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서막과 종막(1)
“에잉, 쯧···.”
시안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보였다.
“하필 눈 가리개가 풀어져가지고는.”
다름 아닌 레민턴의 눈을 가리고 있던 가리개.
그 때문에 레민턴이 루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바뀐 레민턴의 태도.
본인은 아닌 척,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하지만 시안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영지전을 취소시키려해?”
레민턴이 크라우드 백작을 설득해 꼬리를 말고 도망칠 생각임을 말이다.
보나마나 루벤의 저력을 보고 이길 수 없다 생각한 것일테지.
현명하다면 현명한 처세였다만.
반대로 시안에게는 썩 현명하지 못한 처세였다.
그렇기에 레민턴을 지금 당장 풀어줄 수가 없었다.
지금 레민턴을 풀어주면 영지전은 성사되지 않을 터.
5,000만 골드 받자고 영지전을 취소시킬 수는 없었다.
“영지전으로 받아낼 수 있는 돈이 더 많으니까.”
결국 시안은 레민턴의 몸값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5,000만 골드가 아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크라우드와의 영지전으로 뜯어낼 수 있는 돈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괜히 풀어줬다가 영지전이 취소되면 더 손해였으니까.
이 모두가 한순간의 방심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거늘.
물론.
“뭐, 몸값 자체가 날라간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레민턴의 몸값을 받아낼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몸값을 받아낼 수 없다는 뜻일 뿐.
공짜로 풀어준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영지전 끝나고 받아내면 되니까.”
영지전이 끝나고 다시 협상 테이블을 열어도 무관했다.
그리고 그땐.
“이자 붙여서 몸값을 더 올려야지.”
뭐, 어쨌든.
시안은 현재 레민턴을 영주성 지하에 가둬놓은 상황이었다.
간수를 따로 둘 필요도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을 뿐더러 도망치려는 순간 레아한테 걸릴 테니까.
어쨌거나 지금 당장 현질을 할 수가 없었다.
곧 들어올 몫돈에 현질 계획을 세워놓았건만.
“에이, 김샜네.”
정말이지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주 현질할 골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아멜리아가 벌어 온 830만 골드가 있지 않은가.
웬만한 대규모 도시의 예산과 맞먹는 금액.
한 번의 상행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라 예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모바일 영주 앞에서는 한낱 푼 돈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골드가 쓰일 곳은 정해져있었다.
『[영주 전용] - 초보자 성장 지원 특급 패키지 (1,500,000 G)
구성품: 아르나이즈 상급 무공(武功)』
-본 제품은 단 1회만 구매 가능합니다.
-본 제품은 인과 초특가 할인 제품으로 구매 시 환불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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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상급의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고민할 것이 무얼까.
애초에 이건 고민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질 전에 급히 처리해야할 문제가 있었다.
“영주님. 현재 크라우드 백작가의 병력이 루벤으로 출병했다는 정보입니다.”
앞선 시야로 들려오는 목소리.
시선을 들자 루벤의 경비대장, 루카스가 결연한 얼굴로 보고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어진 보고에 따르면 크라우드 백작가의 병력은 대략 1만이었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또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레민턴이 잡혔다는 소식에 크라우드 백작이 발끈하지 않은건가 싶었다.
생각보다 빠르고 또 생각보다 규모가 큰 병력이었다.
원래는 별 다른 준비를 할 생각이 없었건만.
이 소식에 시안도 준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지금 시안의 옆.
“이번에도 만두더냐. 솔직히 말하거라 엘레나. 이 정도면 만두밖에 못 만드는 것 아니냐?”
“아, 아니에요! 그리고 싫으시면 드시지 마시라니까요! 오라버니 먹으라고 만든 게 아닌데 왜 자꾸 투덜투덜 거리시는 거예요?”
투닥투닥거리는 콘라드와 엘레나.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둘에게 말했다.
“두 분. 들으셨죠?”
그런데 어째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던 것일까.
“어찌 시안만 생각하고 음식을 해주─. 응? 뭘 말인가?”
