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99화 (199/322)

199화 - 대격변의 루벤(1)

모바일 영주와 기절과 함께 긴급 점검에 들어간 이후.

그 보상의 일환으로 모든 건물과 연구에 대한 즉시 완료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로써 피해 인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겠다만.

사실 이것도 어찌 보면 피해 인과라 볼 수 있었다.

뭐, 아무튼.

그리하여 이번에 맞이한 대격변.

몸단장, 진화, 재개발, 버그.

그 뒤를 이은 이번 대격변은 그야말로 루벤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이, 이게 뭐야···.”

“처, 처음 보는 시설들인데···?”

새로이 마주하는 신설 건물들은 물론.

“이런 수준의 건물들을 대체 어떻게···?”

“이게 하루 아침에 지은 건물들이라고···?”

전보다 업그레이드 된 기존의 시설들과.

“루벤이 언제 이렇게 넓어졌지?”

“어제까지만 해도 여긴 숲이었는데···?”

더욱더 넓어진 루벤의 영역까지.

“이, 이게 대체···.”

“말도 안돼···.”

그야말로 대격변을 맞이한 루벤의 풍경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농지가··· 아, 여기구나.”

“제빵소가 좀 달라져서 몰라봤는데 이거였구나.”

“대장간도 잘 있군.”

그 이후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각자의 구역에 들어가 할 일을 척척, 알아서 찾아갔다.

하기사,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변화였다.

물론 볼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으나.

이제는 익숙이라는 개념을 들이밀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몰라. 묻지마.”

물론 변화에 익숙해진건지.

아니면 그냥 포기를 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생각을 포기하면 편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루벤의 영지민들은 큰 위화감 없이 변화된 루벤에 적응을 해나갔다.

다행이다면 다행인 상황.

그렇게 평화로운 루벤의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쐐애액!

영주성 Lv.4에 위치한 연무장에는 매서운 파공음이 터져나왔다.

영주성 Lv.4의 업그레이드와 더불어 같이 업그레이드 된 연무장.

증폭된 성장 버프는 물론 조금 더 깔끔해진 연무장이었다.

그런 연무장 중앙에는 시안의 검이 허공을 수놓았다.

콰릉!

시안의 검이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연무장의 공기가 크게 떨려왔다.

시안의 전신으로 검은색의 기류가 얽히며, 주변의 공간을 장악해나갔다.

콰지직─!

그리고 그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시안의 검.

시안의 검은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로써 완성되는, 하나의 참격은.

꽈르르르릉···!

어떤 괴악한 힘을 품고 있었다.

참격이 지나간 주변이, 괴악하게 일그러졌다.

상급의 마혼수라검.

검을 휘두르며 시안은 차분히 기억을 되짚었다.

기억 속의 카일.

환상처럼 카일의 검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시안은 그런 카일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카일의 검로를 따라 시안의 검을 완성시켜나갔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환상 속의 카일의 검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시안의 검 또한 멈추었다.

띠링!

《카일의 동작을 따라하기 [1,000 / 1,000]》

그리고 화면 가득히 떠오른 알림창.

“후우···.”

시안은 그때서야 가쁜 호흡을 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상급 진행률 0.7%(+0.02%)]

“하아···.”

재차 떠오른 진행률의 상태에 금방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0.02%? 미친 거 아니야?”

진행률이 더뎌도 너무 더디지 않은가.

그냥 생으로 수련을 한 것이라면 말이라도 안하겠다.

“+30,000%의 성장 버프에도 이 정도라고?”

하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수련했으면 어느 정도인거야?”

현재 시안에게 적용 중인 성장 버프는 +30,000%.

1시간 수련하면 300시간의 효율이 나오는 격이었다.

그러니 현재 진행률인 0.7%를 300으로 나누면 0.002%

“지랄···.”

그야말로 지랄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진행률이었다.

하지만 마냥 이해하지 못할 수치는 또 아니었다.

직접 상급의 마혼수라검을 수련한 바.

왜 이럴 수밖에 없는 지 알 수 있었으니까.

“너무 어려워.”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으니까.

앞서 시안이 배운 마혼수라검의 1식과 2식.

그 둘은 각각 추구하는 바가 명확했다.

1식, 수라천살(修羅天殺)은 베기(斬)의 묘리를.

