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 과거라는 이름의 족쇄(2)
공간 전체를 박살내버린 거대한 충격.
“크하학···!”
“쿨럭···!”
로즈웰과 네이슨의 입가로 붉은 선혈이 터져나왔다.
터져나온 피는 바닥으로 쏟아져내리며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내었다.
전신을 강타하는 끔찍한 통증.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과 동시에 두 눈에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눈앞으로 보이는 풍경.
저걸··· 과연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힘의 충격이 미치는 모든 곳.
시야 끝에서 끝이자, 풍경 끝에서 끝.
주변의 산세가 모조리 갈가리 찢겨져나갔다.
실로 공간이 무너져내렸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
“······!!!”
로즈웰과 네이슨의 두 눈이 일시에 부릅, 떠졌다.
“이게 무슨···.”
“마, 말도 안되는···.”
눈이 부릅, 떠짐과 동시에 입이 쩌억, 벌어졌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표정과 입에서는 더 이상의 말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경악으로 내려앉은 침묵 속.
“허억···! 허억···!”
한쪽 어귀에서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로즈웰과 네이슨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시안은 허리를 숙인 채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신체에 과부하라도 걸린 것일까.
바라본 시안의 전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일순간 휘청, 시안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시안은 황급히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꽂으며 균형을 잡았다.
“크윽···!”
그 자그마한 충격에 시안의 입에서 격통 어린 신음이 터져나왔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치솟아오르는 무언가.
“쿨럭···!!”
시안의 입가로 터져나온 선혈이, 끝내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전신의 감각이 드문드문 끊긴다.
욱신거리는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시야가 점멸한다.
하지만 시안은 까득, 이를 깨물며 떠나는 정신을 붙잡았다.
바닥에 꽂은 검에 몸을 지탱하며, 쓰러지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꿋꿋이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한 시야.
그곳엔 로즈웰과 네이슨이 입을 쩌억, 벌린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즈웰과 네이슨의 상태 또한 그리 좋지만은 않앗다.
먼지 투성이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그것들은 흘러 내린 피와 엉겨붙어 몸 곳곳에 덩어리 지어져있었다.
멀쩡하다, 라는 표현은 결코 들먹일 수 없었다.
둘이 느끼고 있는 경악이라는 심정이 더 크게 작용할 뿐.
고통과 통증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고.
만신창이가 되어있긴 하지만 덜덜, 떠는 손으로 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시안의 상태보다 월등히 좋아보였다.
“커허헉···!”
시안의 입가로 뿜어진 붉은 선혈.
바닥으로 쏟아져내린 피가 고여 크나큰 웅덩이를 형성했다.
그리고 부릅, 뜬 눈으로 시안을 지켜보던 로즈웰과 네이슨.
로즈웰은 일순간 비릿한 조소를 지어보였다.
놀라운 광경이었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
아니, 풍경이라는 개념을 들이밀 수 없는 이 광경은 경이로웠다.
로즈웰, 자신은 물론 네이슨이 합세한다해도 불가능한 위력이었다.
카이와 듀라크.
이 두 사람 정도이 합쳐야 어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끔찍한 위력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로즈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말도 안되는 위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시안은 자신보다 앞서 있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는 것이 죽어도 싫었지만.
현재 시안의 경지는 시안은 자신들보다 앞서 있었다.
그렇기에 패배하는 것은 이쪽이어야만 했다.
“끄아윽···!”
저렇게 격통을 터트리고 있는 건.
저렇게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건 시안이 아니라 이쪽.
로즈웰과 네이슨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정작 펼쳐진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그나마 추측가능한 건 딱 하나.
마지막 순간에 시안이 주저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의심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의심 하나가 만들어낸 지금의 결과물.
이제 끝이었다.
달라진 건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똑같은 결과를 마주할 뿐이었다.
“내가 처리할게. 누나는 쉬고 있어.”
그 순간 네이슨이 한 발 나서며 로즈웰을 막아섰다.
바라본 네이슨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있었다.
몸은 만신창이에 어디선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두 눈만은 살기로 번뜩거리고 있었다.
아마 로즈웰과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의 격돌.
그 격돌에서 느꼈던 시안과의 수준 차이를 말이다.
하지만 로즈웰과 달리 네이슨은 분노하고 있엇다.
“개새끼가···.”
얼핏 이성을 잃은 듯한 면모.
고작 시안 따위가 자신을 뛰어넘었을리가 없다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로즈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네이슨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로즈웰의 상태 또한 썩 좋지 않았다.
두 발로 땅에 서있을 수 있다 뿐.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시안의 모습.
“쿨럭···!”
