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 초월의 현질(2)
시안은 눈을 한 번 껌뻑 거렸다.
《쿠, 쿨럭···!》
껌뻑거리는 시야로 다시금 떠오르는 알림창.
역시나 모바일 영주는 기절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멀쩡해보이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크나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절하지 않았다.
인과의 과부하로 인한 점검 상태가 뜨지 않았다.
1억 5천만 골드.
황가의 자산을 뜯어내고.
엘란두르의 자금을 횡령한 그 막대한 골드.
그것에 거진 2배에 가까운 골드를 현질했음에도 모바일 영주는 기절하지 않았다.
강해지고 강해진 킹바일 영주라더니.
그 어떤 인과도 두렵지 않은 천하무적이라더니.
“이걸··· 견뎌···?”
어째, 단순한 호들갑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
“어, 어떻게 이런···.”
시안은 멍하니 스마트 폰의 화면을 바라봤다.
이렇게 되면··· 곤란했다.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난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집무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루벤의 풍경.
꽈꽈꽈꽝!!
뚝딱뚝딱!
쿠구구구궁···!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고 업그레이드 되는 생지랄의 풍경.
루벤은 지금 생지랄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건물들이 죄다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터라 시설들의 기능들이 일시적으로 마비가 되었다.
그리고 저 혼자 알아서 지어지는 건축 소음은 고막을 타고 머리까지 울려왔다.
그 뿐이랴.
지금 시안이 있는 영주성조차 Lv.4로 업그레이드 된다고 생난리였다.
집무실에 있는 지금도 조만간 쫓겨날 판이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생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즉시 완료권이 필요했다.
즉시 완료권이 없으면 시안은 물론.
영지민들 모두가 오늘부터 길바닥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그런데 모바일 영주는 기절하지 않았다.
긴급 점검의 보상으로 즉시 완료권을 받아내야하건만.
1억 5천만 골드가 넘는 현질에도 점검 상태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스마트 폰을 부셔야하나?
아니면 블리자드 똥통과 라이트닝 똥통을 준비해야하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 아직이다.”
시안은 끝내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아직,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니까.
다름 아닌 1억 5천만 골드를 현질함으로써 쌓인 마일리지.
[현재 보유 중인 마일리지] - 1,500,455 M
무려 150만에 달하는 마일리지가 남아있었으니까.
시안이 현질한 금액은 총 157,240,410 골드.
따라서 1%의 적립 비율대로라면 ‘1,572,404’ 마일리지가 쌓여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현질 금액이 마일리지로 쌓인 것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이번에 개방된 각종 영지 성장 패키지들.
패키지는 마일리지가 적립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최종적으로 쌓인 150만 하고도 455마일리지.
뭐, 어쨌든.
“아직 한 발 남았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최후의 한 방이 남아있었다.
본래라면 이 마일리지는 지금 쓸 생각이 없었다.
피해 인과로 쌓인 마일리지와는 달리.
현질로 적립한 마일리지는 유효 기간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필요한 시기에 알맞은 것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아직이다··· 아직이야···!”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시안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쌓인 마일리지, 150만.
455마일리지가 추가로 있었지만 의미 없는 수치다.
『특수품목』의 물품들을 많으면 최소 2개는 살 수 있었고.
『특수시설』의 건물을 하나 구매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효과는 확실했다만.
“아무래도 특수시설을 지어야겠지.”
이번엔 그 선택지가 달리 없었다.
모바일 영주를 보내려면 한 방에 보내야했다.
짜잘하게 썼다가 괜히 견디기라도 하면 그걸로 낭패.
그러니 150만 마일리지를 한 번에 털 수 있는 『특수시설』을 구매해야했다.
“문제는 어떤 시설을 구매하냐인데···.”
현재 구매 가능한 【마일리지 샵】의 특수시설은 모두 4개.
①<샤를롯의 전당 > (1,500,000 M)
②<엘로디의 마탑 > (1,500,000 M)
③<뮤리엘의 성소 > (1,500,000 M)
④<모르크루의 단철장> (1,500,000 M)
모두 150만 마일리지였고, 각각 사기적인 효과를 지닌 시설들이었다.
