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 시안 vs 로즈웰, 네이슨(1)
부릅 떠진 한스의 두 눈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경악 어린 표정.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한스의 시선으로 보이는 두 사람.
한스는 두 사람의 얼굴을 모르지 않았다.
짧은 금발의 머리를 한 사내, 네이슨 엘란두르.
금발의 포니 테일의 머리를 한 여인, 로즈웰 엘란두르.
엘란두르의 자제들이자 이사벨의 세 자식중 두 명.
그리고 시안의 명목상으로나마 형과 누이되는 이.
“다, 당신들이 대체 여길 어떻게···?”
한스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인가?”
“누군데 그래?”
옆에서 위고와 보니타가 의아스럽게 물어왔다.
하지만 한스는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충격 어린 시선으로 로즈웰과 네이슨을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본데?”
“그럼 곤란한데.”
한스의 반응에 로즈웰과 네이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마주 바라본 시선.
“너는···?”
한스의 얼굴을 확인한 네이슨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옛날에 시안의 뒤나 닦아주던 영감탱이 아니야?”
“시안의 뒤를 닦아주던 영감?”
“그 왜. 시안 새끼가 질질 짤 때면 가장 먼저 달려오던 귀찮은 영감있잖아.”
“아! 그 영감?”
로즈웰은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탄성을 터트렸다.
“이름이··· 칸스였나? 반스였나?”
네이슨은 한스의 이름을 떠올리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딱 그 뿐.
그 이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별로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중요한 사실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영감탱이가 왜 여기에 있지? 시안이랑 같이 루벤으로 쫓겨난 것이··· 아.”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네이슨은 입을 살짝 벌렸다.
다름 아닌 현재 백작성에 있는 시안.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강 짐작이 갔으니까.
네이슨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네이슨의 시야로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소렌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널브러진 아벤느가의 병사들.
아니, 기사들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바는 하나.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말했잖아. 그 새끼가 아무런 대책없이 그 지랄 했을리가 없다고.”
로즈웰이 네이슨의 말을 이어받았다.
로즈웰은 살짝 고개를 돌려 소렌에게 말했다.
“움직일 수 있지? 움직이지 못해도 움직여.”
“네, 네! 네네!”
로즈웰의 말에 소렌이 격하게 끄덕였다.
딱히 부상을 입은 것도 없었거니와.
로즈웰의 말마따나 지금은 움직여야할 때였으니까.
“그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어디로 도망쳐야할지는 알거라 생각해.”
“아, 알겠습니다!”
소렌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려왔지만 이를 까득, 깨물며 중심을 잡았다.
이윽고 타다닥.
소렌은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누군가 우렁한 고함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시야 가득히 보이는 거대한 도끼.
위고는 도망치는 소렌을 향해 도끼를 집어던졌다.
하지만.
“늙은이 새끼가 어딜 감히···.”
나지막히 들려온 목소리에 그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위고의 앞을 가로막은 네이슨의 모습.
‘빠르다!’
위고는 그 기척을 전혀 감지할 수가 없었다.
위고는 내던지려던 도끼를 황급히 아래로 내리그었다.
도끼는 둔기가 되어 네이슨의 정수리로 떨어져내렸다.
모든 것을 분쇄버릴 듯한 맹렬한 폭력.
꽈앙─!
터져나오는 끔찍한 폭음에 귓가가 멍멍해졌다.
이윽고 시선을 바로한 시야.
그곳엔 네이슨이 검을 치켜들어 위고의 도끼를 막아서고 있었다.
“······!”
위고의 두 눈이 일시에 크게 떠졌다.
급하게 내리친 일격이라고는 하나 이걸 막았다?
꽈드득!
위고는 온힘을 다해 도끼를 내리 눌렀다.
다른 동료들은 세월에 묻혀 그 실력이 녹슬었다고는 하나 위고는 아니었다.
수 십년의 세월동안 단련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지상 최강의 포식자, 오우거의 목을 홀로 베어낼 수 있었다.
끝내 용병왕이라 불리며 용병계의 정점에 선 위고.