시안은 정말이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건지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마음대로 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 정도야 네이슨이 알아서 처리할 터.
몸도 좋지 않은데 괜히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네이슨은 비틀거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시안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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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시안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바닥에 꽂힌 검을 지지대 삼아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라본 시야.
그곳엔 네이슨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죽여주마···.”
섬뜩한 살기가 오롯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물론 네이슨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시안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디 하나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보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시안만큼은 아니었다.
들끓는 마기와 요동치는 전신의 근육.
메긴기요르드의 과부하로 근육이 파열되며 끔찍한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아니, 근력 수련을 했기에 이 정도에 그칠 수 있었음이 정확했다.
단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기절하여 쓰러졌을 상황.
그렇기에 현재 네이슨의 모습.
다름 아닌 ‘비교적’ 멀쩡한 상태.
그건 시안에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릭서의 힘을 흡수했고.
메긴기요르드의 증폭을 받고 있는 지금.
아무리 2:1의 비대칭 싸움이라고는 하나.
그 대상이 로즈웰과 네이슨이라고는 하나.
힘든 싸움일지언정 둘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엑스퍼트 최상급의 네이슨.
엑스퍼트 최상급을 넘어 마스터를 바라보는 로즈웰.
시안은 거진 마스터에 달해있었다.
물론 가진 바 힘만 마스터일 뿐, 마스터의 경지는 아니었다.
비록 로즈웰과 네이슨이 사용하는 엘란두르의 비기.
그것은 사실 과거, 샤를롯의 무공이었다.
아르나이즈의 리더, 샤를롯의 무공.
그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무시는 커녕 대륙 최강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카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최강의 아르나이즈에 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가진 바 무공의 수준만 놓고 본다면 시안의 우위였다.
게다가 엘릭서의 힘을 흡수했고.
메긴기요르드의 증폭을 받고 있었다.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고전은 물론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찍어눌렀어야했다.
“쿨럭···!”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시안은 끝내 알 수 있었다.
처음,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먼저 들었던 생각.
벗어났다고 생각했었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불가능이라 불리는 수많은 고난들.
악마 7군주와 대적하며 겪어온 시련들.
그 무수한 역경들을 극복하며 이 또한 극복해냈다, 그리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랬다고 생각했던 착각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수한 수련을 거듭했어도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지 않은 사실.
“우리한테 얻어맞던 병신 새끼가 감히···.”
시안은, 로즈웰과 네이슨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시안은 다가오는 네이슨을 바라봤다.
그 뒤로 조소를 짓고 있는 로즈웰을 바라봤다.
“크하학···!”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안, 자신을 바라봤다.
일순간 시안의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와 동시에 로즈웰과 네이슨의 모습 또한 흐려졌다.
주변의 풍경 또한 흐릿해지며 흩어진다.
‘에휴, 병신 새끼.’
그 사이로 들려오는 네이슨의 목소리.
네이슨의 목소리···?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네이슨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네이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 앳된 목소리였으니까.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로써 시안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네이슨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현재의 네이슨이 아니었다.
‘이딴 새끼랑 같은 피가 섞였다는게 참.’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네이슨.
시안이 가문에 있을 적,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어린 네이슨이었다.
그런 어린 네이슨의 뒤로 로즈웰이 조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나 로즈웰 또한 어린 시절의 로즈웰이었다.
비쳐지는 풍경 또한 어두운 숲 속이 아니었다.
격돌로 인해 박살이 난 산 속이 아니었다.
엘란두르 저택에 있는 연무장.
내려다 본 시야로 작은 손이 비쳐보였다.
오랜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시안의 손이.
환각처럼 보이는 풍경.
이 풍경은 아주 오래 전.
시안이 엘란두르 저택에 있던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시안의 기억 속에서 문신처럼 박힌 어떤 기억이었다.
잊혀지려해도 잊혀지지 않았던, 트라우마의 기억.
어느 덧 어린 네이슨이 어린 시안 앞에 서보였다.
비릿한 조소와 멸시로 일그러진 두 눈이 어린 시안에게 향했다.
‘어떻게 이것도 못해? 이 정도 재능이면 네 엄마 쪽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어린 네이슨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말해왔다.
‘어라?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건 네 엄마 새끼가 문제가 있는 거네. 안 그래 누나?’
‘피가 다른 건 그것 뿐이니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지.’
어린 로즈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린 네이슨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그럼. 우리 막내가 고작 이 정도도 못할 리가 없잖아? 이건 막내 잘못이 없어. 다 세실인지 뭔지 하는 그 여자 잘못이지.’
그러니까.