그 어떤 것을 지어도 아깝지 않을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시안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단··· 샤를롯의 전당은 패스.”
시안은 <샤를롯의 전당>을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건 콘라드에게서 뜯어낼··· 아니, 받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럼 엘로디의 마탑과 뮤리엘의 성소, 그리고 모르크루의 단철장 중에서 골라야하는데···.”
그리고 각각의 효과들은 다음과 같았다.
[<엘로디의 마탑> 건설 효과] - 영지 내, 마법 훈련을 수료한 마법사들은 ‘3위계(位界)’의 경지부터 시작합니다.
[<뮤리엘의 성소> 건설 효과] - 영지 내, ‘치료 상태’에 있는 환자들은 죽음에 이르지 않습니다.
[<모르크루의 단철장> 건설 효과] - 영지 내, 생산 시설에서 생산하는 물품들이 +1 추가로 생산됩니다.
어느 것 하나 사기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는 효과들이었다.
그러나 지을 수 있는 건 아쉽게도 딱 하나였다.
“으으음···!”
그렇기에 시안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시안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이번엔 모르크루의 단철장으로 간다.”
끝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일단 첫째.
“상행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많아지니까.”
1+1의 파격 행사를 시행할 수 있는 <모르크루의 단철장>
간단히 말하면 벌어드리는 수익이 2배가 된다는 것과 다름 없었다.
빨리 지으면 지을수록 그 효과는 누적이 되니 사실 가장 먼저 짓는 게 맞았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
“SSS등급의 검을 강화해야해.”
슬슬 장비를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현재 시안이 장비하고 있는 검은 무려 SSS등급.
미친듯한 강화를 거듭하여 우여곡절 만든 검이었다.
무려 2,110만 골드를 쏟아부으면서 만든 검.
정신 나간 금액이었지만 그 성능은 확실히 돈값을 했다.
당장 시안이 배우는 마혼수라검.
그 위력이 정신 나가버린 데에는 SSS등급의 검 영향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시안이 검을 강화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그러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SSS등급의 검이 버티질 못하고 있어.”
SSS등급의 검이 슬슬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최근에 엘릭서의 마력을 흡수하고, 메긴기요르드의 힘을 다루기 시작한 시안.
그 때문인지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을 시전할 때면 검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여기에 이번에 새로이 배우게 될 상급의 마혼수라검.
시안이 앞으로 진보한 만큼, 장비 또한 새로이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었다.
해서 결정 내린 <모르크루의 단철장>.
“장비 강화에는 같은 등급의 장비가 필요하니까.”
SSS등급의 검을 강화하려면 같은 SSS등급의 장비가 하나 더 필요했다.
S등급을 2개 만들어 SS등급을 만들고.
또 SS등급을 2개 만들어 SSS등급을 만들어야한다.
그리고 S등급의 검을 만드는 재료 값은 어마어마했다.
지금 이 SSS등급의 검을 만드는 데만 해도 재료 비용만 2,110만 골드가 들어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1+1의 파격 행사를 진행한다?
“강화 재료를 마구 찍어내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 이만한 것은 없다.
고민할 것이 무얼까.
“이번엔 모르크루의 단철장으로 간다.”
시안은 곧장 【마일리지 샵】 항목에 접속했다.
그리고 『특수시설』의 목록을 터치하여 <모르크루의 단철장>을 확인했다.
꾹.
④<모르크루의 단철장> (1,500,000 M)
『▶창조는 언제나 신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리고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
대장장이들의 기술은 마법이자 하나의 기적과도 같았죠.
그런 대장장이들의 기술들은 차원을 막론하고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뚝딱, 하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도깨비 방망이.
이 또한 망치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들의 신비로운 모습에서 탄생한 일화이죠.
이처럼 대장장이들은 신의 기술을 사용하는 존재로서 여겨져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장장이들 중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자.
그가 가진 기술이 신의 경지에 닿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신장(神匠).
신장(神匠), 모르크쿠.
그의 단철장에는 그의 비법들이 남아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해당 상품 구매 시, 영지에 <모르크루의 단철장>이 개방됩니다.