“오라버니야 말로 도와주겠다 말해놓고 지금 방해만─.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봤다.
시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크라우드 백작이 루벤으로 출병했다고 합니다.”
“음? 그런가?”
그러자 콘라드가 몰랐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데?”
콘라드는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엘레나 또한 콘라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기는 개뿔!
시안에게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눌러앉아 있으실 생각입니까?”
바로 루벤에 눌러앉다시피한 콘라드와 엘레나
“전하와 황녀님 때문에 크라우드 백작이 공격도 안하고 떠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둘 때문에 영지전이 불발되면 어떻게 책임질 거란 말인가!
“응?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그, 그러게요···?”
콘라드가 엘레나는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뭐··· 말마따나 좋은 상황이라 볼 수 있는 개뿔!
“안 좋습니다!”
영지전을 해야 배상금을 받아내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소리치는 시안의 말에 콘라드와 엘레나가 몸을 움찔, 거렸다.
얼핏 황태자와 황녀를 겁박하는 모습처럼 비쳐보였으나 시안은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시안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었으니까!
수 천만 골드가 걸려있는데 눈에 뵈는 것이 있을까!
아니,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다만.
“지금 두 분이 루벤에 오신 지 며칠이 지난 건지는 알고 계십니까?”
“그, 글쎄···.”
“한 3일 정도··· 되었나요?”
뭐? 3일?
3일은 무슨.
“3주입니다! 3일이 아니라!”
그것도 꽉찬 3주.
그러니까 4주째에 달하는 시간으로 무려 한달이었다.
그 한달 동안 둘은 도무지 떠날 생각은 커녕 눌러 앉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루벤이 익숙하다 못해 집처럼 느껴지는 지.
황궁의 복도 마냥 영주성의 복도를 누비고.
수도의 거리 마냥 루벤의 거리를 활보했다.
오죽하면 영지민들조차 이제는 콘라드와 엘레나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콘라드와 함께 간식을 먹고자 다나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나는 시안과 함께 동행한 콘라드를 보더니.
‘늘 먹던 걸로 드려요?’
이런 소리를 했었다!
‘부탁하네.’
그리고 콘라드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누가 봐도 루벤에서 몇 년은 거주한 단골 손님과의 대화가 아닌가.
황태자가 단골 손님이라니.
이대로 가만 두었다간 진짜로 눌러 앉아버릴지도 몰랐다.
샤를롯의 검술을 배울 때야 어쩔 수 없었다만.
지금은 가르칠 것은 전부 가르친 상태.
그러니.
“이제 좀 가시죠?”
이제는 슬슬, 내쫓아 버려야 했다.
시안의 말에 콘라드와 엘레나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서로에게 답을 미룰 뿐이었다.
황태자와 황녀가 눈치를 보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만.
지금 상황은 충분히 그렇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벤이 너무 좋았으니까!
솔직히 콘라드도 이렇게까지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휴가라는 명목이긴 했다만, 황태자에게 휴가는 거의 사치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짧으면 1주, 길면 2주.
그 안에 루벤을 떠날 생각이었다.
황태자로서 그렇게까지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런데 2주는 무슨.
어느덧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별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생활 자체가 미쳤다.
황궁에서의 생활은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물론 영주성의 크기는 황궁보다야 작았다.
그런데 넓으면 무얼 하는가.
그 넓은 황궁을 혼자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혼자 생활하기엔 지금 주어진 방만 해도 훌륭했다.
아니, 훌륭하다 못해 황궁에 있는 방보다 훨씬 좋았다.
방의 인테리어 하며, 가구들 하며.
특히나 루벤의 드워프가 손수 제작한 침대.
이건 진짜 구름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세상 안락했다.
게다가 영지의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농담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졌다.
나중에 세계수의 축복 덕분임을 깨달았지만.
여기가 어둠의 숲인지, 빛의 숲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또한 혀가 살살 녹는 음식은 물론.
언제나 생기가 넘치고 활기찬 영지민들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유토피아요, 낙원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황궁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것들이 끝이었다.
다시 황태자로 돌아가 고된 일상을 반복해야했다.