꽈드드득!!
어마어마한 괴력이 네이슨의 검 위로 쏟아져내렸다.
하지만 밀리지 않았다.
검과 함께 네이슨의 몸이 양단되기는 커녕,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아니, 되려 위고가 밀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위고의 두 눈이 찢어져라 떠졌다.
그리고 다시 그 순간.
퍼억─!
위고는 복부를 강타하는 끔찍한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내장이 터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커허헉!”
입가를 비집어 새어나오는 선혈.
바닥으로 쏟아지는 핏덩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점들이 섞여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위고의 몸이 부웅,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윽고 저 멀리,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지며 다시 한 번 피를 바닥으로 쏟아내었다.
“이, 이게 무슨···!”
“위고를 일격에···!”
그 모습에 사람들 모두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스는 여전히 부릅, 뜬 두 눈으로 몸이 굳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즈웰.
로즈웰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아벤느가의 기사들을 바라봤다.
고작 15명이 채 남지 않은 기사들.
로즈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지금 바로 소렌을 따라가. 무슨 말인지는 알 거라 생각해.”
이어진 로즈웰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장 소렌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한스를 비롯한 동료들은 이번엔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렌과 더불어 기사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이후.
로즈웰이 터벅,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와 동시에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터져나오는 기세.
로즈웰이 슬쩍, 고개를 돌려 네이슨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할래?”
“어줍잖은 실력들이 아니야. 뭐, 그래봤자 버러지들이지만··· 그래도 빨리 끝내는 편이 낫지 않겠어?”
이어진 네이슨의 답.
로즈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아무렴 상관 없다는 듯.
“그러든가.”
로즈웰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이상하다.
너무도 이상하다.
시안은 떠오른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로즈웰과 네이슨.
그럴 수는 있었다.
시안에게 있어 로즈웰과 네이슨의 존재가 변수였던 만큼.
시안의 존재 또한 둘에게는 엄청난 변수일테니까.
그러니 시안이 갑자기 백작성을 들 쑤신 것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그 둘 또한 그에 따른 대처를 해야만 했다.
그 일환이 바로 소렌을 뒤로 빼돌리는 것.
그 시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렸다.
수색은 이제 몇 군데 남지않은 시점.
당연하게도 소렌으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러니 이쯤 되면 슬슬 기어나와야했다.
그러면서 ‘하! 거 봐라. 없다고 하지 않았냐. 멍청한 새끼, 쯧쯧쯧.’ 하며 비아냥 거려야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았다.
로즈웰과 네이슨은 그 어떤 기척조차 내비치고 있지 않았다.
보이는 건 울그락불그락한 홀란트의 얼굴 뿐.
시안은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섰다.
“누님과 형님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시안은 다시 한 번 홀란트에게 물었다.
그리고 두 번의 물음 때문일까.
홀란트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금방 표정을 바꾸더니 거친 콧바람을 내뿜으며 답했다.
“네가 알 바가 아니다.”
둘러대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만일 두 사람이 소렌을 뒤로 빼돌리고 있다면.
아무렇게나 말을 둘러대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시안이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홀란트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둘이 무얼 하고 있는 지가 아닌.
둘이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한 것을 감추려는 것만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확인할 필요는 있어보였다.
“수색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뭐, 뭐라?”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홀란트가 크게 당황해보였다.
하지만 시안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돌려 백작성 밖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아직 수색할 곳이 남아있지 않나?”
“이 정도로 수색했으면 없다고 봐야겠죠.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했습니다.”
시안은 거침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시안의 등 뒤로 홀란트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마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한 느낌.
시안의 행동에 크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안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성큼, 발걸음을 옮겨 백작성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안된다.”
등 뒤로 홀란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여기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인줄 알았더냐?”
그곳엔 홀란트가 눈을 치켜 뜨며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 나가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아니다.”
홀란트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홀란트의 반응에서 시안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눈치를 챘었나?’
시안의 의도는 파악되었다.
어디서 알아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로즈웰과 네이슨은 시안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로즈웰이겠지.
