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 돌풍 용병단(2)
산(山)의 시간은 그 여느 때보다 빠르다.
암스베르크 지평선 너머에 걸린 붉으스름한 석양.
암스베르크의 거리에는 저녁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산 속의 숲 사이로 드리운 어둠.
산 속의 시간은 진즉에 흘러가 어느덧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 걸린 석양은 그 어느 때보다 붉으스름한 빛을 발했으나.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 숲의 어둠을 밝히지 못했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뭐, 뭐야··· 저것들은···.”
소렌의 목소리가 심히 떨려왔다.
소렌은 넘어진 자세로 눈앞의 노인들을 바라봤다.
도합 5명의 노인들.
그러나 느껴지는 기세는 전혀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쇠약하고 힘이 빠진 이의 것이 아니었다.
기세만 본다면 노인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물러나십시오 소렌님.”
앞선 병사가 소렌의 앞을 가로막으며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병사로 위장한 기사.
그것도 아벤느가 소속의 뛰어난 기사였다.
그런 기사의 모습에 소렌은 그때서야 떨리는 심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디서 저 노인들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알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노인들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딱 그 뿐이었다.
그래봤자 5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봤자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이쪽의 전력은 무려 30.
그것도 하나하나가 오러 유저(User) 상급과 최상급에 걸쳐있는 뛰어난 기사들이었다.
자그마치 6배의 전력 차였고.
이쪽은 노인이 아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기사들이었다.
늙어빠진 5명의 노인들이 뭘 어쩐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딱 그뿐이다.
잠깐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숲의 어둠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 대치.
어둠과도 같은 적막.
소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신호로.
타닥─!
탁!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5명의 노인들이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든 신형이 시야를 어지럽혀왔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소렌님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라!”
숲을 가득 메우는 메아리.
그 메아리를 가르듯.
후우우웅─!
시야 가득히, 거대한 도끼가 덮쳐온다.
카앙─!!
“끄윽···!”
검 위로 느껴지는 기괴한 힘에 기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충돌하는 도끼가 전신을 짓누른다.
끔찍한 기세를 담은 거대한 힘이 안면으로 쏟아져내린다.
기사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이건··· 버틸 수가···!”
서걱─!
단말마와도 같은 절삭음.
그 맹렬한 폭력 앞에, 기사의 몸이 양단되어 허물어져 내렸다.
그 순간.
쐐애애액!
빈틈을 비집듯 위고를 노리며 칼날이 쇄도해왔다.
이윽고 검날이 위고의 옆구리를 찢어발기기 전.
투웅─!
쇠뇌 소리와 함께 한줄기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기사에게로 쏘아져나갔다.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기사의 목을 노리며 날아드는 화살.
노인에게 향하던 기사의 검이 방향이 틀어졌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었다.
카앙─!
둔탁한 쇠음과 함께 불꽃이 튀어나갔다.
튀어나간 불꽃은 잠시나마 어둠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잠시 비친 시야로 보인 어떤 한 여인의 모습.
여인은 어느 샌가 기사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움직임.
튀어나간 불꽃이 아니었다면 얼굴도 보지 못했을 터였다.
기사는 황급히 검을 들어 다가온 여인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그런 기사의 검보다도 더 빨리.
두 자루의 단검이 먼저 기사의 몸에 닿아있었다.
서거걱─!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기사의 신형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리고 마주하는 여인과 노인.
“최근에 오우거도 사냥했다더니. 죽지 않았네 위고?”
“네가 할 말은 아닌 듯 한데 보니타.”
위고와 보니타가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드리운 어둠 속에서 날아든 쇠뇌의 화살.
“후방 지원도 확실하겠다.”
“다시 가볼까?”
으랴아아아아!
위고가 고함을 지르며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마치 포효하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
“히이익···!!”
그 모습에 소렌이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쳐보였다.
순식간에 당해버린 2명의 기사.
일합도 채 버티지 못하고 지금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저게··· 저게 대체 어딜 봐서 노인의 무력이란 말인가.
심지어 저 둘이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일순간 터져나오는 굉음.
바라본 그곳엔 두 노인이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땅딸만한 키의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노인.
드워프···?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두 얼굴 또한 상당히 닮아있었다.
