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 자승자박(2)
크라우드 백작은···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 싶었다.
부릅, 떠진 두 눈으로 보이는 시야.
콰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앙!!!
숲의 일대가 개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 이, 이게 대체···!”
크라우드 백작은 지금의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아니, 믿는 게 이상했다.
이게··· 이게 정녕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끄아아악!”
“커허헉!”
갑작스러운 폭격에 병사들이 휩쓸려나갔다.
크라우드 백작 근처에 있던 기사들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오러를 다룬다는 사실은 그리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냥 없어 사라질 뿐이었다.
크라우드 백작 주위에 있던 기사들이 마법처럼 뿅, 하고 사라졌다.
믿기 힘들다,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어, 어, 어억···.”
그나마 입에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이 정도였다.
이것도 말이라기 보다는, 얼이 빠진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크라우드 백작은 입을 쩌억, 벌린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자욱히 피어난 먼지 구름.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그 사이로 크라우드 백작의 생사를 확인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크라우드 백작은 쩌억, 벌린 입을 억지로 움직여 답했다.
“사, 사, 살아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답이 들려왔다.
피어난 먼지 안개로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행?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그보다 난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그런 의문과 함께 이윽고 피어난 먼지 안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온전히 처참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온전히 처참한···?
크라우드 백작은 이 표현이 문법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눈앞의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광경은 현존하는 언어의 표현으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가 없었으니까.
공간이 무너졌다?
세상이 반으로 쪼개졌다?
크라우드 백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딴 걸로는 이 풍경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완벽한 표현을 찾는다 한들 사람들이 믿어는 줄까?
본인부터가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는데?
“내가 미친··· 건가?”
크라우드 백작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백작님! 명령을 내려주십쇼!!”
바로 그때 누군가 크라우드 백작을 향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멍한 크라우드 백작의 정신이 번뜩였다.
말도 안되는 압도적인 화력.
그 때문에 잠시 정신을 놓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뿐이었다.
저 말도 안되는 화력을 연달아 쓸 수 없을 터.
어쩌면 방금 전의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전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모든 화력을 집중한 것이 분명헀다.
반면에 크라우드의 병사들은 아직 건재했다.
비록 앞선 마수와의 결전과 더불어 화력에 휩쓸려나간 탓에 절반 정도 남았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크라우드 백작은 입을 크게 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슈슈슈슈슈슉!!
크라우드 백작의 귓가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바라본 하늘.
그곳엔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화살 소나기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 기사들을 일시에 쓸어버렸던 화살들이 말이다.
비대칭 전력(Asymmetric Power).
애초에 이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반딧불이와 태양빛.
고블린과 드래곤.
그 정도의 차이가 있는 싸움이었다.
해서 크라우드 백작은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전쟁의 판도를 완벽히 뒤집을 수 있는 최강의 전략.
“하, 항복!! 무조건 항복하겠다!!!”
크라우드 백작의 비명이, 메아리를 타며 울려퍼졌다.
#
“···해서 도련님은 현재 크라우드와 전쟁 배상금에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네.”
그렇게 끝이 난 한스의 이야기.
“······”
위고는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첫 감상으로는 위고는 저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저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아니, 저게 진짜 뭔 개소리란 말인가!
시작하자마자 전쟁이 끝났다니?
크라우드가 루벤에게 무조건 항복을 했다니?
그 과정에서 루벤의 전력은 일절 나서지도 않았다니!
말이··· 말이 안 되었다.
용병일을 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경우를 많이 봐왔다.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수없이 겪어왔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이건 그런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종류의 것이었다!
“자네 정말 노망난 게 아닌가···?”
이건 한스가 노망이 난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 더 상식적인 일이었다.
보니까 몸도 많이 쇠약해진 것 같은데.
엘란두르에 몸을 위탁하고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지만 그 고생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한스가 지금 노망이···.
“난 매우 멀쩡하다네.”
하지만 들려온 한스의 답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위고가 보기에도 한스의 정신은 멀쩡해보였다.
몸은 많이 쇠약해졌으나, 눈빛만큼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되려 그때보다 더욱 빛나고 있었다.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그게··· 정녕 사실인가?”
한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위고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정적.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그럼··· 나는 왜 만나자고 한 건가? 거진 30년 간 연락이 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정신을 차린 위고가 한스에게 물었다.