물론 어떤 의도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안이 이러는 이유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한 것 같았다.
그것을 확인하고자, 로즈웰과 네이슨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그 말은 즉.
‘사람들이 위험하다.’
한스를 비롯한 일행들이 위험하다.
한스의 동료들은 그리 수준이 낮지 않았다.
용병왕이라 불리는 위고부터 결코 낮은 수준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로즈웰과 네이슨은··· 아니었다.
아벤느가의 병력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스와 그의 동료들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로즈웰과 네이슨은 안된다.
과거, 전설을 써내려간 돌풍 용병단이라 해도 그 둘은 안 된다.
설령 전성기 시절의 그들이 와도 안된다.
로즈웰과 네이슨을 감당할 수 없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죽는다.
시안은 홀란트의 말을 무시하며 백작성의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네 멋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했을텐데.”
그러자 다시 들려온 홀란트의 목소리.
시안은 다시 한 번 무시하려 했으나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척! 처척─!
일순간 백작성 내부로 절제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시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벤느가의 병사들과 기사들.
“비켜.”
시안은 싸늘하게 앞선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일갈했다.
역시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되려 서슬 퍼런 기세를 피워올릴 뿐이었다.
시안은 차분히 시선을 돌려 홀란트를 바라봤다.
“지금 저를 겁박하시겠다는겁니까? 제국의 백작을?”
“잠시 묶었다가 멀쩡히 돌려보내주면 누가 네 말을 믿어주겠느냐.”
홀란트는 비릿한 조소를 지어보였다.
시안은 할 말은 많았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저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안의 앞을 가로막는 수 백명의 병사와 기사들.
그야말로 적진의 한복판에 고립된 상황이었다.
우려했던 상황이었고,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난 분명.”
하지만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버렸고.
“비키라 명했다.”
망설일 시간 또한 없었다.
사아아아아─!!!
일순간 시안의 전신으로 짙은 어둠이 피어났다.
피어난 어둠은 응축되고 폭발하며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어느덧 주변을 통째로 잠식한 칠흑의 아우라.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주변을 장악한 어둠은 계속해서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이윽고 어둠이 백작성 전체를 집어삼켰을 때.
그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투기를 느꼈을 때.
“······!!!”
“······!!!”
“······!!!”
홀란트 백작은 물론.
아벤느가의 병사들과 기사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로즈웰.
“모두 정신 바짝차려!!”
한스는 고함을 내지르며 동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어째서 로즈웰과 네이슨이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질문과 의문은 나중에.
지금은 눈앞의 로즈웰과 네이슨을 어찌해야했다.
한스의 외침에 동료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막심과 토마 그리고 보니타까지.
위고도 비적비적 일어나며 가진 바 무기를 치켜들었다.
“커흑···!”
그러나 상태가 영 좋지 않아보였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한스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라진 로즈웰의 기척을 찾던 찰나.
“정신을 바짝차리면.”
바로 옆에서 로즈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건데?”
눈으로 담을 시간이 없다.
한스는 그대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굉음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불꽃.
잠시 걷힌 어둠 사이로 로즈웰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로즈웰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한스에게 말했다.
“시안, 그 놈이 소렌을 잡아오라고 했─.”
그러나 로즈웰은 끝까지 말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투웅─!
메아리를 타고 들려온 쇠뇌의 소리.
“귀찮네.”
로즈웰은 한스를 발로 걷어차버리고는 쇄도해오는 화살을 튕겨내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져 나가는 화살.
로즈웰은 검을 갈무리하며 소리쳤다.
“네이슨!”
“알았어!”
로즈웰의 말과 동시에 네이슨의 신형이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야와 감각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
이윽고 네이슨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
“여기 숨어있었구나.”
다름 아닌 그레이슨의 뒤쪽이었다.
“······!!”
바로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그레이슨의 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그레이슨은 숲의 어둠 속에 몸을 완벽히 녹여내고 있었다.
수 십년간 어둠의 숲에서 살아온 사냥꾼, 그레이슨.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들조차 그레이슨이 몸을 숨기면 그 기척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레이슨은 황급히 석궁을 네이슨에게 겨누었다.