다름 아닌 막심과 토마.
그런 막심과 토마의 손에 들린 쇠망치와 메이스.
“남자는 힘!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크하하하하핫! 다 때려 부숴!”
꽈아앙─!
막심과 토마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폭음이 터져나왔다.
분명 쇠붙이와 쇠붙이가 맞닿고 있거늘.
들려오는 것은 분명한 폭음이었다.
그 때문일까.
“커허헉···!”
“끄억!”
그 괴악한 힘에 기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소렌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로.
서걱─!
다시 한 번 섬뜩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시야 가득히 흩뿌려지는 선혈.
얼떨결에 바라본 그곳엔 한 노인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노인은 앞선 이들처럼 큰 특징이 없었다.
정확히는 ‘노인’이라는 개념에 더 알맞은 노인이었다.
주름은 더 자글했고.
우락부락한 근육도, 단련된 신체도 없었으니까.
그 때문일까.
캉─!
파장창─!
기사와 맞닿은 노인의 부서졌다.
사방으로 검의 파편들이 산산히 부서지며 비산했다.
기사의 오러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리라.
그리고 저게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
오저 유저(User) 상급과 최상급에 걸쳐있는 수준 높은 기사들이었다.
그런 기사들의 오러를 한낱 노인 따위가 막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광경은 당연한 현상이있다.
하지만 이어진 광경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노인이 바닥을 거칠게 나뒹굴렀다.
검이 부서졌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곧장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노인의 손에는 새로운 형태의 검이 들려있었다.
다름 아닌 몸을 나뒹굴면서 주운 검.
그것도 앞서 쓰러진 기사가 사용하던 검이었다.
노인은 이제는 주인이 없어진 검을 들어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캉─!
카캉─!
그리고 평소와 똑같이 싸워나갔다.
“크, 크윽···!”
노인을 상대를 하던 기사가 신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의 검술이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전혀 다른 형태의 검을 사용하는데도 말이다.
검이라고 다 같은 검이 아니었다.
검에도 종류는 다양했다.
크게는 장검과 단검.
그리고 장검이라는 종류에서도 수많은 종류가 나뉘었다.
쇼텔, 레이피어, 마체테, 파르시온, 플랑베르주 등등.
같은 검이라고, 같은 장검이라고 다 같은 검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사들은 한 가지의 무기로 수련한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가장 잘맞는 형태의 무기로 단련한다.
당연하게도 각자에게 잘 맞는 형태의 무기는 제각각.
30명의 기사가 있다면 30개의 무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나 무기가 달라지면 가진 바 실력도 달라진다.
동작이 어설퍼지고,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
이것이 기사에게 통용되는 상식.
하지만 저 노인은 그렇지가 않았다.
카캉─!
서걱─!
어떤 무기든 상관하지 않았다.
수많은 단련을 해온 이처럼 수준급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무기의 숙련도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 속에서 감각을 잃어버린 것인지.
파장창─!
노인의 무기는 얼마 가지 못하고 금방 부서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노인은 새로이 무기를 바꿔가며 싸워갔다.
적의 무기를 취하며 맹렬히 싸움을 이어나갔다.
돌풍 용병단의 단장이자 웨폰 마스터, 한스.
한스는 그렇게 기사들을 상대해나갔다.
“뭐, 뭐야···.”
그 모습에 소렌은 저도 모르게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고작 5명의 노인들일 뿐인데.
그런 노인들에게 30명이 기사들이 맥을 못추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소렌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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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암스베르크에 위치한 아벤느가 백작성.
“음···.”
시안은 앞에 서있는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듣자하니 아벤느가 백작성의 식당에서 일하는 고용인이라고 하는데···.
시안은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몽타주와 비교했다.
아멜리아의 기억을 토대로 그려낸 소렌의 몽타주.
시안은 고개를 위 아래로 움직이며 몇 번 얼굴을 대조했다.
그 결과.
“이 사람도 아니네요.”
눈앞의 사내와 몽타주의 얼굴이 맞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저는···.”
사내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시안의 눈치를 보았다.
시안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그때서야 사내가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돌린 시야로 다름 아닌 홀란트가 보였다.
정확히는 이를 까득, 씹으며 시안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홀란트가 있었다.