2식, 멸천수라(滅天修羅)는 찌르기(衝)의 묘리를.

하지만 지금 수련하는 상급의 마혼수라검.

이건 추구하는 바가 묘했다.

두 가지, 베기와 찌르기를 혼합한 묘리를 담고 있달까.

따라서 이건 하나의 식(式)이라기 보다는, 앞선 두 개의 식(式)을 혼합한 하나의 형(形)이라고 봄이 옳았다.

그 때문일까.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 난해함은 도무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또 그것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시안은 살짝, 시선을 내려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칠흑의 어둠을 품고 있는 듯한 SSS등급의 검.

짙은 어둠은 그 무엇도 베어버릴 듯한 예기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검날의 끝부분.

그곳이 미세하나 상해있었다.

지금 시안이 수련하는 상급의 마혼수라검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세미르가 당분간 쓰는데 문제는 없다고는 했는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망가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왔다.

수리를 해주고 싶어도 세미르는 건드릴 수가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하기사, 모르크루도 카일의 검은 건들지 못했다고 했었지.”

대체 카일이 무슨 검을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결국 우려하던 일이 기어코 발생한 것이었다.

해서 SSS등급의 검을 강화해야만 했다.

시안이 성장한 만큼, 장비도 새로이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모르크루의 단철장> (50,000,000 G)』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321,430 G

“하아···.”

한숨만 나오는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본래 인벤토리에는 43만 골드가 있었다.

하지만 유지 관리비로 11만 골드가 빠져나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하여 지금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강화를 하고 싶으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딱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모바일 영주가 기절해버린 탓에 들려오진 않았지만.

깨어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깐족거렸을 타이밍이었다.

“······ 젠장.”

시안은 밀려오는 감정에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현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만···.

눈앞의 현실은.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기는 개뿔!”

시안은 버럭, 소리쳐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똥통을 준비해다가 스마트 폰을 담구고 싶었다만.

기절해버린 모바일 영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뭐, 어쩌랴.

“또 돈 모아야지···.”

시안은 터덜터덜, 연무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내딛는 발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멍한 표정은 마치 정신과 영혼이 빠져버린 듯 해보였으며.

육체는 빈 껍데기 마냥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

“엘란두르의 장부를 계속 살펴봐달라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멜리아의 물음.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크루의 단철장>을 짓기 위한 5,000만 골드.

그리고 강화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강화 자금.

그 어마어마한 자금을 단번에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엘란두르의 비자금밖에 없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갑자기 왜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하자고 하셨잖아요.”

아멜리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그게··· 이제는 조금 급해졌거든.”

“네? 급해져요?”

“골드가 좀 필요해서 말이지.”

이어진 시안의 답.

아멜리아는 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드가 필요해요?”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표현 그대로, 아멜리아는 시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골드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많다 하더라도 언제나 필요한 것이었다.

돈이라는 놈은 그러한 놈이었다.

이건 세상 사 지고불변의 진리.

그런데 시안은 아니었다.

시안만큼은 예외였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시안만큼은 절대 저런 말을 내뱉어서는 안되었다.

일단 아멜리아가 이번 상행으로 벌어온 골드만 830만 골드였다.

여기에 전쟁 배상금으로 뜯어낸 골드가 자그마치 1억 5천만 골드.

1억 5천만 골드.

과거, 아멜리아가 브라헤 상단에 있을 적에도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물론 억 단위의 규모는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실제로 쌓여있는 것은 단연코 본 적이 없었다.

4인 가족 어쩌고 하는 비유 따위는 전혀 의미가 없는 초월적인 금액.

그런 초월적인 골드를 가지고 있거늘.

다시 골드가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

그 순간.

아멜리아의 머릿속으로 끔찍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참혹한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고양이를 닮은 아멜리아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그곳은 오롯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실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정말 말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간 아멜리아가 지켜본 시안이라면 혹시···? 하는 생각이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 안되었다.

그만큼 1억 5천만 골드는 초월적인 금액이었다.

아멜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빛이 시안에게 향한다.

“서, 서, 서, 설마 그 돈을 전부···?”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에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왜일까.

진짜 왜일까.

“······”

왜 시안이 답을 하지 않을까!!

아니라고 말을 해야만 했다.

설마 그러겠냐고.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고.