엘레나 또한 마찬가지.
“그, 그거야···.”
“이렇게 있다보면 제가 만두도 만들어드리고···.”
그렇기에 떠나고 싶지 않았건만.
부릅!
시안의 강렬한 눈빛에 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조만간··· 떠날 생각이었네. 하하.”
“조만간이 언제입니까?”
잠깐의 정적.
“한··· 달 정도?”
“······”
시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황태자와 황녀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원.
시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루카스. 언제 쯤이면 크라우드의 병력들이 루벤에 올 것 같아?”
“진군 속도로 보아 5일 이내면 어둠의 숲 영역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어진 루카스의 답.
시안은 그런 루카스의 답을 이어가듯 콘라드와 엘레나에게 말했다.
“3일.”
펼쳐진 시안의 세 손가락.
“3일 이내에 돌아가시죠.”
그러자 콘라드와 엘레나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3일은 너무 짧네!”
“그, 그래요···! 지금 당장 준비해도 3일은 빠듯해요!”
하지만.
“3일.”
시안은 단호했다.
“1주일! 1주일은 어떤가.”
“1주일 안에 무조건 나갈게요!”
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3일.”
그러자 콘라드와 엘레나가 당황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하루만! 그럼 딱 하루만 더 주게! 그러니까 4일!”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요?”
4일이면 나쁘지 않았다.
핵심은 크라우드 백작이 도착하기 전에 둘을 내쫓는 거였으니까.
그러나.
“3일!”
시안은 이마저도 칼같이 끊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는 법이었다.
또 그때가서 무슨 핑계를 대며 밍기적 거릴지 몰랐다.
그러니 끊을 수 있을 때 단호히 끊어야했다.
무엇보다.
“저 돈 벌어야합니다!”
무려 수 천만 골드가 걸려있는데 어찌 단호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시안은 틈조차 보이지 않는 결의로 콘라드와 엘레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확고함 때문일까.
“아, 알겠네··· 3일 안에 떠나겠네.”
“네, 네···.”
콘라드와 엘레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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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재촉에 콘라드와 엘레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지금 바로 떠날 준비를 하려는 것 같았다.
물론 3일이란 시간이 있었다만.
황태자와 황녀가 움직이는 일에는 마땅한 준비가 필요했다.
둘은 둘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이것저것 챙기고 준비하려면 지금 당장 움직여도 빠듯했다.
그렇기에 조금의 시간을 더 주어도 되었지만···.
말마따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시안도 말은 단호하게 짤랐다만 솔직히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콘라드와 엘레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는가.
그 둘이 루벤에 놀러옴으로써 받은 도움이 상당했다.
그런데 이제 와 둘을 내쫓고 앉았으니.
아무리 수 천만 골드가 걸렸다고는 하나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시안도 둘을 내쫓고 싶지는 않았다.
둘 때문에 딱히 불편한 것도 없겠다.
영지민들도 딱히 불편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또 레아도 아닌 척 그래도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라우드와의 영지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크라우드 백작이 아무리 미쳤다고 한들.
레민턴이 루벤에 인질로 붙잡혀 있다고 한들.
황태자와 황녀가 있는 영지를 향해 공격을 해오지 않을 테니까.
아마 크라우드와의 영지전만 아니었다면···.
시안도 그렇게 매몰차게 대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콘라드와 엘레나 또한 그것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콘라드와 엘레나가 떠난 지금.
시안은 곧장 영주성 Lv.3에 위치한 연무장으로 향했다.
시안과 콘라드의 합작으로 아작이 났던 연무장.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복원이 되어 혼자 사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시안은 연무장 한켠에 서서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패키지 항목에 접속.
아까 현질하지 못했던 패키지를 구매했다.
『[영주 전용] - 초보자 성장 지원 특급 패키지 (1,500,000 G)』
꾹.
···하는 터치와 함께 화면 위로 수많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환불이 불가한 상품이니 신중히 결정하라느니.
한 번 구매하면 다시는 구매할 수 없다느니 등.