[건설 효과] - 영지 내, 생산 시설에서 생산하는 물품들이 +1 추가로 생산됩니다.
.
.
간단한 설명.
그러나 사기적인 효과.
시안은 거침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꾹.
《구, 구매하실··· 쿨럭! 건가요···욧!》
그러자 덜덜 떨리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거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모바일 영주.
시안은 바로 Y버튼을 눌렀다.
꾹.
《끄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러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모바일 영주가 발작을 해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알림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잠해진 모바일 영주.
“갔나···?”
시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지?”
···싶던 찰나.
띠링!
〈영지에 <모르크루의 단철장>이 개방됩니다. 〉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무미건조한 것을 보아하니 모바일 영주가 아닌 시스템이 보내온 알림창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마지막 마일리지의 인과에 모바일 영주가 끝내 가버린─.
바로 그때.
띠링!
『<모르크루의 단철장> (50,000,000 G)』
화면 위로 하나의 알림창이 새로 떠올랐다.
“······?”
시안은 이게 뭔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갑자기 뭔···.
“잠깐.”
그 순간 시안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시안은 방금 전에 떠오른 알림창을 다시 확인했다.
〈영지에 <모르크루의 단철장>이 개방됩니다. 〉
그리고 시안의 시야에 유독 눈에 띠는 한 단어.
개방, 이라는 단어.
시안은 모바일 영주에서 ‘개방’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접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것.
《전설 등급 업적 달성으로 아르나이즈 특전이 개방됩니다!》
전설 업적 보상의 아르나이즈의 특전.
<샤를롯의 긍지>, <모르크루의 불꽃>, <뮤리엘의 축복>, <엘로디의 탐구>와 같은 특전들.
전설 업적을 달성하면 이러한 아르나이즈의 특전이 개방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방’일 뿐.
효과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50만 골드를 지불하여 구매해야만 했다.
쉽게 말해 개방과 구매는 별개의 개념이었다.
그리고 지금.
마일리지 샵 <모르크루의 단철장>에 적혀있었던 글귀.
-해당 상품 구매 시, 영지에 <모르크루의 단철장>이 개방됩니다.
지금 화면 위로 떠오른 시스템의 알림창.
〈영지에 <모르크루의 단철장>이 ‘개방’됩니다. 〉
마지막으로 개방에 따른 구매 비용.
『<모르크루의 단철장> (50,000,000 G)』
시안의 사고가 정지한다.
아무런,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그럴리가 없다며 끊임없이 부정을 해보였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화면은 달라져있지 않는다.
띠링!
《이,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꾸에엑!》
《악착··· 같이 버텨따···!!》
《이제··· 이제··· 더 이상···.》
띠링!
《여한이 없어요오···.》
깨꼬닥.
모바일 영주가 기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건 기절이 아니라 임종 직전의 유언과도 같았다.
평소와 같은 알림창일진대.
그냥 한낱 글귀에 불과한 알림창일진대.
시안은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띠링!
[인과 폭주로 인한 과부하 감지.]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모바일 영주를 종료합니다.]
그러면서 모바일 영주가 꺼져버렸다.
검은 화면 위로 비치는 시안의 얼빠진 표정이 비쳐보였다.
승천하는 어이.
출타하는 정신.
“야이 개──!!!!!”
시안은 차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
샤를롯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 다르칸에 위치한 제국의 심장, 황궁.
그리고 황궁 중에서도 가장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곳.
황제의 알현실.
그곳에 두 금발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금발의 사내 중 황좌에 앉아있는 이.
“이걸 엘레나가 만들었다?”
황제, 발루아가.
발루아가는 눈앞에 놓인 만두를 바라봤다.
방금 만들어 가져온 것인지 만두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앞서 들려오는 대답에 발루아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였다.
발루아가와 똑닮은 사내.
황태자, 콘라드.
콘라드의 대답에 발루아가는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가 만두라니.
그러니까 엘레나가 요리를 했다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런데 듣자하니 저가 좋아서 한 것이란다.
그 일환으로 이 만두는 엘레나가 발루아가를 위해 만들어준 것이었다.
