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14화 (214/322)

214화 - 비자금...?(1)

“괜찮단다 시안. 모두 괜찮아질거야.”

시안의 어머니, 세실이 시안에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포근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또 이 꿈이냐.

시안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죽었다.

이건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그리운 그때의 꿈.

그보다 나 기절했나보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안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로즈웰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건 정신을 잃었다는 뜻.

어떻게 되먹은 게 툭하면 기절하는 것 같냐.

뭐, 이번엔 그럴 만 하긴 했다만.

그런데 이 꿈, 이번이 몇 번째더라?

세실이 죽고 난 이후에 수없이 많이 꾼 꿈이었다.

그러나 루벤의 영주가 된 이후로는 그다지 꾸지 않았던 꿈이었다.

아마··· 이번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그 쯤 되었던 것 같은데.

“엄만 괜찮아. 우리 시안이 있으니까 엄마는 끄덕 없단다.”

이윽고 세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 목소리.

시안은 생각을 멈추고 세실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어질 세실의 말을 또 가만히 기다렸다.

“괜찮단다. 모두 괜찮아 질 거란다.”

역시 달라지지 않은 내용의 꿈.

“시안.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렴. 이는 시안이 귀족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다.”

엄마는 할 수 없지만···.

미소 지은 세실의 고개가 살며시 아래로 떨구어졌다.

시안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이 꿈을 꿀때마다 보는 모습이었지만.

볼 때마다 참 씁쓸해지는 모습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세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세실을 꼬옥, 안아주었다.

이 꿈 속의 시안은 어릴 때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안의 덩치는 상당히 작았건만.

왜인지 품에 안은 세실의 몸은 너무도 가녀리게만 느껴졌다.

“네. 꼭 그럴게요.”

이어진 시안의 말에 품에 안은 세실이 살짝, 놀라 보였다.

시안은 그런 세실에게 살며시 놓아주었다.

그리고 세실의 옆에 앉았다.

“그보다 어머니.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거 기억나세요? 저 루벤이라는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는 이야기요.”

시안의 말에 세실의 고개가 좌로 기울어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실은 처음 듣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번 꿈에서의 세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안은 세실에게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세실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워요 어머니.”

세실이 이번엔 눈을 크게 떠보였다.

역시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 있었니?”

세실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뇨. 그냥··· 그냥 언제고 이 말을 해드리고 싶었어요.”

세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 시안이, 언제 이렇게 철이 들었지. 곧 장가 가도 되겠는 걸?”

세실은 금새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나 그 모습은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시안은 그런 세실을 바라보다 툭, 말을 내뱉었다.

“저 로즈웰과 네이슨이랑 싸웠어요.”

일순간 세실이 흠칫, 몸을 떨어보였다.

시안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상당한 놀람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보이는 걱정 어린 눈빛.

시안은 그런 세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세실의 모습.

그래서 꿈이란 참으로 야속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잊을 만하다 싶으면 그 기억을 끄집어 내니까.

가장 바라고 바라던 기억.

그 기억 속에 평생토록 있고 싶어하게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소원을 이야기할 때 꿈을 꾼다, 라고 말하는 것일까.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금 꾸고 있는 이 꿈.

이 꿈이 왜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지를.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와 시안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지를.

꿈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시안이 무의식으로 다시 찾아가는 것일 뿐.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기억 속의 세실을 끄집어 내는 시안의 무의식적 바람이었다.

“어머니.”

시안은 나지막히 세실을 불렀다.

세실은 고개를 다시 한 번 기울이며 시안을 바라봤다.

과거,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추억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었고.

오로지 트라우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

시안에게 그나마 추억이라 부를 수 있는 과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꿈.

“무슨 일이니?”

바로 지금 세실의 모습.

언제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세실과의 추억.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시안은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과거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이에겐 그저 미래를 가리는 기억.

로즈웰과 네이슨.

시안은 그 둘과의 격전 속에서 과거에 얽매인 스스로를 끊어내었다.

더 이상 어린 시안을 찾아가지 않겠다, 그리 약속했다.

그리하여 시안이 뒤돌아보지 않을, 마지막 기억이자 추억.

“저 이제는 이곳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시안은 세실에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세실이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시안은 그런 세실에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까 말씀드렸죠. 저 루벤이라는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고요. 처음엔 무슨 그딴 쓰레기 같은 영지가 다 있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참··· 이게 믿기지 않겠지만요···.”