‘벌을 받아도 네 엄마 새끼가 받아야겠지?’
이어진 어린 네이슨의 말에 어린 시안은 몸을 움찔, 떨어보였다.
‘왜? 그건 싫어?’
그런 시안의 말에 어린 네이슨이 비아냥거리며 물어왔다.
어린 로즈웰은 뒤쪽에서 낄낄거리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네가 벌을 받는 수밖에.’
어린 네이슨은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어린 시안에게로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오는 어린 네이슨.
일순간 환각이 흐려진다.
흐려진 환각 사이로 현재의 네이슨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과거와 현재.
두 네이슨 모두 시안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
‘피하면 알지? 그럼 네 엄마 새끼가 대신 맞아야되는거.’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결과.
기억 속 어린 네이슨이 어린 시안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어린 시안은 다가오는 목검을 바라봤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병신이라니까.’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쐐애애애액!
휘둘러진 어린 네이슨의 목검이 시야 가득히 덮쳐왔다.
뭐라 반항이라도 해야하건만.
하물며 피하기라도 해야하건만.
‘아, 아··· 아으···.’
어린 시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질끈, 두 눈을 감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부디 오늘은 금방 끝나기를.
부디 오늘은 조금 덜 아프기를.
네이슨이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기를.
속으로 하염없이 바라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기억 속, 어린 시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암전된 시야.
쐐애액, 하는 목검의 소리가 귓가에 아득히 울려퍼져온다.
곧 있으면 얼굴을 강타하겠지.
어린 시안은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
과거의 어린 시안의 기억.
수 십년 간 반복되어온 이 기억은 수 십년이 지났어도 시안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 트라우마와도 같은 기억은 시안의 머릿속에 문신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 십년 전의 이 상황도.
수 십년 후의 이 상황도.
결국 같은 결과를 맞이할 운명이었다.
어린 시안은 그렇게 고개를 떨구었다.
바로 그때.
덥썩.
어떤 손길이, 어린 시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건 우악스러우면서도 단단한 손길이었다.
이윽고 그 손길이 어린 시안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어린 시안은 그 힘에 뒤로 밀려났다.
뭐··· 지?
어린 시안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니.
아마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난 벌써 목검을 맞고 기절한 것이 아닐까.
어린 시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느린 시간으로 쇄도해오는 어린 네이슨의 목검이 보였다.
그 뒤로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어린 로즈웰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든 장면들이 길게 늘어지며 천천히 흘러간다.
그리고 그 옆으로, 어린 시안의 어깨를 잡아당긴 어떤 손길.
시야를 스치듯, 누군가 어린 시안의 앞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몸.
입가에 번져있는 핏자국.
어디서 싸우다 온 것인가···?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데···.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역시나 누군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린 시안은, 옆을 스치며 뛰어가는 저 사내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어린 시안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길게 늘어지는 시간 속.
자신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저 사내.
저 사내의 얼굴이, 왜인지 자신과 똑닮아있었다.
뭐랄까··· 먼 훗날의 자신과 같아보였다.
내가 나이를 먹는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정체 모를 사내를 보며 어린 시안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사내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사내의 앞으로는 어린 네이슨의 목검이 느릿하게 휘둘러져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시안을 향했다.
역시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바라본 사내의 두 눈은, 어린 시안과 똑닮아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두 눈은 어린 시안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
이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지금의 나인데.
이제는 그러지 않을게.
얽매이지도 않을게.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사내는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안은 저 사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지된 것만 같은 시간 속.
더 이상 너를 찾아오지 않겠다고.
더 이상 너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정말로 다시는, 두 번 다시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겠다는 듯.
어린 시안을 향하던 사내의 두 눈이, 매몰차게 앞으로 바라봤다.
매정해.
어린 시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저 사내는 다시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안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섭섭하지도 않았다.
사내는 아마 두 번 다시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저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괜찮았다.
서운하지도, 애석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이제 다시 볼 일이 없겠네.
어린 시안은, 잔잔한 미소로 사내에게 화답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어느덧 목검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과거, 어린 시안은 저 목검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맞아야만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게 옳다고 여겼고, 어린 시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힘도 없고, 아무런 의지도 없는.
어떤 의미로 한낱 망나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자신과 똑닮은 사내는.
어린 시안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저 사내는.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 그리 약속한 사내는.
머나먼 미래의 시안이자.
현재의 시안은.
과거의 기억 속, 휘둘러지는 목검을 향해.
자신의 검을 당당히 내지르고 있었다.
카앙──!!
환각이 흩어진다.
흩어지는 환각 사이로 비친 시야.
시안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휘둘러진 네이슨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