보나마나한 경고창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시안은 경고창의 스크롤을 주르륵, 내려 ‘모두 동의’ 버튼을 눌렀다.
꾹.
《구매 완료!!》
그러자 구매 완료 되었다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증발하는 150만 골드.
4인 가족이 무려 4,166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건만.
“······ 이젠 150만 골드가 감흥이 없네.”
딱히 돈을 썼다는 감흥이 없었다.
어째 금전 감각이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바일 영주 또한 별 다른 기색이 없었다.
“모바일 영주도 150만 골드는 이제 돈도 아니라 이거지.”
어째, 같이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아무튼.
“150만 골드니까··· 15,000 마일리지인가?”
현질 금액의 1%가 적립되는 마일리지.
“그 전에 있던 마일리지가 120마일리지였었지.”
뭐, 피해 인과로 적립된 마일리지가 더 남아있긴 했었다.
정확히는 엘릭서와 메긴기요르드를 사고 남은 21마일리지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딱히 의미도 없었었을 뿐더러.
그 마저도 15일이란 기한이 다 되어 소멸해버렸다.
시안은 【마일리지 샵】에 접속하여 쌓인 마일리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마일리지] - 120 M
“······ 응?”
심상치 않은 내용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일리지가 쌓여있지 않았으니까.
원래라면 15,120 M가 적립되어 있어야했다.
그런데 보이는 화면엔 120M라는 숫자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이게 왜···?”
···라는 의문이 들던 찰나.
띠링!
《하핫! 패키지는 마일리지가 쌓이지 않는 답니닷!》
화면 위로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라고 입을 열려던 찰나.
《패키지는 이미 인과 할인을 받은 상품이라구욧!!》
《그것도 할인 중의 할인!》
《초특가 할인!!》
《한 마디로 이미 혜택을 드린 거란 말씀!》
《이미 혜택을 받으신 상품을 구매하셔놓고 또 혜택을 바라신다고요?》
띠링!
《당신! 진짜 날강도 아니예욧?!》
“······”
시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뭔가 열받는 말이긴 하면서도···.
가만 듣자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초특가 할인이 적용되었다던 모바일 영주의 말.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콘라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샤를롯의 검술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1억 5,000만 골드에 달하는 돈이 필요했으니까.
반면에 카일의 마혼수라검은 150만 골드.
1억 5,000만 골드에 비하면 고작 1%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할인 혜택으로만 따지면 -99%의 세일.
그야말로 초특가 할인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어마어마한 혜택을 받고 있는데 마일리지까지 쌓인다?
“······”
솔직히 할 말은 없었다.
띠링!
《마일리지를 쌓고 싶으시면, 현질을 해보세요!》
하지만 열이 받는 건 대체 왜일까.
뭐, 어쨌든.
이로써 깨달은 사실 하나.
“패키지는 마일리지가 안 쌓인다라···.”
정확히는 할인 혜택을 받는 상품들은 마일리지가 쌓이지 않는 것 같았다.
순수하게 현질한 금액만 쌓이는 것.
“누가 날강도인건지 원.”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아무튼.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보였다.
어느 정도 복원된 영주성의 연무장의 풍경.
그 풍경 사이로 환한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조금의 시간이 지나 빛무리가 잠잠해질 때쯤.
시안은 연무장 중앙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싸늘한 냉기가 흐를 것 같은 차가운 인상의 미남자.
사뭇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은발.
천년 전, 세상을 구원한 여섯의 아르나이즈.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렸던 아르나이즈, 카일이었다.
물론 카일은 천 년전에 사라졌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카일은 진짜 카일이 아니었다.
진짜처럼 보이나 눈앞의 카일은 모바일 영주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였다.
시안은 가만히 그런 카일을 가만히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이 다음 마혼수라검의 과정을 알려줄 터.
“좋아.”
시안은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카일을 기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자신이 있었다.
지금 시안의 성장은 어마어마 했으니까.
경지만 따지면 거의 마스터(Master)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마스터라 부르기엔 조금 애매하나.
마스터(진)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완전히는 아니나 엘릭서의 힘도 흡수했겠다.