“번거롭게 뭐하러 이랬단 말이냐.”
발루아가는 혀를 한 번 차보였다.
그건 엘레나가 요리를 한다는 것을 책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굳이 그 요리를 자신에게 가져왔다는 것.
맛을 볼 아랫사람이 많은데도 굳이 자신에게 가져왔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콘라드를 책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가 만든 것이 어떨지 뻔했으니까.
엘레나는 황녀로서 손에 물이라고는 묻지 않던 아이였다.
요리라고는 일절 손에 대지도 않은 아이였다.
그런 엘레나가 요리를 해봤자 뭘 한단 말인가.
“엘레나가 폐하를 드린다고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하나 드셔보시지요.”
하지만 하나뿐인 딸 아이가 만들어왔다는데 버릴 수는 없는 노릇.
그것도 하나뿐인 아들 내미가 들이밀면 더더욱 그러했다.
발루아가는 가만히 콘라드를 노려봤다.
하지만 능청스러운 콘라드의 표정에 결국 만두 하나를 집어들었다.
겉모양새로는··· 꽤나 그럴 듯 했다.
그리고 평소라면 독의 여부를 판단하고자 대신들 중 한 명이 먼저 맛을 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엘레나가 만든 것.
그럴 필요는 없었다.
발루아가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입 안에 넣었다.
아그작, 씹히는 식감과 더불어 입안 가득 육즙이 터져나왔다.
발루아가는 살짝 눈을 치켜 뜨며 답했다.
“맛있다?”
생각 외로 맛있었다.
물론 황궁의 수석 셰프가 만든 것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러나 요리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실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엘레나가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엘레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발루아가는 다시 만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입 안으로 만두를 다시 집어 넣었다.
역시나, 맛이 꽤나 괜찮았다.
“너도 하나 먹어보거라.”
“저, 저는 괜찮습니다.”
발루아가는 콘라드에게도 권했으나 콘라드는 한사코 거절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다만 살짝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발루아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금 만두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래서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건 무엇이냐.”
이윽고 발루아가는 콘라드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설마하니 엘레나의 만두를 전하고자 찾아온 것은 아닐 터.
“황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알현을 청한 것이면 중요한 일일터.”
그것도 휴가라는 명목으로 농땡이를 피우다가 말이다.
“폐하, 실은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콘라드가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에는 별 다른 것이 없었다.
콘라드가 루벤에서 보고 들은 것들.
그러니까 자기 휴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자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게냐?”
발루아가는 들고 있던 만두를 접시에 다시 내려놓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물론 보고를 받아서 루벤이 어떠한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콘라드가 말하는 것은 보고서에 적혀있는 것과는 사뭇 딴판이었다.
특히나 로열 나이츠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루벤의 기사들.
“허나, 모두 사실이옵니다.”
단호한 콘라드의 말에 발루아가는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쩐지.
엘란두르가 왜 그 지랄을 하나 싶었다.
곧장 행동에 나서지 않고 왜 상소문만 올리나 싶었다.
‘엘란두르와 대적할 정도로 힘을 키웠다라···.’
그것도 어둠의 숲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말이다.
‘시안··· 시안이라···.’
북부의 사건 때에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만.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었다.
“그리고 폐하. 실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
“실례가 되지 않으면··· 폐하의 조디악 소드를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천 년전, 아르나이즈 샤를롯이 사용한 검.
현재는 옥새와 같이 황제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였다.
“조디악 소드를?”
“예. 폐하께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발루아가는 가만히 콘라드를 바라봤다.
조디악 소드는 황제를 상징하는 검.
이는 쉬이 넘겨서도, 빌려주어서도 안 되었다.
하지만 콘라드는 황태자로서 차기 황제가 될 몸.
발루아가는 잠깐의 고민 끝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조디악 소드를 건네주었다.
콘라드는 조디악 소드를 조심히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알현실 중앙으로 걸음을 옮겨 서 보였다.
챙!
이윽고 콘라드가 검을 뽑아들었다.
발루아가는 그런 콘라드를 가만히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
쐐애액!
조디악 소드가 알현실의 허공을 향해 휘둘러졌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선 소리.
