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 정면돌파(1)
암스베르크 중앙에 위치한 아벤느가 백작성.
웅장함과 장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거대한 백장성은 아벤느가 가문이 갖는 위명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벤느가 백작의 집무실.
집무실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책상에 앉아 깃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홀란트 아벤느가 백작.
아벤느가 가문의 가주이자 이 백작성의 주인.
동시에 이사벨 엘란두르의 아버지이자.
“백작 각하. 지금 로즈웰 아가씨와 네이슨 도련님이 백작성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네이슨과 로즈웰의 외할아버지 되는 이였다.
“뭐라? 로즈웰과 네이슨이 왔단 말이냐?”
집사의 보고에 홀란트는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이윽고 홀란트가 들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자 집사가 재차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막 엘란두르의 마차가 백작성의 입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무사히 도착했구나. 그래, 오면서 별 일은 없었다고 하더냐.”
엘란두르와 아벤느가.
각각 제국 동부와 남부에 위치한 탓에 거리가 제법 되었다.
그런 먼 거리를 이동하다보면 각종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곤 했었으니까.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어진 집사의 보고에 홀란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사, 세상 어떤 간 큰 도적이 엘란두르를 건드릴까.
아니, 어떤 존재가 감히 엘란두르를 건드릴 수 있을까.
그런 정신 나간 이는 제국에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만일 그러한 이가 있다면 엘란두르가 나서기 전에 홀란트가 가만 두지 않을 터였다.
물론··· 최근 들어 한 명이 있긴 했다..
정신이 나가다 못해 미쳐버린 놈팽이가 말이다.
“카이는 오지 않았다고 하더냐?”
“보고에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집사의 답에 홀란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에게 대충 사정을 들었으니까.
그렇기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한 편.
다시 한 번 어떤 미친 놈팽이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름과 얼굴.
홀란트는 거친 콧바람을 내뿜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버렸다.
오랜 만에 만나는 손주들과의 재회.
“로즈웰과 네이슨이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바로 쉴 곳을 마련해주거라. 그리고 주방장에게 오늘 저녁은 특선 요리로 만들라 전해라.”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만에 만나는 손주들과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
홀란트는 그 순간이 너무도 기대될 뿐이었다.
#
“······ 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러운 시안의 말에 방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시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모두 멍한 표정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야. 내가 직접 아벤느가 백작성에 찾아간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시안의 말.
“영주님···?”
“그, 그게 무슨···?”
사람들은 그때서야 시안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위험합니다 도련님!”
가장 먼저 한스가 소리치며 말려왔다.
시안이 태어날 적부터 시안과 함께 해온 한스.
과거, 시안이 엘란두르 가문에 있을 적부터 한스는 시안과 함께 해왔다.
그렇기에 한스는 알고 있었다.
“아벤느가 백작이 가만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시안과 아벤느가.
그러니까 시안과 홀란트 백작.
이 둘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터였다.
이사벨의 본가(本家), 아벤느가.
그런 아벤느가가 시안과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다른 이들이라고 지금 시안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상황이 그러하니 당연히 이러겠구나,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스는 아니었다.
한스는 옆에서 보고, 또 직접 겪어왔다.
과거, 어린 시안이 홀란트에게 어떤 수모를 당해왔고.
또 홀란트가 시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그 모든 것들을 직접 보고 또 겪어왔다.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렇기에 한스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시안을 말렸다.
무엇보다.
“도련님이 백작성에 찾아간다 한들. 소렌을 잡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안이 백작성에 찾아간다 한들.
그것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존재가 그대로 발각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홀란트에게 시안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놓고 홀란트 백작에게 ‘소렌 좀 잡아가겠습니다.’ 하면.
홀란트 백작이 ‘어이쿠, 그러렴. 우리 손주가 잡아가겠다는데 잡아가야지.’ 이러지는 않을 거니까.
그렇기에 백작성을 찾아간다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되려 시안의 존재를 드러내는, 악수가 될 수 있었다.
“맞아. 내가 백작성에 찾아간다 한들. 소렌을 직접 잡아올 수는 없어.”
당연히 시안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
“그러니 내가 미끼가 된다.”
이게 백작성에 숨은 소렌을 잡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미끼··· 라는 말씀은···?”
시안의 말에 한스가 멍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비단 한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이해하지 못했는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
아벤느가 백작성에 위치한 거대한 식당.
“백작 각하를 뵈어요.”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로즈웰과 네이슨이 홀란트 백작을 향해 예를 표했다.
“백작 각하라니. 사석에 있을 땐 편하게 대하라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에 홀란트 백작이 서운을 표정을 지어보였다.