메긴기요르드의 힘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겠다.
수많은 성장 버프를 덕지덕지 바르고 있겠다!
“예전의 내가 아니지.”
둔재라 불리던 시안은 이제 없었다.
재능이 박살난 시안은 이제 없었다.
시안은 마혼수라검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자신이 있었다.
최강의 검술, 마혼수라검.
그러나 시안 또한 최강의 현질로 단단히 무장을 한 상태였다
“바로 수료하는 거 아니야?”
그런 시안의 기대 속에서, 카일은 차분히 검을 뽑아들었다.
이윽고 천천히.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을 속도로 카일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로써 완성되는 하나의 참격.
꽈르르르릉···!
참격이 지나간 공간이, 괴악하게 일그러졌다.
실제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안의 눈에 그렇게 비쳐보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카일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건 가상의 일임이 확실함에도 시안은 알 수 없는 위압감에 몸을 흠칫, 떨었다.
세상 전체를 으스러뜨려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살의의 파동.
단위를 아득하게 초월한 소름끼치는 힘의 근원.
그것을 느낀 것은 아주 찰나였지만,
시안은 그 경이로운 힘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카일의 검이 멈추었다.
그리고.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의 상급 과정을 시작합니다.》
《관리자의 수준에 맞춘 일일 과제가 부여됩니다.》
《카일의 동작을 따라하기 [0 / 1,000]》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상급 진행률 0%]
화면 위로 다음 과정의 마혼수라검이 진행되었다.
시안은 멍하니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아무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뭘··· 한거야 방금?”
카일이 뭘 했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과제는 카일의 동작을 따라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방금 카일이 보인 걸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1,000번이나?
심지어 일일과제?
이게 지금 내 수준에 맞춘 과제라고?
“······ 미친 거 아니야?”
시안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거늘.
뭐가 어쩌고 저째?
앞선 마혼수라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난해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현질해야 된다.”
이건 현질밖에 답이 없음을.
지금의 수준으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따라하라 해도 뭐가 보여야 따라하지 않겠는가!
온갖 아이템이란 아이템은 모조리 사용해야했다.
엘릭서, 메긴기요르드.
뭐든 좋으니 지금보다 수준을 끌어올려 카일의 검을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성장 버프를 더 중첩시킬 필요가 있었다.
“지금 중첩된 성장 버프가···.”
<샤를롯의 긍지>에 얹혀있는 성장 버프.
광고 제거와 무제한 버프로 얻는 성장 버프.
여기에 연무장의 성장 버프와 각종 아르나이즈 특전으로 증폭된 효율.
그 모든 수치를 합한 바, 대략 17,000% 정도 되었다.
그러니까 1시간 수련하면 약 170시간 수련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부족했다.
17,000%가 아니라 30,000%까지는 끌어올려야 할 것 같았다!
“이, 일단··· 병사 훈련소보단 영주성 연무장의 성장 버프가 효율이 좋으니 연무장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영주성을 업그레이드해야했지.”
그, 그래도 아멜리아가 벌어온 돈이 있으니까···.
“현재 영주성이 Lv.3이니까 Lv.4의 비용이···.”
『《영주성 Lv.4》 (9,500,000G)』
950만 골드.
여기에 연무장 업그레이드는 또 별도였다.
대충 계산만 때려도 필요한 돈이 1,000만 이상.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
.
“크라우드 백작이··· 언제 온다고 했었지?”
군대 단위의 병력이면 분명 어둠의 숲 마수들한테 어그로가 끌릴텐데.
그래도 백작가의 병력이니 마수들 정도는 처리할 수 있겠지?
마수들한테 정리되서 후퇴하는 건 아닐까?
에이, 설마.
“그런데 진짜 마수들 선에서 정리되면 어떡하지···?”
얼마 전에 오우거도 무리 생활을 하던데···.
지금이라도 마수들을 싹 정리해놔야하나?
“아니면 극 수라천살이라도 날려서 벌목 좀 해놓을까···?”
시안은 심히, 아주 심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