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 암스베르크(2)
암스베르크에 위치한 한 여관 방.
꽤나 널찍한 방은 어느 정도의 공간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방에 모여있는 도합 8명의 사람들.
정확히는 시안 제외한 7명의 사람들.
그들은 각각 저마다의 한숨 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소렌이 백작성에 있다니···.”
“그게 정말이야···?”
다름 아닌 소렌이 백작성에 숨어있다는 말.
“어쩐지··· 그렇게 개고생을 해도 찾을 수가 없더라니.”
“이상하다 싶기는 했어.”
위고와 보니타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동안 소렌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자금이 사라졌는데도 어느 누구도 추적하지 못했던 이유.
정확히는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
그 모든 것이 아벤느가의 백작성.
이 한 마디에 모두 설명이 가능했다.
세상 어떤 미친 놈이 아벤느가의 백작성을 수색할까.
백작의 권위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엘란두르, 이사벨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닿는 곳이면 더더욱 그러했다.
소렌은 그런 아벤느가 백작성에 숨어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소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정확한 건 역시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정황상 소렌은 아벤느가 백작성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백작성을 중심으로 다시 수색을 이어나가야했다.
하지만.
“이러면 우리가 할 수가 있는 건 없네.”
“백작성에 있다면··· 건드릴 수가 없는 걸.”
이 이상의 수색은 진행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소렌을 잡기란 불가능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백작성을 들 쑤실 수는 없었으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았으니까.
“이렇게 되면···.”
“의뢰는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위고와 보니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한스는 그런 둘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애시당초 소렌을 찾지 못했다면 모를까.
어디에 있는지 뻔히 보이는 데 물러난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거야 당연하네. 나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었어.”
“다만··· 지금 당장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거지.”
그러나 더 이상의 방법도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백작성을 조사할 수 없을 뿐더러.
아벤느가의 눈밖에 나면 그 결과야 어찌될 지는 뻔했으니까.
그리고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용병들.
지금은 비록 은퇴를 했다지만 용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해서 이 의뢰도 원래라면 받아서는 안 되었다.
위험 부담은 컸고, 의뢰비는 일절 없었으니까.
오로지 옛 정과 의리.
그 두 가지만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차라리 그림자 달에 의뢰를 넣으면 어때?”
“그래. 그림자 달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그 순간 들려온 말.
다름 아닌 막심과 토마의 말이었다.
“그림자 달이라면···.”
“암흑가의 정보 길드를 말하는 건가?”
암흑가의 정보 길드, 그림자 달(Shadow Moon).
암흑 도시, 베네르에 위치한 정보 길드이자.
정확히는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였다.
그리고 암흑가를 지배하는 지하 세계의 길드.
그런 그림자 달이라면 혹시 몰랐다.
아벤느가의 백작성을 수색하고 소렌를 잡아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림자 달은 그러한 일들을 전문적으로 하는 정보 길드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림자 달이라고해도···.”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하지만 그림자 달이라 해도 이번 일은 힘들었다.
아벤느가는 단순히 백작령이 아닌 엘란두르의 입김이 닿는 백작령.
“길드장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힘들 것 같은데.”
정확히는 그림자 달의 길드장이 나서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흔히 암흑가라 함은 범죄나 폭력.
각종 불법 행위가 판을 치는 세계였다.
그리고 그런 암흑가에 살아가는 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살인은 고사하고 고문, 강간, 납치.
창의적인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놈들이었다.
그러면서 일말의 죄책감마저 느끼지 않으니.
그야 말로 짐승.
심히 개새끼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
다이애나는 그런 개새끼들이 날뛰는 암흑가에 단신의 몸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광기에 미쳐있는 개새끼들을 모조리 짓밟았고.
혼돈으로 가득찬 암흑가에 ‘규칙’ 이라는 것을 부여했으며.
끝내 암흑가의 정점에 올라선 유일무이한 존재.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디 출신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려진 것이 전무했다.
다만, 제국 최고의 정보 길드 수장이라는 것.
그리고 알려진 소문의 내용.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다이애나는 충분히 아벤느가의 백작령을 수색할 수 있었다.
“글쎄··· 그림자 달의 길드장이 나서도 되려나.”
아니,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이라고 엘란두르가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그림자 달의 길드장과 접촉할 방법도 없잖아.”
무엇보다 다이애나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아무 의뢰를 받지도 않았다.
“커너 교관을 통하면··· 어찌 접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들려온 그레이슨의 말.
“어? 그러게요. 커너 교관님이 예전 그림자 달 소속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커너라면···.”
현 루벤의 암살 교관이자.
전 암흑가 출신의 사냥개, 커너.
그런 커너가 예전에 몸을 담고 있던 곳이 바로 그림자 달 길드였다.