“사람을 하나 찾고자 하네.”
“사람을 찾아···?”
“그렇네. 소렌이라는 자인데··· 혹시 알고 있나?”
“소렌··· 소렌··· 음··· 이름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군.”
한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소렌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쉬이 내뱉을 수 없는 비밀과도 이야기.
그러나 한스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한스와 위고.
그들이 쌓아온 신뢰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한스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
“브라헤 가문의 일이라면··· 나도 알고 있지.”
위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브라헤 가문의 몰락.
그건 제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으니까.
“이렇게 들으니 이제야 기억이 나는 군.”
“소렌이라는 이름을 말인가?”
위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시 브라헤 자작이 내게 사람을 찾아달라 의뢰를 해왔어. 그때 브라헤 자작이 찾아달라던 사람의 이름도 소렌이었지.”
물론··· 찾지 못했지만.
위고는 뒷말을 삼키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브라헤 자작에게 직접 의뢰를 받아본 바.
위고는 다른 이들보다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엘란두르와 관련이 있는 줄은···.”
하지만 이건 위고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아직 추측일 뿐이네.”
“증거가 있는 추측인 것이고.”
한스는 아무런 대답을 해보이지 않았다.
“음···.”
위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사람을 찾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의뢰 쯤이야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용병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해주는 족속들.
하물며 의뢰인이 오랜 친우라면 고민할 건덕지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엘란두르라···.”
바로 엘란두르라는 이름이 얽혀있다는 것.
아무리 용병이 돈에 환장한 족속들이라고는 하나, 제 목숨보다 중요시 두지는 않았다.
용병들이 최우선적으로 두는 가치는 제 목숨과 제 몸 뚱아리.
그 다음이 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뻗을 자리는 알고 뻗대는 족속들이었다.
그렇기에 엘란두르와 관련되어있는 의뢰는 조금···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제국에서 엘란두르와 관련되고도 살아간 이는 없었으니까.
그건 용병왕인 위고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네 엘란두르에 몸을 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한스는 엘란두르에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엘란두르의 뒤를 캔다니?
물론 지금은 엘란두르가 아닌 루벤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그래도 엘란두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것 아니었나?
“세실님이 돌아가시고서 더 이상 엘란두르에 미련은 없네.”
“세실님이라면···.”
한스의 답에 위고는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다름 아닌 아주 오래 전, 한스가 돌풍 용병단을 떠날 때의 일.
위고는 그때서야 세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분이··· 돌아가셨었나?”
“오래된 일이지.”
한스는 담담히 답을 해왔다.
그러나 위고는 한스의 얼굴에 드리운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한스에게 있어 세실이 어떤 존재인지.
위고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인생의 은인이라고 해야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한스가 혀를 차며 위고의 생각을 끊었다.
위고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 눈에 보이나?”
“30년이 지나도 자네의 습관은 그대로니까.”
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한스가 살짝 시선을 내려보였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네. 귀족가의 영애를 사랑한 천한 용병. 그런 천한 용병을 사랑한 귀족가의 영애.”
한스는 자조섞인 어투로 툭, 말을 내뱉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금단의 사랑 같은 건,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지.”
그러나.
“자네에겐 그 어떤 때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지 않은가.”
위고의 말에 한스는 아무런 답을 해오지 않았다.
그저 내려앉은 시야 그대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천한 용병, 한스.
고귀한 귀족가의 영애, 로렐린.
그 금단의 사랑에 따른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스의 말마따나 고리타분한 이야기였다.
귀족가의 가문에서는 그 사랑을 반대했고.
둘은 그럼에도 헤어지지 못했으며.
끝내 둘은 도주를 택하였고.
귀족가의 가문은 가문의 수치라며 둘에게 척살령을 내렸다.
그리고 세실은, 그런 둘의 시간을 지켜준 은인이었다.
당시 시안을 뱃속에 품고 있었던 세실.
세실은 둘을 위해 엘란두르라는 이름을 빌려주었다.
엘란두르의 이름을 앞세워 둘을 척살하려는 귀족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었다.
그 때문에 이사벨에게 온갖 면박을 받은 세실이었건만.
세실은 그 면박 속에서도 한스의 시간을 지켜주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을.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더라면 만나지도 않았을거늘. 남의 인생이나 망쳐버린 못된 할멈이지.”
