬인 <멸살(滅殺)>.
아르나이즈 특전인 <뮤리엘의 축복>.
이 두 버프를 사용한다면 듀라크를 충분히 대적할 수 있었다.
대적은 물론 어쩌면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륙 제 1의 검을 압도한다.
피식.
시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둔재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거늘.
지금은 듀라크를 대적하네 마네로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하려면 모바일 영주가 기절하지 않아야했다.
하지만 뭐, 그건 지금 당장 걱정이 없었다.
시안은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진짜··· 진짜 너무해···!》
그러자 화면 가득히 떠오르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
정확히는 알림창이라기보다는 어떤 중얼거림 같았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데. 혼자서 막. 막 저 인과를 버티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기절했냐니. 왜 버티지 못했냐니. 그런 소리나 하고.》
《흥! 그러면 시스템이 와서 견뎌보시든지!》
《대체 어디서 저런 인과를 끌어모으는지 진짜···.》
《저 정신 나간 인간을 상대하는 게 진짜, 지이인짜 힘들다는 걸 알기는 한 걸까?》
《아니, 아마 모를 거야. 모르니까 그런 보상을 해주었겠지!》
《그러니 VVIP 우대라는 이상한 소리를 해댔겠지!》
《시스템은 바보! 시스템 똥멍청이!》
《시스템 미워!》
쉼없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
“······ 뭔데?”
시안은 순간 뭔가 싶었지만.
띠링!
《말 걸지 마욧!!》
모바일 영주가 버럭, 소리치며 알림창을 띄워보냈다.
시안은 순간 움찔, 몸을 떨어보였다.
《뭐요! 뭐가요!》
《화난 모바일 영주 처음 봐요?!》
어째, 삐져도 단단히 삐져버린 모양.
저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뭐···.
모바일 영주가 저러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이럴 땐 화가 풀릴 때까지 가만 두는 게 상책.
무엇보다 시안도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고객센터 문의로 즉시 완료권을 받아내었지만 단지 그 뿐.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122,000 G
강화에 소모된 1억 1,800만 골드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갑옷을 초월 등급으로 강화하는데 필요한 예상 골드는 약 1억~2억.
하지만 남아있는 골드는 12만 골드 가량.
“이 돈을 또 어디서 구하지···.”
여유는 무슨,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는 상황이었다.
《에엣? 이 느낌은···?》
그 순간 떠오른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
띠링!
《강화를 하고 싶으시면, 현질을─.》
꾹.
시안은 스마트 폰의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럼에도 띠링! 소리가 들려왔지만 읽지도 않고 품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윽고 시선 들어 바라본 시야.
엘리는 치료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레아는 켄드릭을 흘겨보며 뭐라뭐라,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켄드릭은 그런 레아에게 묵묵히 혼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야 끝.
“도련··· 님?”
한스가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안을 담고 있는 연무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켄드릭과의 대련으로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연무장.
연무장이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아작이 나있었다.
원래라면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야 했건만.
[현재 보유 중인 골드] 122,000 G.
역시나 복구할 골드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던 참이었다.
시안과 켄드릭, 서로 간에 진심을 다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그 여파로 주변이 박살이 나버리는 것도 그렇고.
‘켄드릭과의 대련은··· 이제 조금 자제해야겠는데.’
시안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한스를 불렀다.
“한스, 여긴 어쩐 일이야?”
“아. 그게 말입니다···.”
시안의 말에 한스가 그때서야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리고는 부서진 잔해들을 비집으며 시안에게 다가와 품 속에서 2장의 종이를 건넸다.
“도련님 앞으로 온 서신입니다.”
다름 아닌 시안 앞으로 온 서신이었다.
“서신?”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스가 건네는 서신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확인한 발신인.
하나는 황가에서 온 서신이었다.
“황가···? 아. 맞다.”
시안은 그때서야 콘라드에게 보냈던 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샤를롯의 검술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는 샤를롯의 검술과 1억 5천만 골드에 관한 이야기.
마침 초월 갑옷의 강화 비용이 부족했던 찰나.
그리고 <샤를롯의 전장> 또한 미리 지어놓았겠다.
시안은 곧바로 서신을 뜯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한 내용은.
“작위식을 하겠다고?”
예상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다름 아닌 백작위에 대한 작위식.
그 작위식을 진행할테니 준비를 마치고 황궁으로 오라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물론 작위식에 관련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샤를롯 대제의 검술에 대한 이야기는 황궁에서 만나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
“음···.”