분명 그렇게 말하며 한껏 역정을 내야만했다.

그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며, 통념적임과 동시에 보편적이며 표준적인 평균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진짜 왜일까.

“······”

시안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멜리아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설마하니 그 돈을 다썼을라고.

그래도 어느 정도 남아있겠지.

“얼마가··· 남으셨는데요?”

“············ 32만 골드.”

저게 무슨 개소리─ 아니, 말씀이실까?

아멜리아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려왔다.

휘청.

심각한 현기증이 일며 아멜리아의 몸이 흐느적거렸다.

이윽고 털썩, 아멜리아가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이건 꿈일거야···.”

아멜리아의 파르르, 떨리는 눈빛이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멜리아를 바라보던 시안.

시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이 천 개라도 진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 하하.”

그저 헛웃음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시안 본인도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아니, 그렇지 않은가.

1억 5천만 골드였다.

1,500만 골드가 아니라 1억 5천만!

그 말도 안되는 돈을 모조리 쏟아부었는데도 염병.

돈이 부족하다.

그렇게 현질을 했는데도 또 돈이 필요하다.

‘미친 게 아닐까?’

이건 미친 게 분명했다.

모바일 영주가 미치든, 아니면 시안이 미치든.

둘 중 하나는 단단히 미친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둘다 미쳤거나.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었다.

말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었다!

심지어 비단 시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하고자 하는 콘라드.

시안은 검술 복원에 1억 5천만 골드가 필요하다 말했지만.

진실은 ‘개방’하는데 필요한 골드가 1억 5천만이었다.

건설까지 하려면 5,000만 골드의 추가 골드가 필요했다.

‘전하께 알고보니 1억 5천만이 아니라 2억 골드라고 어떻게 말해···.’

이걸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말했다가는 농담이 아니라 그대로─.

“하아···.”

생각만 해도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뭐.

그건 어디까지나 콘라드의 사정.

지금 당장은 급한 시안의 사정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엘란두르의 비자금.

하여, 그 비자금을 찾기 위한 첫걸음.

털썩.

일단 고장난 아멜리아부터 고쳐야할 것 같았다.

#

신을 섬기는 자들이 모여 이룩한 국가, 신성 제국 루테아.

막강한 신성력을 다루는 이들이 모여있는 신성 제국은 샤를롯 제국과 더불어 대륙의 2강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루테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

‘오늘은 또 왜 저러실까···.’

로라는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성 제국의 여사제, 로라.

그리고 성녀, 아리아를 보좌하는 로라였다.

그런 로라의 눈에는 한 여인이 비쳐보였다.

화사한 백금발과 더불어 인간이 맞나 싶은 초월적인 미모의 여인.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다름 아닌 성녀, 아리아였다.

아리아는 방 안에 앉아 뭐라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진짜 나쁜 놈. 나쁜 새끼!”

얼핏 들려오는 말이 험하다 못해 천박했지만.

아리아의 천성을 알고 있는 로라에게는 그닥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보아하니···.

뭐가 마음에 안든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모양이었다.

로라는 뾰루퉁하게 앉아있는 아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방금 화를 내면서 살짝 헝크러진 아리아의 백금발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우리 성녀님.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앙칼지실까요?”

“로라! 진짜 너무하지 않아?”

그러자 아리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쳐왔다.

역시나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시안 말이야! 진짜 너무하지 않아?”

“네? 시안 공자님이요?”

“그래!”

아리아는 씩씩거리며 답을 해왔다.

“시안 공자님이 왜요?”

그리고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로라는 뭔가 싶었다.

보아하니 아리아가 시안 때문에 화가 난 듯 싶은데···.

그런데 로라가 알기로 전혀 그럴 건덕지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시안이 고마우면 고마웠지 화가 날 이유가 없었다.

다름 아닌 지금 아리아가 착용하고 있는 귀걸이와 목걸이.

아리아의 초월적인 미모를 더 돋보여주는 저 장신구를 시안이 선물해주었으니까.

그 덕분에 아리아를 향한 연모의 편지가 2배는 늘어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둘의 만남은 그 이후로 없었다.

그러니까 지난 날에 시안이 신성 제국에 방문한 이후.

둘은 직접 만나거나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딱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은 없었건만.