한스의 말에 위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위고는 한스가 사랑한 로렐린을 본 적이 있었으니까.
돌풍 용병단이 해체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고의 기억속에 로렐린은 젊고 또 아름다웠다.
병으로 떠나갈 때 또한 로렐린은 젊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당연히 한스의 기억 속 로렐린은 젊고 아름다울 터였다.
그런데 지금 못된 ‘할멈’이라는 한스의 말.
그건 로렐린이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한스의 마음 속에서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그렇기에 위고는 굳이 사실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헌데··· 세실님이 돌아가셨는데 어째서 그곳에 남아있는 겐가?”
그렇게 로렐린이 죽은 이후.
한스는 남은 생을 세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세실 또한 한줌의 재로 돌아갔을 때.
한스는 더 이상 삶에 미련이 남아있지 않았다.
딱히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다시 용병계로 돌아갈까··· 싶은 생각도 잠시 했었다.
하지만 홀로 남은 어린 시안이 눈에 밟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세실이 죽고 한스마저 떠나간다면.
저 어린 아이는 대체 누가 보살핀단 말인가.
한스가 엘란두르에 남았던 이유는 작은 연민이었다.
그리고 시안이 루벤의 영주로 쫓겨나고 벌어진 기상천외한 일들.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루벤.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는 루벤의 사람들과 아이들.
그건 한스에게 새로이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로렐린이 떠나고 세실이 죽은 이후.
한스가 엘란두르에 남고, 또 지금까지 루벤에 남아 시안의 옆을 보좌하는 이유.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딱 꼬집어 말해야 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더 소중한 늙은이지않나.”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나이가 들긴 했나보군.”
“아르나이즈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았나.”
한스와 위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좋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위고.
“그 의뢰 받아들이겠네. 이거··· 30년 만에 돌풍 용병단이 재결합되는 건가?”
“음? 단원들이 아직도 활동 중인가?”
“아니. 현역으로 활동을 하는 건 나밖에 없어. 제자들만 앞세워 뒷방에 박혀있지. 하지만··· 한스, 자네가 돌아왔다고 하면 다들 움직일거야.”
30년 만에 재결합하는 전설의 용병단.
비록 그때와도 같은 패기는 세월에 묻혀 사라졌지만···.
그때는 없었던 연륜이라는 것이 지금은 있었다.
한스는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의뢰비는?”
한스의 말에 위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엘란두르의 뒷조사를 하는 일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당연히 위험 수당에 따른 보수가 추가되기 마련..
그렇기에 많은 의뢰비를 요구해야했지만···.
방금 전, 한스의 말.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더 소중한 늙은이지않나.’
그 말이 지금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30년 만에 모이는 돌풍 용병단.
지금은 비록 예전같은 면모는 보일 수 없겠다만.
“추억으로 받도록 하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으리라.
#
위고는 한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뢰 내용에 관련하여 물어볼 것도 많았거니와.
30년 만에 만난 해후를 어찌 그리 쉬이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고.
어느덧 밖이 완전히 어둑어둑해졌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나이를 먹긴 먹은 것 같군. 요즘은 의뢰를 찾아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이렇게 엉덩이를 붙이고 수다 떠는 것이 더 재밌어.”
“그 놈의 나이 타령 좀 그만하게. 노인 두 명이서 뭔···.”
“늙은 건 사실이지 않나.”
한스와 위고는 다시 한 번 웃어보였다.
“오늘은 이쯤하지.나도 당분간 제이른에 머무를 거니 오늘만 날이 아니기도 했고. 동료들과 할 이야기도 남겨놔야 하지 않겠나. ”
한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른에 머문다는 한스의 말에 위고는 용병 사무소에서 머물 것을 권했다.
하지만 한스는 한사코 거절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 한스가 떠나간 이후.
“흐음···.”
위고는 한스와의 이야기를 가만히 정리했다.
루벤과 크라우드의 영지전.
소렌과 엘란두르에 관한 소문들을 수색하는 의뢰.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고.
또 위험한 의뢰이기도 했다.
위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지전의 이야기는 그렇다치더라도 엘란두르와 관련한 의뢰는 준비가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30년 만에 옛 동료들이 다시 모인다는 생각에 위고는 괜시리 가슴이 들뜨는 기분이었다.
위고는 나이답지 않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을 나섰다.