그곳에서 특급 암살자로 활동하던 커너는 당연하게도 다이애나와 연결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커너를 통하면 다이애나와 접촉하는 건 가능했다.
또 어찌 협상을 하면 의뢰를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로써 새로운 돌파구가 나온 상황.
하지만.
“그림자 달은 안 돼.”
시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시안 또한 그림자 달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이라고 그림자 달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가장 먼저 그림자 달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 전.
그러니까 커너가 루벤의 노예(?)가 되던 당시.
시안은 그림자 달의 길드장, 다이애나로부터 서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암살을 하려해서 미안하다.
사죄의 의미로 300만 골드를 동봉한다.
그리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었다.
그 증거로 편지와 같이 그림자 달의 증표를 동봉했었다.
물론 당시에는 300만 골드에 더 집중했었다지만.
그 증표는 인벤토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해서 시안은 암스베르크에 오기 전.
그림자 달에 연락을 해놓은 상태였었다.
소렌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림자 달의 힘을 빌리고자 이미 연락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림자 달은 현재 어떠한 의뢰도 받지 않아.”
아무런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루벤에서 암스베르크로 올 동안.
그레이슨이 24명의 용의자들을 추적할 동안.
한스와 그의 옛 동료들이 암스베르크 전역을 수색할 동안.
그 어떠한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확인한 바.
그림자 달은 현재 종적을 감춘 상황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림자 달은 암흑 도시, 베네르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이라도 치듯이 말이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할 땐 언제고 참···.’
정작 필요할 때는 없는 그림자 달.
하여간, 범죄자 놈들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뭐, 어쨌든.
“그림자 달은 안 됩니다. 또한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해요.”
그림자 달은 안 되었고 또 솔직히 말하면 다른 이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지 않았다.
이 일은 비밀 리에 처리해야만 했으니까.
괜히 시안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니까.
무엇보다 그 누가 아벤느가를, 엘란두르를 얽힌 의뢰를 받아들이려 할까.
결국 여기 모인 8명이서 해결해야만 했다.
이 8명이 들키지 않고 백작성을 수색해 소렌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
“······”
“······”
대체 어떻게 백작성을 수색할 수 있단 말인가.
#
험준한 산길의 풍경.
달그락달그락.
그 풍경 사이로 한 대의 마차가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4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별 다른 호위도 없었고, 별 다른 치장도 되어있지 않았다.
다만, 마차가 고급지다 라는 느낌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귀족 가의 마차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마차들은 도적과 산적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호위도 없이 홀로 다니는 귀족 가의 마차.
그건 ‘나 약탈해줍쇼’ 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특히나 지금처럼 인적이 드물고 험준한 산길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 마차만큼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마차 앞으로 가로막질 않았다.
되려 마차를 보고 슬금슬금, 도망가기 바빴다.
다름 아닌 마차에 새겨진 문양.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늑대의 형상.
엘란두르를 상징하는 하얀 늑대 문양을 보고 달려들 간 큰 도적은 없었으니까.
다만, 의아해할 뿐이었다.
보통 가문의 권위에 따라 행차의 수준도 달라진다.
그리고 제국의 두 기둥이라 불리는 엘란두르.
엘란두르라면 온갖 호위는 물론, 화려함의 극치를 달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것은 달랑 마차 하나.
엘란두르가 움직인다고 보기엔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단지 의문만 들 뿐.
달그락달그락.
엘란두르를 향해 달려들 간 큰 도적은 없었다.
그렇게 엘란두르의 마차는 그 누구의 방해받지 않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엘란두르 마차에 탄 2명의 남녀.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금발의 머리를 한 사내, 네이슨 엘란두르.
“뭘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포니 테일로 묶은 금발 머리의 여인, 로즈웰 엘란두르.
로즈웰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네이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갑자기 외할아버지한테 가는 거 말이야.”
네이슨의 말에 로즈웰은 마차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네이슨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외가를 방문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
만일 정말 외가를 방문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마차 하나만 대동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다른 호위 없이 네이슨과 단 둘이 갈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비밀스러운 의도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긴 했지만···.”
로즈웰은 여전히 창 밖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휙휙, 지나가는 산길의 풍경.
“전쟁을 준비하고 계신 거겠지.”
“역시 그런 거겠지?”
로즈웰의 말에 네이슨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 그 망나니 새끼를 짓뭉개버리려는 거겠지? 그러면 그 새끼 목은 내가 따주겠어.”
그리고는 이를 까득, 깨물며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그런 네이슨의 말에 로즈웰은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서라, 카이 오빠도 당했는데 네가 뭘 어쩐다고?”
“누나는 그 말을 믿어?”
그러자 네이슨이 불신의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루벤을 없애고자 출병을 했던 카이.