세실은 여전히 놀란 눈을 뜨고 있었다.

지금 시안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동안의 일을 세실에게 말해줄 뿐이었다.

스쳐지나온 수많은 사건들.

그 속에서 시안이 느끼고 깨달은 일들.

참으로 기나긴 이야기였다.

그러나 세실은 한 번도 말을 끊지 않고 시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니, 끊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끊을 수 없었던 것인지.

그건 모를 일이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세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시안은 그런 세실을 가만히 기다렸고.

“우리 시안. 정말 멋진 영주가 되었구나.”

이내 세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시선.

세실이 다시 한 번 말을 이었다.

“시안, 미안하구나. 이 못난 어미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리고 고맙구나···.”

세실이 손을 들어 시안의 볼을 쓰다듬었다.

한낱 꿈 속에 불과하거늘.

세실의 손에 담긴 따뜻한 온기가 볼 전체로 느껴졌다.

“이렇게 멋진 아들의 어머니로 살게 해주어서, 정말로 고맙단다 시안.”

참···.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다.

시안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시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은 결국 꿈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과거다.

그래,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과거.

미래를 가리는 기억일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과거를 딛고 일어섰을 때는.

“아뇨.”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기억이기도 했다.

“저야말로. 어머니의 아들로 살게 해주어서 정말로 감사해요.”

시안의 말에 세실이 다시 한 번 놀라보였다.

하지만 이내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아들 정말 다 컸네.”

“그럼요. 저 로즈웰이랑 네이슨과 싸워서 이겼다니까요?”

이어진 시안의 답에 세실이 풉, 하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안도 그에 따라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무엇보다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닌 걸요.”

시안과 세실은 그렇게 한동안 웃어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웃는 세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아아아···.

꿈이 꿈처럼 흐른다.

이제 슬슬 깰 때가 된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을 기준으로 세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다시는 이 꿈을 찾지 않을 것이다.

시안은 세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힘들 때마다 제 옆에 계셔주셔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 곁에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마지막 시안의 말에 세실이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안.”

그리고 이어지는 세실의 말.

“그 무엇이든, 네가 옳다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 방향을 확신하렴.”

먼지처럼 사라지는 세실의 모습.

“속도는 중요하지 않단다.”

이윽고 부유하던 정신이 되돌아온다.

“으음···.”

시안은 아찔한 두통을 느끼며 의식을 붙잡을 수 있었다.

멍한 정신.

의식은 돌아왔으나 정신은 아직 몽롱했다.

시안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몇 번 꿈틀거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되돌아오는 정신에 시안은 천천히 두 눈을 떠보였다.

그리고 보인 것은 낯선 천장.

침대에 누워있는 몸.

“도, 도련님···?”

마지막으로 익숙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보인 것은 5평 정도 될 법한 적당한 크기의 방.

그리고 그 방 한쪽 어귀에 놀란 눈을 뜨고 있는 한스의 얼굴이 있었다.

“저, 정신이 드십니까?”

한스가 놀란 눈을 뜬 채로 시안에게 다가왔다.

그런 한스의 손에는 깨끗한 천이 들려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윽···!”

하지만 전신을 강타하는 통증에 시안은 다시 침대에 몸을 쳐박을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워낙에 상태가 안 좋았던 터라··· 루벤에서 가져온 물품들로 치료를 하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루벤이 아니다보니···.”

한스가 황급히 다가와 시안의 몸을 살폈다.

시안은 통증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있었어?”

“오늘로 1주일 째입니다.”

“1주일···.”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마냥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루벤이었다면야 하루면 깨어났을 테지만.

하여간, 그렇게 수련을 했는데도 툭하면 기절하고 나자빠져있으니···.

“아, 맞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시안은 퍼뜩,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그레이슨은? 그레이슨은 괜찮아?”

“······”

이어진 시안의 물음에 한스의 표정이 일순간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들려온 시안의 말.

시안은 1주일 간 기절해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

지난 1주일 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장 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물은 것은 그레이슨, 영지민의 안위.

.

한스는 멍하니 시안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슨은 지금 괜찮습니다. 도련님이 제때 응급처치를 해주신 덕분에 말입니다. 하지만 워낙 부상이 심한 터라, 치료사 말로는 광대뼈가 어긋난 후유증이 있을거라 합니다만··· 루벤에 가서 다시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한스의 답에 시안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에 상태가 위중했던 탓에 걱정이 되었었는데.