“안 된다는거 알잖아.”
하지만 그보다 네이슨의 움직임이 월등히 빨랐다.
콰직─!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그레이슨의 신형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끄아아아아악!”
쓰러진 그레이슨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런 그레이슨의 모습에 네이슨이 혀를 한 번 차보였다.
“엄살부리지마. 안 죽였으니까.”
“끄아아아아아악!!”
그레이슨의 끔찍한 비명은 숲의 메아리를 타고 울려퍼져나갔다.
네이슨은 오른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시안, 그 새끼 앞에서 죽여줄테니까, 그때까지 아가리 좀 닫고 있어.”
콰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레이슨의 비명이 뚝, 끊겼다.
미동도 않는 그레이슨의 움직임.
“죽으면 뭐 어쩔 수 없고.”
네이슨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바라본 시선.
그곳엔 로즈웰이 5명의 노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한스를 비롯한 막심과 토마 그리고 위고와 보니타.
로즈웰은 그런 5명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되려 압도하고 있을 뿐.
가만 두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로즈웰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빨리 끝내야지.”
네이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응?”
네이슨의 감각으로 무언가 걸려들었다.
뭔가 싶어 바라본 그곳.
“······ 계집?”
그곳엔 계집, 그러니까 어떤 여인이 있었다.
긴 적발의 상당한 미녀였는데, 네이슨이 바라보자 여인이 헙! 하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벌벌, 떠는 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계집이 왜 여기에 있어?”
네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 설마··· 시안의 여자냐?”
네이슨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새낀 이런 자리까지 여자를 데려와? 하여간···.”
터져나오는 실소.
네이슨은 걸음을 옮겨 몸을 떨고 있는 여인, 아멜리아에게 다가갔다.
아멜리아는 주저앉은 자세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네이슨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덥썩.
우악스러운 손길이 아멜리아의 턱을 움켜쥐었다.
“꺄읏···!”
새어나오는 아멜리아의 신음.
“호오··· 꽤 예쁘장하게 생겼잖아.”
네이슨의 눈빛이 아멜리아의 전신을 훑었다.
아멜리아는 손길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 하흑···!”
무의미한 발악일 뿐.
그런 아멜리아의 발악에 네이슨이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와 동시에 아멜리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추악해졌다.
“여색을 밝히지는 않다만··· 시안, 그 새끼의 여자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끈적거리는 눈빛이 아멜리아의 전신을 훑었다.
“나중에 자신의 여자가 나한테 더럽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새끼 표정이 어떨지 좀 궁금한데?”
네이슨의 얼굴이 천천히 가까워져갔다.
그와 동시에 네이슨의 손이 아멜리아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이윽고 손이 아래로 내려가려던 순간.
멈칫.
네이슨의 움직임이 덜컥, 굳어버렸다.
갑자기 느껴지는 위화감.
감각 사이를 파고 드는 기묘한 느낌.
뭐지···? 싶은 생각이 들던 그 순간.
“그 더러운 손.”
네이슨의 귓가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지?
··· 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던 찰나.
사아아아아─!!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어둠?
네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이 산 속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지평선 너머, 석양은 산 속의 어둠을 밝히지 못했다.
그로써 주변의 시야는 어둠으로 물든 상태였다.
그런데 또 어둠이라니?
네이슨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분명히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둠에 어둠을 덧칠하듯.
새까만 어둠이 주변의 공간을 잠식했다.
꽈르르르릉!
공간이 왜곡되며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번지는 어둠에 숲의 잔해가 갈가리 찢어진다.
억눌러놓은 포악한 힘.
그 난폭함은 끔찍한 해방을 맞이하며, 사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네이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했다.
보이는 것은 새까만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어떤 붉은 광채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뭐지? 싶은 것도 잠시.
“당장 치워.”
네이슨의 귓가로 섬뜩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네이슨이 무언가 대응을 하기도 전.
콰자자자자자자작─!!
네이슨을 담고 있는 풍경이, 한순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