콘라드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콘라드의 검은 흘러가듯 계속해서 허공을 수놓았다.
그리고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콘라드의 검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차분히 고개를 들어 발루아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이것은 오래 전, 샤를롯 대제께서 사용하셨던 검술입니다.”
“뭐라?”
발루아가는 눈을 부릅, 뜨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샤를롯이 사용한 검술은 수 백년전에 소실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무슨···.
잠깐의 정적.
이윽고 발루아가의 입이 열렸다.
“그것이 샤를롯 대제의 검술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런 발루아가의 물음에 콘라드는 가볍게 답을 해왔다.
콘라드는 일말의 주저함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발루아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무리 콘라드의 말이라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그것이···.”
발루아가의 물음에 콘라드가 심히 주저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말한다 한들 믿어는 줄까.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콘라드는 끝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름 아닌 레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콘라드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
발루아가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와락, 일그러진 인상은 현재 발루아가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샤를롯 대제의 여동생이 전당에 갇혀있었고.
지금은 루벤에 그 존재가 있다.
이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란 말인가?
무엇보다.
“엘란두르가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훔쳐갔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콘라드는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런 콘라드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
발루아가는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믿지 않았다.
저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콘라드가 루벤에서 세뇌가 되어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라본 콘라드의 눈빛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신병이나 세뇌같은 것이 걸린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콘라드는, 그렇게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
발루아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일이나.
사실 마냥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혼동이 된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샤를롯의 검술은 이미 수 백년도 전에 소실되었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지금 와서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콘라드는 레아라는 샤를롯의 여동생을 언급했다만.
발루아가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콘라드가 시연한 검술.
그리고 콘라드의 손에 들려있는 검.
천 년전, 아르나이즈 샤를롯이 사용했던 검,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그리고 그 이름을 본 따 지은 샤를롯의 검술,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아마 그래서일까.
딱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검을 수놓는 콘라드의 움직임이,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오랜 세월 합을 맞춰온 동료처럼 딱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고작 그런 느낌만으로 판단하기엔, 황좌의 자리는 너무도 무거웠다.
무엇보다 샤를롯의 검술을 엘란두르가 훔쳐갔다는 말.
아니,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니까 백번, 천번, 만번 양보해서 위의 이야기가 다 사실이라치자.
정확히는 일단 넘어가보자.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은 넘겨보자.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쉬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수 백년 전에 소실된 샤를롯의 검술.
역대 모든 선대의 황제들이 그를 복원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기에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황가의 명맥이었거늘.
그것을 자신의 대에서 되찾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콘라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리고 다시 이어진 콘라드의 말.
“조금··· 아니, 많은 골드가 필요합···니다.”
“복원에 골드가 필요하다?”
콘라드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라기보다는 주저한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얼마가 필요하지?”
“그, 그것이···.”
아니나 다를까 콘라드는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발루아가는 콘라드의 말을 기다렸으나.
계속 기다려도 콘라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가 필요하길래 답을 못하느냐. 5천만 골드라도 필요한 것이냐?”
“······ 그, 그렇습니다.”
발루아가의 물음에 콘라드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루아가는 왜 콘라드가 주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5천만 골드.
물론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함에 있어서 싼값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만만히 볼 수도, 쉬이 볼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잃어버린 황가의 명맥을 다시 이을 수 있다면 5천만 골드야─.
“앞에 1억이 붙으면··· 되옵니다.”
“······ 뭐라?”
발루아가는 순간 멈칫 거렸다.
지금 귓가로 들려온 콘라드의 목소리가 맞는 건가 싶었다.
정녕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건가?
그러니까 저게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앞에 1억이 붙는다는 말.
5천만 골드 앞에 1억이 붙다는 뜻?
그러니까 5천만 골드가 아니라, 1억 5천만 골드가 필요하다는 뜻?
발루아가는 멍한 시선으로 콘라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콘라드는 그런 발루아가의 눈을 슬쩍, 회피했다.
내려앉는 정적.
황제의 위엄이고, 품격이고, 나발이고, 염병이고.
“야이 개──!!!!!”
발루아가는 차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