로즈웰과 네이슨은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홀란트 백작에게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할아버지.”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그래. 너희들도 잘 지냈느냐.”
홀란트는 그때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야 뭐···.”
“별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둘의 답에 홀란트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별 일 없었다니 다행이다. 그래, 이사벨은 잘 지내고?”
“어머니는···.”
그리고 이어진 로즈웰의 말.
그 답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홀란트는 눈을 크게 뜨며 로즈웰에게 물었다.
“이사벨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아니요.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다기보다는··· 가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요.”
다시 이어진 로즈웰의 답에 홀란트는 놀란 심정을 쓸어담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놀란 심정이 약간의 분노로 변질되었다.
다름 아닌 로즈웰이 말한 엘란두르 가문의 문제.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또 이사벨이 그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썩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어떤 미친 놈팽이로 빚어진 문제였다.
다시금 떠오르는 어떤 얼굴과 이름.
홀란트는 고개를 흔들어 그것을 털어내었다.
“이사벨은 별 일 없고?”
“어머니는 별 일 없으세요.”
“안 그래도 어머니께서 할아버지께 안부를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다.”
홀란트는 그때서야 주름 진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서있는 로즈웰과 네이슨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이쿠, 내가 우리 귀한 손주들을 너무 오래 세워둔 것 같구나. 자, 다들 이리 와서 앉거라.”
로즈웰과 네이슨은 그때서야 드넓은 테이블의 양 옆.
그러니까 홀란트의 좌우로 자리했다.
그렇게 로즈웰과 네이슨이 자리하고 난 직후.
식당의 문이 열리며 백작성의 고용인들이 음식들을 줄줄이 나르며 세팅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음식들은 드넓은 테이블을 빼곡히 채우고 나서야 멈추었다.
온갖 산해진미들이자 평범한 사람들은 한끼 식사로도 꿈도 못꾸는 진귀한 음식들.
그런 음식들이 수 십가지나 즐비해있었다.
“배고플텐데 어서 들거라. 엘란두르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입맛에 맞을 지는 모르겠다만. 이 할애비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맛있게 먹어주려무나.”
온갖 산해진미들을 모아놓았다한들.
엘란두르 저택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황궁의 음식들을 가져와야 어찌 비빌 수 있을까.
그렇기에 로즈웰과 네이슨에게 있어 이건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일 터.
하지만.
“아니에요. 전혀요.”
“절대로 아닙니다 할아버지.”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내뱉는 말은 100% 거짓이 없는 진심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식사라니···.”
“난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누나.”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엘란두르의 식사는 형편없었으니까.
그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재 엘란두르에 예산이 상당히 부족했으니까.
감쪽 같이 사라진 8,200만 골드의 행방.
그 행방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 범인 또한 찾지 못했다.
물론 그 범인이 누군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만···.
그 범인은 잡을 수도, 잡지도 못하게 꽁꽁 숨어있었다.
어쨌거나 현재 엘란두르의 예산은 비어있었고.
그 일환으로 로즈웰과 네이슨이 이곳, 아벤느가로 온 상황이었다.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로즈웰과 네이슨은 그 말과 함께 음식을 집어들었다.
우걱우걱.
와그작.
정확히는 웬 거지 새끼들 마냥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홀란트.
마치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귀족의 체면도 잊어버린 채 허겁지겁 먹는 손주들의 모습에 홀란트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래서일까.
정말, 정말로 싫었지만.
머릿속으로 어떤 놈팽이의 이름과 얼굴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렇게 분노와 침묵 속에서 식사는 이어졌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배를 채웠을 때 쯤.
“로즈웰은 이제 슬슬 결혼할 나이가 되지 않았더냐.”
홀란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20대 중반을 넘어 후반에 들어선 로즈웰.
평범한 귀족가의 여식이었다면 진즉에 결혼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였다.
그리고 뭐, 귀족 가의 자제들이 하는 결혼이야 뻔하디 뻔했다.
이해 관계에 얽힌 정략 결혼.
당장 이사벨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가.
그걸 홀란트라고 모르지 않았으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더냐.”
손주들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홀란트의 말에 로즈웰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냅킨으로 살며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저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요.”
“음? 어째서 그러느냐?”
“결혼 생각도 없고, 마음에 드는 남자도 없고, 때가 되면 가겠지만··· 어머니께서도 딱히 마음에 드는 가문이 없다고 하셔서요.”
이어진 로즈웰의 답에 홀란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엘란두르의 눈에 들 가문이 어디있겠는가.
아니, 딱 한 가문이 있긴 했었다.
“그럼 황태자 전하는 어떠하더냐.”
제국의 심장, 황가.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겠으나 현재 황태자비는 공석이었다.