“어떻게 한 번도 연락이 없을 수 있냐고!”

아무래도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았다.

로라는 그때서야 아리아가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로라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리아의 볼을 콕, 찔렀다.

“그 때문에 우리 성녀님이 이렇게 화가 나셨군요?”

“화 안났어! 연락 없다고 내가 화를 왜 내?”

누가 봐도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냥··· 뭐하나 궁금할 뿐이야.”

이어진 아리아의 말.

로라는 굳이 그 사실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러면 성녀님이 먼저 연락해보는 건 어때요?”

“내가?”

“네. 시안 공자님이 뭐하시는지 궁금하시면 먼저 연락해보실 수 있잖아요.”

“······ 됐어. 누가 걱정이나 한다고.”

아리아는 고개를 홱, 하니 돌렸다.

그 모습에 로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의 정적.

“아니, 그런데 로라. 이 정도로 연락이 없는 거면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 아니야?”

아리아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며 물어왔다.

그리고 뭐···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물론 아리아를 상대로 관심이 없다, 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싶었다만.

직접 시안을 만나본 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되려 관심이 있는 여인에게 오히려 연락이 뜸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

“그럼요. 연락하기 쑥쓰러우니까요.”

“하지만 다른 남자들은 관심있다며 나한테 쓸데 없는 편지를 주구장창 보내는데?”

“그거야···.”

로라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시, 시안 공자님은 아닌가 보죠. 그리고 아마··· 일이 바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리 바빠도 연락 한 번은 할 수 있잖아.”

“그거야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이번에 작위식도 하시고 그러느라 많이 바쁘실 거예요.”

“작위식? 누가? 시안이?”

“네. 이번에 백작위를 받았다고 하던데요? 모르셨어요?”

아리아가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어떻게 놀라는 모습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다만은.

“······ 몰랐어.”

어째 이야기를 잘못 꺼낸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이 없어?”

“그, 그건···.”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자는 걸까.

로라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리고 로라도 알고 있는 사실을 왜 아리아는 몰랐을까.

애초에 시안은 왜 아리아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경사스러운 일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 나쁜 새끼.”

아리아가 울먹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두었다간 정말로 상처가 될지도 모를 일.

로라는 황급히 소리쳤다.

“아! 그럼 이번 기회에 직접 찾아가보시는 건 어때요?”

“직접··· 찾아가? 누구를? 시안을?”

“네. 두 분 만나신지도 오래 되었겠다. 교황청의 상황도 많이 안정화 되었겠다. 이번 기회에 샤를롯 제국에 가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지난 날,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로 교황청이 떠들썩해있었다.

다행히 시안의 도움으로 루슈리아를 패퇴시킬 수 있었으나.

레이첼 추기경이 도망침으로써 사건의 조사가 애를 먹었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된 지금.

로라의 말처럼 제국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치근덕··· 거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리아는 주저하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리아가 치근덕거린다니.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

아니, 아리아가 치근덕거려주면 어떤 남자가 거부할까.

“어···.”

그런데 시안은 조금 다를지도 몰랐다.

“자, 작위식을 축하해주려고 왔다면 되죠?”

“작위식?”

“네. 이번에 백작위를 받으셔서 작위식을 한다고 그러는데. 그러면 되겠네요. 작위식에 맞춰서 제국으로 가시면 좋지 않을까요?”

아리아는 그런 로라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귀족들에게 작위식은 중요한 행사지?”

“당연하죠.”

“내가 축하해주면 시안도 좋아하려나?”

“그럼요! 성녀님이 직접 가신다면 사람들이 시안님의 위상도 많이 올라갈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리아.

그 초월적인 미모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했다.

각종 행사와 연회에서 빠지지 않고 초대가 되지만 아리아는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괜히 갔다가 성녀의 이미지만 박살낼 것이니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유.

뭐, 어쨌든.

황제나 국왕의 즉위식에도 아리아는 참석하지 않거늘.

일개 귀족의 작위식에 직접 찾아간다?

아마 난리가 나도 생난리가 날 터였다.

로라의 말에 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자그마한 손거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래도 조금은 꾸미고 가는 게 좋겠지?”

꽤나 신이 난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해왔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로라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번에 제가 알려드린 화장법 기억하시죠?”

하여간, 정말이지 알기 쉬운 성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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