그래도 치료약과 포션을 아낌없이 들이 부은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 참. 로즈웰이랑 네이슨은? 어떻게 되었어? 여긴 어디고? 난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고?”

그리고 그때서야 지난 1주일 간의 공백을 물었다.

“······”

다시 한 번 멍해지는 한스의 표정.

정말이지 시안답다면 시안다운 모습.

“그것이···.”

한스는 시안에게 그간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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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시안이 과거의 기억을 끊어내며 아수라(阿修羅)를 시전한 직후.

그러니까 시안이 기절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스는 시안을 금방 찾아왔다고 한다.

숲과 산 전체를 진동시켰던 어마어마한 위력.

격돌의 현장이 어디인지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장을 찾아온 한스는 쓰러져있는 3명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기절한 시안.

“제가 확인했을 땐··· 둘은 이미 심장이 멈춰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어있는 로즈웰과 네이슨을 말이다.

“둘이··· 죽었다고?”

이어진 시안의 말에 한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혼수라검 제 1형, 아수라.

베기와 찌르기의 묘리를 한 번에 담고 있는 모순적인 일격.

그러나 카일은 그 묘리를 일격에 담아내었고.

그 모순되고 왜곡된 현상은 가히 초월적인 위력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로즈웰과 네이슨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죽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기적이라는 것이 수 백번 겹쳐 작용해야 살아날까 말까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정말 만에 하나.

둘이 살아있었다한들 말 그대로 살아만 있을 뿐이었다.

펼치진 지옥도와 함께 시전된 아수라(阿修羅).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본질로 환원시켜버렸다.

쉽게 말해 로즈웰과 네이슨이 지니고 있는 오러의 힘을 무(無)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 힘을 축적할 수 있었던 오러의 그릇 또한 무(無)로 돌려버렸다.

한 마디로 둘은 더 이상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살아난다고 한들 더 이상 무인으로서의 삶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말 그대로 살아만 있는 상태.

그런 아무 짝에 쓸모 없는 둘을 과연 엘란두르가, 그러니까 듀라크가 어떻게 대할지는 뻔했다.

어쩌면 살아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기적일 수도 있었다.

뭐, 어쨌든.

“그래서 도련님만 업고 급히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한스는 기절한 시안만 들쳐업고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뭐하러 죽어있는 로즈웰과 네이슨을 챙길까.

한스는 시안을 업고 자리를 빠져나왔고.

동료들과 함께 암스베르크를 벗어나 지금 시안이 이 침대에 누워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여기는 어디야? 루벤은 아닌 것 같은데···.”

“제국 남부에 위치한 베니아 마을입니다. 암스베르크에서 이틀 정도 떨어진 외진 마을입니다.”

한스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웰과 네이슨이 죽었다고 한들.

암스베르크는 여전히 적진의 한복판이었다.

시안이 한바탕 뒤집어 놓은 백작성하며.

로즈웰과 네이슨이 죽었음을 안 홀란트 백작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남부 전역을 들 쑤시며 시안을 찾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해서 처음엔 한스는 바로 루벤으로 향하려고 했다고 한다.

암스베르크를 벗어난다고 한들 제국 남부는 아벤느가의 영역.

남부에서 몸을 위탁할 곳은 사실상 없다시피했으니까.

해서 한스는 일단 루벤으로 돌아가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째.

“이곳은 과거, 위고에게 은혜를 입은 마을이라고 하더군요. 그 덕분에 저희들의 위치가 새어나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철저하게 시안과 그 일행들을 숨겨주었다.

용병왕이라 불리는 위고.

보아하니 마을 전체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고 하는데···.

괜히 용병왕은 용병왕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지금까지 발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이유.

“소렌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소렌, 그러니까 엘란두르의 비자금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소렌은 어떻게 되었어? 잡았어?”

시안은 그때서야 소렌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는 핵심 인물.

한스는 그걸 이제서야 궁금해하냐는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아멜리아님이 소렌을 잡으셨습니다.”

“응? 아멜리아가?”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멜리아가 소렌을 잡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것이···.”

한스는 그런 시안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꽤나 기나긴 이야기였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시안이 로즈웰과 네이슨을 막아섰던 당시.

도망친 소렌.

그 뒤를 쫓던 한스와 그 일행들.

한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행 중 최대 전력이었던 위고.

그리고 후방 지원인 그레이슨이 빠졌기 때문일까.

소렌을 호위하던 아벤느가의 기사들.