그리고 선술집 아래로 내려가던 그때.
“위고님! 위고님!!”
누군가 갑자기 위고를 붙잡아 불렀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웬 용병 하나가 위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위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자신을 불러세운 것도 이상한 일이었거니와.
심지어 그게 한 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수 십명.
여기 선술집에 있는 이들 모두가 위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위고 앞에 주르륵, 서보이더니.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머리를 크게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위고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뭔 개짓거리야?”
그러니까 뭔 개짓거리인가 싶었다.
이 놈들이 갑자기 이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까까지만 해도 크라우드의 의뢰를 묵살했다고.
그 때문에 돈을 못 벌게 했다고 뒷담화나 까던 놈들이거늘.
다짜고짜 감사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위고님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 했지 뭡니까?”
“다행히 위고님이 막아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무슨 개소리냐고.”
“어라? 위고님 소식 못들으셨습니까?”
“소식? 무슨 소식?”
위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용병 하나가 한 발 나서며 말했다.
처음 위고를 불러세웠던 용병.
“루벤과 크라우드 간의 영지전 말입니다.”
그 용병의 말에 위고가 멈칫, 굳어버렸다.
“그게··· 왜?”
위고는 조심스럽게 용병에게 물었고.
대답은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터져나왔다.
“크라우드가 그냥 개박살이 났답니다.”
“개박살 수준이 아니라 초전박살이 났다고 하던데요.”
그건 하나같이 크라우드가 개박살 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건 한스에게 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전령의 말로는 영지전이 시작하자마자 끝났다고 합니다.”
아니, 한스의 이야기가 축소되어 있었다!
위고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용병들의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하나.
그러니까 아까 한스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었다고?
정말? 진짜? 농담이 아니라?
과장 하나 섞이지 않고?
“파발들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횡설수설하던데요.”
“마수 어쩌고 하기는 했습니다만, 뭘 알아 들을 수 있어야죠.”
“그래도 크라우드가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을 보면 개박살 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위고는 이걸 뭐라 답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용병들이 왜 갑자기 위고에게 감사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영지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야말로 초전박살이 나버린 크라우드 가(家).
만일 위고가 크라우드의 의뢰를 묵살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로써 수많은 용병들이 크라우드의 병사로 참전했더라면.
“이번 영지전이 끝나면 그녀에게 고백하려고 했었는데···.”
“저는 한몫 두둑히 챙겨 시골에 내려가 소박하게 살려고 했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지는 뻔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돈에 환장하는 용병이라지만 목숨보다 앞에 두지 않는다.
“위고님이 아니었다면···.”
“뼈도 못 추리고 마수 밥이 될 뻔했지 뭡니까?”
“어둠의 숲. 어둠의 숲 하더니···.”
용병들은 생명의 은인을 보는 눈빛으로 위고를 바라봤다.
“처음엔 위고님을 원망했습니다만···.”
“이게 용병왕의 안목이라는 것인가 싶습니다.”
“과연 용병왕은 용병왕!”
그러더니 저들끼리 술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위고를 향해 잔을 높이 치들더니.
“생명의 은인! 용병왕 위고님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저들끼리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멍한 정신.
솔직히 지금도 저 이야기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딱히 이걸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스가 루벤에 있길래 그곳에 칼을 들이밀기 싫은 것 뿐이었다.
한 마디로 얻어걸린 것.
“위고님이 저희를 위해 하는 행동인지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감히 위고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저 초롱초롱한 눈빛에 대고 어찌 사실대로 말할까!
위고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 내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 이, 이것들아! 알겠어?”
정확히는 루벤을 믿으면 떡이 생기는 것이었다만.
그런 사실을 이들이 알 턱이 있나.
“다음부터 위고님 명이라면 죽는 시늉도 하겠습니다!”
“뭐든 말만 하십쇼!”
위고에 대한 불만은 그대로 충성심이 되어, 제이른의 하늘을 높이 찌르고 있었다.
#
“이, 이건 말도 안된다!!!”
크라우드 백작은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책상을 내리치는 무례한 행동도 동반되었지만, 크라우드 백작은 개의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크라우드 백작의 시선에 보이는 한 장의 서류.
정확히는 그 서류 가장 밑바닥에 적힌 숫자.
[100,000,000 G]
“1억 골드라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크라우드 백작은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