그리고 황태자 또한 딱히 마음에 품은 여인도 없다고 알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라면야···.”
홀란트의 말에 로즈웰이 살짝 머뭇거리며 답해왔다.
모른 척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내심 황태자를 생각해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로즈웰 정도면 황태자비로 적격이었다.
손주로서 어여삐 보이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로즈웰은 이사벨을 닮아 절대로 꿇리는 외모가 아니었다.
게다가 기사로서의 능력도 출중한 편.
듣자하니 벌써 마스터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가문이면 가문.
능력이면 능력.
외모면 외모.
그야말로 황태자비의 인재라 할 수 있었다.
홀란트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네이슨에게 말했다.
“네이슨은 어떠하냐. 네이슨도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더냐?”
“저도 딱히 없습니다.”
“그럼 황녀님은 어떠하더냐.”
황녀, 엘레나.
역시나 제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겠다만 황제의 부마 또한 공석이었다.
게다가 황녀의 미모 또한 훌륭하다 정평이 나있으니.
네이슨의 짝으로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황태자와 황녀, 둘과 모두 연을 맺은 엘란두르라.
이건 가히 날개를 단 드래곤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드래곤은 이미 날개가 있었다만.
그건 엘란두르도 마찬가지였다.
“형님이 있지 않습니까.”
이어진 네이슨의 답에 홀란트가 살짝 눈을 치켜 떠보였다.
네이슨의 형님이라 함은 다름 아닌 카이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의 장자이자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천재.
“황녀님은 카이 형님과 맺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차 들려오는 네이슨의 말에 홀란트는 주름 진 미소를 가득 지어보였다.
“기특하구나. 형을 위해서 물러설 줄도 알고.”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손주들이지 않은가.
홀란트는 정말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네이슨을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홀란트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
더없이 좋은 식사 자리.
바로 그때였다.
“배, 백작 각하!! 백작 각하!!”
갑자기 식당 문이 벌컥, 열리며 집사가 뛰어들어왔다.
그 모습에 홀란트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저리 천박하게 굴어서야.
무엇보다 손주들과의 즐거운 식사 자리를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홀란트는 굉장히 기분이 나빴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다.
다름 아닌 노크도 없이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온 집사.
“큰일···! 큰일 났습니다···!”
그 동안 집사가 저리 다급한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으니까.
어떤 미친 놈팽이가 엘란두르와 척을 질때도.
어떤 정신 나간 놈팽이가 카이를 다치게 했다고 했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집사였다.
그런데 지금 집사는 거의 뒤집어질 것처럼 놀라고 있었다.
화가 나면서도 무슨 일인가 싶은 궁금증이 공존했다.
이윽고 집사가 헐레벌떡, 홀란트 백작 앞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지, 지금 백작성 앞에···!!”
경악 어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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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느가 백작성의 성문.
“아··· 근무 언제 끝냐나···”
백작성의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근무 시간은 더럽게 가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정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멍하니 근무를 서고 있자니.
전문 용어로 뺑이를 치고 있자니.
“임마! 정신 차려. 지금
옆에서 동료 문지기가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지금 엘란두르에서 손님이 온 거 몰라? 괜히 잘못 걸렸다가 무슨 화를 당하려고 그래? 빨리 제대로 서.”
“······ 에이 씨.”
문지기는 말을 씹듯이 내뱉으며 눈에 초점을 되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무슨 화를 당할지 몰랐으니까.
정확히는 무슨 트집을 잡으며 지랄할 줄 몰랐으니까.
멀쩡히 근무하던 병사를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두들겨 패던 이들이지 않은가.
문지기는 삐뚤게 쓴 투구를 고쳐쓰고.
흐트러진 갑옷을 다시 바로잡았다.
“하아··· 손님이면 손님인데. 왜 우리한테 지랄인 걸까?”
“낸들 아냐. 높으신 귀족 나으리들인데 까라면 까야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두 문지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들어올리던 그때.
“야. 저기 사람 아니냐?”
저 먼 시야로 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어디? 어디··· 어? 진짜네.”
“여기로 오는 거 같은데?”
“어라. 그러네.”
사람의 형체는 점점 백작성의 입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자 확실히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깊게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정지. 여기는 아벤느가의 백작성이다.”
“신원과 방문 목적을 말하라.”
문지기는 앞을 가로막으며 맡은 바 업무에 충실했다.
정체 불명의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고 천천히 눌러 쓴 후드를 벗었다.
그렇게 보인 얼굴.
후드 속의 얼굴은 사내의 모습이었다.
어딘가 어벙한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내.
“시안 엘란두르. 오랜 만에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