절반이 넘는 전력 손실이 있었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한스의 일행들은 꽤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소렌은 그 틈을 타 다시 도망쳤고.

한스의 일행들은 추격하려 했으나 발이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소렌을 놓치는 건가 싶던 그때.

“아멜리아님이 소렌을 따라 가셨습니다.”

도망치는 소렌을 아멜리아가 따라붙었단다.

기사들이 황급히 막아서려했지만 발이 묶인 건 역시나 마찬가지.

한스는 아멜리아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끝내 아멜리아는 소렌을 붙잡았다고 한다.

어떻게 잡았는지는 한스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 한스는 곧장 시안을 향해 뛰어간 터라 이후의 상황도.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물론 1주일이 시간 흐른 지금도 모를까 싶었지만.

“그동안 아멜리아님이 워낙에 바삐 움직이는 탓에···.”

상황을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소렌에게서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밝히느라 밤잠을 설치셨습니다.”

아멜리아가 엘란두르의 비자금 문제를 처리하느라 바삐 움직였으니까.

아멜리아는 소렌을 잡고 난 이후,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모조리 추적했다고 한다.

해서 시안이 기절해있던 1주일.

그 기간 동안 숨겨둔 비자금의 위치를 전부 밝혀냈다고 한다.

그렇기에 사실은 비자금을 얻고 바로 루벤으로 떠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루벤이 아닌, 베니아 마을에 있는 이유.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수령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바로 엘란두르의 핏줄만이 그 비자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이사벨이 안배해둔 보험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건드릴 수 없는 비자금.

하지만 아멜리아는 계속해서 방법을 찾았고.

“아직 도련님은 엘란두르의 이름으로 효력이 발휘한다고 합니다.”

끝내 그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아직 정식 작위식이 진행되지 않은 시안.

제국법상 시안의 이름은 아직 시안 엘란두르였다.

한 마디로 법적으로는 엘란두르의 핏줄로서 효력을 가지고 있었고.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수령할 수 있는 명분 또한 충분했다.

하지만 이 또한 복잡한 절차와 준비가 필요한 일.

해서 아멜리아는 다시 밤잠을 설쳐가며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고.

“어제 막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도련님만 깨어나시면 곧바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시안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끝이 난 한스의 이야기.

“어···.”

시안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상황.

솔직히 말하면 시안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렌을 잡고, 그 비자금의 출처를 파악하고.

또 그와 관련된 복잡한 절차들이 남아있었으니까.

시안은 말 그대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소렌을 놓쳤을 거라는 가정까지도 하고 있었다.

다시 소렌을 추적하여 잡아야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엇다.

그런데 지금 펼쳐진 상황.

“다··· 끝나 있네?”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있었다.

기절했다 깨어나는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그냥 가서 비자금만 수령하면 끝이었다.

“어···.”

시안은 다시 한 번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서 아멜리아가 엘란두르의 비자금은 얼마래?”

그리고 문득 드는 궁금증에 한스에게 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은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모조리 긁어모았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그 금액이 얼마인지는 당연히 알 수 있을 터.

그리고 앞선 정보에 따르면 엘란두르의 비자금은 사라진 브라헤 상단의 자금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사벨이 이것저것 빼먹은 걸 감안하면···.

‘못 해도 2억 골드는 있겠지?’

그보다 더 줄어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사벨이 행하는 더러운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못해도 1억 골드는 될 터.

시안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한스의 답을 기다렸다.

“그, 그것이···.”

한스는 주저하듯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설마 예상보다 남아있는 금액이 얼마 없나?

“얼마인데 그래. 한 2억 골드 정도 남아있어?”

한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럼··· 1억 골드?”

한스는 이 역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리고 시안은 그 다음으로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고개를 젓는 한스의 모습.

저건 남아있는 금액이 1억 골드 미만이라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그마저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만···.

시안은 뭐라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시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좌우로 흔들리던 한스의 고개가 멈추며 나지막히 말이 들려왔다.

“4억··· 8천만 골드 정도···. 라고 하셨습니다만···.”

우뚝.

시안의 움직임이 덜컥, 굳어버렸다.

지, 지, 지금 뭔···?

시안은 멍한 시선으로 한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저도··· 이, 이게 맞는 건지는 잘···.”

한스는 지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정녕 말이 맞는 건지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뭐, 뭐라고···?”

시안 또한 저게 말이라는 개념이 맞는 건지 심히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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