그러나 카이는 끝내 루벤을 지도에서 지우지 못했다.
웬만한 백작령과 견줄 정도의 전력에도 패퇴했다.
심지어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 에런이 있었음에도 패퇴했다.
그 과정에서 카이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지금이야 완치가 되었다지만 실로 말도 안되는 일.
“그깟 병신 새끼가 어떻게 카이 형님을···. 분명 어떤 개수작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네이슨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뭐···.
로즈웰도 네이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말이 안 되었으니까.
로즈웰은 카이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지.
왜 역대 엘란두르를 통틀어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지.
로즈웰은 정말이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즈웰이 언젠가 넘고 싶은 벽이자.
한편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
로즈웰에게 카이란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카이를 시안이 대적했다?
옛날 울음이나 찔찔 짜던 찌질이 새끼가?
물론 시안이 이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이를 부상 입혔다, 라는 사실조차 말이 안되었다.
“그래도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아.”
하지만 시안에게 뭔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개수작을 부려도 카이는 카이였으니까.
그런 카이와 대적했다는 건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난 날 저택에서 직접 시안을 마주한 바.
예전 병신 같던 시안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네이슨은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일까.
“그 새끼. 저번에도 아주 아득바득 기어오르던데. 만나기만 해봐. 아주 개박살을 내줄테니까. 사지를 찢어서 하나는 늑대 밥으로 주고, 다른 하나는···.”
네이슨은 이를 뿌드득, 뿌드득 갈며 시안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 표현이 조금 과격하긴 했다만···.
솔직히 로즈웰도 네이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로즈웰 또한 그 건방진 시안의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었으니까.
예전 괴롭힘이나 받으며 질질 짜던 시안이 나대는 것이 너무도 꼴보기 싫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시안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루벤에 틀어박혀있는 시안을 뭘 어쩐단 말인가.
그러나 언제까지고 거북이처럼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뭐, 거북이의 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북이가 겁을 먹어 목을 내밀지 않는다면.
“아가씨. 도련님. 아벤느가 백작성에 도착했습니다.”
등껍질 채로 부숴버리는 수밖에.
#
암스베르크의 여관방에는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안을 포함한 8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건만.
“······”
“······”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뭐라 할 말이 없었으니까.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허어···.”
“이를 어찌···.”
그저 한숨 섞인 탄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한숨 섞인 상황 속.
“흐음···.”
시안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면···.
아벤느가 백작성에서 소렌을 찾는 건 불가능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백작성에 잠입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키지 않게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으니까.
커너··· 였다면 가능했을까 싶었지만 그 뿐이었다.
그러니까 잠입만 가능할 뿐이었다.
백작성에서 소렌의 존재를 찾고 또 사로잡고.
그를 추궁하여 비자금의 위치를 파악하고 또 회수하는 것.
말 그대로 ‘수색’을 해야했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들키지 않고’라는 것은 적용될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들킬 수밖에 없었다.
소렌은 아벤느가에서도 중히 보호하는 인물일 테니까.
애초에 잠입과 수색은 완전히 상반된 개념.
차가운 불덩이를 소환하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들키면 그걸로 끝이었다.
여기 암스베르크는 말 그대로 적진의 한복판.
잠입을 하다 들키는 그 순간, 고립되어 사로잡힐 뿐이었다.
똥개도 제 집에서는 반절을 먹고 들어간다고.
상황이 불리해도 너무 불리했다.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정확히는.
“어쩔 수 없나···.”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그 말씀은···?”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시안의 중얼거림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시안의 답을 기다렸다.
시안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현실적으로 아벤느가 백작성에 잠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잠입한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일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수상한 짓을 하다가, 걸리면 끝이었다.
어디까지나 캥기는 일을 하다가 들킬 경우.
즉, 현행범으로 붙잡히면 시안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캥기는 일을 하지 않으면 상황은 묘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현재 루벤과 엘란두르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벤느가와는 아니었다.
물론 이사벨의 본가(本家)였으니 사실상 적대적 관계였다.
그러나 형식상으로는 아벤느가와 루벤은 별 다른 원한이 없었다.
그리고 시안은 현재 백작위를 받은 고위 귀족.
예로부터 전쟁 중에도 적국가의 사신은 죽이지 않거늘.
하물며 명분이 없는 귀족을 억압하고 살해한다?
존귀한 귀족들의 다툼이 어찌 시정잡배와 같을 수 있을까.
괜히 영지전이라는 법안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소렌은 거북이처럼 목을 감춘 채 숨어있었다.
아벤느가라는 단단한 등껍질 안에서 목을 숨기고 있었다.
뭐, 거북이의 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북이가 겁을 먹어 목을 내밀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아벤느가 백작성에 찾아간다.”
직접 찾아가 그 목을 끄집어 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