“네가 말한 소렌이라는 자는 이곳 백작성에 없다.”
홀란트는 말 그대로 씹듯이 시안에게 말했다.
“음···.”
그런 홀란트의 말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전, 접객실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홀란트가 돌아왔다.
그리고 백작성의 수색을 허락하겠다며 동행했다.
의외로 수색을 허락하는 행동이었지만···
사실 예상대로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소렌을 미리 빼돌렸겠지.’
소렌을 미리 빼돌렸을테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시안이 백작성을 들 쑤시도록 허락할리가 없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 시안이 하고 있는 수색.
이건 하등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소렌은 지금 백작성을 빠져나갔을테니까.
그리고 시안에게 수색을 허락한 것.
아마 이것도 시간을 끌기 위한 수작임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시안의 발목을 붙잡아 시선을 끌고.
그리하여 소렌이 안전한 곳에 숨을 때까지 말이다.
뻔히 보이는 수작.
그러나 시안은 알면서도 그 수작에 놀아나 주었다.
‘지금쯤이면 한스가 소렌을 잡았을라나.’
그도 그럴 것이 시간과 시선을 끌어야하는 건 시안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해서 시안은 백작성의 사람들을 확인했고.
이제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이쯤이면 한스가 소렌을 잡았을 터.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어도 되겠건만.
“끝까지 확인은 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일은 확실하게 해야하는 법이었다.
“······”
시안의 말에 홀란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빠드득, 이를 갈며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 홀란트의 모습에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때였다.
‘······ 잠깐.’
문득 시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다름 아닌 홀란트의 모습.
그러니까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진 홀란트의 얼굴.
홀란트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냄에도 시안을 내쫓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
시안의 발목을 붙잡기 위함이었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홀란트가 시안의 옆에 붙어있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비단 홀란트의 일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홀란트가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있어야만 했다.
홀란트보다 더욱 똥줄이 타는 두 사람이 말이다.
처음엔 소렌을 빼돌리느라 자리를 비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걸 막을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려고 이곳에 직접 찾아온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쯤이면 보여야했다.
지금쯤이면 소렌을 빼돌리고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모습을 드러내야했다.
그런데 보이지가 않았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누님과 형님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로즈웰과 네이슨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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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럴 수는 없어···.”
소렌은 눈앞의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으로 널브러져있는 기사들.
그 수가 무려 2자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서있는 기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많아야 15.
아마 그보다 적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처음 30에 달하던 기사들은 어느덧 15명이 채 남아있지 않았다.
무려 반절이 넘는 전력이 휩쓸려나간 상황.
심지어 그 상태 또한 그리 멀쩡하지만도 않았다.
물론 저쪽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노인들이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또 그들 모두가 저마다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 꽤나 심각한 상처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리가 없었으니까.
서로 간의 피해가 적지 않은 상황.
그걸 감안해도 상황은 불리했다.
일단 기세에서도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고작 5명의 노인들에게 15에 달하는 기사들이 겁을 먹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대로 가다가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해야하는 것은 하나.
“히이익···!!”
소렌은 허겁지겁 등을 돌려 도망쳤다.
그런 소렌의 모습에 노인들이 서슬 퍼런 기세를 뿌리며 따라붙었다.
다행히 남은 기사들이 노인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투웅─!
귓가에 스치는 이 쇠뇌 소리만큼은,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쐐애애액!
어둠을 가르며 한줄기 화살이 소렌을 향해 쇄도해왔다.
부릅, 떠지는 두 눈.
바로 그때.
카앙─!
소렌의 앞으로 진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화살이 소렌의 살을 뚫는 파육음이 아니라 둔탁한 쇠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튀어나가는 불꽃.
그와 함께 시야가 잠깐 밝아졌고 소렌은 어떤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따라와봤더니···.”
“역시. 그 새끼가 아무런 대책없이 그 지랄을 할리가 없지.”
소렌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런 갑작스러운 소란 때문일까.
앞선 한스를 비롯한 동료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기사들 또한 싸움을 멈추었다.
이윽고 바라본 시야.
그곳엔 숲의 어둠을 걷어내며 두 사람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금발의 머리를 한 사내.
금발의 포니 테일의 머리를 한 여인.
“다, 당신들은···!”
한스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