명쾌하게 주겠다는 말은 없었다.
하기사, 1억 5천만 골드는 그렇게 쉽게 지출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 주겠다는 말도 없는 것으로 보아 콘라드도 상당히 고민되는 모양.
“어차피 작위식을 하긴 해야했으니까.”
무엇보다 엘란두르에게 선빵을 치려면···.
아니, 그러니까 영지전을 신청하려면 직접 황궁으로 가야했다.
한 번은 황궁을 가야했던 일.
겸사겸사 작위식까지 치르고 돈까지 받아오면, 되려 일을 할 번에 처리하는 것이니 나쁠 건 없었다.
“보자··· 작위식이··· 2주일 남았네.”
루벤에서 황궁까지 가는 시간.
그리고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었다.
“바로 움직여야겠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신을 접었다.
이윽고 시안은 또 다른 서신의 발신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의외인 곳에서 온 편지였다.
다름 아닌 신성 제국.
“아리아?”
성녀, 아리아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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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섬기는 자들이 모여 이룩한 국가, 신성 제국 루테아.
그런 루테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
“로라, 이 옷은 어때?”
루비 색이 돋보이는 화사한 드레스.
아리아가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보였다.
청초한 아리아의 백금발이 휘날리며 드레스 또한 펑퍼짐하게 퍼져나갔다.
아리아의 백금발과 드레스의 루비 색이 조화를 이루며 상당히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기에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초월적인 아리아의 미모까지.
아니나 다를까 교황청 소속의 디자이너가 넋을 놓고 아리아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아리아를 보좌하는 여사제, 로라.
로라가 살짝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름다우세요. 성녀님, 루비 색이 생각보다 잘 받는데요.”
“그래?”
그러자 아리아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럼 루비 색을 베이스로 한 이 드레스는 어때?”
그리고는 다른 드레스를 펼쳐보이며 로라에게 물어왔다.
로라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시간 째인지.
물론 로라 또한 여러 옷을 고르고 또 입어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어떤 옷이 예쁠지, 어떤 색이 잘 받을지.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것.
그 고민의 과정은 여인으로서 하나의 즐거움이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지쳤다.
“아니면··· 조금 더 짙은 적색의 옷도 괜찮으려나?”
아리아는 뭘 입어도 상관 없었으니까.
어떤 옷이 예쁠지, 어떤 색이 더 잘 받을지.
아리아는 전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디자인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
아리아는 거적더기를 입어도 그 자체로서 빛이 났으니까.
애초에 아리아의 미모를 돋보이게 할 옷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장인이 한땀한땀 수놓은 드레스를 입어도 아리아가 입으면 그냥 평범한 드레스가 될 뿐.
아리아에겐 딱히 꾸민다, 라는 과정이 일체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 미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저 미모를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을 해도 결국 남는 건 아리아의 미모뿐.
그렇게 몇 번의 과정을 걸쳐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다.
오직 시안이 선물로 준 장신구.
저 장신구만이 아리아의 미모를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그 색깔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러니 지루할 수밖에.
“그래? 그럼 잠깐만, 바로 입어볼게.”
그런데 아리아는 잔뜩 신이 난 얼굴을 해보일 뿐이었다.
평소에는 옷 좀 골라입는 게 어떻냐, 조금 꾸며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
그렇게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거늘.
“그렇게 좋으세요?”
“응? 뭐가?”
갑작스러운 로라의 물음에 아리아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안 공자님 작위식에 가시는 거 말이에요. 그 때문에 이렇게 옷을 고르고 계신 거 잖아요.”
“누, 누가 좋아했다고 그래? 그냥··· 간만에 외출이니까···.”
그러자 아리아가 당황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평소 외출할 때는 씻지도 않고 나가시면서?”
“그거야 귀찮으니까···.”
“그보다 더 귀찮은 걸 지금 몇 시간 째 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신 거죠?”
“······”
아리아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것이 어떤 변명의 말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타, 타국에 가는 거니까! 괜히 누추하게 보였다간 신성 제국의 이미지가 깎일 수 있잖아! 그, 그래! 귀찮더라도 내가 조금 고생해야지.”
그러면서 아리아가 성큼, 탈의실로 걸어갔다.
자기가 내뱉고도 적절한 변명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새어나오는 웃음.
“어련하시겠어요.”
정말이지 알기 쉬운 성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